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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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오월동주(吳越同舟)
148# 오월동주(吳越同舟)
안티메이거스 챈트릭과 선키퍼 오성연이 맥없이 죽어버렸다. 노구덕이 그들을 처치하는 일련의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유일한 목격자는 마도왕 티렐 뿐.
‘정말로 강해졌군.’
그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노구덕은 강했다. 그냥 강한 것이 아니라 십존에 비길 수 있을 만큼 강했다. 노구덕의 무력에 대해선 항간에 수많은 추측과 소문들이 난무하고 있었고, 대부분은 뜬구름 잡듯 실체가 없는 것들이었지만, 티렐은 비교적 객관적으로 노구덕의 무력 수위를 가늠하고 있었다.
그는 발레기우스에게 귀띔을 받은 적이 있었다. 5년 전, 그가 늑대왕 가리발디를 잡은 장본인이라는 것을.
그때는 긴가민가했지만, 이제는 그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겠다. 어찌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 눈앞에서 버젓이 프라임리그 상위권을 웃도는 헌터 두 명을 손바닥 뒤집듯 쉽게 치워버렸는데.
지금까지 티렐이 직접 육안으로 보았던 이들 중, 근접계열 최강의 무인이라면 그 첫 번째는 단연 북왕 아이벤이었고, 두 번째가 늑대왕 가리발디였다. 기교와 전술, 방대한 기술의 총집합체라 할 수 있는 아이벤과, 힘과 야성, 특유의 잔혹성으로 상대를 압도했던 가리발디. 제대로 싸우는 걸 본 적이 없는 검왕 김정인을 논외로 친다면, 이 두 사람이야말로 무인의 정점이라 할 만하다.
그리고 지금, 수십 년 동안 변화가 없었던 그 명부에 새로운 이름을 끼워 넣어야 할 것 같았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지?”
“…대단한 실력이군. 세간에 떠돌던 소문들이 전부 헛소리는 아니었어. 하긴,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는 법이지.”
피식 입매를 터뜨린 노구덕은 가볍게 머리를 흔들었다.
“살다보니 마도왕의 칭찬을 다 들어보는군. 나쁜 기분은 아닌데.”
“전투 동선이 단순하고 직선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강해. 순수한 근력과 속도, 맷집이 워낙 압도적이라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지. 상대하는 입장에선 가히 재앙이야.”
“갑자기 입에 침이라도 발랐나?”
“하지만 부작용이 있군. 그릇을 한참 뛰어넘는 힘을 얻은 대신에, 불협화음이 생겼어.”
“…….”
노구덕의 표정에서 여유가 사라졌다. 정곡을 찔린 자의 얼굴이었다.
“들끓는 성욕, 흉폭한 투쟁심, 끝이 없는 정복욕… 오크란 본디 그런 종족이지. 슬슬 붕괴의 여파가 나타나고 있는 건가?”
티렐의 시선이 돌덩이처럼 말려 있는 노구덕의 오른손에 머물렀다. 분명 조금 전까지는, 깨끗하게 펼쳐져 있었던 손.
“여기서 날 죽여 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그런 것 같군. 이래서야 발뺌도 못하겠어.”
꽁꽁 말려 있던 주먹이 슬며시 풀어졌다. 진득하게 피어오른 살심을 도로 거둬들인 노구덕은 땅이 꺼질 듯 격한 숨결을 토해냈다.
티렐의 말대로다. 여기서 그를 처치해봐야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의 몸을 갉아 먹고 있는 건 망할 놈의 시스템이지, 애꿎은 티렐이 아니었다.
“언제부터였지?”
“…오 년도 더 전이었던 것 같군. 개인적으로는 너희 놈들이 카멜롯인지 뭔지를 박살 낸 이후부터로 짐작하고 있다.”
“그건… 미안하게 됐군.”
티렐은 뒤로 젖혀진 후드를 다시 깊숙하게 눌러썼다. 그 모습이 어쩐지 면목이 없는 것을 감추려는 것처럼 보였다.
마도왕 티렐을 비롯한 구 십존들이 흡혈왕 발레기우스를 도와 거사를 일으킨 지도 어느덧 육 년에 달하는 세월이 흘렀다.
처음의 노도와 같은 기세와는 달리, 동부 에덴에서 패배한 반란군은 이후 더는 세력을 넓히지 못하고 사그라 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피워 올린 항거의 불씨는 대륙 전역에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사상 유례없는 대격변을 초래했다.
그 영향으로 몇 세기가 넘도록 지속되었던 위원회의 독재가 막을 내리고, 그 산하의 연맹이 해체되었으며, 각지의 세력들이 중구난방으로 난립하여 다투는 혼란의 시대가 열렸다. 시스템과 위원회, 구시대의 상징이랄 수 있는 리그와 클럽 제도가 폐지된 것도 넓게 보면 발레기우스의 반역이 단초를 제공했다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발레기우스가 초래한 변화는 비단 제도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었다. 시스템의 붕괴로 말미암은 여파는 헌터들의 정신과 육체에 천천히, 그리고 분명하게 스며들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한다면, 역시 발레기우스가 격변의 암시를 주었던 그날을 기점으로 한 베이비붐 사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시스템에 의해 인위적으로 생식을 제한받았던 헌터들이 그 통제에서 자유롭게 풀려난 사건.
노구덕은 그 덕분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을 얻었다. 어떻게 보면 발레기우스가 벌인 일들 중, 거의 유일하게 긍정적으로 생각되는 일이기도 했다.
“…시스템의 통제를 벗어난다. 이게 생각 외로 골치 아픈 일이더군.”
“뭐든지 애매하면 골치가 아프게 마련이지.”
“말은 잘하는군. 그런 줄 알았으면 시도를 하지 말았어야지.”
“시스템을 붕괴시킨 것 자체는 후회하지 않는다. 그건 이 비정상적인 세계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어.”
“그럼 나는 선의의 피해자인가? 이거 좀 열 받는데.”
티렐은 굳이 대꾸하지 않았다. 광망을 뿜어낼 것 같은 무서운 눈초리로 그의 옆얼굴을 노려보던 노구덕은 이내 머리를 흔들며 신경질적으로 콧잔등을 찡그렸다.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이 답답한 증상 때문에 고뇌하고, 전전긍긍했던 지난날들이 떠오른 탓이다.
시스템의 붕괴로 인한 부작용.
대륙 전체적으로 보자면 드래프트 중단으로 인해 신규 헌터들의 유입이 끊긴 것을 들 수 있겠지만, 그런 건 노구덕과는 별 상관없는 문제다. 헌터들의 숫자가 줄든지 말든지, 알 게 뭐란 말인가?
지난 세월, 그를 가장 괴롭혔으며 지금도 괴롭게 만들고 있는 부작용은 다름 아닌 노구덕 본인이었다. 그 자신이 문제의 원인이었던 것이다.
그 근본을 정확히 짚자면, ‘오크’로서의 노구덕이라 할 수 있었다.
“…처음엔 조증이라도 걸린 줄 알았지.”
그의 심리에 미세하게 일기 시작한 변화…. 처음에 밖에서 돌아다니는 낯선 여성들을 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만 하더라도, 노구덕은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데모나와 임유진의 임신으로 본의 아니게 금욕 생활 중이었으니, 과도한 욕구불만으로 치부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일 년여가 넘게 지났을 무렵, 노구덕은 자신의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활화산처럼 끓어오르는 성욕이, 의지만으로는 주체하기 힘들 지경에 이른 것이다.
원래부터 성욕이 강하긴 했으나, 예전에는 절대 이 정도가 아니었다. 적어도 그때는 절제를 할 수 있었다. 두 아내의 임신 기간 중 그리 많지 않은 관계만으로 훌륭히 금욕(?)을 완수해낸 것이 그 증거.
그의 상태는 어떻게 봐도 비정상적이었다. 그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며칠 간 아내들을 억지로 한 방에 모아놓고 질펀한 난교를 벌이는 수단도 동원해 봤지만 그건 임시변통에 지나지 않았다. 간신히 가라앉혔던 욕망은 다시 며칠 지나지도 않아 뜨겁게 머리를 디밀곤 했다.
시도 때도 없이 뇌 속을 달구는 욕망은 그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 그저 싱싱한 젊은 여자, 달착지근한 암내를 풍기며 흥분을 고조시킬 수 있는 여자라면 누구든지 상관없었다. 분명 그의 몸 속에서 생겨난 감정의 일부분인데도, ‘그것’은 노구덕의 통제를 한참 벗어나 있었다.
그로부터 약 반년 뒤, 수련이란 핑계를 댄 노구덕은 스스로를 외부와 격리시켰다.
열다섯. 성인식을 맞이한 딸아이, 임가희에게 욕정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때… 내가 드래프트를 통해 처음 이 세계에 들어왔을 때, 나는 시스템의 힘을 빌려 종족을 바꿨다. 인간에서 오크로. 그편이 생존에 유리할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당시 ‘종족 선택’으로 종(種)을 바꾼 것은 노구덕뿐만이 아니었다. 안혜미, 황기종 등의 드래프트 동기들도 보다 살아남기 적합한 종족으로 새롭게 태어났었다.
간단히 말해서 그건 기적이었다. 별다른 외과적 시술도 없이, 본래 인간이었던 몸에 다른 종족의 껍질을 씌우는 작업을 해낸 것이었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 인간의 본질을 유지하면서 완벽히 다른 종으로 변한다니…….”
티렐이 그의 말을 받았다.
“이치를 거스르는 짓이다. 전능에 가까운 시스템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
엄밀한 의미에서 시스템에 의해 종족을 변경한 헌터는 ‘가짜’다. 스퀘어 대륙에 널리 퍼져 있는 원주민 이종족들과는 다른 존재란 뜻이다. 물론 겉으로 보이는 외견이나 저널의 정보는 의심할 여지없는 진짜지만,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은 엘프나 오크, 하플링 같은 이종족이 아닌 ‘인간’이다.
시스템의 종족 변경은 인간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그 위에 타 종족의 껍질을 덮는 것. 요컨대 정교하게 달라붙는 생체 인형 옷을 입는 것과 마찬가지. 인간의 사고방식, 인간의 유전자를 지녔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만약 노구덕이 ‘진짜’ 오크였다면, 아마 그의 아이들 중 몇몇은 오크로 태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임유진, 데모나, 아가레스트, 신소율과의 사이에서 둔 아이들은 전부 인간이었다.
이는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럴 수밖에. 이런 기적이 가능했던 건, 오로지 시스템이라는 전지전능한 힘이 작용한 덕분이었으니.
인간의 본질에 오크의 성질을 기적적인 힘으로 뒤섞어 놓은 상태. 그 상태에서 아교가 되어주었던 그 힘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서로 다른 두 성질이 마구잡이로 뒤섞이거나, 따로 갈라지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예측불허의 기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노구덕이 경험하고 있는 것은 전자에 가까웠다.
“가설을 정립한 건 시간이 좀 더 흘러서였다. 성욕만 문제가 아니었어. 나는 점점 더 난폭해지고, 잔인하게 변하고 있었으니까. 완전히 문헌에서 전해 내려오는 오크의 특징과 판박이였지.”
잠식…. 결국, 두 가지 성질 중 더 강한 쪽이 약한 쪽을 천천히 잠식하기 시작했다. ‘인간’ 노구덕은 점차 ‘오크’ 노구덕으로 변해가는 중이었다.
터무니없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노구덕은 정보망을 총동원하여 자신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헌터들의 신상을 수집했다. 그 결과, 시스템이 붕괴된 직후 이종족을 선택한 헌터들 대부분이 급작스럽게 성격이 돌변하는 양상을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제어할 수 없는 심리적 변화가 시스템의 붕괴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그의 불길한 가설이 들어맞은 것이다.
노구덕은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케이스였다. 예를 들어 엘프를 선택한 헌터가 성격이 바뀐다고 해봤자, 외향적인 성격이 조용하고 얌전하게 바뀌는 등, 엘프의 본래 성질을 그대로 따라가게 마련일 뿐이다. 대부분의 이종족들은 이처럼 성향이 바뀐다고 해도 큰 문제가 일어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오크는 다르다. 오크는 지나치게 잔인한데다 전쟁을 좋아하고, 번식력 또한 뛰어나서 과거 이 대륙에 몇 번이나 큰 전쟁을 일으킨 전적이 있었다. 오죽하면 600년 전의 종족 전쟁 때 씨몰살을 당해 종족 전체가 자취를 감추었을까.
그런 흉포한 종족의 본성이 깨어난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더욱이 노구덕은 아직까지도 양호한 편인 다른 오크 헌터들에 비해 특히 증상의 정도가 심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었다. 흉성을 자극하는 매개체인 피를 많이 접해서일 수도 있고, 세포 속에 스며든 카름의 인자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흘러간 과거 회상을 멈춘 노구덕은 서늘한 기운이 묻어나는 눈을 번뜩였다.
“…티렐. 들을 만큼 들었겠지. 이제 그만 뺐으면 하는데. 넌 분명 알고 있어. 그러니 화두를 꺼낸 거야.”
“…….”
“말해라. 이 빌어먹을 증상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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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점심때쯤에 투척하려다가.. 마침 딱 추천 100이 되는 걸 보니깐 왠지 모르게 지금 올려야 할 것 같아서 올립니다..
임유진 회상 편이라든가, 지난 편을 보시면 구더기가 뭔가 들끓는다고 호소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때는 이렇게 될 줄 몰랐겠죠.. 개비스콘 먹으면 나을 줄 알았을 겁니다.
노구덕이 예전에 비해 상당히 잔인해지고, 피의 숙청을 감행한 것이나, 뜬금없이 오성연을 보고 발기한 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오크가 되어가는 중이죠. 어쩌면 지금 아내들 중 누군가를 임신시키면 ‘하프오크’를 낳을 지도 모르겠네요.
Q. 왜 헌터들은 한국인들이 대부분인가요?
음.. 찾아보면 자세한 설명이 나와 있는 화가 있는데, 몇화인지는 저도 기억이 나질 않네요.
지구에서 차원이동에 적합한 장소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한국이 가장 적합한 장소가 되어서요. 유독 헌터들 중 한국인이 많은 것은 그때문이죠. 대부분 한국인이긴 하지만, 미국 일부 지역이나 남미쪽에도 협소한 장소가 있긴 있습니다. 초반부에 보시면 미국인도 있고, 남미인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리고 일본계 혼혈인 유메르바인도 있죠. ‘유메’ 르바인이요. 만족하실 만한 답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오늘 연참을 할지는 미지수.. 저녁에 비가 온다는데, 빗소리 들으면서 한번 생각좀 해봐야겠어요!
좋은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