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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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 삼자대면(三者對面)
166# 삼자대면(三者對面)
고요하던 산맥의 심처에 때 아닌 소란이 일었다. 짙은 녹음으로 둘러싸인 숲은, 갑작스런 이방인들의 침입에 잔가지를 떨며 몸을 움츠렸다.
웅성웅성.
이번에 발견된 아다만티움 광산으로 향하는 산맥의 중턱은 각계각층에서 몰려든 인파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아직 산길이 제대로 닦이지 않아 여기저기 험한 곳이 많았지만, 특종에 대한 열망을 불태우는 기자들은 기어코 산길 주변에 임시 천막을 치며 자리를 잡았다.
“에잉… 조금만 더 올라가면 회담장소가 보일 것 같기도 한데… 완전 철통경비로군.”
한 사내가 길을 막고 있는 병사들을 보며 아쉬운 소리를 했다. 도미니온, 레그나토르, 서부연맹… 각기 해당 국가의 문양을 가슴팍에 새긴 병사들은 첨예한 도끼눈을 번뜩이며 광산 일대를 경계하는 중이었다.
“어쩔 수 없지. 그래도 회담이 끝나고 바로 결과 발표를 한다니까, 그걸 기다릴 수밖에.”
“나 원, 동부의 긴장이 종식되려는 판국에 이번엔 또 서부에서… 돌아가며 난리를 치는군.”
“그런 세상인게지.”
얼마 전, 라스바덴의 심처에서 와병중이던 검왕이 드디어 공식적으로 일선에 복귀했다.
그의 복귀로, 살얼음판을 걷는 듯했던 동부의 긴장사태는 슬슬 마무리단계로 접어들고 있었다.
외팔이가 되었다지만 검왕은 검왕이다. 게다가, 항간에는 그의 부상이 독왕과 서리여왕, 폭풍왕, 스펠브레이커를 동시에 상대했기 때문이라 알려져 있었다. 실제로 라스바덴 공략도중 종적을 감춘 플랑기스는 전쟁이 끝나고 투르가 멸망할 때까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데다, 잔당을 이끌고 살타를 침공한 하유라와 라키오라도 감쪽같이 사라진 건 마찬가지. 비슷한 시기에 검왕 또한 나타나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면, 그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더욱이 리베르타에서 독왕 나타의 잘려진 수급까지 공개한 마당이니….
이런 까닭에, 검왕 김정인의 위상은 전에 비할 데 없이 높아져 있었다. 일각에서는 그를 검왕이 아니라 검신(劍神)이라 칭하며 경외시할 정도였으니, 사실상 그의 이름은 대륙의 기라성 같은 강자들 가운데서도 독보적인 위치에 오른 상태였다.
대륙최강.
공식적인 전적이 아니라는 점에서 의견이 엇갈리긴 해도, 검왕 김정인은 이제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대륙의 최강자였다. 하긴, 정황상 십존급의 절대자 네 명과 맞붙어 당당하게 살아남았으니, 그 이름을 어찌 십존과 나란히 놓을 수 있겠는가.
그저 허울뿐인 타이틀이 아니다. 검왕은 이제 존재만으로도 전략병기에 준하는 억제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의 일선 복귀가 알려진 직후, 리베르타와 맞닿은 국경 부근에 배치되었던 솔라리스와 이레시온의 군대가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는 것만 봐도 그 영향력은 명백했다.
긴장 정국이 잠잠해진다는 것은 반길 일이지만, 반대로 일이 터지길 기다리고 있는 이들에게는 김이 샐 수밖에 없는 소식이다.
그런 와중에 서부에서 묘한 전운이 흐른다. 자연히 온 대륙의 시선이 이곳 벨룸 산맥으로 쏠릴 수밖에 없었다.
“날이 우중충하군.”
“배도 출출하고… 빨리 끝났으면 좋겠네요.”
어설프게 지어진 천막 안에 쭈그리고 앉은 두 사내의 눈길이 까마득하게 보이는 산 정상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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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테이블을 두드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다. 특별히 손가락에 힘을 줬다기보다는, 주위가 워낙 고요해 더욱 소음이 부각된 느낌이다.
“아래는 시끌벅적하군. 하여튼… 뭘 얻어먹을 게 있다고 저렇게 떼거지로 몰려왔는지……. 으하하.”
홍소를 터뜨리는 오정환에게 맞장구를 치는 목소리는 없었다. 좌우 앞으로, 비스듬히 마주앉은 노구덕과 유메르바인의 낯빛은 돌가루를 묻힌 듯 딱딱했다.
삼각형의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둘러앉은 각 수장들의 뒤편에는 삼국을 대표하는 정예들이 엄중하게 시립해 있다.
유메르바인의 뒤쪽으로는 장난치듯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시먼과 푸른 용갑(龍甲)을 갖춰 입은 심준호, 가슴 한복판에 다곤 교단의 문장을 큼지막하게 새긴 글라우버 등이 눈에 띄었고,
서부연맹 쪽에는 쌍둥이처럼 우람한 체격을 자랑하는 콜트레인과 바르트라, 달라붙는 녹색 로브 덕에 굴곡진 몸매가 두드러지는 이세미 등이 경직된 얼굴로 서 있었다.
마지막으로 노구덕의 뒤편에는 임유진과 신소율, 박승찬, 도일, 이두식, 박지현 등의 정예가 자리를 지키는 중이었다.
일부 보이는 면면들만 훑어보아도, 서부에서 이름을 떨치는 맹자들이 한자리에 총집결한 것 같다. 게다가 앞서 언급된 이름들은 전위에서 대강 눈에 띄는 얼굴들을 읊은 것일뿐, 뒤쪽에서 대기하고 있는 병력들 사이에도 명망 높은 강자들이 얼마든지 섞여 있었다.
그들 중 상당수가 5년 전, 서부연합군 결성 당시 서로에게 등을 맡기며 싸웠던 전우들이다. 그런 이들이 지금은 서로를 경계하며 노려보고 있으니, 알다가도 모를 게 세상일이었다.
“흠….”
여유롭게 앉아 있는 오정환의 눈가에 얼핏 아쉬움이 스친다. 예견했던 대로 도미니온의 군왕 체스터는 오지 않았다.
“왜 다들 그렇게 굳어있는 거요? 모처럼 연합을 결성했던 우방들이 한자리에 모였는데, 축배는 들지 못할망정.”
“우방이라니, 그리 마음에 차는 단어는 아니군요. 피차 그런 사이는 아니지 않나요? 날도 우중충하니 바로 본론에 들어갔으면 하는데요.”
“허, 위대한 도미니온의 재상께서 원하신다면, 마땅히 그래야겠지.”
조롱끼 다분한 비아냥거림을 들은 유메르바인의 낯빛이 스산해진다. 감긴 눈에서 새어나오는 그녀의 기세는 주변 이들의 살갗을 따갑게 찌를 정도였다.
그러나 오정환은 도리어 뭐가 잘못됐냐는 듯 가당찮다는 표정이었다.
“이보게, 재상. 뭐하는 짓인가? 설마하니 회담 장소에서 무력시위라도 벌일 참인가?”
“흥. 불쾌한 마음이 잠깐 밖으로 내비쳤을 뿐이에요. 고작 이 정도로 무력 시위 운운하다니… 서부연맹의 수준은 그 정도밖에 안 되었나요?”
“하하핫! 십존씩이나 되는 사람이 그리 절제심이 부족해서야! 누워서 침 뱉기 아닌가?”
“맹주님, 말씀이 과하시네요. 연합 시절에는 좀 더 점잖으신 분인 줄 알았더니, 제가 사람을 잘못 본 것 같아요.”
“글쎄, 누가 변했는지는 두고 보면 알겠지.”
회담의 분위기가 그리 좋지 않으리란 건 누구나 예상하던 바였지만, 이건 처음부터 살기가 등등하다.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 독설이 오갈 때마다, 각 수장의 뒤에 늘어선 이들의 표정도 점점 사납게 변해갔다.
‘좋지 않아….’
살 떨리는 공기의 흐름에 덩달아 안색이 나빠진 임유진은 곁눈질로 노구덕의 안색을 살폈다. 지금이라도 그가 저 설전에 끼어들어 중재를 맡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러나 그녀는 곧 기대를 저버릴 수밖에 없었다. 언쟁을 벌이는 두 사람 사이에 낀 노구덕의 표정 또한 치미는 짜증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으니까. 무섭게 일그러진 그의 표정은 대충 보더라도 그 불쾌한 속내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아니나 다를까,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낯짝을 찌푸리고 있던 노구덕은 강하게 탁자를 내리쳤다.
“회담을 하자고 불렀더니, 개처럼 멍멍 짖어대기만 하는군. 개소리나 하자고 여기 모아둔 줄 아나?”
노골적이다 못해 욕지거리나 다를 바 없는 비난. 기싸움을 벌이던 오정환과 유메르바인의 눈이 돌아간 것도 당연했다.
“허어.”
“의장님, 지금 무슨 말씀을…?”
“무슨 말씀이긴? 서로 시간낭비하지 말고 본론에 들어가잔 말이지. 높으신 양반들이 여기 피크닉하러 모인 건 아니잖나.”
가볍게 반발을 일축한 노구덕은 두 사람이 미처 말을 잇기도 전에 선수를 쳤다.
“간단히 말해서, 우린 광산의 지분을 공정하게 삼등분으로 나누길 원하고 있다. 회담이 소집되기 전부터 입이 닳도록 말해왔으니, 따로 논할 거리는 없겠지. 이제 당신들이 준비한 대답을 들려주면 되는 거야.”
꼭 싸우자는 말처럼 들리는 것은 단순한 착각일까? 말이야 맞는 소리지만, 말투가 전에 비할 데 없이 난폭하다. 그 때문인지 노구덕이 말문을 연 이후로 장내의 분위기가 더욱 살벌하게 변했다.
“노구덕 의장이 오늘 기분이 별로인 모양이군.”
“…무례하군요.”
오정환과 유메르바인은 각자 언짢은 기색을 내비쳤으나, 딱히 까다롭게 꼬투리를 잡진 않았다. 노구덕의 말마따나, 더 이상의 신경전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탓이다.
먼저 의견을 표명한 쪽은 서부연맹의 오정환이었다.
“서부연맹은 레그나토르의 제안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바요. 상식적으로도 그게 옳은 대안이지.”
“…현실적으로 광산 지분을 나눌 수밖에 없다는 데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지분 배분에 있어서는 고려할 여지가 있다고 봐요.”
애초에 지분을 나누는 것에서부터 탐탁찮은 입장을 보여 왔던 도미니온이다. 삼등분을 하자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는 건 당연했다.
“고려할 여지가 있다? 어디서 뭘 고려하면 되겠소?”
“당연하지 않나요? 애당초 광산을 처음 발견한 게 누군가요?”
“이름조차 알려져 있지 않은 약초꾼이었지.”
“그 약초꾼이 바로 도미니온의 사람입니다. 처음 광산을 조사한 이도 도미니온의 도시 행정관이고요. 지분을 나눈다 해도 최초 발견자에게 큰 권리를 주는 건 당연하다고 보는데요.”
“언어도단이군…. 말은 바로 합시다. 도미니온이 언제부터 그런 촌락의 약초꾼들까지 일일이 관리하는 곳이었나? 그 약초꾼이야 보상금이나 타먹을 목적으로 도시에 보고한 거고, 마침 가까운 곳이 우연찮게도 도미니온의 접경도시였을 뿐이지. 그걸 가지고 최초 발견자니 뭐니… 가당치도 않아.”
“지금 말씀 다하셨나요?”
“아직 다 못했소. 내 말에 틀린 부분이라도 있나? 왜, 아예 벨룸 산맥의 촌락들이 전부 도미니온 소속이라고 하는 건 어떻소? 그러면 참 편하겠군. 벨룸 산맥에 묻혀 있는 모든 광산과 약초지가 도미니온의 것이 될 테니.”
“그 무슨…!”
그때였다. 분기탱천한 유메르바인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순간, 오정환의 어깨 너머에서 발사된 푸른 빛살이 그녀의 반듯한 미간을 꿰뚫었다. 아니, 꿰뚫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흥! 어디서 감히!”
냉랭한 콧소리와 함께, 그녀의 로브가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그러자 전신에서 일어난 무형의 압력이, 곱디 고운 살갗을 지척에 둔 푸른 빛살을 그대로 허공에 멈춰 세워버렸다.
부르르!
허공에 못박히듯 박제된 빛살의 정체는 손가락 마디 두 개만 한 길이의 화살이었다. 장궁에 쓰이는 화살이라기보단 석궁의 볼트(Bolt)에 가까운 암기.
그러나 드러난 암기의 정체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유메르바인에게 암살 시도가 일어난 그때부터, 이미 장내는 돌이킬 수 없는 아수라장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서부연맹 놈들! 무슨 개수작이냐!”
“이럴 줄 알았어! 개자식들!”
이번엔 오정환의 머리 바로 위쪽에서 불꽃이 튀었다. 회색의 검기가 날아온 쪽은 두말할 것도 없이 도미니온의 진영이다. 그 경로의 끝에는 어느새 꺼내든 단검을 치켜든 시먼이 서 있었다.
“무기를 꺼내다니! 정말 해 보자는 거냐!”
“먼저 개짓거리를 한쪽이 누군데!”
점입가경이다. 틀어질대로 틀어진 장내의 상황은 이제 누가 와도 진정시킬 도리가 없어 보였다.
“이봐, 우리 쪽엔 활을 쓰는 사람이 없다고!”
“그따위 헛소리를 믿을 것 같냐!”
“죽어라!”
“너나 죽어!”
마침내, 당겨져 있던 뇌관이 폭발했다. 서로를 향해 뾰족한 이빨을 드러낸 무리들은, 누가 말릴 새도 없이 진득한 살기를 흩뿌리며 땅을 박찼다.
이후 서부의 향방을 크게 갈라놓는 대전투. 서부통일전쟁의 서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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