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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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짓뭉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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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좋아. 저기는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네.”
“…….”
“이봐, 조무래기. 시간 끌지 말고 빨리 시작하자고. 널 끝장내고 나도 저기 가서 이름을 남겨야 하지 않겠어? 아니면 내가 갈까?”
“경솔하고 천박한 인간… 떠벌이는 질색입니다.”
싸늘하게 얼굴을 굳힌 님로드가 완드의 끄트머리를 겨누자, 소울위버 로이시스는 가볍게 피식거리며 무기를 곧추세웠다. 특이하게도 그의 무기는 네 개의 칼날이 손등 위로 길쭉하게 솟아 있는 클로(Claw)였다.
“그래, 어디 요 손톱에 아가리가 찢기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보자!”
“익스플로젼(Explosion)!”
폭언에 대한 님로드의 대답은 가차 없는 선공이었다. 완드가 떨쳐낸 마력은 삽시간에 로이시스의 주위를 둘러싸며 대규모 폭발을 일으켰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뼈도 못 추릴 것 같은 대폭발. 그러나 님로드는 곧바로 다음 주문을 준비했다. 로이시스 정도의 강자가 고작 이 정도 폭발에 당했을 리 만무했다.
“…인시너레이트(Incinerate)!”
님로드의 주위에서 두 줄기의 불줄기가 허공을 태우며 솟구쳤다. 허리케인처럼 가느다란 줄기를 이룬 불기둥들은, 그녀의 의지에 따라 살아있는 생물처럼 움직이며 방금 전 폭발이 일어났던 자리를 포악스럽게 덮쳤다.
콰앙! 두 줄기의 불기둥이 작렬한 지면이 사방으로 돌무더기를 튕겨내며 재차 들썩였다. 두 주문에서 비롯된 초고온의 열기는 두꺼운 지반을 뒤집어 놓은 것도 모자라, 그 일대를 불그스름하게 녹여버리고 있었다.
연이은 주문 폭격으로 굉장한 화력을 선보인 님로드였지만,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딱딱했다. 매캐한 연기 속에서 쿨럭이는 기침 소리와 함께 로이시스의 희멀건 낯짝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역시, 안티스펠필드의 영향을 받는 상황이라 그런지 주문의 위력이 상당히 떨어진 듯했다.
“크으… 망할 년. 사람이 말하는데 기습을 해? 어엇! 어딜!”
검게 그을린 몰골로 걸어오던 로이시스는 작게 중얼거리며 주문을 외우는 님로드를 보자마자 껑충 몸을 날리며 손톱을 내리그었다. 네 갈래 손톱의 개수대로 뻗어나간 칼바람은 금방이라도 님로드의 가냘픈 육신을 갈가리 찢어발길 듯했다.
위협을 감지한 님로드는 황급히 공격 주문을 취소하고 연달아 방벽을 만들었다. 평소라면 간단히 블링크로 회피했을 테지만, 이 전장에 챈트릭의 영향력이 미치는 이상 그건 불가능했다.
얼음과 바위, 강철의 장벽이 일어나 로이시스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러나 그건 말 그대로 시간 끌기에 불과했다. 약화된 주문을 어렵지 않게 썰어버린 로이시스는 다시 한 번 거센 돌풍을 일으켜 님로드를 멀리 날려버렸다.
“끼아아악!”
난폭한 바람에 휘말린 님로드는 십여 미터가 넘는 거리를 날아 떨어졌다. 수없이 많은 실전을 경험한 전투마법사답게, 충돌의 순간 마력으로 온몸을 보호해 충격을 최소화한 그녀였지만 부상을 피할 순 없었다.
“크윽… 으으읏!”
“다리가 예쁘게 꺾였군. 그래서야 걸을 수 있을까?”
로이시스의 얇은 입술에 잔혹한 미소가 번졌다. 승리를 확신하는 듯한 웃음이었다.
“허윽!”
기를 쓰고 꿈틀거리며, 어떻게든 일어서려고 발버둥 치던 님로드는 다시 무릎을 꿇었다. 가뜩이나 지칠대로 지친 육신의 힘이 어디론가 급속히 빨려나가고 있었다. 로이시스의 장기인 저주, 그중에서도 육신의 활기를 앗아가는 쇠약의 저주(Enfeeble)였다.
안티메이거스 챈트릭에 의해 주문을 봉쇄당하고, 소울위버 로이시스에 의해 신체의 활력마저 박탈당한다. 그렇게 손발이 잘린 마법사들은 속수무책으로 목을 내어 줄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이 극악의 콤비에 의해 얼마나 많은 마법사들이 목숨을 잃었던가.
“아. 아. 마법사는 너무 쉽다니까. 아주 익숙한 광경이야. 우리에게 걸리면 누구라도 예외가 될 수 없지.”
잔뜩 비웃음을 머금은 로이시스는 애처롭게 꿈틀대는 님로드의 복부를 강하게 걷어찼다.
“꺽! 꺼헉!”
“어째 이 연놈들은 하나 같이 다 약골들이냐. 그러게 체력 좀 단련하지 그랬어. 고작 이 정도 저주에 몸도 가누지 못하면 어떡해? 이크!”
두 눈에서 시퍼런 독기를 발하는 님로드의 완드가 반짝이는 것을 본 로이시스는 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 순간, 완드에서 쏘아진 강렬한 빛줄기가 간발의 차이로 그가 서 있던 자리를 새까맣게 지져버렸다.
로이시스는 거뭇하게 눌어붙은 땅바닥을 보며 한 번 크게 혀를 차고는, 숨을 헉헉거리는 님로드를 노려보며 낯짝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렸다.
“…이년이. 정말 빨리 뒈지고 싶은 모양이군. 좋아, 나도 오래 끌 생각은 없었다고. 처음 말했던 대로 아가리를 찢어주마.”
“…봐라……. 쿨럭….”
“뭐?”
“…뒤를… 봐…….”
겨우 그녀의 작은 목소리를 알아들은 로이시스는 어이가 없어 귀를 후벼팠다.
“이년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뒤에 뭐? 내가 뒤돌아보면, 방금처럼 지져버리려고? 누굴 병신으로 아는……!”
등 뒤에서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예리한 기운을 감지한 로이시스는 말을 채 끝맺지도 못하고 급히 몸을 날렸다. 동시에, 무지막지하게 커다란 주먹이 그의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큭! 이, 이건 뭐야?”
가까스로 기습을 피해낸 로이시스는 드러난 상대의 정체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거인?”
예티(Yeti)? 혹은 아이스 트롤(Ice troll)? 전신에 허연 털이 수북하게 나 있어, 털복숭이처럼 보이는 거인은 북부 지구에 출현하는 카름들과 꽤나 흡사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닮은 것은 외견 뿐. 끈적한 살의로 번들거리는 거인의 눈동자와 마주한 순간, 로이시스는 이 거인이 본질적으로 그런 조무래기 카름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챘다. 포식자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강자만이 보일 수 있는 오만이라고 해야 할까. 정확히 말로 설명할 순 없었지만, 거인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엔 그런 종류의 ‘여유’가 묻어나고 있었다. 그래, 마치 숫사자가 하룻강아지를 보는듯한 눈빛.
기가 막힐 노릇이다. 어디서 튀어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한낱 카름 주제에 자신을 앞에 두고 저런 눈빛을 보내다니.
고고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로이시스의 안면 근육이 불쾌하게 꿈틀거렸다.
“…이놈이고 저년이고. 넌 또 뭐냐? 어디서 이런 괴물이 튀어나왔지? 뭐… 상관없다. 죽여버리면 그만이야. 일단 그 건방진 낯짝부터… 응?”
주절대던 로이시스의 눈매가 급격히 좁혀졌다. 뭔가, 거인으로부터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느껴진 탓이다. 다음 순간,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차린 로이시스는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건 설마 환상…! 헉!”
오연히 서 있던 거인의 모습이 흐릿하게 변하자,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낀 로이시스는 서둘러 몸을 피했다.
쾅!
다시 한 번 지면이 박살이 나며 끔찍한 비명을 토해냈다. 튕겨 나온 작은 돌조각에 안면을 두들겨 맞은 로이시스는 아픔을 느낄 새도 없이 곧바로 주문을 시전했다.
“포스필드(Force field)! 크악!”
역장에 휘감긴 로이시스의 몸뚱이가 날아갈 것처럼 휘청였다.
성난 코뿔소의 돌진을 맨몸으로 받아낸다면 이런 느낌일까? 공격을 막기는 막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해지는 충격량이 엄청났다. 단 한 번의 공격에 막강한 방어력을 자랑하는 포스필드가 박살이 났을 정도니.
공격을 막기만 해서는 승산이 없다는 걸 깨달은 로이시스는 그 즉시 회피일변도로 태세를 전환했다. 그는 강력한 흑마법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뛰어난 암살자. 기동전에는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기동전에 돌입하면 어느 정도 숨을 돌릴 수 있겠다는 생각은 그 자신만의 착각이었다.
상대는 빨라도 너무 빨랐다. 그 거대한 덩치가 어떻게 그런 날렵함을 보이는 것인지는 몰라도, 도저히 육안으로는 그 몸놀림을 쫓을 수 없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미치고 팔짝뛰겠는 건, 상대의 움직임에서 마력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 정도로 빨리 움직이려면 신체능력을 마력이나 투기로 강화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괴물에게선 그런 낌새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때문에 기감을 활용한 포착도 굉장히 까다로웠다.
‘제기랄! 이대로는 당하고 만다! 상성이 좋지 않아!’
숱한 경험과 감각에 의지해 겨우겨우 상대의 공격을 피해내고는 있지만, 이래서는 언제까지고 불리한 형국을 벗어날 수 없다.
‘저주…! 저주를 걸 수 만 있다면!’
그러나 저주는 대상을 직접적으로 지정해야 하는 주문. 이 상황에선 무리였다. 저주를 쓰더라도 뭔가 얼굴이라도 제대로 보여야 시도라도 해 볼게 아닌가.
그때, 궁리를 거듭하며 초조해하던 로이시스의 안색이 갑자기 밝아졌다. 순간적으로 그럴듯한 계책이 떠오른 것이다.
그건 바로 인질극. 정황상 저 괴물… 아니, 기괴한 환상 주문을 뒤집어 쓴 정체불명의 인물은 마도왕 티렐의 조력자인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님로드를 죽게 놔두진 않으리라.
‘설령 인질을 무시한다고 해도 잠깐 머뭇거리게 할 수는 있겠지. 그 잠깐이면 된다. 저주를 걸기만 하면 승산은 나에게… 아니?’
반사적으로 님로드가 쓰러진 곳을 쳐다본 로이시스의 눈알이 휘둥그레 치떠졌다.
없었다. 분명 저곳에서 병든 나귀처럼 신음하고 있어야 할 님로드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대신, 불길하게 일렁이는 어둠만이 주위를 까맣게 물들이고 있을 따름이었다.
베일 오브 다크니스. 그도 모르는 사이에, 주변 일대가 먹먹한 칠흑으로 뒤덮여 있었던 것이다.
“어, 언제?”
“잡았다.”
오싹.
“으아아아아!”
로이시스는 두려움을 떨치려는 듯, 크게 고함을 치며 클로를 휘둘렀다. 날카롭게 다듬어진 쇠 손톱에서 튀어나온 네 줄기의 벼락이 거인의 몸뚱이를 한순간에 할퀴고 지나갔다. 거의 엉겁결에 휘두르기는 했지만, 소울위버라는 이름값답게 강맹한 일격이었다.
얼떨떨해 있는 것도 잠시. 돌덩이 같은 대흉근에서부터 울퉁불퉁한 복부까지, 거인의 상체를 가로지르는 네 줄기의 자상에서 진득한 핏물이 배어 나오는 것을 본 로이시스는 저도 모르게 툭 실소를 터뜨렸다.
그의 클로에는 흑마법으로 제조한 맹독이 발라져 있다. 몇 방울만으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무서운 독. 워낙 괴물 같은 놈이니 바로 죽진 않겠지만, 이전과 같은 몸놀림을 보일 순 없을 터.
“망할 놈! 저주다! 저주해주마!”
로이시스는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미리 준비해 놓았던 저주를 걸었다. 활기를 빼앗는 인피블에 움직임을 둔하게 만드는 다크체인(Dark chain). 하나 같이 상대의 신체능력을 저하시키는 저주들이었다.
‘됐다. 끝났어!’
상대에게 이중삼중으로 족쇄를 채워놓았다. 즉발 주문이라 효력은 떨어질 테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이것으로 승부는 끝이었다.
“트흐흣! 죽어라!”
쾌재를 부른 로이시스는 뾰족하게 세운 클로의 날을 거인의 목덜미에 박아 넣었다. 단숨에 놈의 목을 갈라, 이 위험천만했던 싸움을 단숨에 끝내버릴 요량이었다.
물론, 그 계획은 상대가 순순히 목을 내어줬을 때나 성립하는 얘기였다.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웃기는 놈이군.”
“억?”
눈 깜짝할 사이에 손목을 잡혀버린 로이시스는 크게 당황했다. 이 완력, 이 속도. 지금쯤 굼벵이처럼 쩔쩔 매고 있어야 할 상대가 보일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남부의 저주술은 이 정돈가? 우리 마누라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군.”
“뭐, 뭣?”
“미안하지만 내게 그런 잔재주는 통하지 않는다.”
유황불처럼 이글거리는 거인의 눈을 마주한 로이시스의 낯짝이 송장처럼 푸르죽죽하게 변했다. 있는 대로 마력을 쥐어짜서 몸을 빼내려고 했지만, 솥뚜껑 같은 손아귀에 붙잡힌 팔뚝은 빠져나올 수 없는 갈고리에 걸린 양 요지부동이었다.
죽을 똥을 싸며 발버둥치는 사이, 서서히 뒤로 젖혀지는 거인의 반대쪽 주먹을 본 로이시스의 이마에 구슬땀이 맺혔다. 저런 흉악한 것에 맞기라도 한다면 안면함몰이 문제가 아니다. 그대로 골통이 박살나서 허연 뇌수가 폭죽처럼 터져 나올 게 틀림없었다.
“자, 잠깐! 스톱! 멈춰! 멈추라고! 대체 넌…!”
보기애도 애처로운 광경이었지만, 안타깝게도 흉악한 거인에게 자비심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한껏 팔을 뒤로 물린 거인은, 눈을 부릅뜨고 있는 로이시스의 낯짝을 향해 그대로 난폭한 주먹을 후려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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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추천수를 보고 눈을 의심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여세를 몰아 오늘도 연참을 하도록 할게요!
아마 다음편은 구더기의 독무대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궁금하신 점 있으시면, 코멘 남겨주시길!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