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560)
0560 / 0777 ———————————————-
146# 개입
++++++++++++++++++++++++++++++
노구덕의 지시를 따라 소냐를 동굴 밖으로 데리고 나온 님로드는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정중히 허리를 굽혔다.
“아가씨, 감사합니다.”
“별로… 감사받을 일은 아닙니다.”
님로드의 감동 어린 눈빛이 부담스러운 것일까. 소냐는 슬며시 고개를 돌려 그녀의 시선을 회피했다.
“주인님께서는 옥쇄(玉碎)를 각오하고 계셨습니다. 만약 아가씨께서 때 맞춰 오시지 않았다면, 판데모니엄의 맥은 오늘로 끊겼을 겁니다.”
“…방금 전까지도 스승님께선 완고하셨습니다. 그분이 결심을 돌리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아가씨께서 오셨으니까요. 궁여지책으로 코드란을 아가씨께 보내길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솔직히, 아가씨께서 와 주시리란 기대는 반반이었지만요.”
“…그런가요.”
“여기까지 오셨다는 것은… 역시 판데모니엄의 후계자가 되실 생각이…….”
가만히 놔두었더니 너무 앞서나간다. 소냐는 님로드의 망상이 이어지기 전에 서둘러 그녀의 말을 끊었다.
“그럴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앞으로도 없을 거고요. 저는 레그나토르 소속입니다. 가족의 곁을 떠나고 싶진 않아요.”
“가족…….”
소냐의 칼 같은 거절에 주춤하는 님로드. 이내 그녀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따지듯이 말했다.
“주인님은 아가씨의 가족이 될 수 없는 겁니까? 그렇다면 어째서 여기까지 오신 겁니까?”
“그건…….”
스승님이니까요. 무심코 그렇게 대꾸하려던 소냐는 갑자기 굳게 입을 다물었다. 문득, 그런 말을 스스럼없이 입에 담는 스스로가 어색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티렐과 소냐. 처음 사제 관계를 맺었을 때만 하더라도 두 사람의 관계는 굉장히 애매했다.
사실 이 사제관계는 첫 단추부터 잘못 꿰었다고 볼 수 있었다. 큰 인명피해가 발생하진 않았다곤 해도, 티렐은 강압적인 방법으로 소냐를 시험했다. 그 와중에 소냐를 돕기 위해 나섰던 헌터 두 사람이 큰 부상을 입기도 했다.
그 탓에 과거의 트라우마가 일깨워지고, 지독한 무력감을 경험해야만 했던 소냐가 티렐에게 좋은 감정을 가질 리가 없었다. 그녀가 제자가 되라는 티렐의 제의를 받아들인 건 오로지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힘을 얻기 위해서였지, 그를 존경하거나 좋아해서가 아니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티렐에 대한 소냐의 감정은 솔직히 악감정에 가까웠다.
게다가 엄밀히 말해서, 티렐은 좋은 스승이 아니었다. 두 사제가 직접 마주칠 일은 극히 드물었으며, 소냐는 대부분의 주문과 이론들을 서책을 통해 익혀야만 했다. 그녀가 습득한 지식들은 대개 티렐의 입을 통해 전해진 것이 아니라 책을 통해 알게 된 것들이었다.
그렇다고 일생을 마도 하나에만 바친 티렐이 인간적으로 좋은 면모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스승을 공경하지 않는 제자와 그런 제자를 봐주기는커녕, 가르치는 데에만 신경이 팔려 있는 스승.
그간, 특별히 유대감이 깊어질 만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티렐은 끊임없이 그의 전부를 가르쳤고, 소냐는 그 방대한 지식과 힘을 묵묵히 받아들이는데 몰두했다.
소냐가 티렐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일주일에 단 한 번, 연락책이 통지한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간접적인 접선이 전부였다. 그때마다 인형의 형태를 빌려 나타난 티렐은 소냐가 일주일 동안 쌓아둔 의문에 답해주거나, 그녀가 학습한 마도 이론들을 짚어주면서 짧게 강론을 해주곤 했다.
그렇게 일 년, 이 년, 삼 년이 지나갔다. 천 일이 넘게 지났는데도 티렐의 방식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었다.
가르치고, 또 가르치고….
티렐에게 늘 일말의 경계심을 갖고 있던 소냐는 점점 혼란스러워졌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뭔가를 요구하거나, 악한 본색을 드러낼 줄 알았던 티렐이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정말로 자기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전수해 주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환심을 사기 위한 연극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돌이켜보니, 그건 말이 되지 않았다. 단순히 환심을 사기 위한 밑작업이라고 보기엔 3년이란 시간은 너무 길지 않은가? 그렇다고 티렐이 가르치는 주문들이 수준이 낮은 것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것들은 하나 같이 판데모니엄의 최고 비전들. 그중엔 티렐을 십존이란 위치에 올려준 자기류도 포함되어 있었다.
마법사들이 폐쇄적인 이유가 무엇이던가. 주문을 이루는 마법진을 알려준다는 것, 그건 자신의 약점을 낱낱이 공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것을 거리낌없이 가르치다니….
티렐은 정말로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걸까?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일까?
스승의 진의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던 소냐는 때마침 소피아를 통해 뜻밖의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바로 근래 티렐이 처한 상황이 무척이나 나쁘다는 것. 내부 정비를 끝낸 솔라리스가 본격적으로 남부 반군을 압박하고 있으며, 반군 내부에서도 하유라와의 갈등이 깊어졌다는 정보였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소냐는 더욱 경계심을 곤두세웠다. 인간은 절박한 형편이 되면 본성이 드러나는 마련이다. 티렐의 처지가 그토록 어렵다면, 그가 언제 태도를 뒤바꿔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렇게 다시 2년… 그녀가 우려했던 일은, 결국 일어나지 않았다.
소냐는 늦게나마 깨달았다. 티렐이 자신을 해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티렐은 약속을 어기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 번의 가르침. 그것을 5년 동안 단 한 번도 빠트리지 않았다. 세력 내에서 본인의 입지가 점점 좁아져 가는 와중에도, 솔라리스가 야금야금 전력을 깎아 먹는 동안에도… 전혀 쓸데없는 내색을 하지 않고 오로지 가르치는 것에만 집중했다.
말로는 쉽게 느껴지지만, 실상 그건 너무도 힘든 일이다.
소냐는 그것을 빚으로 여겼다. 스승이 특별히 인간적인 온정을 베풀어 준 것은 아니다. 싫어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잘 모르겠다. 허나 이렇게 보내서는 안 된다는 일념만은 분명했다.
후우, 작게 숨을 내쉰 소냐는 살짝 눈을 감았다 떴다. 여전히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님로드의 얼굴이 보인다.
“…가족은 아니지만, 스승님께는 커다란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 빚을 갚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은혜입니까….”
“네. 그리고 그건 제 개인적인 빚입니다. 저는 개인으로서 스승님을 돕고 싶습니다. 레그나토르와는 관계없습니다.”
자길 이용해 레그나토르를 엮을 생각은 하지 말라는 말이다. 님로드는 씁쓸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노구덕 의장께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만… 아가씨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다만, 아가씨가 지닌 마도의 본질은 판데모니엄의 것입니다. 그건 결코 변하지 않을 사실이지요.”
소냐는 아직도 미련을 떨치지 못하는 님로드를 직시했다. 귀찮을 정도로 끈덕지게 물고 늘어지는 그녀였지만 밉진 않았다. 그녀의 끈질긴 청은 어디까지나 티렐에 대한 충성심에서 비롯된 것. 스승에게 믿음직한 수하가 있다는 것은 싫어할 일이 아니라 반길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 판데모니엄으로 갈아 탈 생각은 조금도 없었지만.
“얼마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예?”
소냐는 굳이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자 어리둥절하게 되물었던 님로드의 적갈색 얼굴에 갑작스레 커다란 경악이 번져나간다.
“서, 설마… 아가씨……!”
“솔라리스에선 누가 나왔습니까?”
“예, 예?”
“그들이 오고 있습니다.”
님로드는 얼른 의아한 기색을 지우고 마력 탐지를 활성화했다. 그러자 저 멀리서 다수의 기척이 천천히 접근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 수는 대략 이, 삼백. 익숙한 기운들이 섞여 있는 걸 보면 솔라리스의 정예부대가 틀림없었다.
“…안티메이거스를 필두로 선키퍼, 소울위버가 나섰습니다. 제 동료들도 놈들의 손에 목숨을 잃었죠. 마법사들에게는 재앙 같은 자들입니다.”
소냐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안티메이거스가 참전했다면 상황이 매우 까다로워진다. 적들의 면면을 듣고 나니, 이제야 티렐이 왜 이런 지경에 처했는지 알 것 같았다.
‘마법사 사냥꾼’이라 불리는 안티메이거스는 광범위한 지역을 독특한 역장(力場)으로 뒤덮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가 발휘하는 역장은 실로 교묘해서, 그 집중 정도에 따라 마력의 흐름을 크게, 혹은 작게 방해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그가 주변에 있는 한, 블링크나 텔레포트 같이 마력 흐름에 민감한 주문은 사용 불가가 된다.
‘아까부터 느껴지던 묘한 기운… 이게 그 역장이었어.’
일대를 흐릿하게 둘러싼 역장의 기운이 뚜렷하게 느껴진다. 주문을 못 쓸 정도는 아니지만, 이동 마법과 통신 마법에는 제약이 걸릴 수밖에 없다.
“잠시 안에 다녀와야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다.”
소냐와 님로드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동굴 안쪽에서부터, 티렐과 노구덕이 걸어 나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대부님!”
“주인님!”
노구덕과 티렐이 나란히 나왔다는 것은 안에서의 얘기가 잘 되었다는 뜻이다. 당연히 도움을 받는 님로드는 기꺼워했지만, 입장이 애매한 소냐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그녀는 면목 없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앞서 님로드에게 말했듯 자기 혼자만 얽혔다면 모르되, 노구덕이 나선 이상 이제 이 일은 그녀의 손을 떠났다고 봐도 좋았다. 즉, 필연적으로 레그나토르에 폐를 끼칠 수밖에 없게 되었단 소리다.
동료들을 볼 낯이 없었다. 만약 이번 일로 누군가가 크게 다치기라도 한다면…….
그때, 두터운 손이 그녀의 정수리를 따뜻하게 감쌌다.
“옛날 생각이 나는구나.”
“…대부님…?”
“오키도에서 말이다. 네 이모도 그랬지. 상관도 없는 일에 우릴 끌어들였다면서 어쩔 줄 몰라 했어. 모든 걸 자기 책임으로 돌리면서 몇 번이나 사죄했지. 하지만 우리 중 누구도 소피아를 탓하진 않았다. 왜냐면, 돕는 게 당연했으니까.”
“…….”
“얘야, 네가 나나 다른 식구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네 일이 남 일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친부는 아니더라도, 난 네 보호자다. 넌 우리 가족이야. 소피아도 마찬가지고. 결국, 그때 소피아를 돕지 않았다면 이렇게 귀여운 공주님도 보지 못했을 테지. 그때의 결정을 난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소냐의 이지적인 얼굴이 멍하게 풀어졌다. 노구덕의 한마디, 한마디가 작은 가슴에 스며들며 형언키 어려운 무언가가 심장 아래에서부터 북받치는 느낌이었다.
“누구나 실수는 한단다. 그에 대해서 책임을 질 필요는 있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자책해서는 안 돼. 견디기 힘들면 도와달라고 해야지. 그게 가족이니까. 좀 더 우릴 믿어줬으면 하는구나.”
아니다. 믿지 못한 게 아니다. 단지… 미움 받는 게 두려웠던 것이다.
“저, 저…….”
“이건 나중에 얘기하도록 하자. 일단은 급한 불부터 꺼야 하니까.”
드물게 더듬거리는 소냐의 말을 제지한 노구덕은 묵묵히 서 있는 티렐에게 시선을 돌렸다.
“티렐, 미끼가 되어줘야겠다. 네가 나서면 놈들도 우두머리들이 나서겠지. 그때를 노릴 생각이다.”
“이해가 안 되는군. 정말로 솔라리스와 척을 질 생각인가? 손해가 클 텐데.”
“척을 지기는 누가? 그냥 이 기회에 놈들의 세력을 깎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봤을 뿐이다. 솔라리스 놈들, 모고르를 호시탐탐 노리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거든. 그리고…”
노구덕은 오른손을 힘껏 움켜쥐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 쥐어져 있던 반투명한 무색무취의 물질이 젤리처럼 터져버렸다. 그것은 박승찬이 다루는 에테르. 불통이 된 통신 대신, 대기하고 있는 일행에게 보내는 신호였다.
“…놈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거다. 여기서 다 죽을 테니까.”
============================ 작품 후기 ============================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소냐 맴매 해주는 건 에피소드 끝난 이후에..
저널 통합본도 에피소드 끝난 이후에 올리겠습니다. 도중에 흐름 끊어먹으면 안되니까요.
저녁에 또 한 편 올릴게요! 코멘 달아주시면 다음편 올릴때 답변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