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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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라리스의 떠오르는 강자였던 안티메이거스 챈트릭을 포함한, 추격대 이백 오십 명의 죽음.
반면, 판데모니엄의 잔당과 레그나토르의 피해는 극히 미미.
남부의 어느 야산에서 있었던 전투는 그렇게 일단락이 되었다.
노구덕에게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넘긴 마도왕 티렐은 그 길로 수하들을 데리고 자취를 감추었다.
떠나기 전, 티렐은 말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소냐에게 서책 한 권을 건네주었다.
“네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은 모두 가르쳤다. 이제부터는 나도 닿지 못한 불가해의 영역. 이건 내 나름대로 네게 조언이 될 수 있을 만한 것들을 적어둔 것이다.”
“스승님….”
“너라면 할 수 있겠지. 이제는 할 수밖에 없다. 항상 네가 걷는 길을 지켜보도록 하겠다.”
이젠 할 수밖에 없다……. 소냐는 의미심장한 그의 말에 의아한 얼굴을 했지만, 티렐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티렐은 유일한 제자인 소냐에게조차 그와 연락할 수 있는 어떤 수단도 건네지 않았다. 얼마 남지 않은 추종자들을 이끌고, 다섯 별 중 최후의 생존자인 님로드와 함께 쓸쓸히 어둠 속으로 퇴장하는 티렐의 뒷모습은 거친 세파에 지쳐버린 노인의 그것을 보는 것 같았다.
팔짱을 끼고 있던 노구덕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또 한 명이 이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군.’
본래 그가 티렐을 돕기로 마음먹은 것은 이번 기회에 그에게 빚을 지워, 유사시에 히든카드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막상 대면한 티렐의 상태는 심지가 다 타들어간 양초와도 같았다. 소냐를 들먹여 어떻게든 살리긴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같이 행동하던 하유라와 라키오라가 떠나버리고, 구 판데모니엄의 추종자들은 거의 전멸. 일생을 바쳤던 숙원의 완성은 훌륭하게 자라난 제자에게 넘겨주었다.
주변 정리를 모두 끝냈다고 해야 할까. 이제 티렐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깨 위에 있던 짐들을 모두 덜어냈다. 더 이상 이 땅에 미련은 없다.”
“스승이라면 책임을 지라고 했을 텐데. 소냐는 아직 미숙한 아이다. 마당에 꽃이나 키우면서 살고 싶다면, 내가 마련한 안가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
“노구덕, 날 설득할 생각은 마라. 난 이미 마음을 정했다.”
티렐의 결심은 생각보다 완고해서, 노구덕은 아무리 어르고 달래보았자 그가 결심을 바꾸지 않으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제기랄, 도움 받을 건 다 받아놓고 뒤통수를 치다니.”
“개인적으로는 고맙게 생각한다. 너희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그 아이의 얼굴을 볼 순 없었을 테니….”
“그렇게 고마우면 은혜를 갚으란 말이다.”
“그건 유감이군. 당장은 해야 할 일이 있어서.”
“할 일?”
노구덕의 눈두덩이 언짢게 꿈틀거렸다. 미련이 없다고 할 때는 언제고, 뜬금없이 무슨 할 일이란 말인가.
“네 말대로, 스승으로서 책임을 다 할 생각이다.”
“무슨 소리지?”
“건투를 빌지.”
티렐은 더 이상 대화를 지속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뒤에서 무슨 짓을 꾸미려는 걸까. 노구덕은 그 점이 신경 쓰였지만, 굳이 캐묻지는 않았다. 그가 무슨 계획을 가지고 있든 간에, 그나 소냐에게 어떤 위해를 가하리란 생각은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화하는 내내, 노구덕은 마치 초탈한 도인과 대화하는 느낌을 받았다. 세속적인 모든 것을 내려놓은 사람만이 풍길 수 있는 분위기랄까. 그러한 해탈의 기운이 티렐에게서 느껴졌다.
아마도 더 이상 티렐이 세상사에 관여하는 일은 없으리라.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은퇴…. 대륙을 질타했던 최강의 마법사는, 오늘부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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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렐과 그 잔당을 떠나보낸 일행은 그 길로 칼립스에 복귀했다.
구(舊) 아이리스 클럽 홀을 겸해, 노구덕의 사저였던 건물은 예전과는 상당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칼립스에서 가장 큰 건물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지만, 하나였던 건축물이 쌍둥이처럼 두 개로 나뉘어졌다.
하나는 주로 그를 찾아온 손님이나 식객들이 머무는 건물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직속 수하들과 가족들이 머무는 사적인 공간이었다.
쌍둥이 건물이라곤 해도, 기다란 산책로가 둘러진 인공 호수와 장엄한 조각상들로 치장되어 있는 접객동과는 달리, 가족들이 머무는 생활동은 아이들이 뛰어 놀 수 있는 작은 정원과 화원 정도가 전부인지라, 그의 지위를 생각하면 상당히 소박한 편이었다.
원래 노구덕은 이렇게까지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할 생각은 없었다. 이 리모델링은 편히 육아에 전념하기 위해선 사무용 공간과 생활공간은 떨어져 있는 편이 낫다는 임유진의 강한 주장에 따른 것이었다.
각설하고, 남들의 눈을 피해 무사히 칼립스 도심의 사저로 돌아온 노구덕 일행은 정원 입구에서 몇 걸음 떼지도 못하고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정원 안으로 접어들기 무섭게, 건물 안쪽의 문이 벌컥 열리며 한 여인이 버선발로 뛰쳐나왔기 때문이었다.
“소냐!”
“이모….”
“왜 그랬어! 왜 그랬냐구!”
하얀 머리칼을 정신없이 나부끼며 뛰어온 소피아는 대뜸 소냐를 끌어안더니, 그 작은 등을 마구 두들겼다.
“어, 어… 소피아 언니! 잠깐만…!”
당황한 신소율이 얼른 나서서 그녀를 떼어내려고 하자, 노구덕은 팔을 들어 그녀의 앞을 막았다. 가만히 놔두라는 뜻이었다.
“왜 나한테까지… 흐흑… 흐… 흐어어엉…….”
소냐의 가냘픈 등을 아플 정도로 두드리던 소피아는 이내 조카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목을 놓아 울기 시작했다. 소냐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중대한 비밀을 만들고, 몇 년 동안이나 그 사실을 숨겨왔단 사실에 큰 정신적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소냐의 품에 안겨 고운 얼굴이 엉망이 되도록 흐느끼는 소피아의 모습에, 가까이 다가가려던 신소율은 씁쓸한 얼굴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여인들과는 다르게, 아이를 갖지 못한 소피아가 조카에게 얼마나 많은 정성을 쏟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소냐가 이런 외도를 해버렸으니…… 저런 격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수 년 간의 노고가 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문제였으니까.
중요한 순간에 신뢰를 받지 못했다. 몇 년 동안이나 고민을 터놓을 상대도 되지 못했다. 그러니 당연히 실망할 수밖에 없다. 서운할 수밖에 없었다.
“이모…….”
소피아가 마구 흔들어대는 통에, 갈대처럼 흔들리던 소냐의 눈에서 방울진 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린다. 인형 같은 무표정은 변함이 없었지만, 한번 둑이 터져버린 눈물샘은 하얀 얼굴을 하염없이 적시며 소피아의 옷깃을 물들였다.
“…죄… 죄송합니다…….”
꾹 짜내듯 간신히 한마디를 내뱉은 소냐는, 이내 여린 어깨를 들썩이며 고개를 숙였다. 자기가 한 행동이 소피아에게 얼마나 큰 마음의 상처를 주었는지 이제야 겨우 깨닫게 된 것 같았다.
“…오셨어요?”
“앗, 유진 언니!”
살짝 고개를 드니,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다가오는 임유진이 보인다. 이제 내년이면 마흔에 접어드는 그녀였지만, 여전히 하늘거리는 몸짓 하나하나에 갓 피어난 꽃망울 같은 싱그러움이 묻어난다.
임유진은 소냐를 부둥켜안고 끅끅거리며 울고 있는 소피아를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노구덕의 연락을 통해 대강의 사정을 들은 그녀이니, 동생의 비애(悲哀)가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것이리라.
“데모나는?”
“안에서 애들 보고 있어요. 바로 들어가실래요?”
“아니.”
노구덕은 고개를 저었다. 아이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지금은 따로 할 일이 있었다. 그리고 저기서 울고 있는 두 사람 문제도 해결해야 했고.
“미안한데, 소피아랑 소냐 좀 챙겨주겠어? 여기서 이러면 밖의 눈에 띌 수도 있으니까…….”
“네. 그러도록 할게요. 당신은요?”
“바로 집무실에 갈 거야. 잠깐 좀… 생각할 게 있어서.”
살을 맞대고 산 지 십 년이다. 노구덕의 미묘한 태도에서 그가 무언가 고민을 안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임유진은 더는 캐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민거리가 있다면 차후에 개인적으로 물어봐도 될 일. 일단 이곳을 정리하고, 그가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자리를 피해주자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이곳은 제게 맡기고, 안에 들어가 쉬도록 하세요. 아, 승찬 씨는요?”
“고마워. 승찬이는 따로 볼일 본다고 먼저 헤어졌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임유진에게 뒷일을 맡긴 노구덕은 먼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집무실은 현관 우측 계단과 이어진 복도의 중간쯤에 자리해 있었다. 익숙한 문 손잡이를 돌려 들어간 집무실 내부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서류철 하나하나가 모나지 않게 정리된 것도 그렇고, 마치 이곳에 먼저 들를 줄 알고 있었단 듯이 놓여 있는 물컵도 그렇고.
내조에 도가 튼 아내의 마음씀씀이가 따스하게 전해져 오는 광경이다.
하지만, 노구덕에겐 그 배려를 음미할 여유가 없었다. 복귀하는 내내 머릿속을 채우던 고민이 아직도 풀어지지 않은 채였기 때문이다.
신의 조각. 시스템. 이레귤러. 관리자. 위원회. 발레기우스.
그 언덕 위에서, 장시간 동안 티렐에게 들은 충격적인 이야기는 삽시간에 그의 머릿속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기 충분했다. 대륙에 공표된다면, 한순간에 세상을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 넣을 수 있을 만한 파급력을 지닌 이야기들.
‘신의 조각……. 발레기우스가 신의 조각이었다니. 그놈이 신의 파편이라고?’
어처구니없는 사실이지만, 아귀는 꼭 들어맞는다. 이 비정상적인 세계의 성립부터 위원회의 지배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역사적 사실이.
세계에 퍼진 재앙을 막기 위해 ‘관리자’라는 이름을 지닌 신이 스스로 시스템이 되어 이 스퀘어 대륙을 관리하게 되었고, 당시의 사회지배층이었던 구왕조, 즉 위원회는 그 시스템을 보조하여 대륙을 안정시키는 사명을 떠맡았다.
그러나 관리자의 예상과는 다르게 위원회는 타락했고, 관리자에게 부여받은 시스템의 힘을 남용하여 오래도록 세상에 군림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았다.
‘여기까진 이해가 가. 그렇지만 발레기우스가 그 시스템의 일부라니… 그놈은 시스템이 등장하기 전부터 벌레교단의 교황이었을 텐데? 하긴… 이후에 시스템과 접촉해서 그 힘을 받았을 수도 있겠지.’
노구덕은 티렐이 전했던 말을 떠올렸다.
‘발레기우스는 신의 조각들을 찾고 있다. 놈의 진정한 목적은 아마도… 흩어진 시스템의 힘을 한 데 모아 스스로 다시금 신의 위(位)를 되찾는 것일 거다. 그 외엔 생각할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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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요 몇 년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건가….’
‘나는 그렇게 보고 있다. 네가 진정으로 그 부작용에서 해방되고 싶다면, 놈보다 한 발 앞서 네 저널에 관여하고 있는 조각을 찾을 수밖에 없다.’
불안정하게나마 노구덕의 종족이 유지되고 있다는 건, 다시 말해 그것을 주관한 시스템의 힘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 티렐은 대륙 전역에 흩어진 신의 조각(시스템의 일부)들 중 그 힘을 가지고 있는 조각을 찾아내어 말살할 것을 주문했다.
그리고, 노구덕이 생각하기에도 그의 말은 이치에 맞는 말이었다. 물론, 소냐가 시스템의 힘을 마법 도식으로 치환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도 모를 존재를 찾아야만 하는 골치 아픈 숙제. 백사장에서 진주를 찾는 것도 이보다 어렵진 않을 터이다.
허나 노구덕의 신경을 쓰이게 하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하유라와 라키오라. 이 연놈들은 대체 어디로 증발한 거지?’
당초 티렐을 미끼로 삼아 솔라리스의 남부지대를 침공했으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솔라리스의 남부 국경지대는 아무 일 없이 잠잠했다. 원정을 떠난 하유라와 라키오라가 그대로 연기처럼 증발해버린 것이다.
한두 명도 아니고, 그만한 병력을 이끌고 잠적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걸 해냈다는 것은….
돌연, 노구덕의 우묵한 눈이 매섭게 번뜩였다.
‘누군가… 조력자가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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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오늘 너무 바빴네요. 가게 마무리하고 이제야 겨우 올립니다 ㅠㅠ
이제부터는 아마 본격적인 분쟁의 연속이 될 것 같네요. 그 스타트를 끊어주시는 인물은 아마 다음편에… 매우매우 의외의 인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잔잔한 새벽 되시길!
참! 아가레스트 저널 정보를 빠트렸네요!
아가레스트 저널은 가까운 시일 내에 업데이트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