Hunter Club RAW - chapter (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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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한밤의 조우
145# 한밤의 조우
“저, 저런 괴물이 어디서…?”
클럽 스콜피온… 아니, 이제는 남부 왕국 솔라리스 산하 제 7유격대의 대장인 악숨은 달아날 것만 같은 혼을 가까스로 붙잡았다.
남부 왕국 솔라리스는 남부에서 독보적인 위세를 떨치는 세력이다. 그 전신은 샌드웜 격멸을 목적으로 한 남부연합군 그 자체였으며, 우두머리 또한 당시 남부연합군을 총지휘했던 사령관 이그니스가 그대로 이어받았다.
그런 솔라리스 산하의 부대인 만큼, 제 7유격대 또한 앞 순번의 부대들만은 못해도 남부의 각 클럽들에서 고르고 고른 암살자들이 포진되어 있는 정예부대였다.
‘그런데 이런 결과라니… 대체 이 무슨…?’
웬 계집 하나가 혼자서 앞을 막아섰을 때는 별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당시 그에겐 간발의 차이로 놓쳐버린 표적을 기필코 잡아야만 한다는 사명감이 팽배했으니까.
뜻밖의 장애물이 나타나긴 했지만 별 상관은 없었다. 그 여인이 표적의 조력자이든, 아니면 무고한 행인이든, 유격대의 행사를 목격한 이상 절대 살려둘 수 없었다. 이번 작전은 극비 중에서도 극비. 비밀을 아는 자는 가급적 적을수록 좋았다.
그래서 볼 것도 없이 즉참 명령을 내렸다. 여인에게는 안 된 일이었지만, 세상에는 절대 알지 말아야 할 것도 있는 법이었으니.
하지만 그건… 돌이킬 수 없는 오판이었다.
평소라면 반드시 상대의 기량을 먼저 가늠하고 움직였을 것이다. 하지만 표적이 바로 코앞에 있다는 그 조급함이 악숨의 냉철한 판단력을 일순간 흐트러뜨려놓았다.
그야말로 그 일생에 있어 최악의 실수.
느닷없이 홀로 나타나, 유격대 일곱 명과 맞부딪친 여인은 형체 없는 귀신같았다.
히죽 미소 짓는 여인의 얼굴이 어둠 속으로 깊게 스며든 그때. 악숨은 그 이후부터 여인의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사방으로 마력을 펼치며 기감을 극대화했지만, 느껴지는 것이라곤 사방을 불길하게 잠식해 오는 먹먹한 어둠뿐이었다.
쉭! 쉭! 날을 바짝 세운 칼울음이 들릴 때마다, 진형을 이루고 있던 부하들이 답답한 신음을 토로하며 쓰러졌다. 핏방울 하나 튀지 않는 깔끔한 죽음.
악숨은 깨달았다. 이건 싸움도, 뭣도 아니었다. 자신들은 상대를 볼 수 없는데, 상대는 자신들이 어디 있는지 훤히 꿰고 있다. 말하자면 깔끔하게 차려진 밥상을 느긋하게 맛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암살자와 암살자 간의 대결은 마법사들의 대결과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그 수준차가 극명할수록, 머릿수에 구애되지 않고 한쪽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나게 마련. 일격필살(一擊必殺)을 미덕으로 삼는 암살자의 특성상 한 번의 공격을 허용한다는 건 곧 죽음으로 직결된다. 게다가 하수들은 고수의 종적조차 쫓을 수 없으니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건 당연지사.
일방적인 도살… 이건 전형적인 고수와 하수의 싸움이었다.
“…끅!”
또 다시 한 명이 죽었다. 일곱 명의 대원들 중, 이제 남은 건 그를 포함한 두 명.
다급해진 그는 마지막 남은 수하에게 최후의 밀명을 전달했다.
‘퇴각한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라.’
‘알겠습니다.’
지시를 받은 부하가 반대편으로 튀어나가자, 악숨은 손에 쥐고 있던 연막탄을 터뜨렸다.
펑!
호두알만 한 구슬이 깨지면서 사방으로 매캐한 연기가 치솟았다.
악숨이 사용한 연막탄은 단순한 시야방해용이 아니었다. 저 검은 연기에는 사막의 전갈에게서 채취한 강력한 신경독이 포함되어 있어, 멋모르고 그 영역에 발을 들여놨다가는 호흡곤란이 오면서 구토를 유발할 수도 있었다. 물론, 미리 해독약을 복용한 그들에게는 별 위해가 되지 않는다.
독연을 터뜨린 악숨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주를 감행했다. 다행히 독연이 효과가 있었는지, 무자비한 기세로 대원들을 도륙하던 악마도 잠시 행동을 멈춘 듯했다. 그 증거로 그보다 먼저 튀어나간 부하의 비명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안심할 순 없었다.
악숨은 정말로 죽을힘을 다해 도망쳤다. 이렇게 젖 먹던 힘을 쥐어짠 건 드래프트 당시, 목숨이 경각에 달했을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어찌나 빠르게 달렸는지, 눈에 보이는 주변의 풍광이 물에 젖은 듯 흐릿하게 번져나간다. 얼굴 또한 나무 잔가지에 이리 긁히고 저리 긁혀서 엉망이었다.
그렇게 얼마를 달렸을까.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른 악숨은 비치적비치적 몸을 끌면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헉, 헉, 헉… 우우욱…!”
텅 빈 속에서 위액이 역류할 것만 같다. 헛구역질을 하던 악숨은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수풀이 빽빽하게 들어찬 밤의 수림(樹林)…. 이따금씩 들리는 풀벌레 소리를 제외하면, 고요한 적막만이 가득하다.
‘사, 살아난 건가?’
악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확률 50%의 도박. 다행히도 사신은 먼저 달려 나간 부하의 뒤를 쫓아간 모양이다.
여전히 불안하긴 해도 일단은 살았다. 오늘은 달이 없는 날. 이만한 거리를 죽자살자 뛰어왔으니 상대가 아무리 대단한 암살자라 하더라도 당장 추격에는 무리가 있을 터.
“…그르르르…….”
“……!”
허리를 굽히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악숨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선명한 그르렁거림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뭐지? 산짐승인가?’
늑대도 아니고, 곰도 아니다. 살을 저미는 것 같은 섬뜩한 기성에 깜짝 놀란 악숨은 얼른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쳇바퀴를 열심히도 도는군.”
“컥!”
목덜미에 서늘한 감촉이 와 닿았다. 무지막지한 힘이 목줄을 움켜쥐자, 숨이 턱 막혀버린 악숨은 두 눈을 찢어질 듯 부릅뜨며 발버둥 쳤다.
금방이라도 꺼져버릴 듯 아득한 시야에 들어온 것은 시뻘건 살기로 번들거리는 눈알이었다. 흉포한 짐승의 그것과 꼭 빼닮은 폭군(暴君)의 시선.
‘무, 무슨 힘이 이렇게…….’
도대체 언제 가까이 다가온 것일까. 정체불명의 손아귀에 목줄을 제압당한 악숨은 뇌 속에 팽배한 의문을 해결할 새도 없이 물에 젖은 걸레짝처럼 축 늘어져버렸다.
악숨을 순식간에 제압한 것은 정체불명의 거한이었다. 괴로운 숨을 내뱉는 악숨의 목덜미 아래로, 어두운 녹색을 띤 피부가 엿보였을 때, 늘어진 악숨의 뒤편에서 묵빛의 뇌전이 작렬했다.
깡!
“웃!”
거한의 피부와 맞부딪친 흑색의 벼락은 파르스름한 불똥을 튀기며 산화했다. 얼핏 보기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인 일격이었지만, 그 충돌의 여파는 주위의 나뭇잎들을 우수수 떨어지게 만들 정도였다.
밤의 일부인 것처럼 요동치는 묵색 기류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신소율이었다. 뭉실뭉실 피어오른 어둠 속에서 하얀 얼굴을 내비친 그녀는 잠시 가늘게 뜬 눈으로 악숨을 제압한 거한을 바라보다가, 이내 까만 눈을 크게 치뜨며 반색했다.
“아, 아저씨…?”
“오냐. 나다.”
어처구니없다는 듯 내뱉은 소리에 바로 응답한 상대를 유심히 살핀 신소율은 고개를 한쪽으로 꺾으며 은신을 해제했다.
“뭐예요! 연락도 없이! 여긴 왜 왔어요?”
타박하듯이 말하지만, 그 목소리엔 숨길 수 없는 반가움이 서려 있다. 그도 그럴 게, 전혀 뜻밖의 장소에서 사랑하는 님을 마주하게 되었으니 어찌 반갑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녀의 기습을 손쉽게 막아낸 강적은 기가 막히게도 레그나토르의 의장, 노구덕이었다. 본래 칼립스의 공관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그가 어떻게 이런 오지에 모습을 드러낸 것일까? 게다가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에헴. 이 몸은 보이지도 않느냐?”
“왕뱀? 너도 왔어?”
“…버르장머리 없는 건 여전하구나!”
노구덕의 뒤쪽에서 탄식하듯 말하는 이는 백금발을 어여쁘게 양 갈래로 땋아 내린 묘령의 미소녀였다. 주위를 뒤덮은 어둠 때문에 정확한 안면의 윤곽은 보이지 않지만, 시원하게 치뜬 눈망울 아래로 불퉁하게 튀어 나와 있는 볼살은 꼬집어주고 싶을 만큼 깜찍하기 짝이 없다.
미소녀의 머리칼에 은은히 감도는 푸른 기운은 사방이 칠흑으로 뒤덮인 와중에도 반딧불처럼 선명하다. 신소율이 아는 한, 세상에 이런 독특한 모발을 지닌 사람은 단 한 명 밖에 없었다. 바로 노구덕이 기르는 애완동물(?) 중 하나인 브리트라였다.
재회의 기쁨도 잠시, 신소율의 깊은 눈매엔 금세 서운한 감정이 깃들었다. 노구덕이 여기까지 따라왔다는 것. 그 사실을 탐사대를 책임지고 있는 자신에 대한 불신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아저씨…….”
“잠깐.”
노구덕이 손을 들어 올리자, 신소율은 얼른 입을 다물었다. 노구덕의 솥뚜껑 같은 손아귀에 붙잡힌 악숨의 어깨가 미약하게나마 들썩이고 있는 게 보였다.
“끄으으으…….”
손아귀의 힘이 살짝 풀린 덕분에 가까스로 정신을 되찾은 악숨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정신이 꺼져버릴 듯 아득해져 있던 탓에 방금 전 두 남녀가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지는 듣지 못했지만, 이 두 사람이 아는 사이라는 건 명백했다.
“네, 네놈들…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기나 하는 거냐? 너희들은 지금 솔라리스의 행사를 방해했다!”
사면초가에 처한 악숨이 들고 나온 패는 그 배후에 있는 거대한 뒷배경이었다. 남부의 패자라 할 수 있는 솔라리스의 이름값이라면… 어쩌면, 이 무뢰배들의 기를 죽일 수도 있으리라. 이것은 실상 그가 기댈 수 있는 마지막 동아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악숨의 기대와는 달리, 그 엄포에 되돌아온 것은 진득한 비웃음이 묻어나오는 대답이었다.
“그래, 솔라리스란 말이지. 그럴 줄 알았다. 그놈들이 뒤에서 호박씨를 까고 있었나?”
“뭐, 뭐라고?”
“구성원을 보아하니 유격대나 첩보부대쯤 되겠군. 유언은 그게 끝이냐?”
“유, 유언? 이놈! 감히 솔라리스의…!”
“알았으니 그만 좀 지껄여라. 네가 솔라리스의 개라는 건 충분히 알아들었으니까.”
“꺼헉!”
목줄기를 틀어쥔 손아귀의 힘이 다시 강해졌다. 기도가 틀어막힌 악숨이 꺽꺽거리며 괴로워하는 사이, 그의 귓전으로 거한의 냉랭한 음성이 날아들었다.
“소율아.”
“응. 왜요?”
“이놈, 죽여라.”
“……!”
고통에 신음하던 악숨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솔라리스의 이름을 듣고도 저런 무미건조한 반응이라니. 기대와는 전혀 딴판이지 않은가.
“…심문 같은 건 하지 않아도 돼요?”
“필요 없어. 쫓기던 놈한테 물어보면 돼.”
“그야 그렇긴 한데…… 핏, 이런 일은 꼭 날 시킨다니깐.”
“어쩔 수 없잖냐. 내가 손을 쓰면 깔끔하게 끝나진 않을 테니까. 흔적이 남아선 안 돼.”
악숨은 그제야 사내의 의도를 깨달았다. 살인멸구(殺人滅口). 시퍼런 인광을 발하는 거한의 눈동자가 그의 얼굴을 무자비하게 훑고 지나갔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이쪽의 암살자도 보통이 아니거든. 솔라리스에서 과연 네가 누구에게 당했는지 알아차릴 수 있을까?”
“크읍… 읍…!”
“흠. 이번 기회에 한 번 시험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군.”
“끄윽…!”
불안하게 흔들리던 악숨의 눈동자가 튀어나올 듯 크게 부릅떠졌다. 이윽고, 생기를 잃은 눈동자의 빛이 사라지면서, 격하게 몸부림치던 그의 움직임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아직 온기가 가시지 않은 그의 시체에선 부하들과 마찬가지로 피 한 방울조차 새어나오지 않았다.
브리트라는 힘없이 목을 떨군 악숨의 시체를 보며 앳된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쯔쯔 혀를 찼다.
“여전히 악랄한 솜씨로고.”
“흥. 이왕이면 깔끔하다고 해줄래?”
악숨의 급소를 정확히 찔러, 그의 목숨을 앗아간 신소율은 천천히 그의 뒷덜미에서 손을 뗐다. 노구덕의 지시대로 상대에게 깨끗한 죽음을 선사했지만, 여전히 그녀의 표정엔 찝찝함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결국 여긴 왜 온 거예요? 이 팔불출 아저씨.”
“그건 내게 물을 게 아닌 것 같은데.”
“에?”
노구덕의 시선이 자신의 어깨 너머를 향하고 있음을 깨달은 신소율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덤불 사이에서 밀랍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는 하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더불어 뒤에서 들려오는 노구덕의 나지막한 목소리.
“…그렇지? 얘야.”
“…….”
가지런한 이빨로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고 있는 하얀 얼굴… 곤란한 빛이 역력한 그 얼굴의 주인은 다름 아닌 소냐였다.
============================ 작품 후기 ============================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오늘 온종일 밖에 있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남이섬 사람 정말 많더군요. 인파에 치여 죽을 뻔했네요. 처음 가본 곳이었는데, 막상 즐길거리는 별로 없었던 게 아쉬웠어요.
주요 인물들의 저널 정보는 따로 한 화 정도 소비해서 올려드릴 예정입니다! 조만간요! 그리고 이번 에피소드는 소냐와 티렐 간의 관계가 중점이 되는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겠네요!
오늘 내로 한편.. 여유되면 한편 더 올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p.s / 여러분의 천금 같은 코멘트 덕분에 저는 아청법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제 작품에서 성애씬을 선보이는 모든 캐릭터들은 성인입니다. 그렇고 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