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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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물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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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구덕은 가능한 최소한의 인원으로 인선을 짰다. 최악의 경우 십존 둘을 상대해야 할지도 모르고, 어쩌면 그보다 더한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인원을 짜내는 것은 무리였다.
많은 수의 인원이 움직이면 그만큼 흔적이 남게 마련이고, 이 민감한 시기에 레그나토르의 정예들이 서부도 아니고 동부에서 발견되었다는 정보가 돌면 다른 세력들에게 또 무슨 트집을 잡힐지 몰랐다.
그렇다고 최정예만 데려가자니 그것도 어려운 점이 많았다. 예를 들어 임유진, 소피아 등은 레그나토르의 얼굴 마담이나 다름없는 존재로, 대외적인 활동을 도맡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그녀들이 장기간 얼굴을 보이지 않으면 그건 그것대로 의심을 살 수밖에 없을 터.
따라서 노구덕은 대외 활동이 적은 편이거나, 장기 출타에도 최대한 의심을 적게 사는 인원들, 그리고 그중에서도 십존급의 강자와 전투 시에 짐이 되지 않는 확실한 실력을 가진 이들을 선별해야만 했다.
그 결과 최종 낙점된 인원이 데모나, 안세희, 이두식, 박지현의 네 명. 나름대로 위 조건들과 공수밸런스를 고려한 인선이었다.
어떻게 보면 다소 빈약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내실을 잘 따져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겉으로 드러난 명단과는 달리, 그에게는 ‘유령여왕’과 ‘안개여왕’이라는 히든 카드가 있었으니까.
노구덕을 대장으로 한 일행은 곧장 새벽을 틈타 길을 나섰다.
워프게이트를 통해 칸다무어에 도착한 일행을 맞이한 이는 월광의 임시 책임자를 맡고 있는 고일성이었다. 월광의 비밀 안가에서 노구덕 일행을 영접한 고일성은 그 자리에서 대뜸 무릎을 꿇으며 머리를 땅에 박았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크흑…!”
패터슨 덕분에 개과천선하여 새 사람이 된 고일성은 그를 평생의 은인으로 여기고 있었다. 애초에, 패터슨의 간청이 아니었더라면 그는 노구덕에게 포로로 잡힌 시점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터.
“제가 불민하여 패터슨 형님을 끝가지 보필하지 못했습니다. 이 죄는… 컥!”
이마를 땅에 찧으며 사죄하던 고일성의 머리가 억지로 일으켜 세워졌다.
아득해진 정신이 다시 제자리를 찾았을 때, 고일성은 자신이 멱살을 잡혀 들어 올려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네 녀석과 왈가왈부하며 시간 낭비할 틈은 없다. 한시가 급한 마당이니 입 닥치고 곧바로 거울의 숲으로 안내해라. 상수리 부족이라고 했지? 장로를 만나야겠다.”
“아, 알겠습니다!”
무시무시한 안광을 내뿜는 두 눈과 시선을 마주친 고일성은 그 자리에서 오줌을 지릴 뻔했다. 노구덕의 흉포함은 처음 맞대면 했을 때부터 알고 있었던 바지만, 지금 떨치는 기세는 과거와는 차원이 달랐다.
이 야수 같은 인간을 평화로운 상수리 부족으로 안내해도 되는 것일까? 순간적으로 이런 의문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으나, 어차피 그에게 다른 선택지는 남아 있지 않았다.
위에서 까라면 깔 수밖에.
엉금엉금 일어선 고일성은 바로 일행을 워프게이트로 안내했다. 거울의 숲, 상수리 부족과 통해 있는 월광 전용의 비밀 워프게이트였다.
그 워프게이트를 이용하면 멀리 떨어진 거울의 숲 내부로 삽시간에 이동할 수 있게 된다. 문제라면…….
채앵!
살벌한 살기를 풀풀 날리는 노구덕이 도무지 기세를 거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누, 누구냐! 신원을 밝혀라!”
워프게이트 입구를 담당하는 상수리의 전사들이 깜짝 놀라 검을 겨누자, 일행의 맨 뒷자리에 구겨져 있던 고일성은 급히 앞으로 나섰다.
“아, 이보게들. 나야, 나. 고일성…….”
“장로에게 안내해라.”
“뭣! 네가 누군데 장로님을… 우아악!”
고일성의 불길한 예감은 금방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잠깐 우람한 손바닥이 스치듯이 눈앞을 지나가나 싶더니, 겁 없이 지껄이던 엘프 전사의 비실비실한 몸이 훌쩍 하늘을 날았다. 쿵! 벽면에 부딪쳐 아래로 떨어진 엘프 전사는 그대로 입에 거품을 물고 기절해버렸다.
“네놈들과 말장난하고 싶지 않다. 다시 말하지 않는다. 장로에게 안내해.”
“어, 어…….”
새파랗게 질린 엘프 전사들은 몸을 바들바들 떨 뿐, 아예 그의 말을 알아듣지도 못한 것 같았다. 그들은 상당히 운이 나쁜 케이스였다. 만약 임유진이나 신소율 같은 여인들이 있었다면 노구덕의 이 난폭한 행동에 제동을 걸고 나섰겠지만, 불행히도 이번에 동행한 데모나, 안세희, 박지현, 이두식은 그런 말을 꺼낼 위치에 있지 않거나, 그럴 마음조차 없는 이들이었다.
“제,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이리 오시죠!”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마을의 지리를 훤히 꿰고 있는 고일성의 존재는 엘프 전사들에게 있어 축복이나 다름없었다.
고일성의 안내를 따라, 패닉에 빠진 엘프 전사들을 무심히 지나친 일행은 머지않아 허겁지겁 집에서 뛰쳐나온 상수리 부족의 장로를 만날 수 있었다.
“이보게, 이게 대체 무슨 사단인가? …허억! 꺽!”
앞에 보이는 고일성을 알아본 장로는 막 호통을 치려다 말고 갑자기 경기를 일으켰다. 뒤에서 불숙 나타난 노구덕의 기세가 숨통을 터뜨릴 기세로 짓쳐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낌새를 눈치 챈 고일성은 황망히 노구덕의 앞을 막아섰다. 이대로 상황을 방치했다가는 정말로 기껏 일궈 놓은 상수리와의 커넥션이 날아갈 것 같았다.
‘아니, 거래선이 끊기는 게 문제가 아니라 마을이 통째로 날아갈지도 몰라!’
“아이고! 제, 제발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이분이 바로 장로님입니다! 일단 자초지종은 들으셔야 할 것 아닙니까!”
그 필사적인 애원이 통한 것일까. 고통스럽게 꺽꺽대던 장로는 무릎을 힘없이 꺾으며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커흐으으…!”
“너희는 남에게 의지하려고 밖에 하지 않지. 그러니까 그런 꼴을 벗어날 수 없는 거다. 동족이 실종되었으면 최소한 먼저 원인을 찾으려는 노력이라도 했어야지. 빌어먹을 것들… 만약 아이들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너희 부족도 가만두진 않겠다.”
부족 전체를 상대로 한 무서운 엄포. 그러나 장로를 비롯한 엘프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만큼 사내에게서 풍기는 기세가 너무나도 공포스러웠던 탓이다. 마치, 그 옛날 거울의 숲을 피로 물들였던 늑대왕이 연상될 정도였다.
“책임 전가는 그쯤 해 둬. 네 말대로 지금은 일초가 아깝잖아.”
“책임 전가라고?”
“잠깐 뒤로 빠져 있어. 너, 지금 좀 이상하니까. 머리나 좀 식혀.”
“…….”
후욱, 숨을 몰아쉰 노구덕은 데모나를 향해 휘휘 손짓을 했다. 뒷일은 알아서 하라는 의미였다.
그를 대신해 앞으로 나선 데모나는 밀가루반죽처럼 얼굴이 허옇게 떠 버린 장로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 애들이 실종된 곳은 짐작하고 있겠지? 길눈이 밝은 가이드를 하나 붙여줘. 뒷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아… 알겠습니다….”
그래도 연륜을 엉뚱한 곳으로 먹은 것은 아닌 것인지, 장로는 대화가 오가는 사이에 노구덕과 일행의 신분을 알아챈 것 같았다. 하긴, 패터슨으로부터 노구덕의 존재에 대해 줄곧 이야기를 들었던 데다, 고일성도 노구덕이 방문할 것이라는 언질을 미리 주었던 만큼, 여기까지 와서 알아차리지 못하는 게 오히려 비정상일 터였다.
여하튼, 상수리 부족에 들러 가이드를 대동한 일행은 일진광풍에 뒤집어진 마을을 뒤로 하고 지체 없이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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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잡이 ‘누바’와 고일성을 앞세워 조사단의 행적을 쫓기 시작한 일행은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르게 첫 번째 소득을 거둘 수 있었다.
조사단보다 앞서 실종되었다던 다섯 사람. 그들의 실종지역을 지도상에 표시한 교집합 부근에서 대규모의 인원이 이동한 흔적을 발견한 것이다.
무수히 많은 발자국과 수레의 바퀴 자국, 오와 열을 이룬 집단의 흔적. 그건 군대가 이동한 흔적이었다.
“어림잡아 일천은 넘어가겠군. 역시 이곳에 숨어 있었나….”
“수, 숲에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다니…….”
담담하게 말하는 노구덕과는 달리 길잡이를 맡은 엘프 전사 누바와 고일성은 굉장히 당황스러운 얼굴들이었다.
아예 숨길 생각도 없는 듯 적나라하게 드러난 군대의 흔적 덕분에, 일행의 수색 작업은 한층 더 가속화되었다. 그리하여 숲 안쪽의 미개척지대로부터 뻗어 나온 흔적을 역으로 추적한 일행은, 숲의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던 군대의 주둔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계단식 밭처럼 산 경사를 따라 위에서부터 아래로 촘촘하게 쳐져 있는 막사의 흔적들을 훑어본 고일성은 더듬거리며 말했다.
“비, 비었습니다. 아마 모두 출진한 게 아닐지… 어디로 갔을까요?”
“남부에 처박혀 있던 놈들이 동부까지 기어 올라왔다면, 필히 그만한 먹잇감이 있기 때문이겠지.”
“예? 남부라니요?”
“알 거 없다. 지금부터 이곳을 수색한다. 철저하게 뒤져라. 털 하나 빠트리지 말고.”
“예!”
“이럇!”
“스캔(Scan)!”
일행은 노구덕에 지시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넓은 외곽지역은 기동력이 뛰어난 박지현이, 안쪽의 세부 지역은 후각과 청각이 예민한 이두식이 맡았고, 북쪽과 남쪽을 도맡은 데모나와 안세희는 각기 탐지 주문을 전개했다.
일행이 수색활동에 전념하는 동안, 노구덕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주둔지를 발견하기 전 보았던 군대의 흔적도 그렇고, 방금 전 고일성이 했던 말도 그렇고 신경 쓰이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분명 하유라와 라키오라를 돕는 조력자가 있다. 문제는 그 조력자가 누구냐는 건데… 설마, 플랑기스인가? 팔콘을 노리고?’
아니다. 그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하유라와 라키오라를 끌어들인다면 결과적으로 파이가 나뉘게 되는 셈인데, 욕심 많은 플랑기스가 그런 짓을 할 리 없지 않은가.
‘아니, 아니지. 플랑기스 그놈이 솔라리스와 리베르타, 이레시온의 원권까지 고려했다면 충분히 말이 돼. 하유라와 라키오라라면 적어도 한 쪽은 막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이것도 좀 부자연스러운데….’
“형님! 뭔가 찾은 것 같습니다!”
노구덕을 일깨운 것은 진영 한복판을 뒤지던 이두식의 우렁찬 목소리였다. 잠시 궁리를 멈춘 노구덕은 얼른 이두식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토굴(土窟)입니다. 아무래도 이 안에 갇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두식이 발견한 것은 위에 어설픈 나무뚜껑이 달려 있는 토굴이었다. 어설픈 입구와는 다르게, 그 안쪽은 석실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깊게 파여 있었다.
그런 토굴이 대략 서른 개. 어느 토굴에서는 엘프의 것으로 추정되는 뼛조각과 혈흔이 발견되었다. 이두식의 말대로, 이 토굴은 누군가를 가두기 위한 용도로 쓰인 것 같았다.
“주둔지의 위치를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이곳에 사람을 잡아 가뒀던 게로군. 일련의 실종 사건들은 역시 이놈들 짓이었어.”
“레이나는? 그 녀석 냄새가 느껴져?”
“레이나는 잘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패터슨의 냄새가 진하게 납니다.”
이두식은 토굴 중에서 가장 큰 토굴을 가리켰다. 참호처럼 만들어진 다른 토굴과는 달리, 그 토굴은 내부에 따로 쇠창살까지 설치된 감옥이었다.
“죽지는… 않았겠지?”
“예. 안에 핏자국이 많이 남아 있긴 해도, 죽을 정도의 출혈량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군대가 움직일 때 같이 끌려간 것 같습니다.”
“그나마 다행이군.”
노구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안심하긴 일렀지만, 일단 최악의 경우는 면했다. 패터슨의 정체를 눈치 챘든, 혹은 그가 어떤 식으로든 교섭을 했든지 간에 그들을 끌고 갔다는 건 최소한 어떤 ‘쓸모’가 있어서라는 의미일 테니까. 당장 쉽게 죽이진 않는다는 보증인 셈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놈들을 쫓아가야 하겠는데. 음, 그보다….”
뒤돌아 선 노구덕의 눈매가 못마땅하게 쭉 찢어졌다.
“구경 다 했으면 슬슬 기어 나와라. 이 고얀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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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Ghozt, ofri 님. 지도의 동서 방향이 뒤바뀐 문제 수정하였습니다. 자칫하면 치명적인 오류를 그냥 넘길뻔했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지도는 그냥 참고 삼아 봐주시길 바랍니다. 제 솜씨가 조악한 탓도 있지만, 굳이 지도를 공들여 그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쓰면서 간간이 참고하는 정도니까요. 노트 꺼내보기 귀찮아서 그냥 기억에 의존해 그리다보니 오류가 나긴 했습니다만…
내일은 연참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계속 구더기 턴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즐거운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