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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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물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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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님!”
정면에서 거대한 황색 벽이 나타났다. 수많은 모래알갱이를 단단하게 굳혀 만든 벽은 그 경도가 금강석에 버금간다고 알려져 있다. 샌드스토퍼(Sand stopper) 바우챠의 작품이었다.
“크우우우웁!”
김상목의 가슴께가 크게 부풀고, 그 목에서 답답한 기합성이 토해졌다. 일자로 내리그어진 롱소드에서 뻗어나간 빛줄기는 부대의 앞을 가로막은 토벽을 산산이 무너뜨렸다.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라! 절대 머뭇거리지 마라!”
“오오오오오옷–!”
지칠 대로 지친 병사들은 목청을 쥐어짜며 그의 외침에 부응했다. 그들은 정말 젖 먹던 힘까지 모두 쥐어 짜내며 맹목적으로 김상목의 등을 쫓았다.
선두에서 길을 뚫는 김상목의 표정은 어두웠다. 병사들의 상태가 대부분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을 체감한 탓이다. 로열나이트의 전투명령(War-command)은 아군의 체력과 사기를 북돋우고, 지친 신체에 활기를 불어넣는 효과가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 사제들의 신성 주문처럼 소모된 체력을 지속적으로 보충해주지는 못한다.
“이 비열한 놈들… 조용진! 아리엔의 상태는?”
“아직… 주문을 쓸 정도는 아닙니다. 정신도 돌아오지 않았고요.”
그의 옆에는 트릭스터 조용진이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그의 등에는 백색의 로브를 걸친 여마법사, 크리스탈메이지 아리엔이 업혀 있었는데, 그녀는 열병에 시달리는 환자처럼 창백한 낯빛에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독(毒)이다. 하태경이 준비한 용혈독의 마수가 천 리는 넘게 떨어진 이곳 구원군에게까지 뻗쳐 있었다.
이번 팔콘 원정에 참가한 리베르타의 정예 간부들은 모두 다섯. 그중에서도 대장인 김상목과 부관 조용진을 제외한 세 명이 중독 증상을 보였고, 그 중 두 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독에 중독되어 죽은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전력에 큰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시간벌이를 자청하여 산화한 것이다. 그들을 죽인 것은 지금 바짝 뒤를 쫓고 있는 솔라리스의 부대였다.
“으하하하! 김상목, 꽁지 빠지게 도망가느라 바쁘구나!”
“다르곤…!”
김상목의 눈에서 번쩍 불똥이 튀었다. 마음 같아선 말머리를 돌려 뒤에서 느긋하게 따라오는 다르곤과 일전을 결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는 게 한이었다.
천오백을 헤아리던 리베르타의 구원군은 현재 절반이 넘는 수로 줄어 있었다. 주요 간부 절반이 독에 당해 무력화된 데다, 퇴각을 거듭하면서 계속해서 후미가 끊어 먹혔기 때문이었다.
이제 남은 병사의 수는 팔백 남짓. 그에 반해 솔라리스의 추격대는 겨우 이, 삼백 정도가 죽거나 다쳤을 뿐이다. 로열나이트 김상목의 일생에 있어, 단연코 가장 치욕적인 참패였다.
만약 그가 남은 팔백 명의 목숨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총대장이 아니었다면, 목숨을 버릴 각오로 적들의 발목을 붙잡으며 늘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래서는 안된다. 그런 감정적인 반드시 전멸로 이어질 터였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조금만…!”
그가 이를 악물고 길을 여는 동안에도, 적들의 공세는 더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인시너레이트(Incinerate)!”
“파이어스톰(Fire storm)!”
골든샤드 에단의 지휘 아래, 적들의 마법사단이 일제히 후미에 포격을 가했다.
“프로스트 월(Frost wall)!”
“워터실드(Waster shield)… 크아아악!”
리베르타의 마법사단도 넋 놓고 당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적들의 주문이 날아오기 무섭게 얼음의 장벽과 물의 방패가 공격을 막아냈으나, 그것만으로는 역부족. 사방에서 피해가 속출했다. 애초에 남아 있는 전력의 차이가 큰데다, 크리스탈메이지 아리엔이 기절한 상태에서 에단의 주문을 막아낼 마법사가 존재하지 않았던 탓이다.
“죽여라! 모두 죽여버려!”
그리고 그 틈을 비집고 남부의 악귀들이 파고든다. 칙칙한 검은 망토를 두른 살귀들은 조금이라도 뒤처지는 자들을 가차 없이 잘라냈다. 목이나 팔에 사슬 올가미를 던져 뒤로 끌어내고는, 칼과 낫으로 사지를 난도질한다. 그들이 지나가는 자리엔 어김없이 처참하게 죽어 나자빠진 시체조각들이 굴러다녔다.
솔라리스의 악명 높은 살귀부대, 블러드시커(Bloodseeker)다. 그들을 이끄는 자는 선두에 선 저 검은 가면의 악마, 베인섀도우(Bane shadow) 보리아스였다.
크리스탈메이지 아리엔과 골든샤드 에단이 서로 대립되는 구도라면, 베인섀도우 보리아스는 트릭스터 조용진과 대치되는 인물이라 할 수 있었다.
“보리아스! 저, 저놈이…!”
“조용진, 참아라. 네가 할 일은 따로 있어. 아리엔은 내게 맡기고 먼저 가라. 어서!”
“으으…! 알겠습니다!”
분루를 집어삼킨 조용진은 업고 있던 아리엔을 옆에서 내달리는 김상목에게 넘긴 뒤, 앞을 향해 섬전과도 같은 속도로 내달렸다.
“샌드 핸즈(Sand hands)!”
그냥 보내줄 수는 없다는 듯, 조용진의 앞에 수많은 모래의 손이 나타났다. 샌드스토퍼 바우챠가 만들어낸 모래의 손길들은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나며 순식간에 조용진의 주위를 에워쌌다.
그러나 조용진은 빨라도 너무 빨랐다. 물 찬 제비처럼 달려나간 조용진은 모래의 포위망이 완성되기 직전, 바늘구멍 같은 틈새를 찾아 그 사이로 쏙 빠져나가버렸다.
조용진이 가까스로 몸을 내빼고 얼마 뒤, 전방의 숲 속에서 거대한 빛의 기둥이 치솟았다. 급히 본국에 복귀할 때를 대비해 설치해 두었던 간이 워프게이트가 발동한 것이다. 앞서 달려 나간 조용진의 공적이었다.
하늘에 휘황한 빛의 입자를 뿌리고 있는 기둥을 본 김상목은 재차 지친 부대원들을 독려했다. 저 빛의 기둥을 본 것은 아군만이 아닐 터, 이제부터는 정말 시간싸움이었다.
“모두들!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만 더 힘을 내라!”
“김상목! 어딜 도망치나! 순순히 보내줄 것 같으냐!”
아니나 다를까, 저 후방에서 다르곤의 광포한 외침이 들려왔다. 동시에 몇 번인지도 모를 마법 폭격이 후방을 뒤덮었다. 매캐하게 살 타는 냄새와 함께 처절한 절규가 울려 퍼졌다.
병사들의 얼굴에 공포심이 어린 것을 본 김상목은 이를 악물었다. 저 다르곤은 일부러 사냥을 하고 있었다. 겁에 질린 토끼를 몰 듯이, 리베르타의 병사들을 후방에서부터 야금야금 잡아먹고 있었다.
난폭한 짐승의 탈을 쓴 교활한 여우. 그게 다르곤이란 사내였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부대의 앞을 막아설 수 있겠지만, 구태여 그런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것도 궁지에 몰린 김상목이 물불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일 터. 요컨대,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무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었다.
‘다르곤! 이놈! 언제까지 네 뜻대로 놀아나진 않겠다!’
이렇게 유린만 당하다간 퇴각의 의미가 없어진다. 천오백에서 겨우 백 명이 살아가봤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적어도 여기서 더 병사들이 죽어나가게 둘 순 없었다.
“너희들은 이대로 쭉 달려라! 무슨 일이 있어도 워프게이트를 통과해!”
“예? 대, 대장님께선…!”
“난 신경 쓰지 말고! 어서 갓!”
부하들을 앞으로 보내고, 말머리를 정반대로 돌린 김상목은 우렁찬 포효를 터뜨렸다.
“이노옴드으으을—!”
신이 나서 후미의 병사들을 학살하던 살귀들이 흠칫 몸을 떨었다. 죽음을 각오한 김상목의 기세는 일개 부대원에 불과한 그들이 받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나마 그의 호령에 얼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의 지휘관인 베인섀도우 한 사람이었다.
핏빛의 동공을 번뜩인 베인섀도우는 기름진 핏물로 범벅이 된 단검을 날름 핥아먹었다.
“로열나이트…!”
음울하게 중얼거린 그의 모습이 일순간 흐릿해졌다. 그의 거뭇한 형체가 다시 나타난 곳은 김상목의 바로 뒤, 그의 그림자 안이었다. 김상목의 그림자에서 불쑥 상체를 뽑아낸 베인섀도우는 그의 아킬레스건을 향해 섬뜩하게 날이 선 단도를 휘둘렀다.
“조무래기가!”
콰앙!
그러나 그 기습을 미리 눈치챈 김상목은 강하게 발을 굴러 단도를 튕겨냈다. 그리곤, 주변의 성력을 폭발시켜 베인섀도우의 몸을 저 멀리 날려버렸다.
엉겨 붙은 그림자를 떨쳐낸 김상목은 부릅뜬 눈을 부라리며 롱소드를 땅에 박았다. 그러자 그 주변으로 거대한 연푸른빛의 장막이 드리워졌다. 성검 홀리렉스(Holyrex)가 발현하는 권능, 스카이라인(Skyline)이었다.
쿠구구궁! 콰쾅!
도주하는 리베르타의 병력들을 마지막 한 사람까지 내보낸 뒤 세워진 하늘빛 장막은 연달아 터지는 폭격에도 끄떡 없이 견뎌냈다. 심지어 대마도사 수준에 이른 에단과 바우챠의 주문마저 그 철벽을 뚫어낼 순 없었다.
스카이라인은 홀리렉스에 내장된 신성력을 모두 소모하는 대신, 주인의 뜻에 반하는 모든 것을 통과시키지 않는 철의 장벽이다. 한번 사용하고 나면 충전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그 무엇보다 믿음직한 카드였다.
그 지고의 장벽 가운데 위풍당당하게 버티고 선 김상목은 예비로 차고 있던 두 번째 검을 뽑아들었다.
“다르곤! 이 여우 같은 놈! 네놈한테는 사자라는 이름조차 아깝다! 너도 사내라면 비열하게 뒤에만 숨어 있지 말고 앞으로 나서라!”
김상목의 도발에, 대열의 중간에 있던 다르곤의 낯짝이 험하게 일그러졌다.
“김상목, 이 새끼가…!”
“대장, 굳이 받아줄 필요 없소. 어차피 저건 그리 오래 지속되는 주문도 아니잖소.”
“나도 안다. 하지만 저렇게 죽고 싶다고 설치는데, 받아주지 않으면 예의가 아니지.”
“끄응…….”
다르곤은 못마땅한 듯이 얼굴을 찌푸리는 바우챠를 보며 입꼬리를 히죽거렸다.
“내가 같잖은 발악에 당할 사람으로 보이나? 걱정 마라. 적당히 놀아줄 뿐이니까…. 놈의 힘을 빼면 저 보호막도 그만큼 빨리 사라질 거다. 보호막이 사라지면, 전부 놈에게 달려들어라.”
“일대일인데도 말입니까?”
“그런 건 상관없어. 죽이고 빼앗으면 그만이지.”
교활하게 대꾸한 다르곤은 검끝을 땅에 질질 끌며 앞으로 나섰다.
“덤벼라, 김상목. 오늘 네놈을 죽이고 홀리렉스의 새 주인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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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엑!”
얼음창에 꿰뚫린 사내의 몸이 부들부들 경련을 일으키다가 금방 축 늘어졌다.
사내를 끝장낸 윤희지의 시선이 잠시 lv로 물든 명찰에 머물렀다.
두루마리처럼 둘둘 말린 서류와 교차하는 깃펜 문양. 전쟁, 전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그 고상한 문양은 리베르타 행정부 소속을 뜻하는 상징물이었다.
“…보셨겠죠?”
윤희지의 뒤에 바짝 굳어 있던 사내들은 퍼뜩 정신을 수습했다. 도저히 믿기지 않았지만, 방금 전 저 사내가 윤희지를 칼로 찌르려고 했던 장면을 똑똑히 목격한 터다. 이제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정말로 행정부가 배신했을 줄이야… 그렇다면 플랑기스도…?”
“네. 행정총감 하태경. 그 인간이 투르를 끌어들였어요. 그리고 보급품에 독을 타 간부들을 무력화시킨 거죠.”
“대체 왜….”
“뻔하잖아요? 검왕의 치하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거죠. 설마 이런 식으로 비열하게 뒤통수를 칠 줄은 몰랐지만.”
뿌드득! 곱디 고운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살벌하게 이를 갈아붙인 윤희지는 다시 사내들을 돌아보았다.
“한시가 급해요. 어찌어찌 부르군트 쪽은 막아냈지만, 확실하게 끝장내지는 못했으니 조만간 또 놈이 다시 올지 모르죠. 하얀 악마와 교전을 벌이고 있다는 군무부 쪽도 현재 소식이 끊어졌고요.”
간부들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검왕이 자리를 비운 지금, 리베르타의 최고 명령권자는 그녀였다. 서열상 2인자인 하태경이 있긴 하지만, 그가 반란에 연루되었다는 증거가 명명백백하게 드러난 마당이니 자연스럽게 제외.
“그러면 행정총감을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요. 작정하고 일을 벌였으니 쉽게 잡힐 리 없죠. 지금은 워프게이트를 최우선으로 확보해야 해요. 그래야 외부로부터의 원군을… 잠시, 잠시만요. 네, 감찰부장님. 윤희지예요. …네?”
수정을 볼 가까이 가져다 댄 윤희지의 낯빛이 빠르게 굳어졌다 풀어졌다. 잠시 후, 감찰부와의 통신을 종료한 그녀는 어리둥절한 간부들을 앞에 두고 의미모를 미소를 머금었다.
“…궁하면 통한다더니. 꼭 죽으라는 법은 없군요.”
“그게 무슨….”
“어쩌면, 강력한 지원군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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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좋은 밤입니다. 낮에는 찔듯이 덥더니, 밤에는 찬바람이 꽤.. 일교차가 큰만큼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며칠 텀 두고 간만에 연참 했네요. 금요일이라 조금 힘들긴 했습니다만 조금씩 쌓아둔 게 있어서 다행입니다. 내일도 할 수 있을런지..
이번 파트는 이래저래 꼬이는 일들이 많을 것 같아요. 슬슬 한번에 꽝! 터질 때가 머지 않았으니 조금만 기다려주시길.
항상 감사합니다. 독자님들. 고요한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