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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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광기(狂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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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게 찢기고 조각나 어육이 되어버린 무더기가 보인다.
워낙 심하게 난도질당해 본래의 형상을 알아볼 순 없지만, 삐져나온 손가락 마디나 덩어리지게 엉킨 머리카락 등을 보면, 저 무더기가 한때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검붉은 핏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옷조각을 보면 보다 더 자세한 추론이 가능하다. 땟국이 묻고 핏물에 잠겨 본래의 색을 잃어버린 천조각엔 북부에서나 볼 법한 고풍스런 무늬가 새겨져 있다. 금색 수실로 새겨진 무늬는 얼핏 봐선 용의 일부분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저 옷은 아마도 북부의 유력자들이 흔히 입는다는 용포(龍袍)일 터였다.
몸서리쳐질 정도로 참혹하게 다져진 시체는 흑옥(黑玉)으로 만들어진 욕조 안에 그득히 담겨 있었다. 육신을 마구잡이로 찢어놓은 것에 비하면, 의외로 얌전히 포장을 해 둔 셈이다. 시체를 저런 꼴로 만들어 놓았으면 사방으로 피가 튈 법도 한데, 욕조 주변은 오히려 부자연스러울 만큼 깨끗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욕조는 그릇. 시체는 음식. 마치 하나의 완성된 요리를 보는 듯하다.
그 안에는 고요히 눈을 감은 한 여인이 다소곳하게 몸을 담그고 있다. 수북한 핏물에 목 언저리까지 잠긴 여인의 얼굴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섬뜩했다.
얼굴만을 드러낸 그녀의 외모는 더없이 아름답다. 그린 듯한 콧날을 중심으로 적당한 너비를 두고 벌어진 양 미간의 비율이 매우 이상적이다. 눈을 꾹 감고 있어도 쉬이 찾아볼 수 없는 미녀다. 머리 양 옆에 길쭉하게 솟은 귀는 그녀가 미(美)의 상징인 엘프족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래서 더 위화감이 생긴다. 혈육(血肉) 속에 몸을 담그고 있는 엘프라니. 육식을 하는 토끼를 보는 것만큼이나 어울리지 않는 장면이다.
이상한 점은 그뿐만이 아니다.
재를 덮어쓴 듯 옅은 회색 피부를 지닌 그녀의 얼굴엔 생기가 없었다. 산 자라면 응당 가지고 있어야 할 싱그러움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숨을 쉬지 않는다. 핏물 가득한 욕조에 잠겨 있는 그녀에게선 작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그녀는 망자(亡者)다. 역사적으로는 벌써 수 년 전에 죽은 인물이고, 자연의 섭리대로라면 오래전에 이미 흙으로 돌아갔어야 할 몸이다.
그녀는 클라리스. 죽은 자들의 여왕이자, 마녀 데모나의 손에서 탄생한 최고의 역작이었다.
잠잠하게 누워 있는 클라리스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노구덕은 지나가듯이 말했다.
“한번 물어보고 싶군.”
“…….”
“원수를 저렇게 찢어죽이면 어떤 기분일까? 달콤할까? 시원할까? 아니면 허무한가? 얼굴만 봐선 도통 모르겠어. 시체라서 그런지 표정이 영 밋밋하단 말이지.”
“…….”
“무슨 말이라도 좀 하지 그래? 동료가 저런 꼴이 되었는데 아무런 생각이 없나?”
여전히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 대신 들려오는 것은, 끊어지기 직전의 실처럼 불규칙한 숨소리가 전부.
비스듬히 고개를 돌린 노구덕은 혀를 찼다.
“이런. 너무 힘을 줬나…. 세희야, 치료해라.”
“…네.”
뒤에 시립해 있던 안세희는 얼른 달려가, 그 앞의 피투성이 여인에게 치유 주문을 시전했다.
조그만 손에서 뿜어진 진홍색 빛무리가 처참한 몰골을 한 여인의 육체에 스며든다. 그러자 끊어질 듯 가느다랗던 숨소리가 점차 규칙적으로 변하고, 맥없이 닫혀 있던 눈꺼풀이 미약한 떨림을 보였다.
그러나 상태가 완전히 호전된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치유 주문으로 재생하기엔 그녀의 상태가 너무 심각했다.
얼굴, 몸통, 팔과 다리… 어디 하나 콕 집어서 얘기할 수 없을 만큼 형편없이 망가져 있었지만, 역시 가장 눈에 들어오는 부위는 얼굴이다.
서리여왕 하유라. 한때 대륙에서 가장 강한 철의 여인으로, 세계 최고의 미녀로 칭송받았던 그 고귀한 여인의 얼굴이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만큼 엉망이 되어 있었다.
오리처럼 부어터진 입술 사이로 내보이는 이빨은 군데군데 빠지거나 부러져 있었으며, 비단결 같은 풍성한 은발은 듬성듬성 모근째로 뜯겨나간 게 여러 곳이다. 반듯한 얼굴선을 이루었던 광대는 한쪽이 허물어졌고, 마늘쪽처럼 오뚝했던 코는 쇠공에 정통으로 맞았는지 콧대가 통째로 함몰되어 움푹 들어가 있다.
흡사 사람의 얼굴을 반죽으로 삼아 사정없이 떡메질을 한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이건 인간의 얼굴이 아니라 숫제 떡판이나 다름없었다. 눈이라 짐작되는 부위에서 힘없이 깜박이는 눈꺼풀이 아니었다면, 아마 얼굴이라 인지하기도 힘들었으리라.
지독한 꼴을 하고 있는 그녀의 목엔 굵은 개목걸이가 채워져 있었다. 목걸이에서 이어진 줄의 끄트머리는 노구덕의 손에 붙들린 채다.
“세희야, 괜히 힘 쓸 필요 없다. 그냥 숨만 붙여 놓으면 돼. 쉽게 죽을 년이 아니니까.”
“네, 네!”
하유라를 치료하던 안세희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더듬거리며 답하는 그녀의 얼굴은 진한 두려움으로 물들어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뒤에서 스산한 눈빛을 보내고 있는 노구덕에 대한 두려움이다.
‘끄으으… 너, 너는 클라리스? 어떻게… 자, 잠깐! 무슨 짓을… 어, 어엇… 우와아아아아아아악—!’
숨이 끊어지던 라키오라의 처절한 단말마가 계속해서 귓속을 맴돌았다.
데모나가 소환한 클라리스. 그녀가 옴짝달싹 못 하는 라키오라의 몸뚱이를 맨 손으로 쫙쫙 찢어발기는 장면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건 살면서 볼 꼴 못 볼 꼴 다 봤다고 자부하는 안세희조차 덜컥 겁에 질릴 정도로 끔찍스러운 광경이었다.
기이한 것은, 당장이라도 눈을 돌리고 싶은 마음과는 정반대로 반응하는 자신의 몸이었다.
연거푸 헛구역질을 하는 입과는 달리, 살육을 벌이는 클라리스에게 고정된 눈은 한 번도 깜박이지 않은 채 고스란히 그 참경(慘景)을 만끽했다. 뿐만 아니라, 흠뻑 터져 나오는 피 냄새가 가랑이를 배배 꼬이게 만들었다.
안세희는 그런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가 되지 않는 선을 떠나서 스스로가 혐오스러울 지경이다. 그런 살풍경을 보고 속옷을 적시다니. 이게 미친년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턱.
“히익!”
한창 자기혐오에 빠져 있던 안세희는, 어깨에 와 닿는 가칠한 감촉에 새된 비명을 지르며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어느새 그녀의 뒤로 다가온 노구덕은 뒤로 나자빠진 안세희를 번쩍 일으켜 세웠다.
“피곤하면 이만 나가도 된다.”
“괘, 괜찮습니다!”
“그래? 일단은 저기 앉아 있어라. 불편하면 정화주문으로 환기 좀 시키든가.”
“네에….”
노구덕은 머리를 푹 숙이고 물러나는 안세희의 뒷모습을 힐끔 곁눈질했다. 펑퍼짐하고 얇은 사제복 속에서 아른거리는 잘록한 여인의 윤곽이 시선을 빼앗는다. 그녀가 지나간 자리에 남은 싱싱한 젊은 암컷의 냄새가 콧구멍을 근질거리게 만들었다.
‘그 어렸던 애가 언제 저렇게 커서… 제길, 제기랄!’
철썩! 노구덕은 손바닥으로 양 볼을 세게 후려쳤다. 거의 십 년 가까이 딸처럼 키워온 아이한테 욕정을 하다니… 부작용이 점점 중증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의, 의장님?”
깜짝 놀란 안세희가 뒤돌아보며 다가오려 하자, 노구덕은 급히 손을 들어 그녀를 제지했다.
“괜찮다. 괜찮으니까 가능하면 잠깐 좀 멀리 떨어져 있어라.”
“아…알겠습니다.”
노구덕의 심각한 얼굴을 본 안세희는 영문을 몰라 하면서도 순순히 뒤로 물러났다. 그녀를 멀찍이 내보낸 노구덕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둡고 침침한 방. 핏물로 가득 점철된 벽. 고문을 당하고 있는 여인. 머릿속에 가득 들어찬 음흉한 충동들. 이렇게 보니 지독한 악당이 따로 없다.
문득, 하유라와 반대편 철창에 갇혀 있는 남자가 눈에 띈다.
투르의 실종된 국왕, 스펠브레이커 플랑기스. 그의 처지는 어찌 보면 엉망으로 깨진 하유라보다 더욱 심각했다.
그는 마치 미이라 같은 몰골을 하고 있었다. 단단한 근육으로 뒤덮여 있어야 할 팔다리가 백세 노인의 그것처럼 바짝 쪼그라들었다. 꼭 속에 있는 체액이 한 톨도 남지 않고 모조리 빨려나간 것 같은 모습. 노구덕이 발휘한 ‘흡수의 권능’에 당한 흔적이었다.
건장한 몸뚱이에 다 비틀어진 노인의 팔다리가 끼워진 것 같은 비참한 꼬락서니다. 그의 옆에는 데모나가 뿌린 씨앗에서 자라난 작은 나무가 세워져 있었는데, 징그럽게도 나무에서 뻗친 수십 개의 줄기 다발이 그의 몸뚱이에 바늘처럼 꽂혀 있었다. 겉보기엔 좀 그래도, 저 나무는 플랑기스의 숨이 끊어지지 않도록 영양분을 공급해주는 장치였다.
가사 상태에 빠진 플랑기스는 이제 자기 의지로 죽음을 택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아마도 노구덕이 그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한, 평생을 이런 꼴로 살아야 할 터.
“플랑기스, 저놈은 그래도 쓸모가 있었지.”
무심히 중얼거린 노구덕은 장난치듯이 손바닥을 쥐락펴락했다. 그러자, 그의 손아귀를 중심으로 선홍색의 장막이 생겨난다.
어떤 주문이라도 거뜬히 막아낼 수 있다는 플랑기스의 간판기술, 스펠실드(Spell shield).
빛깔이 다르긴 해도, 그건 틀림없는 플랑기스의 스펠실드였다.
“실전에서 쓰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저놈이 당장 죽을 것도 아니니. 뭐, 상관없겠지.”
사막처럼 메마른 표정이 어긋나면서, 뒤틀린 웃음이 내걸린다.
노구덕은 플랑기스에게 강제로 세례를 행했다. 애초에 하유라나 라키오라보다 훨씬 못한 정신력의 소유자였던 플랑기스는 거듭된 고문과 현혹 주문을 견디지 못하고 굴복했고, 그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벌레교단의 일원이 되었다. 진작 세례를 행한 아가레스트를 포함하면, 그에게 예속된 두 번째 십존급 강자였다.
플랑기스에게 행해진 세례는 대상자를 꼭두각시로 만드는 복종의 세례다. 그의 영혼을 저당 잡은 노구덕은 심령차력술을 이용해 플랑기스의 능력을 빼앗았다.
방금 펼쳐 보인 스펠실드는 바로 그 지독한 과정의 산물이었다.
“네년의 능력도 가져올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하는 게 아쉬워.”
걸레짝처럼 늘어진 하유라를 바라보는 노구덕의 눈빛에 얼핏 아쉬운 기색이 스친다.
심령차력술은 굉장히 유용한 주술이지만, 결코 만능은 아니다. 대상을 복종시켰다 하더라도, 그에게 처음부터 능력을 행할 기반이 없다면, 해당 능력을 빌려오기란 불가능했다.
예컨대 그가 임유진의 에버플래쉬를 쓸 수 있는 것은 충왕각인을 바탕으로 한 무지막지한 신체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데모나의 베일 오브 다크니스를 쓸 수 있는 것도 기본적으로 Lv5의 주술 재능이 있는 덕분이었다. 플랑기스의 스펠실드를 쓸 수 있는 것 역시, 스펠실드가 마력(혹은 영력)에 근간을 두고 있는 기술이어서다.
그가 심령차력술의 세세한 제한을 알게 된 것은 아가레스트에게 세례를 행한 직후였다. 아가레스트의 천리안과 텔레포트는 주문도 뭣도 아닌 선천적인 능력. 기본적으로 해당 재능이 없으면 쓸 수 없는 능력이다. 그렇기에 심령차력술로도 그녀의 능력을 빌려올 수 없었다.
하유라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힘의 근간은 만능이라는 재능 그 자체. 심령차력술로 빼앗아 올 수 있는 성질의 힘이 아니었다.
“쓸모없는 암캐 같으니.”
“윽…!”
그가 손에 힘을 주자, 하유라의 목걸이와 이어진 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면서 그녀의 몸이 휙 앞으로 기울어졌다.
어렴풋이 드러난 허연 목덜미 위로 붉은 줄자국이 선명하다.
바닥에 처박힌 얼굴을 들어 노구덕을 노려보는 하유라의 눈빛은 여전히 시퍼런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지독한 독종. 뼛속 깊은 곳까지 새겨진 그녀의 자존감은 브리트라의 환상 주문으로도 깨뜨릴 수 없었다. 혹시, 만능이라는 재능은 Lv5의 정신력까지 포함하고 있는 게 아닐까하는 의심이 생길 정도다.
“눈깔에 힘이 들어간 건 여전하군.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년이 이런 재미라도 없으면 안되니까.”
솥뚜껑만 한 손이 위로 올라가자 독살스런 눈빛을 보내는 하유라의 몸이 움찔거린다. 하유라 본인의 의지라기보다는, 며칠 동아 체감한 고통에 육체가 절로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노구덕에게 따귀를 맞을 때마다 이빨이 나가고, 광대가 내려앉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 작품 후기 ============================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오늘은 시간이 없는 관계로 한 편만 업로드 하겠습니다.. ㅠㅠ
내일은 일요일입니다. 만약 개인적인 볼일이 생긴다면 휴식을 취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따로 공지는 하지 않겠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래도! 이번주 나름대로 열심히 2연참 이어갔으니까, 그 정도는 이해해 주시겠죠? 하하.. 저번에도 하루 쉬려다가 그냥 한편을 올렸었는데요. 내일도 하루가 따분하다면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일요일 남는 시간에 소제목 나누기를 해야겠네요.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분량이 굉장히 많이 쌓였습니다. 이젠 정말! 할 때가 된 것 같아요!
그럼 즐거운 주말 되시길 바라며.. 작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연참 이어간 기념으로 추코 박아주시면 감사히 받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