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555)
0555 / 0777 ———————————————-
145# 한밤의 조우
++++++++++++++++++++++++++++++
때 아닌 돌발 사태에 직면한 야영지의 공기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데미안, 그 사람은 어때?”
“과다출혈이 문제긴 한데… 목숨엔 지장 없어.”
“으… 대체 뭐가 뭔지…….”
“저기 언니, 소율 언니가 너무 늦는 것 같지 않아요? 주변도 너무 조용하고…. 소냐 얘는 어딜 간 거지?”
가시를 곤두세운 고슴도치처럼 경계 태세를 갖춘 레이나의 말에, 입술을 쏙 내밀고 투덜거리던 임가희는 천천히 고개를 주억였다.
나이트스토커 신소율은 레그나토르에서도 손에 꼽히는 강자다. 그런 그녀가 저 덤불 너머로 사라진지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 돌아오지 않는다는 건, 상대의 실력 또한 예사가 아니라는 뜻.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소냐의 개인행동은 일행을 더욱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신소율이 덤불 속으로 사라진 직후, 최후방에 있던 소냐는 누가 말릴 새도 없이 블링크 주문을 사용해서 사라졌다. 만약, 쫓아갈 필요 없다는 박승찬의 제지가 아니었다면, 임가희마저 소냐의 뒤를 따라 자리를 이탈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수상해. 소냐도 그렇고, 승찬 아저씨도 그렇고… 그 애를 지원으로 보내서 어쩌잔 거야? 그야 강한 마법사긴 하지만, 걘 고작 열다섯이라구.’
어쩔 수 없이 자리는 지키고 있지만, 속은 바짝바짝 타들어간다. 혹시 소냐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이를 악문 임가희는 번뜩이는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주변도 이상하다. 너무 잠잠했다. 신소율이 다수의 적과 싸우고 있다면 무기와 무기가 부딪치는 금속성이라든가, 단말마 같은 비명이 들려와야 마땅하건만 사위는 쥐 죽은 듯 고요하기만 하다.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묘한 불안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 기미를 느낀 건 은연중 젊은이들의 리더 역할을 맡고 있는 한승우도 매한가지였다. 두 개의 마법진을 양 팔 위에 띄워 놓고, 언제든지 사슬을 떨쳐낼 수 있게끔 태세를 갖추고 있던 그는 최전방에서 목석처럼 서 있는 박승찬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부대장님, 아무래도 뭔가가…….”
“마법진이다.”
“…예?”
“이 근방에 상당히 강력한 마법진이 깔려 있다. 소율이 녀석, 상당히 고전하는 것 같군.”
“마법진이라니…. 엇!”
박승찬이 가리킨 방향으로 기감을 집중시킨 한승우는 놀란 눈을 깜박거렸다. 그의 말대로, 신소율이 난입한 전방 쪽에서 굉장히 강력한 마력의 파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원을 나가야겠군.”
“그러면….”
“한승우, 너는 다른 대원들과 함께 이곳을 지켜라. 유사시에는 전장 이탈도 허가한다.”
“…알겠습니다.”
낯빛을 잔뜩 굳힌 한승우는 결연히 머리를 끄덕였다. 신소율이 고전하고, 박승찬이 나설 정도라면 대체 어떤 상대라는 것일까. 게다가 전방의 마법진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파동은 그의 수준보다 훨씬 윗줄에 있는 것이었다.
신소율에 이어 박승찬까지 사라졌다. 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얼마 되지 않은 경험으로 무장한 햇병아리들뿐인 것이다.
그렇잖아도 한계까지 당겨져 있던 긴장의 끈은 더더욱 고조되었다. 신소율과 박승찬이 설마 당할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설마… 설마 최악의 상황이 다가온다면…….
바스락.
“……!”
한승우, 임가희, 데미안, 레이나.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있던 네 병아리의 고개가 바람처럼 돌아갔다.
“언니….”
“…알고 있어.”
차르륵…. 끼익….
한승우의 사슬과 임가희의 활시위가 빠듯하게 당겨지고, 데미안과 레이나의 입에서 작은 읊조림이 새어나왔다.
한 데 뭉친 네 개의 시선이 저 덤불 너머를 향했다. 점점 가까이 전해지는 인기척의 울림이 두근두근 거리는 심장박동과 맞물리며 네 사람의 호흡을 거칠게 만들었다.
신소율? 박승찬? 그도 아니면 소냐?
하지만, 막상 덤불 속에서 불쑥 머리를 내민 것은 그 중 어떤 이도 아닌, 숭숭 털이 돋아나 있는 흉측한 거인의 얼굴이었다.
“꺅!”
“우왓!”
기겁한 레이나와 데미안이 해쓱한 낯빛으로 비명을 내지른 순간, 한승우의 사슬과 임가희의 화살이 주인의 손을 떠나 거인에게 쇄도했다.
“크르르릉!”
거인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민첩했다. 한 차례 거센 콧김을 내뿜은 거인은 만세 하듯 팔을 들어, 오른팔로는 한승우의 사슬을, 왼팔로는 임가희의 화살을 튕겨냈다.
“뭐, 뭐야? 어떻게 저런…!”
신기로 쏘아 보낸 화살이 맥없이 나가떨어지는 어처구니없는 광경. 그러나 언제까지고 입을 벌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옆에서 사슬을 컨트롤하고 있는 한승우의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기 때문이다.
“큭!”
한승우가 다루는 마법의 사슬은 그 강도가 수십 번 제련한 강철보다 단단하고, 고래의 힘줄보다도 질긴데다 장력 또한 대단했다. 실제 한승우는 이 마법의 사슬을 이용해 마구잡이로 날뛰는 오우거 두 마리를 통째로 포박한 전력이 있었다. 말인즉, 한승우의 사슬은 최소한 오우거 두 마리 정도의 힘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소리다.
뚝! 뚝!
그런데, 그 막강한 위용을 자랑하는 사슬이 삭을 대로 삭은 밧줄처럼 허망하게 끊어지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놈의 팔뚝에 칭칭 감긴 사슬이 근육이 팽창하는 힘을 견디지 못하고 끊겨나가는 것이었다.
실로 기가 막힌 일이었다. 오우거마저 제압하는 사슬이, 팔뚝에 힘을 주는 것조차 견디지 못하고 끊겨져나가다니.
“이야아아앗!”
한승우의 열세를 두고 보다 못한 임가희가 몸을 날리고, 가까스로 정신을 수습한 레이나와 데미안의 주문이 그 뒤를 이었다.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듀라한!”
“크림슨 블레싱(Crimson blessing)!”
핼버드를 들쳐 멘 목 없는 기사가 어둠을 헤치며 나타났다. 이후 진홍빛의 선명한 오오라가 반구의 형상을 이루며 삽시간에 주위로 뻗쳐나갔다.
염왕의 안식처, 그 주인이었던 플레임 타이탄을 손쉽게 해치웠던 바로 그 포진이다.
“크르릉!”
그러나 정체불명의 거인은 플레임 타이탄과는 차원을 전혀 달리하는 괴물이었다.
“크헉!”
거인의 움직임을 제지하기 위해 사슬을 다발째 쏟아 붓고 있던 한승우의 몸이 크게 기우뚱했다. 도리어 사슬을 타고 역류한 놈의 기운에 상당한 내상을 입은 것이다.
한승우가 입에서 피를 흘리며 비틀거리자, 중거리에서 화살을 날리던 임가희는 크게 경악하며 그에게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승우 오빠!”
“나, 난 신경 쓰지 마! 그보다 뒤에 애들을…!”
“으아아악!”
“끼야악!”
뒤편에서 들려온 커다란 비명에, 임가희의 낯빛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했다. 한승우에게서 뽑아낸 사슬 뭉치를 손에 쥔 거인이 그 덩어리를 그대로 뒤편의 두 사람에게 투척한 것이다.
쾅!
쩔그렁거리는 사슬 뭉치가 두 사람이 서 있는 지면과 강하게 충돌하며 자욱한 흙먼지를 일으켰다. 한승우의 사슬은 엄밀히 말하면 주문의 일종이지만, 또한 소환물이기도 하다. 마력의 공급이 완전히 끊어지기 전까지는 어느 정도 그 형태가 유지 된다는 말이다. 평소엔 그것이 장점으로 작용했지만, 이 경우엔 완전히 단점으로 작용했다.
“아… 안 돼! 레이나! 데미안!”
“자, 잠깐! 임가희!”
대경실색한 임가희는 다시 그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중간에 있었던 듀라한이 역소환된 걸 보면, 소환사의 신상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이 틀림없었다.
그때, 뒤에서 다급히 부르는 한승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 전할 것이 있는 듯 굉장히 급박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임가희는 한승우의 외침을 끝내 무시했다.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는 어떻게든 두 사람을 구해내야 한다는 일념밖에 없었다.
시야를 희뿌옇게 만드는 먼지구름을 뚫고 그 안쪽에 도달한 임가희. 허나 그곳에서 그녀를 맞이한 것은, 시뻘건 안광을 발하는 커다란 눈동자였다.
‘거인? 하, 한 명이 더 있었던 거야?’
“아… 윽…!”
임가희는 길게 생각을 이어가지 못했다. 불을 뿜는 눈동자가 별안간 흐릿해지더니, 뒷덜미에 둔중한 충격이 전해진 탓이다. 인지범위를 뛰어넘는 기습에 급소를 공략당한 임가희는 두 눈이 멍하니 풀린 채, 앞으로 풀썩 쓰러져버렸다.
먼지 구름 속에서 누군가가 쓰러지는 소리를 들은 한승우는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거인이 사라진 것을 보고 먼저 알려주려고 했는데, 너무 늦고 말았다.
“이럴 수가…….”
말라버린 목울대를 타고 비통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대패(大敗). 도저히 이 현실이 믿기지 않는 대패였다. 일행 모두가 전투불능에 빠진 것은 물론이고, 단 한 명도 전장을 이탈하지 못했다.
먼저 기습을 한 것도 그들이었고, 무엇보다 사 대 일의 전투였다. 그런데도 이런 비현실적인 결과라니.
상대가 너무 강했다. 덩치가 비슷한 거인이라고 해서 플레임 타이탄 같은 둔중한 녀석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정체불명의 거인은 말 그대로 괴물이었다. 마법의 사슬을 물리력으로 끊어내는 압도적인 힘, 동체시력의 한계를 벗어난 속도, 주문을 역이용하여 시전자에게 내상을 입히는 컨트롤 능력……. 어떻게 이런 괴물이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그간 공부했던 온갖 카름의 종류들을 떠올려 봐도 이런 상식 밖의 괴물은 없었다.
심지어 오우거도, 트롤도, 아울베어도 아닌 것 같은 그 외견조차 생소하다.
“도대체 저건…… 컥!”
가물가물한 시야로 겨우 버티고 있던 한승우의 의식마저 뚝 끊겨버렸다. 스르르 무너져내리는 그의 뒤쪽엔, 일행을 전멸로 몰아넣은 예의 그 거인이 유령처럼 우뚝 서 있었다.
승리의 자축일까. 단숨에 일행을 전멸시킨 거인은 흉악한 안광을 번뜩이며 듣기에도 섬뜩한 으르렁거림을 토해냈다.
“크르르르……!”
“아이, 참. 그만해요. 가래 끓는 소리도 아니고, 그게 뭐예요?”
“…험, 험.”
무시무시한 울음이 금방 무안한 헛기침으로 뒤바뀐다. 멋쩍게 턱을 매만지는 거인의 옆 덤불에는, 어느새 한숨을 내쉬고 있는 신소율과 박승찬이 나타나 있었다. 그리고 그 뒤편에는 여전히 어두운 낯빛을 하고 있는 소냐와, 뚱하게 눈을 뜨고 있는 브리트라도 보였다.
이 멤버들에게 둘러싸인 털복숭이 거인. 그렇다면야 그 정체는 뻔하다.
“아직 멀었어.”
신소율은 거인, 노구덕의 중얼거림에 당연하다는 듯 핀잔을 주었다.
“당연하죠. 그나마 동부에서 온 승우가 낫긴 하지만, 얘들은 아직 별 경험도 없는 햇병아리들이라고요. 그런 애들이 아저씨를 어떻게 이겨요?”
“…흠. 승패의 문제는 아니지. 의장님이 옳아.”
“승찬 오빠?”
“이 녀석들, 그 짧은 시간 동안 너무 실수가 많았어. 정말로 실전이었다면 한둘은 크게 다쳤을 거다. 어쩌면 목숨을 잃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반신반의했는데, 이걸로 확실해졌군. 이번 탐사는 그냥 소풍에 불과했어. 봐라, 너와 내가 자리를 비우자마자 이 모양 이 꼴이다.”
“…….”
만일 병아리들이 그의 말을 들었다면 눈물을 찔끔 쏟을 만큼 신랄한 비판이었다. 그러자 그나마 아이들을 비호해 주는 듯하던 신소율도 말문을 닫았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박승찬의 말에 일리가 있었으니까.
“브리트라, 이제 그만해도 된다.”
“끄응. 힘들어 죽는 줄 알았느니라.”
“이 녀석, 엄살은…….”
개구리처럼 볼을 부풀린 브리트라가 가볍게 손을 내젓자, 영락없는 털복숭이 거인이었던 노구덕의 외관이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동시에, 일대에 펼쳐져 있던 강력한 환상진 또한 해제되었다. 전투 초기, 한승우가 감지했던 바로 그 마력의 파동은 바로 브리트라의 것이었다.
제 모습으로 돌아온 노구덕은 가장 가까운 곳에 쓰러져 있는 한승우와, 뽀얗게 먼지에 뒤덮인 채 엎어져 있는 임가희, 그리고 그 뒤편에 널브러진 레이나, 데미안 등의 몰골을 차례로 훑어보며 작게 혀를 찼다.
============================ 작품 후기 ============================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시간상으로 보면 12시엔 무리겠고, 다음화는 새벽이나 아침화로 올라갈 것 같습니다!
혹시 궁금하신 점 있으시면, 이번화에 댓글 달아주시면 다음화 올릴 때 리리플 형식으로 답변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즐거운 저녁 되시길!
p.s / 이제야 한 사람 몫을 하게 된 왕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