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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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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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은?”
“안전합니다. 한동안은… 저희를 찾지 못할 겁니다.”
적갈색의 특이한 피부톤에, 피로 점철된 회색의 로브를 입고 있는 미녀는 판데모니엄의 두 번째 별 님로드였다.
“…그래……. 달트라만의 희생 덕분이군.”
님로드의 보고를 받은 마도왕 티렐은 맥없이 머리를 주억였다. 형형하게 빛나던 금빛 안광은 꺼지기 직전의 촛불처럼 사그라들었고, 행동거지 또한 노쇠환 늙은이를 보듯 무력하다.
그도 그럴 것이다.
장장 하루 내내 이어졌던 추격전. 겨우 적의 이목을 따돌리고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으나, 잔존 병력은 처참하기 짝이 없다. 처음 퇴로를 뚫을 때까지만 해도 기백이 넘어가던 티렐의 부하들은 이제 수십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마저도 상태 멀쩡한 이를 찾기 힘든 처지.
평생을 두고 일궈온 세력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이러니 어찌 기운이 빠지지 않을 수 있겠나.
그런 주인의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님로드는 불현듯 아랫입술을 세게 악물었다.
“그자들! 그자들이 배신한 게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의 상황은 설명할 수 없습니다! 주둔지가 약화되자마자 기다린 것처럼 쳐들어오다니요!”
“하유라와 라키오라 말인가… 그들이 무엇 때문에?”
“일부러 정보를 흘린 겁니다! 이목을 돌리기 위해서겠지요! 솔라리스의 신경을 저희에게 돌려놓고, 그 사이에 솔라리스를 치려는 수작인 겁니다!”
그 조용하고 사무적이던 님로드가 한껏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불 같이 화를 내고 있다.
당연하다. 궤멸에 이른 전력의 상태도 뼈아팠지만, 이번 전투로 그녀와 오랜 기간 함께했던 동료들이 모두 죽거나 실종되었다. 개중 실종된 세 번째 별을 제외하고 나머지 셋은 모두 전사가 확인되었으니, 스퀘어 역사에 한 족적을 남겼던 판데모니엄의 다섯 별은 이제 끝났다고 봐도 무방했다.
“…일리가 있군. 그럴 수도 있겠어.”
“주인님…!”
“님로드. 지금은 생존에만 신경 써라. 복수든, 응징이든… 그때까지 살아남아야 논할 수 있을 테니까.”
“…예.”
거친 콧소리를 내던 님로드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티렐의 말대로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여기서 아무리 원통하게 떠들어봐야, 솔라리스 놈들에게 당해 죽어버린다면 그거야말로 공허한 메아리가 될뿐이다.
‘코드란은 실패 했나…….’
사방이 적. 구원군은 없다. 만에 하나… 정말 만에 하나 비빌 언덕이라고 한다면 소냐에게 보낸 코드란뿐인데, 적들의 삼엄한 포위망을 뚫고 빠져나갔을 지조차 장담할 수 없는 형편이다. 그만큼 상황은 암울했다.
‘앗?’
쓰디쓴 뒷맛을 삼키고 있던 님로드의 머리가 급격히 아래로 꺾였다. 품 안에서 밝은 빛을 발하고 있는 구슬을 확인한 님로드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인님, 잠시 바깥의 동정을 살피고 오겠습니다.”
“…….”
상념에 잠긴 티렐은 말이 없었다. 대답 없는 주인에게 꾸벅 목례를 한 님로드는 어디론가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님로드의 뒷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던 티렐은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힘들겠군.’
그는 최후가 다가왔음을 실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지금 그들을 쫓고 있는 솔라리스의 지휘관은 남부에서 내로라하는 헌터들인 안티메이거스(Anti magus)와 소울위버(Soul weaver)다. 그리고 선키퍼(Sun keepr)도 있다. 십존급이라 딱 잘라 말할 순 없지만 거의 그에 근접한 강자들이며, 티렐과는 상극이라 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그 별명에서 알 수 있듯, 안티메이거스는 스펠브레이커 플랑기스와 마찬가지로 마법사들을 사냥하는데 특화되어 있는 사냥꾼이고, 소울위버는 오랫동안 그와 호흡을 맞춰온 파트너이다. 또한 선키퍼는 티렐이 발휘하는 마력 역장을 카운터 칠 수 있는 신기를 보유한 자였다.
그냥 싸우라고 해도 버거운 마당인데, 그들은 이쪽의 몇 배가 넘는 병력을 이끌고 있다. 승부는 해 보나 마나한 일.
‘그래도 미련은 없다.’
살 만큼 살았고, 누릴 만큼 누렸다. 타고난 그릇의 한계로 마도의 끝을 보진 못했으나, 미미하게나마 그 너머를 엿보았고, 대강의 윤곽도 잡아냈다. 발레기우스를 통해 알아낸 편법이 아니었다면 평생 불가능했을 터.
그리고 그로 인해 얻은 모든 것을 말년에 생긴 제자에게 쏟아 부었다. 이해타산이나 뒷일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아낌없이 투자했다. 그의 열망은 오로지 마도의 궁극적 극의(極意)에 다다르는 것. 그것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소냐는 그의 기대 이상이었다. 그녀가 타고난 재능은 하늘이 내렸다는 표현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신의 실수로 태어난 것 같은 천재가 그의 모든 것을 흡수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4년.
그 이후로는 가르칠 게 없었다. 그녀가 나아가는 길은 그조차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녀와 함께 이론을 연구하고, 쌓아온 관록을 바탕으로 조언을 해주는 것 정도였다. 어느새 사제의 관계는 마도의 깊이를 논하는 학우(學友)로 뒤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이론적인 측면은 완벽하다. 지금 소냐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고 한다면, 실제 주문의 운용과 임기응변 및 상황대처, 절대적인 마력량 뿐. 마력량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실전 경험을 통해 기를 수 있는 능력들이니,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들이었다.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그 아이의 손에서 내 이론이 실현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가야 한다는 것이겠지.’
마도왕 티렐이 소냐를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이론, 혹은 숙원.
순수한 마도의 힘이, ‘시스템’이라는 절대적 존재가 정해 놓은 틀을 깨부술 수 있는가?
예전, 서리여왕 하유라는 노구덕이 쓴 통제 스크롤에 당해 무력하게 패배한 적이 있다. 그건 주문도 뭣도 아닌, 오로지 시스템에 의해서 발휘되는 절대적 통제였다.
티렐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것은 언어도단이다. 불합리, 부조리. 마법의 이치에 들어맞는 일이 아니다. 예컨대 물이 아래에서 위로 역류하는 것만큼이나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그런 상식 밖의 힘이 있다는 것을 안 이후부터, 평생을 그 구속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했지만 그는 끝내 염원을 이룰 수 없었다. 사람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한 중력을 거스를 수 없듯이, 그가 헌터인 이상 시스템의 통제를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숙명이었다.
‘하지만 그 아이라면 가능하다.’
소냐라면… 그 불세출의 재능이라면 인간을 초월하여 중력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하여 훨훨 날아갈 수 있다.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영역이기에 얼마나 걸릴지는 장담할 수 없으나, 그녀라면 반드시 해낼 수 있다. 티렐은 그렇게 자신했다.
‘아쉬워. 그 통쾌한 광경을 보지 못하고 가는 것이…….’
상념에 빠져 있던 티렐은 가볍게 고개를 들었다. 저 쪽에서, 바쁘게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 탓이다.
“……!”
밖에 나간다고 했었던 님로드가 돌아왔나 싶어 시선을 돌렸던 티렐의 눈이 크게 떠졌다.
님로드가 돌아오기는 햇다. 그런데, 그녀의 뒤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손님이 둘 딸려 있었다.
동굴 벽에 머리가 닿을 듯한 거구의 오크와, 그 손을 꼭 부여잡고 있는 눈부시도록 하얀 소녀. 그녀는 방금 전까지 그의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었던 소냐였다.
“마도왕 티렐. 맨얼굴을 보는 건 처음이군.”
“노구덕….”
잠깐 멍해져 있었던 티렐의 입이 달싹이며 움직인다. 워낙 지친 탓에 현 사태를 이해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듯하다. 어떻게 노구덕과 소냐가 이곳에 나타났단 말인가?
항상 후드에 가려져 있었던 티렐의 맨얼굴은 다소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강퍅한 인상이었다. 오랫동안 햇볕을 쬐지 못한 것 같은 창백한 피부에, 나이는 서른 중반 정도로 보인다.(실제 나이는 훨씬 많겠지만) 뭔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고집스런 마법사의 전형 같은 외모였다.
뜻밖의 대면에 당혹스러워하는 티렐을 진정시킨 건, 황급히 몸을 엎드리며 고하는 님로드의 목소리였다.
“주인님! 죄송합니다! 제가 독단으로 아가씨를 불러들였습니다! 벌을 주십시오!”
…용서를 구하는 님로드의 모습을 보니, 대강의 사정이 가늠된다. 구차하게나마 제삼자의 손을 빌려서라도 주인을 구하겠다는 충의가 절절이 느껴진다.
그 충성심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 사지에까지 제자를 끌어들이다니…. 티렐은 이마에 깊은 골을 새기며 몸을 일으켰다.
“여긴 왜 왔지? 돌아가라.”
“주인님!”
“님로드. 조용히 해라.”
준엄하게 호통을 치는 티렐을 앞에 둔 노구덕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호오? 살고 싶지 않은 건가?”
“무리한 빚을 지면서까지 목숨을 구걸할 생각은 없다. 제자 앞에서 그런 추한 꼴을 보이라는 건가?”
“흐음.”
노구덕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티렐을 만나보겠다고 했을 때 화색을 숨기지 못했던 소냐도 그렇고, 제법 그럴듯한 스승의 풍채를 보이는 티렐도 그렇고… 이 사제, 처음 그가 우려했던 바와는 달리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강요로 형성된 관계는 아닌 것 같았다.
지금만 봐도 그렇다. 서로 티를 내려고 하지 않는 게 눈에 보이지만, 그 눈에 깃든 것은 감출 수 없는 반가움, 그리고 안도다. 강요로 만들어진 관계라 보기엔 꽤나 정이 깊다.
‘티렐 이놈, 무슨 생각으로 소냐를 가르친 거지?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노구덕은 티렐을 돕기로 결정했다. 따라서, 티렐은 자기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아직 어설픈 제자를 버려두고 저승에 갈 셈인가?”
“…가르칠 건 다 가르쳤다. 후회는 없어.”
“아…!”
티렐의 단호한 거절에, 기어코 소냐의 입에서 안타까운 탄성이 흘러나온다. 그런 그녀를 가만히 지켜보던 노구덕은 아직 바닥에 엎드려 있는 님로드를 툭툭 건드렸다.
“님로드, 소냐를 데리고 잠깐 나가 있어라.”
“…아가씨, 나가도록 합시다.”
님로드는 노구덕의 지시를 받는 것이 영 못마땅한 눈치였지만, 여기까지 온 마당에 그의 비위를 거스를 순 없었다.
님로드가 머뭇거리는 소냐의 팔을 부여잡고 사라지자, 제약이 사라진 노구덕은 별안간 고리눈을 뜨며 짐승처럼 흉폭한 으르렁거림을 토해냈다.
“티렐, 감히 내 아이에게 손을 대? 만약 소냐에게 조금이라도 이상한 조짐이 보였다면, 이 자리에서 네 목을 쳤을 거다.”
“…….”
베일 듯 예리한 살의을 감지한 티렐의 손가락이 무의식중에 까딱였다. 자기도 모르게 손을 쓸 뻔한 티렐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헛소문이 아니었군.’
레그나토르를 지배하는 철혈의 군주에 대한 피비린내 나는 소문은 많이 들어보았다. 제자가 몸을 의탁하고 있는 상대이니, 신경을 쓰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거다. 십존급에 육박한 강자라고는 생각했지만, 그래도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이건 마치 왕년의 늑대왕 가리발디를 보는 것 같지 않은가.
“너도 보았을 테지. 저 아이는 네가 죽길 원치 않아.”
“…어쩌라는 거냐?”
“네 덕분에 저 아이의 입지가 곤란해졌다. 레그나토르에 적을 두고 있으면서 반군의 수괴와 내통했으니, 보통 일이 아니지. 제대로 된 스승이라면, 그 책임을 져라.”
가당치도 않은 요구에, 티렐은 기가 막힌 듯 고개를 흔들었다.
“너야말로 그 레그나토르의 지배자가 아닌가? 그 정도는 알아서 컨트롤할 수 있을 텐데. 이건 꼭 그 아이를 볼모로 삼아 날 협박하는 것 같군.”
노구덕은 티렐의 비아냥거림은 들은 척도 않았다.
“발레기우스에 대해 네가 알고 있는 모든 정보. 그리고 동부와 남부 반군의 현황. 이 정도면 그 아이를 면피시킬 수 있는 명분이 서겠지.”
“…알고 있는 걸 모조리 토해내란 말이군.”
“스승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를 보여주라는 거다.”
억지로 살기를 강요당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 티렐은 어이가 없는 한편, 상대의 통찰에 가슴 한 구석이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언제부터 자신과 소냐의 관계를 눈치 챘는지는 모르겠지만, 노구덕은 그의 약점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그래서 더 어이가 없었다. 분명 상대의 가족을 건드려 제자로 삼은 것은 자신인데, 도리어 그 제자를 볼모로 삼아 협박을 하는 부모라니.
티렐은 방금 전 보았던 소냐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의 초연한 말에 안타까움이 물씬 배어나오던 그 여린 눈빛을….
고민은 잠시였다. 빠져나갈 구멍을 찾지 못한 티렐은 왠지 모르게 허탈한 표정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 작품 후기 ============================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휴우, 아슬아슬했네요.
일단 올리고 리플 답니다!
…려고 했습니다만, 대부분의 리플들이 한가지 궁금증에 치중되어 있어 통합 답변을 드리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소냐의 마음에서 훨씬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당연히 노구덕입니다.
하지만 티렐과의 정도 무시할 순 없죠. 처음에는 비지니스적으로 시작한 관계였습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가르침을 받은지 5년이 넘었습니다. 그것도 9살에서 15살까지. 한창 감정적으로 예민할 시기에요.
아무리 냉정하려고 해도 정이 쌓일 수밖에 없는 시간입니다. 그렇다고 티렐이 못되게 군 것도 아니고, 헌신적으로 가르침을 주었으니까요. 어른이라도 그럴 텐데, 하물며 어린 소냐라면 말할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만한 시간을 함께한 스승을 야멸차게 대한다는 게 더 비정상이지 않을까… 저로선 그렇게 생각되네요.
물론! 이것이 이성으로서의 정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여학생들이 젊은 선생님을 좋아하는 경우가 다분히 있긴 합니다만, 소냐는 그런 잘못된 아이가 아니에요!
노구덕에 대한 감정에 대해서는 일단 노코멘트하겠습니다.
구더기를 더 많이 생각하면서도 티렐과의 관계를 숨겼던 건, 작중에도 묘사되어 있듯이 티렐과 노구덕의 관계를 알기 때문입니다. 사실을 알린다면 노구덕이 실망하고 화를 낼게 분명하니까요.(저번화? 저저번화? 쯤에 서술되어 있습니다.)
정이 클수록, 그런 상대에게 실망감을 안겨준다는 건 두려운 법이죠. 같은 이유입니다.
대충 답변이 되었기를 바라며..
내일도 연참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