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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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여우와 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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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립스에서 도착한 전갈을 받은 아가레스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미간을 모았다.
“…복귀?”
노구덕이 보낸 전갈 내용은 칼립스로의 즉시 복귀. 이후 전장 투입에 대기하라는 것이었다.
“하아. 뭔가 큰일이 벌어질 것 같은데….”
어떤 단서도 달려있지 않은 간단한 전갈이었지만, 아가레스트의 영활한 두뇌는 금세 그 뒤에 숨겨져 있는 내막을 그려냈다.
아다만티움 광산의 존재가 알려진 이후, 동부 못지않은 긴장 국면에 접어든 서부다. 얼마 전에는 도미니온의 유메르바인이 레그나토르를 방문해 회담을 가졌고, 회담이 끝난 뒤에는 도미니온, 레그나토르, 서부연맹의 수뇌가 참여하는 정상회담이 중립지대에서 열린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런 시기에 자신을 불러들인다? 그것도 언제든지 전장에 투입될 준비를 하고 대기하라는 건….
“회담에서 칼춤이라도 추겠다는 건가요…. 별로 상관없긴 하지만, 이런 과격한 방법을 택할 줄은 몰랐네요.”
노구덕의 그늘 아래 숨어든 후, 벌써 오 년 가까이 그의 명령을 수행해 온 그녀다. 그 경험에 빗대어 볼 때, 이건 노구덕의 방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가레스트가 의문을 품은 것은 바로 그 점이었다.
‘그 사람은 겉으로 보기엔 우직한 과격파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그와 정반대인 인간이야.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염두에 두고, 가장 자신에게 득이 되는 쪽으로 일처리를 하는 사람이지. 그런데 이건….’
만약 정말로 삼자회담이 개최되고, 노구덕이 회담 장소를 피로 물들일 생각이라면, 그건 절대 상책(上策)이 되지 못한다. 기껏해야 중책이나 하책 정도. 최악의 경우엔 내외에서 감당 못할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해되지 않는 점은 하나 더 있다.
‘다른 어떤 안건보다 이 사안을 우선시해라. 패터슨, 마리안, 레이나… 그 불쌍한 녀석들의 혼을 위로해주지 않고선, 난 평생 발을 뻗고 자지 못할 테니.’
칼립스로 복귀하기 전, 리베르타에 남은 그녀에게 노구덕이 지침을 내리며 남긴 말이다.
그리고 겨우 한 달도 되지 않아 그 명령이 철회됐다. 그녀가 알기로, 노구덕이 한번 내린 명령을 번복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것도 그토록 끔찍하게 생각하는 식구들이 관여된 사건을…… 흐응, 광증이 도진 걸지도 모르겠네.’
근래에 노구덕이 보인 흉폭한 일면을 떠올린 아가레스트는 나름대로 현 상황을 납득했다. 어쨌거나 이미 명령은 떨어졌고, 그에게 종속되어 있는 이상 그녀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칼립스로의 복귀. 노구덕이 벌일 피의 향연에 기꺼이 한 손을 보태는 것이다. 비명과 절규로 가득 찬 아수라장 속에서 피보라를 몰고 다닐 생각을 하니,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단, 그 전에 끝내야 할 일이 있기는 했다.
“미안해요. 도중에 급한 연락이 와서. 많이 기다렸나요?”
“끕… 끄끕…!”
비루먹은 당나귀처럼 비쩍 마른 사내가 사지가 결박된 채 몸부림을 치고 있다. 두려운 눈빛으로 아가레스트를 올려다보는 사내의 입엔 흥건히 젖어 있는 재갈이 물려 있었다.
꿇어앉아 있는 중년 사내의 정면, 비어 있는 의자에 엉덩이를 걸친 아가레스트는 마력을 이용해 그의 재갈을 풀어주었다.
“푸흐… 허억, 허억…!”
겨우 기도가 트인 사내는 푸르죽죽하게 변한 안면을 바들거리며 연신 가쁜 숨을 토해냈다. 그런 그의 목에는 굵은 밧줄이 끈끈하게 휘감겨 있었다.
“좀 살 것 같나요?”
“흐으으….”
“대답이 시원치 않네요. 흠… 다시 꾹 조여 볼까요?”
“헉! 아, 안 돼! 제… 제발!”
목에 감긴 밧줄이 다시 팽팽하게 수축할 기미를 보이자, 사색이 된 사내는 무릎을 들썩이며 마구 도리질을 쳤다.
기절하기 직전까지 목이 졸리다, 다시 풀리기를 벌써 열 번이 넘었다. 산소 부족으로 인해 보랏빛으로 변한 얼굴은 둘째 치고, 뇌가 구멍이 숭숭 뚫린 것처럼 멍하다. 무엇보다 참기 어려운 것은 수천 마리의 개미떼가 혈관을 갉아먹는 듯한 고통이었다.
저 악랄한 마녀는 절대 그의 목숨을 끊지 않았다. 그녀의 경이적인 마력 조절 능력은 허공을 격해 그의 숨통을 조이면서도, 절대 데드라인을 넘어가지 않았다. 마치 죽기를 바라는 그의 마음을 꿰뚫고 있는 듯했다.
거듭되는 고문은 사내의 정신을 철저히 붕괴시켰다. 마지막 희망 한 가닥마저 사라져버린 사내는 마침내 그녀에게 항복을 선언했다.
“뭐든지… 뭐든지 말하겠다… 그러니, 이제 그만… 죽여다오…….”
“그건 당신 얘기를 듣고 나서 결정할 일이죠. 부디 절 만족시켜줬으면 좋겠네요.”
그녀의 냉정한 대꾸에 사내의 볼 살이 부들부들 경련을 일으킨다. 아가레스트는 그 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라이언, 당신은 어젯밤 재산을 정리하고 살타를 떠나려 했었죠. 왜죠? 당신은 살타에서 십년이 넘도록 살아온 사람이에요. 안정된 직장도 있죠. 그런데 무엇이 두려워 도망치려고 했나요?”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은 사내의 호흡이 규칙적으로 돌아왔다.
아가레스트에게 붙잡혀 험한 꼴을 겪고 있는 그의 이름은 라이언이다. 살타 치안대에 소속된 베테랑 병사인 그는, 어젯밤 몰래 야반도주를 시도하던 와중 사신을 만나 제압당하고 여기까지 끌려온 불쌍한 사내였다.
“…말하긴 하겠지만, 솔직히 믿진 못할 거다.”
“당신 친구의 실종과 관련이 있겠죠? 친구들이 하나둘 사라져서 불안해진 건가요? 이를테면, 누구에게도 말 못할 비밀을 들었다던가?”
“……!”
라이언의 두 눈이 크게 부릅떠졌다. 아가레스트를 쳐다보는 그의 눈초리는 흡사 귀신을 보는 듯했다.
“그, 그걸 어떻게?”
“뭐든지 숨길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요…. 어디까지나 이건, 심문이 아니라 사실의 확인에 불과하니까요.”
하얗게 웃고 있는 아가레스트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던 라이언은 힘없이 목을 늘어뜨렸다. 늑대를 피하려 도망쳤더니, 재수 없게도 호랑이를 만난 꼴이다. 자포자기한 그는 수척한 목울대를 움직여 그간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그래, 맞아. 막스가 사라진 건 사흘 전이었지.”
“막스. 당신과 마찬가지로 살타 수비대에 속해 있는 베테랑 헌터죠. 한 달 전의 공방전에서도 엘리엇 대장의 본대에 속해, 나름대로 전과를 올리기도 했고요. 그런데 그 이후에는 사람이 확 달라졌죠. 상여금으로 받은 돈을 흥청망청 쓰기 일쑤에, 갑자기 술에 절어 살기 시작하더니, 사흘 전에는 의문의 실종. 아, 물론 흔한 이름이라 동명이인이 많긴 하죠. 하지만 제 생각엔, 당신이 말하는 막스가 분명 이 사람일거라 생각하는데… 아닌가요?”
멍한 낯짝이 된 라이언은 멍청히 머리를 끄덕거렸다.
“…흐, 흐… 정말 죄다 알고 있군. 당신 말대로야. 막스, 그놈은… 자기가 곧 죽을 거라고 했어. 처음엔 술에 취한 나머지 헛소리를 하는 줄 알았지만… 얘기를 듣고 보니 그게 아니더군.”
“어떤 얘기를 들었죠?”
“그전에, 술김에 흘러나온 이야기라는 걸 감안해줬으면 좋겠군….”
“알았어요.”
“…그놈은 엘리엇 대장의 비밀을 알았다고 했어. 그가 전쟁 통에 무고한 민간인을 죽이는 걸 봤다고 했지. 아니, 민간인이라기보다는… 어떤 중요한 인사일거라 추측하던데. 나야 모를 일이지. 어쨌든 내가 전해들은 건 그 정도야.”
그간 두루뭉술하게 짜 맞춘 가정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더욱 짙은 미소를 베어 문 아가레스트는 안달하듯이 라이언을 채근했다.
“목숨을 위협받을 정도의 비밀이라면, 차라리 상부에 보고를 하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요?”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하지만 그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더군.”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막스 그놈… 엘리엇 대장이 죽였다는 그 민간인을… 동료들과 윤간한 모양이야. 애초에 엘리엇 대장이 그들을 죽인 것도 그 사실을 덮어버리기 위해서였고.”
먼저 지은 죄가 있으니, 사실을 털어놓고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다. 게다가 엘리엇이 자기를 죽이려 한다고 떠들고 다닌들, 어느 누가 그런 시답잖은 소리를 믿어주겠는가?
살을 저미는 불안감과 공포를 이기기 위해 매일을 술과 함께 보내던 막스는 사흘 전,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그놈이 마지막이었어. 십중팔구 죽었겠지. 당시 윤간에 동조했던 동료들도 모두 어느 순간 실종되거나 죽임을 당했다더군. 증거는 없어도… 보나마나 엘리엇 대장의 짓일 거야.”
“그래서 당신도 도망치려고 한 거군요?”
“그렇지. 이틀 전에… 미행을 당했거든.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확실히 누가 뒤를 밟는 느낌이었어. 어쨌거나 막스 그놈의 친구라면 나밖에 없으니까… 불똥이 튈 수도 있겠다 싶었지. 그래서 나도 그놈 꼴이 되기 전에 도망치려고 했는데… 이런 신세가 되었군….”
“그건 참 안된 일이군요.”
위로인지, 조롱인지 모를 한마디를 툭 내뱉은 아가레스트는 맥없이 퍼진 라이언의 눈앞에 작은 구슬을 하나 내밀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구슬은 흑요석을 통째로 갈아 만든 듯 영롱한 빛을 띤 물건이었다.
“이게 뭔지 알고 있나요?”
“이건… 막스, 그놈이 가지고 있던 건데….”
“맞아요. 그의 집에서 찾아낸 유류품이죠. 물리적인 힘을 가해도 깨지지 않고, 불에 태우거나 녹일 수도 없어요.”
“…보석인가?”
“보석이라는 말도 틀리진 않네요. 이건 고위 영령이 봉인된 봉인석이니까요. 주로 네크로맨서나 주술사들이 소환의 매개체로 사용하는 구슬이죠.”
몽실몽실한 까만빛을 내뿜는 구슬을 홀린 듯이 바라보던 라이언은 두 눈을 깜박이며 되물었다.
“그런 걸 그놈이 가지고 있었다고…?”
“강간범이 피해자의 물품을 기념 삼아 보관하는 건, 흔히 있는 일이잖아요?”
“그 말은….”
“당신의 역할은 끝났어요. 확인시켜줘서 고마워요.”
“뭐? 이, 이봐…!”
아가레스트는 라이언을 남겨두고 방을 나섰다. 그런 그녀가 향한 곳은 라이언이 갇혀 있는 바로 옆방이었다.
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선 아가레스트의 눈매가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그녀는 침대 위에 망연히 앉아 있는 가냘픈 그림자를 향해 비틀린 웃음을 지어보였다.
“흥미진진하지 않나요? 전말이 모두 밝혀졌어요. 설마 했는데, 불길한 예감은 어김없이 적중하는군요. 그 리베르타의 간부가 이런 패악을 벌이다니… 검왕이 이 사실을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 지 정말 보고 싶어요. 진주 씨, 그렇지 않나요?”
“…….”
여윈 낯빛의 이진주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나마 간헐적으로 새어나오는 앓는 신음성만이 그녀의 참담한 심정을 대변해주고 있을 따름이었다.
“다시 감사드려요. 당신이 엘리엇을 라스바덴으로 소환해 준 덕분에 일이 한결 수월해졌어요. 조금만 늦었으면 저 라이언이란 남자도 건지지 못했을 테고요. 그 사람도 분명 고마워하겠죠.”
움찔 어깨를 떤 이진주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잠시 후, 그녀의 메마른 입술에서 덜덜 떨리는 음성이 밀려나왔다.
“그분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 어떻게 되는 걸까요…?”
“그야 저도 모르죠. 요즈음 같아선… 어쩌면 전쟁이 일어날지도?”
“아, 안돼요! 전쟁만은 절대로…!”
아가레스트는 팔을 허우적거리며 기함하는 이진주를 귀엽다는 듯 바라보았다.
“호호. 어디까지나 최악의 경우를 거론했을 뿐이에요. 어떤 전개가 펼쳐질 지는 두고 봐야 하겠죠.”
“물증… 물증은 없지 않나요?”
“지금까지 뭘 들으셨을까. 이게 바로 그 물증이에요. 그 무엇보다 확실한 증인이죠.”
톡톡.
아가레스트가 장난치듯이 겉표면을 두드리자, 검은 구슬이 그에 반응하듯 웅웅거리는 울림을 토해냈다.
“지금 이 구슬은 힘이 봉인되어 있어요. 적어도 십존급의 강자가 걸어둔 금제죠. 제 예상으로는 아마도 서리여왕 하유라가 아닐까 하는데… 어쨌든, 제가 풀지 못할 정도는 아니에요. 이미 반쯤 풀어놨기도 하고요.”
“그, 그러면….”
“그래요. 이 구슬의 영령이라면 당시 상황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겠죠.”
가늘게 떨리는 이진주의 눈길이, 테이블 위에 놓인 검은 구슬에 머물렀다. 그녀의 눈에 비치는 구슬은, 마치 머지않은 장래에 다가올 파국을 알리는 전주곡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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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일요일에 예기치 못한 볼일이 생겨서 연참을 하지 못했네요 ㅠㅠ 죄송합니다!
떡밥은 다 뿌려놨습니다. 이제 휙휙 진행할 일만 남았네요. 한주 시작하는 내일부터 다시 열심히 달려보려고 합니다.
월요병 앓지 마시고 아무쪼록 즐거운 한주 시작이 되었으면 하네요!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