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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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물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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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 밖으로 기어 나온 플랑기스의 성난 짐승의 울음소리를 토해내며 가차 없이 앞으로 달려 나왔다. 그들의 급작스런 돌격은 도왕 장명진의 지시대로 느긋하게 방진을 이루고 있던 이레시온의 군대에게 있어 청천벽력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동요는 한순간에 불과했다. 네 발 달린 짐승들처럼 달려오는 투르의 군대를 마주한 이레시온의 병사들은 금세 평정을 되찾았다.
그들은 대륙 최강세력인 이레시온의 병사들. 국가라 칭하기도 민망한 투르의 잡병들에게 압도당하는 오합지졸이 아니었다.
“전열을 갖춰라! 투르의 망나니들에게 진짜 전쟁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거다!”
“우오오오!”
도왕의 쩌렁쩌렁한 사자후에 맞춰, 높이 올라간 검과 창이 하늘을 찌를 듯이 들썩였다. 이들 모두는 스몰, 미들리그에서 질리도록 실전을 경험한 헌터들. 이제 와서 피를 두려워하는 햇병아리는 적어도 이 자리엔 없었다.
“씨발놈들. 깜짝 놀랐잖아. 원숭이 새끼들처럼 깩깩대기나 하고 말이야.”
“킁! 투르 놈들, 완전히 겁대가리를 상실한 모양이야. 십존이 앞에 있다고 눈에 뵈는 게 없나 보지?”
“만만한 팔콘을 상대하다보니 자만심이 과해진 거지. 미개한 놈들….”
전위를 맡은 병사들은 투르의 병사들을 비웃으며 창대를 곧추세웠다. 한순간 위축되긴 했어도 그뿐이다. 그들의 머릿속에 투르에게 패한다는 가정 따위는 추호도 남아 있지 않았다.
“쿠와아아아아악—!”
“온다!”
“투르의 야만인 놈들!”
거친 숨을 헐떡이며 달려오는 투르의 선두가 전방 오 미터 지점에 육박한 순간, 긴장의 끈을 한껏 당기고 있던 이레시온의 창수들은 일제히 창두를 전방으로 들어올렸다. 길게 늘어진 장창의 물결은 그대로 날카로운 가시방벽이 되어 멋모르고 뛰어오른 투르의 병사들을 맞이했다.
푸욱! 푹! 푸푸푹!
사방에서 소름끼치는 파육음이 빗발쳤다. 예리한 창날에 꿰인 투르의 병사들은 거센 경련을 일으키며 몸부림쳤다. 창날이 박힌 뱃속이 헤져, 분홍색 창자가 우르르 쏟아지는데도 거품을 물고 발광하는 모습은 광기 그 자체였다.
흩뿌려진 핏물을 흠뻑 뒤집어쓴 이레시온의 병사들은 크게 당황했다. 딱 꼬집어 말할 순 없었지만, 투르 병사들의 상태가 어쩐지 이상했다.
“이, 이 미친놈들!”
최소한 기본이 있는 헌터라면 이렇게 무작정 달려들지는 않는다. 뾰족한 창대가 뻔히 앞을 가로막고 있는데, 미친놈처럼 몸을 내던지는 놈들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런데 투르의 병사들은… 마치 몸을 불사르는 날벌레들 같았다. 까놓고 말해서, 도무지 정상이라 부를 수 없는 모습들이었다.
“당황하지 마라! 저 야만인들이 뭔 짓을 하건, 눈앞의 적에게 집중해라!”
병사들의 심리적 위축을 깨트린 것은 역시 도왕의 우렁찬 사자후였다.
“승기는 우리에게 있다! 제 발로 죽어주겠다면, 마땅히 소원을 들어줘야겠지! 그렇잖느냐!”
“오오오옷–!”
과연 도왕은 노련했다. 그의 시기적절한 외침은 투르의 마구잡이식 돌진에 기가 질려버린 병사들의 정신을 단단히 붙들어 놓았다. 역시 관록을 허투루 쌓은 것은 아닌 모양.
허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고삐를 강하게 틀어쥐었으니 이제 박차를 가할 차례. 백전연마의 무인인 도왕은 싸움의 기세를 타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초전의 기세를 이어가는 최고의 수단은 당연히 절대자의 무력시위였다.
“금수 같은 것들! 본때를 보여주마!”
도왕의 애도, 금마(禁魔)가 높이 쳐들렸다. 최전방, 창수들의 바로 뒷자리까지 나아간 도왕은 하늘을 향해 솟구친 금마도를 곧장 사선으로 내리 그었다. 그러자 두꺼운 손잡이 부근으로부터 칼날 같은 기류가 솟구치더니, 반투명한 투기로 이루어진 무형의 와류가 전면으로 쏘아졌다.
폭풍왕 라키오라의 장기라는 용권풍이 이러할까? 도왕의 일도에서 내뿜어진 칼날의 와류는 앞에서 어정대던 투르의 병사들을 분쇄기처럼 갈아버리며 피보라를 일으켰다. 일거에 십여 명을 찢어버린 와류는 그러고도 기세가 죽지 않아, 뒤쪽에 밀집해 있는 병사들을 향해 날아갔다.
자칫하면 수십 명의 병사들이 살인 와류에 휘말릴 상황이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푸스스….
막강한 위용을 떨치던 도왕의 와류는 그 앞을 막아선 한 사내의 앞을 지나지 못하고 때 아닌 산들바람처럼 허망하게 흩어져버렸다.
“으음! 플랑기스….”
“곰팡내 나는 뒷방 늙은이가 주제를 모르는군. 그만 뒈질 때도 되지 않았나?”
“애송이가…!”
도왕의 부릅뜬 호목에서 흉흉한 안광이 떠오른 찰나, 그의 애도 금마가 또다시 불길을 뿜어냈다. 검을 빼든 플랑기스도 물러서지 않고 도왕의 와류를 맞받아쳤다.
쩌-엉-!
무지막지한 크기의 심벌즈가 맞부딪치는 듯한 굉음이 귀청을 찢어발겼다. 두 명의 절대자가 만들어낸 충격파는 반경 수십 미터를 무자비하게 휩쓸고 지나갔다. 그 압력을 견디지 못한 병사들은 소속에 상관없이 벌렁 나자빠졌다.
그나마 얌전하게 땅에 쓰러진 이들은 양호한 편이었다. 가장 불운한 이들은 충돌지점 가까이에 있던 병사들이었다. 그들은 허리케인에 휘말린 것처럼 높이 떠올라, 공중을 몇바퀴나 빙빙 돌더니 거의 삼, 사십여 미터 가까이 날아가 내동댕이쳐졌다. 당연하게도, 그런 심한 꼴을 당한 이들은 대부분 사지가 부러지거나 내장이 터져버려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쾅! 쾅!
그 뒤로도 두어 차례 격돌하며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한 걸음씩 물러나 숨을 골랐다.
“팔팔하기도 해라. 노친네가 어디 영약이라도 몰래 처먹은 건가?”
“네놈과 나는 상성이지. 날 중얼대기 좋아하는 마법사들과 같은 부류로 보지 마라.”
도왕의 엄포에는 많은 것이 함축되어 있었다.
플랑기스는 마법사들에겐 천적이지만 투기를 다루는 순수 무인에게는 비교적 약하다는 평이 대세였다. 구원군의 수장으로 도왕이 파견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실제로 플랑기스와 칼을 맞대본 도왕은 아까보다 더욱 자신감에 찬 얼굴이었다.
“상성이라……. 푸후, 푸후흐흐흐!”
“뭐가 그리 우습지?”
“흐흐… 잠깐 놀아줬다고 기고만장한 꼴이라니. 우스울 수밖에 없잖아.”
“뭐라고?”
“그래, 인정해. 뒷방 늙은이들이라고 다 같은 쓰레기들은 아니었어. 무뎌지긴 했어도 아직까진 그럭저럭 쓸 만한 수준이야. 도왕, 당신이라면… 음, 그래도 우리 곰탱이보단 강할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그게 전부야. 날 이기진 못해.”
“허허.”
도왕은 실소를 터뜨렸다. 그가 보기에, 플랑기스의 검은 정도(正道)가 아닌 사도(邪道)에 가까웠다. 저런 방식은 명백한 한계가 있다. 사도의 기기묘묘한 변칙은 잠깐 득수를 할 순 있어도, 결국은 세심하게 쌓아올린 정석의 무게를 감당하진 못한다. 과거 그가 겪은 숱한 전투 경험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칼끝으로 잰 플랑기스의 기량은 틀림없이 그보다 하수. 그렇다고 하더라도, 방심은 하지 않았다. 엄밀히 따져서 플랑기스의 장기는 검술이 아니라 주문을 무효화하는 ‘마법’이었으니, 무슨 수를 더 숨겨두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마법사가 아니지. 너는 여기서 죽는다!’
“노친네, 슬슬 결착을 지어야지?”
“갈!”
활화산 같은 노호성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헐렁한 장포자락이 벼락불처럼 번뜩였다. 수십, 수백 갈래로 갈라진 검기의 다발이 얼마나 많은지, 일순 플랑기스의 주위가 뿌연 짙은 안개로 둘러싸인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일도운하(一刀雲霞). 과거 북부의 수많은 검호들을 쓰러뜨렸던 도왕 장명진의 절기였다.
헌데,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플랑기스는 도리어 여유만만이었다.
“과연, 과연! 대단한 칼솜씨야!”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추임새를 접한 도왕의 눈매가 날카롭게 치솟았다.
“무어라?”
“요란한 서커스, 잘 봤다!”
찌익!
플랑기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도왕은 무언가가 찢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질긴 종잇장이 강하게 찢기는 소리…. 그렇잖아도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있던 도왕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안감을 감추려는 듯, 다시 한 번 투기를 방출했다.
“……!”
금마도를 꾹 움켜쥔 도왕의 낯빛이 회색으로 덧칠되었다. 망연히 벌어진 입에서는 영문모를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금방이라도 플랑기스의 이죽이는 면상을 짓이길 듯 했던 금마도가 힘없이 주저앉았다. 그 광경이 마치 자의로 칼을 내린 것이 아니라, 칼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흐느적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도왕은 퀴퀴한 회반죽처럼 변한 얼굴을 들었다. 그런데 뭔가가 이상했다. 찰나의 시간이 흘렀을 뿐, 그 얼굴은 틀림없는 도왕 장명진인데, 주위를 압도하던 절대자의 기세는 아스라이 사라지고, 쇠할 대로 쇠한 늙은이의 초조함만이 남았다. 꼭 사람이 통째로 뒤바뀐 듯한 느낌이었다.
쨍강.
얄팍한 손마디에 겨우겨우 걸려 있던 금마도가 끝내 바닥에 떨어졌다. 평생을 애지중지한 애병을 놓쳐버린 도왕은 학질에 걸린 사람처럼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어, 어떻게 된……. 꺼그그극…!”
비척비척 물러나던 도왕의 중얼거림이 알아듣지 못할 끓는 소리로 뒤바뀌었다. 누런 눈알을 볼성사납게 굴려대던 도왕의 시야에, 비릿한 조소를 머금고 있는 플랑기스의 얼굴이 들어왔다. 거친 숨을 헐떡이던 도왕은 불현듯 따끔한 목언저리를 매만졌다.
그의 주름진 목엔, 어느새 가느다란 혈선이 그어져 있었다.
“…끄르르……!”
쯔어어억.
목에 그어진 혈선의 굵기가 삽시간에 진해진다 싶더니, 느릿하게 흔들리던 목이 울컥울컥 핏줄기를 내뿜으며 기울어졌다.
목에서 떨어져 나온 머리통은 여전히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누릿한 눈자위에 핏줄이 불거진 동공은 아직도 이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거친 파문을 일으킨 채다.
“어안이 벙벙할 거야. 그렇지? 어떻게 뒈졌는지도 모를 테니까.”
깜박.
단순한 사후경직일까? 아니면 물음에 대한 긍정일까. 도왕의 떨어져나간 머리통이 격하게 눈꺼풀을 떨어대는 게 보였다. 그 꼬락서니를 본 플랑기스는 피식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재차 칼을 휘둘렀다.
그러자 검풍에 휩쓸린 도왕의 육신이 정확히 삼등분으로 갈라지며 널브러졌다. 그 뒤로, 비로소 현실을 인지한 부장의 애타는 절규가 들려온다.
“대, 대장님! 마, 말도, 말도 안 돼!”
“쩝. 별로 참신한 멘트는 아니로군.”
어느덧 일대의 싸움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중지되어 있었다. 도왕과 플랑기스… 짧은 시간이었지만 두 초인의 격돌이 그만큼 요란했던 탓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도왕의 죽음. 얼이 빠질 정도로 허무한 결착이었다.
이레시온의 병사들은 하나 같이 얼굴색이 푸르죽죽하게 변해 있었다. 앞으로 이 싸움, 이 전투가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대충 예상이 되었던 것이다.
“플랑기스으으으! 이, 이 비열한 노오옴!”
“허, 졌으면 인정을 해야지. 하여튼… 위원회 잡종들은 도무지 남자답지가 못해요.”
비꼬듯이 어깨를 으쓱인 플랑기스는 도왕이 남긴 너절한 살덩이를 쿡쿡 짓밟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뒤쪽에는 뚝뚝 핏물이 떨어지는 머리통 두 개를 덜렁이며 들고 있는 부르군트와, 이 난전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하얀 로브에 핏물 한 방울 묻히지 않은 김인성이 시립해 있었다.
“부르군트, 김인성.”
“예!”
“다 쳐죽여라. 빨리 끝내버려.”
미치광이와 하얀 악마의 눈알이 동시에 희번덕거렸다.
잠시 후, 고요했던 전장은 찢어지는 비명과 농후한 피비린내가 들어찬 생지옥으로 변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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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휴우.. 오늘도 겨우겨우 시간을 맞췄군요. 은근히 수요일이 금요일 못지않게 바쁘단 말이죠.
전쟁이 시작됐고, 여러 세력이 동시다발적으로 얽히다보니 어느 정도 진행이 되는 동안에는 구더기쪽 비중이 작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부분은 역시 빨리빨리 진행해야 하는데 말이죠..
일단 내일은 두편.. 올릴 수 있도록 힘내 보도록 하겠습니다!
으싸으싸!
독자님들도 힘세고 강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