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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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여우와 호랑이
금적금왕(擒賊擒王)이란 말이 있다.
적을 잡으려면 우선 적의 왕을 잡으라는 말이다.
오정환이 꺼낸 계획이란 바로 이것이었다. 즉, 도미니온 수뇌부의 암살.
“군왕 체스터, 파멸의 현자 유메르바인. 둘 중 아무나 걸려도 상관없지. 둘 다 걸리면 더욱 좋고.”
“아다만티움 광산으로 놈들을 유인하자는 건가?”
“바로 그거요.”
도미니온, 서부연맹, 레그나토르. 세 세력 모두가 암암리에 전쟁을 대비하고 있는 상황이라지만, 실제로 무력사태가 불거진 것은 아니다. 폭풍전의 고요라 할지라도, 어쨌든 평화는 평화.
그런 상황에서 아다만티움 광산을 대상으로 삼자대면을 제안한다. 도미니온 수뇌부를 불러내기 위한 오정환의 노림수는 바로 이것이었다.
“지극히 합리적인 제안 아니겠소? 마침 문제의 발단이 된 아다만티움 광산은 삼국의 국경에 절묘하게 걸쳐져 있지. 그곳이라면 삼자대면의 장소로 손색없는 중립장소고, 도미니온도 거절할 명분이 없을 거요.”
일단 체스터든 유메르바인이든 불러내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합공을 한다. 도미니온의 정예들이 아무리 막강하다 한들, 한 번에 끌고 올 수 있는 정예의 숫자는 정해져 있을 터. 더욱이 정예 대 정예 간의 질적 비교에선 오히려 서부연맹과 레그나토르 연합이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비열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확실하다. 오정환의 말처럼만 된다면 도미니온이란 용의 머리를 단숨에 베어버릴 수 있다. 이후, 머리를 잃고 방황하는 용을 요리하기란 식은 죽 먹기였다.
“흥미로운 제안이군….”
“노구덕 의장이라면 말이 통할 거라고 생각했소.”
“그런데, 도미니온 측에서 거절한다면 어쩔 생각이신가?”
오정환의 계획은 어디까지나 도미니온이 삼자대면에 동의했을 때에나 성립하는 것. 그들이 협상을 거부하고 광산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노구덕은 그 점을 말하고 있었다.
오정환의 구릿빛 얼굴에 진한 호선이 그려진다. 그는 노구덕이 지적한 맹점에 대해서도 미리 생각해 둔 바가 있는 듯했다.
“그래서 레그나토르의 협력이 필요한 거요. 우리만으로는 도미니온 놈들을 협상 테이블에 끌어들일 수 없으니까.”
묘한 냄새를 풍기는 밑밥을 던져둔 오정환.
그는 곁눈질로 노구덕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살폈다. 임유진, 소피아, 일라이자… 대부분의 안색이 그다지 좋지 않다. 구미가 당긴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노구덕과는 달리, 나머지 사람들은 그가 말한 방식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들어보시오.”
작게 헛웃음을 지은 그는, 이내 그 입 밖으로 짙은 혈향이 묻어나는 계획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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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 후.
서부연맹 수뇌와의 회동에 참여했던 레그나토르의 인물들은 크래들타운의 미리내 농장에 따로 자리를 마련했다.
말하자면 뒤풀이, 소박한 다과회다. 일행이 다과를 즐기는 노천테이블 위에는 무척 커다란 너도밤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오래 전, 임유진이 이곳 농장에 정착할 때부터 손수 가꿔온 나무다.
이 뒤풀이에 참여한 이들은 임유진과 소피아, 소냐, 일라이자, 샤카, 박승찬의 여섯 명. 노구덕과 박지현 등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본래 화기애애해야 할 다과회의 분위기는 차분하다 못해 침울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특히 뒤풀이를 주도해야 할 두 안주인, 임유진과 소피아의 안색은 즐거운 빛 하나 없이 어두침침하기만 했다.
호록. 호로록.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캄캄하게 깔린 침묵 속에서 하릴없이 찻물을 들이키는 소리만 들리는 가운데, 잔물결이 번지는 찻잔 속을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던 소피아가 넌지시 말문을 열었다.
“오정환 맹주의 계획… 저는 주인님께서 받아들이지 않으시길 바랐어요.”
“…….”
좋지 않은 얼굴빛만큼이나 침체한 목소리다. 짙은 그늘에 잠긴 소피아의 낯빛은 오늘따라 유난히 창백해 보였다. 모두는 여전히 적막을 지킨 채, 소피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오정환 맹주는 이중함정을 설치하자고 했죠. 확실히 실리적으로는 그 이상 가는 계책은 없을 거예요.”
오정환이 제시한, 도미니온의 수뇌를 아다만티움 광산으로 끌어내는 방법.
그건 이중함정이었다.
삼자협상에 대해 구체적인 얘기가 나오기 전에, 다시 레그나토르와 도미니온이 만남을 가진다. 그리고 레그나토르는 도미니온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협상 자리에 나온 서부연맹의 수뇌들을 암살하자.’ 라는 제안을.
호전적인 성향을 지닌 도미니온의 특성상, 이 정도로 먹음직한 미끼가 제시된다면 협상에 응해 올 공산이 컸다. 더군다나 도미니온은 서부의 개편을 마무리한 이후 대륙 중부로의 진출을 원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전력을 깎아먹는 전쟁보단 암살이라는 깔끔한 마무리가 훨씬 더 매력적일 터.
하지만 그건 함정이다. 서부연맹의 수뇌를 암살하기 위한 협상은, 오히려 도미니온의 수뇌들을 몰살시키기 위한 덫이다.
요컨대, 레그나토르가 협상 직전까지 철저한 양다리를 걸쳐야만 실행 가능한 작전이었다.
그리고 노구덕은 그 제안에 응했다. 차후 있을 삼자협상에서 서부연맹과 손을 잡고 도미니온의 수뇌부를 척살하기로 합의를 본 것이다.
“…오정환 맹주가 제시한 방법은 저 역시 염두에 두었던 방법이었어요.”
오정환에게 이 정도 계책도 생각해내지 못했느냐고 대놓고 면박을 들었던 소피아다. 그러나 그건 사실과 달랐다. ‘여우’라고 불리며 온갖 암중모략을 두루 섭렵했던 그녀다. 목적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그녀가 그런 수를 염두에 두지 못했을 리 없다.
“단기적으로 보면 매력적인 방법이죠. 만약 주인님께서 이 서부만을 손에 넣길 원하셨다면, 전 앞장서서 그 안을 주장했을 거예요. 오히려 한 술 더 떠서, 그 자리에서 서부연맹과 도미니온의 수뇌들을 한꺼번에 잡아버릴 함정을 팠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전, 그러지 않았어요….”
“…시간을 좀 더 들이더라도, 정공으로 도미니온과 맞서길 바랐어요. 물론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겠죠. 피를 흘릴 수밖에 없어요. 전쟁이란 그런 거니까요…. 이기적이라 욕하셔도 좋아요. 하지만 그건… 대업을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에요. 그리고, 가능한한 최소한의 피해로 도미니온에게 역공을 할 자신도 있었고요.”
대업(大業). 소피아는 대업이란 단어를 입에 담았다. 그녀가 말하는 대업이란 무엇일까.
“과거, 제가 아이리스에 처음 들어왔을 때 주인님께서 입에 담았던 목표는 아이리스를 프라임리그로 올려달라는 것이었어요. 그 뒤엔, 스스로가 연맹위원이 되는 것으로 목표가 바뀌었죠. 그 뒤로도 주인님의 목표치는 계속해서 바뀌었어요. 차근차근 쌓아 올리는 성처럼, 아이리스가, 레그나토르가 성장을 거듭할 때마다 그분의 눈높이도 보다 위를 향했죠.”
“리베르타의 검왕은 처음 헌터가 되었을 때부터 세계의 정상에 서겠다 천명했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실제로 왕도를 걷고 있죠. 비록 이번에 주춤하긴 했지만요.”
“주인님은 그런 분이 아니세요. 그분이 처음 헌터가 되었을 땐, 아무런 재능도 능력도 없는… 그야말로 백지 상태였어요. 스몰 리그의 삼류 헌터만도 못한 사람이 정상이 되고 싶다 선언한들 그 누가 알아줄까요? 실없는 헛소리에 불과하겠죠. 더욱이 주인님께선 검왕 같은 야망조차 없는 분이셨어요.”
애초에, 노구덕은 김정인처럼 이루고 싶은 원대한 야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당면한 벅찬 현실을 헤쳐 나가고자, 그때그때 최선의 대안을 선택해 나가며 발버둥 쳤을 뿐이다.
“…맞아. 그이는, 그런 사람이었어.”
지금 이 자리에서 소피아의 얘기에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임유진일 것이다. 그녀는 신소율과 함께 가장 오랫동안 노구덕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었고, 밑바닥을 기었던 그에게 기꺼이 몸과 마음을 맡기며 헌신했던 여인이었으니.
쥐뿔도 없는 오크 나부랭이가 붉은 봉황이라는 분에 넘치는 여인을 품었을 때부터, 노구덕의 가시밭길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로 인해 박준혁과 소피아와 엮이게 되었으며, 더 나아가 비트레이의 그리드, 그 뒤의 마티아스와 악연을 맺었다. 게다가 데모나 또한 임유진 모녀가 끌어들인 인연인 걸 감안하면, 임유진과의 만남이 모든 일의 단초가 되었다고 봐도 좋을 터다.
험난한 세파 속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모진 노력을 하다 보니 어찌어찌 위로 올라가게 되었다. 적들이 강해질수록, 그 또한 죽을힘을 다해 힘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 죽음의 위험을 감수하고, 카름의 조직을 몸에 억지로 집어넣으면서까지.
가족.
노구덕이 현재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항상 외부의 적에 맞서, 가족들을 보호할 더 큰 울타리를 지어야만 했던 노구덕. 그리고 이제, 그 적은 온 대륙이 되었다.
“어처구니가 없죠. 식구들을 지키려 세를 불리다보니, 오히려 그게 독이 되어버렸어요. 라만 왕국을 보세요.”
소박하게 짓기 시작한 울타리가 커져도 너무 커졌다. 현 시대는 약육강식의 난세. 만에 하나 적에게 얕보여 먹히기라도 한다면, 그 수뇌가 살아남을 수 있을 리 없다. 차후 분란의 씨앗이 될 테니까.
플랑기스에게 잡아먹힌 라만 왕국의 왕족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보더라도… 패자의 말로는 명백했다.
“…죄송해요. 서론이 너무 길었네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주인님께선 적어도 서부, 그 이상을 바라보고 계신다는 거예요. 온 대륙까진 아니더라도,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대한 세력을 원하시죠. 하지만 이런 방법으론… 그 대업을 이룰 수 없어요.”
“명분에서 밀린다는 겁니까?”
일라이자와 눈을 맞춘 소피아는 작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확히 짚으셨어요. 제가 걱정하는 건 그거예요. 서부연맹과 손을 잡고 도미니온을 처리한다고 해도, 그건 도의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비열한 행위죠. 국제적으로 엄청난 비난이 빗발칠 거예요.”
서부연맹이 약은 것은 교묘하게 레그나토르를 방패로 삼았단 점이다. 같은 음모를 작당했다 하더라도 그 역할에 따라 형량이 다르듯, 이 계획에 있어 최대의 악역은 양다리를 걸치고 도미니온의 뒤통수를 친 레그나토르였다.
실제 계획을 입안한 건 서부연맹의 오정환이지만, 그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레그나토르를 주동자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비열한 주동자란 오명을 벗을 길이 없는 데다, 변명의 여지조차 없었다.
“그렇게 말씀하신다고 해도… 일단 도미니온을 처리하면 끝난 일 아니겠습니까? 내외적으로 쏟아지는 비난이야 그 득실을 따진다면 충분히 감수할만하다고 봅니다. 저는 의장님의 결정이 이해가 되는데요.”
샤카의 의견이었다. 하지만 소피아는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도미니온의 영토는 서부연맹과 레그나토르의 국토를 다 합친 것과 비슷한 수준이에요. 설령 도미니온 수뇌를 제거하고 그 영토를 점거한다 해도, 각지에서 일어나는 반발을 무마하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까요? 이레시온과 솔라리스, 북부연합은 과연 가만히 있을까요?”
“음….”
원래 소피아가 구상했던 대로 도미니온이 먼저 군을 일으키게 만들면, 당연히 명분은 이쪽에 있다. 그러나 오정환의 작전대로 도미니온 수뇌부를 암살하면, 그때부터 레그나토르의 행위에는 당위성이 사라지게 된다. 모르긴 몰라도, 도미니온에게 굴복당한 각지의 세력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독립하기 위해 날뛸 것이다.
정도(正道)와 외도(外道)의 차이였다.
“서부연맹이 노리는 건 이 과정에서 어부지리를 취하는 것이겠죠. 제가 그들 입장이라면, 저희 쪽 강압을 이기지 못했다는 핑계를 대면서 반발 세력들을 흡수하려고 할 거예요. 최근 오정환 맹주의 행보를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죠.”
서부연맹의 오정환. 즉, 레전더리 오너는 최근 들어 놀라울 정도의 정치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그간 팽팽했던 포레스티아의 염미정, 두억시니의 드미트리와의 수 싸움에서 완전히 판도를 뒤집어 놓았다. 마치 지난 세월 숨죽이고 있었던 한을 모두 풀어내듯, 정치싸움에서 압승을 거두며 서부연맹의 주도권을 손에 넣었다.
오죽하면 최근의 서부연맹은 삼자체제가 아니라 오정환 개인의 일인독주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으니. 본래 어느 정도의 역량은 지닌 인물이었지만, 환골탈태한 오정환의 능력은 딴 사람이 된 것처럼 대단했다.
그런 인물이니 이런 제안을 할 수 있었던 것일 터. 적어도 소피아가 보기에, 그의 제안은 달콤한 독배(毒杯)였다.
“하지만… 그이는 제안을 받아들였어. 의지도 확고하고. 여기서 우리가 무를 수는 없지 않겠니?”
모든 게 소피아의 예상대로 흘러간다는 보장은 없다. 일이 정말 잘 되어서 별 피해 없이 도미니온을 양분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왜일까. 모두에겐 앞으로의 미래가 정말로 소피아의 예견처럼 될 것 같이 느껴졌다.
“언니 말씀이 옳아요. 그래서 드릴 말씀이….”
“저도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낮게 흘러나오던 소피아의 말이 끊어졌다. 그녀의 말을 끊어먹은 이는 아주 의외의 인물이었다.
모두의 깜짝 놀란 시선을 덤덤히 받아넘긴 소냐는 다소곳이 꿇어앉은 무릎에 손을 올린 채, 작게 목례를 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 전에, 여러분께서 꼭 아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둘러앉은 이들, 특히 임유진과 소피아에게 눈을 고정시킨 소냐는 어렵사리 말을 이었다.
“대부님의 현 상태에 대한 일입니다.”
“의장님의 상태…?”
“대부님의 이상 행동은 온 대륙에 흩어진 신의 조각과 관련이 있습니다.”
신의 조각? 생전 들어보지 못한 단어에 모두의 눈이 크게 뜨여진다. 그리고… 이후 이어진 소냐의 발언은, 고요하게 흐르던 장내의 분위기를 세차게 굽이치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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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금요일은 하루 쉬었습니다. 오늘 일어나보니 벌서 해가 중천에 떠 있더군요… 워낙 바쁜 날이다보니 올릴 짬을 내지 못했네요.. 죄송합니다 ㅠㅠ
흠흠.. 이번 에피소드는 소냐의 활약을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새벽에 한편 더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추코는 언제나 작가의 연재력에 추진력을 달아줍니다. 하하.. 뭐 그렇다고요.
항상 감사합니다! 새벽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