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627)
0627 / 0777 ———————————————-
166# 삼자대면(三者對面)
++++++++++++++++++++++++++++++
검과 마법, 함성과 기합이 치열하게 얽혀든다.
각국의 최고전력, 서부의 최강을 다투는 전력들이 충돌한 만큼, 사상자는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아니, 꼭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니다. 뇌성벽력 같은 고성을 지르며 대검을 휘두르는 콜트레인도, 페가수스에 올라타 섬전 같은 성광(聖光)을 내리꽂는 심준호도… 격렬한 모양새와는 다르게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소극적이다. 싸우긴 싸우되, 삼류연극을 하는 경극배우처럼 어설픈 공격들. 꼭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듯하다.
정말 그랬다. 그들은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직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는 어느 한 세력이 심히 거슬렸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난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는 제 3세력, 레그나토르.
대륙 십존의 일인으로서, 저 유메르바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임유진은 말할 것도 없고, 신소율, 박승찬, 도일, 이두식, 박지현의 모두가 명성과 실력이 쟁쟁한 강자들이다. 거기에 구 크로스게이트, 그믐달의 멤버들도 섞여 있다.
어디든 당장 끼기만 한다면, 이 판도를 완전히 뒤집어버릴 수 있는 막강한 전력. 그런 세력이 아직까지도 이 난장판에 발을 담그지 않고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
왜? 수장인 노구덕의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으니까.
노구덕은 사전에 약속을 했다.
서부연맹과 손을 잡고 도미니온을 치기로.
도미니온과 손을 잡고 서부연맹을 치기로.
철저하게 양다리를 걸쳤다. 이제는 미루어놓았던 대답을 해야 할 때. 그리고 그 대답에 따라 이 싸움의 결과가 판가름될 터다.
혼란으로 들끓는 도가니의 한가운데, 삼국의 정상들이 모여 있는 테이블 주위는 태풍의 눈처럼 조용하기 짝이 없었다.
“결국 이렇게 되고 마는군요. 오정환 맹주,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나요?”
“후회는 그쪽에서 해야 할 일 아니겠소? 도미니온의 끝없는 야욕이 불러온 결말이지.”
“먼저 비겁한 술수를 동원한 쪽이 어디였는지 그새 잊어버린 모양이군요. 방금 전의 그 화살, 서부연맹의 짓이 아니라는 건가요?”
오정환을 질타하는 유메르바인의 손에는 짜리몽땅한 볼트의 촉이 잡혀 있었다.
“난 그런 명령을 내린 기억이 없네.”
“끝까지 되도 않는 발뺌을….”
차갑게 얼굴을 굳힌 유메르바인의 소맷자락이 펄럭이며, 그 안에서 짙은 군청색의 기류가 무럭무럭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그 칙칙한 기류에 맞닿은 원목 테이블 한 귀퉁이가 바짝 메마른 잿더미가 되어 파스스 부서져 내렸다. 노화와 부패의 성질을 지닌 종말의 마력이었다.
그녀가 손을 휘젓자, 실타래처럼 길게 늘어진 마력의 운무(雲霧)가 삽시간에 부채꼴 모양으로 퍼지며 오정환의 주위를 잠식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발을 빼기 쉽지 않아 보이는 상황. 넘실거리는 마력의 물결에 에워싸인 오정환은 금방이라도 그 안에 집어삼켜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경계가 허술했군요, 오정환 맹주.”
“으하하하… 뭔가 착각을 하고 있군. 파멸의 현자.”
“뭐라고요?”
“이 자리에 십존이 자네만 있는 건 아니잖나?”
화르륵!
용트림을 하듯 솟아오른 홍염이 암운을 가른다. 순식간에 기세를 떨치고 일어난 눈부신 불꽃은 오정환을 에워싼 군청색의 마력을 길길이 불태우며 강렬한 위엄을 뽐냈다.
그 불길의 중심엔 한 여인이 서 있었다. 일견 유약해 보이는 인상과는 별개로, 그 호리호리한 몸에서 뿜어지는 기세는 가히 난공불락의 요새를 보는 듯하다.
비취색의 맑은 눈동자를 곱게 치켜뜬 여인은 바로 임유진이었다.
“유진 씨….”
“미안해요, 유메.”
씁쓸히 대꾸하는 임유진의 낯을 아연한 눈으로 쳐다보던 유메르바인은, 돌연 피식 입매를 터뜨리며 다른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물론, 그 시선이 향한 쪽은 줄곧 팔짱을 낀 채 자리에 앉아 있는 노구덕이었다.
“…노구덕 의장님, 이게 어떻게 된 거죠? 레그나토르는 저희와 힘을 합쳐 서부연맹을 타도하기로 한 것 아니었나요?”
“새삼스럽게 뭘 놀라고 그러지? 살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도 있는 거지. 세상사가 다 그런 것 아닌가?”
배신을 확정짓는 말이다. 지팡이 손잡이를 움켜쥔 유메르바인의 손등에 푸르스름한 힘줄이 불거졌다.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문 유메르바인은 핫! 하는 헛웃음을 흘리며 다시금 되물었다.
“다시 확인하죠. 노구덕 의장님, 정녕 이게 레그나토르의 뜻인가요?”
덤덤하게 자리에서 일어난 노구덕은 불량스럽게 목을 꺾으며 우드득거리는 소리를 냈다.
“레그나토르가 아니라, 내 뜻이다.”
“…체스터 님께서 굉장히 실망하시겠군요. 오랜 동맹 관계를 이런 식으로 청산하다니….”
“동맹? 나중에 그놈의 골통을 부술 때 한번 물어봐야겠군. 날 동맹으로 생각하고 있었는지 말이야.”
“후회하실 겁니다. 당신은 오정환 맹주에게 이용당하고 있습니다.”
“남 걱정할 시간에 네 목숨부터 걱정하는 게 좋을 거다.”
쾅!
노구덕이 두꺼운 원목 테이블을 발등으로 차올리는 것이 신호였다. 산산조각이 난 테이블의 잔해가 사방으로 비산함과 동시에, 지금껏 남 일처럼 관망하고 있던 레그나토르의 정예들이 본격적으로 전장에 뛰어들었다.
깡!
쌍검과 단도가 맞물리며 거친 쇳소리를 자아낸다. 맹렬한 회전을 머금은 쌍검이 강력한 충격파를 발산하자, 그 기세를 이기지 못한 단도가 뒤로 밀려나는 듯싶더니 이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칫!”
신소율은 짧게 혀를 찼다. 육안으로 보이던 상대가 감쪽같이 사라졌으나, 그녀의 식스센스는 여전히 상대의 위치를 포착하고 있었다. 위협을 느낀 신소율이 공중제비를 돌며 눈꽃 같은 검기를 흩뿌리자,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파르스름한 뇌전이 백열하며 조금 전까지 그녀가 서 있던 자리에 내리꽂혔다.
움푹 파이고 그을린 대지에 가뿐히 내려선 신소율은 낮게 휘파람을 불면서 눈을 들었다. 그러자 위쪽의 빈 공간이 이지러지며 불쾌하게 표정을 일그러뜨린 하플링 사내의 얼굴 윤곽이 나타났다.
“애송이 꼬마야, 감히 내게 덤비다니. 그 배짱 하나는 칭찬해주마.”
“뭐, 언젠가는 한번 싸워보고 싶었으니까요. 이참에 서부 최고의 암살자가 누군지 한번 가려보자고요. 왜, 쫄려요?”
어처구니없는 도발을 당한 시먼의 콧잔등에 세 겹의 주름이 잡혔다.
“쫄려? 내가 네게? 큭큭! 부창부수라더니, 지아비만큼이나 정신 나간 계집이군.”
“우리 아저씨가 지금 좀 상태가 오락가락한 건 맞는데, 상관도 없는 남한테서 들으니까 괜히 열 받네. 특히 그 주둥이가 나불대니까 더 그런 것 같애.”
“이게 정말 간덩이가 부었구나. 뱃속을 갈라서 한번 확인해봐야겠어.”
“해볼 테면 해보시든지!”
걸쭉한 입담을 주고받은 두 암살자는 서로를 노려보며 다시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전장을 뒤흔들었다.
“콜트레인!”
“심준호!”
찬란한 백색 날개를 활짝 펼친 페가수스에 올라탄 심준호와, 거대한 대검을 어깨에 둘러 멘 콜트레인이 격돌했다. 서부연합군에서도 각기 선봉대장과 전사단장을 맡았을 만큼 실력이 출중한 그들인 만큼, 그 격전의 치열함은 감히 주위에서 끼어들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쾅! 쾅! 쾅!
검과 검이 충돌할 때마다 귀청이 떨어지는 굉음이 사방을 강타했다. 오죽하면 그 격돌에서 파생된 충격파에, 멋모르고 주변에서 싸우던 헌터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을 정도다.
자기 키만 한 대검을 자유로이 다루는 완력을 가진 콜트레인은 패검(覇劍)의 달인이고, 심준호는 마상전술과 신성주문, 검술을 조화롭게 사용하며 전략적으로 상대를 몰아붙이는 기교파다.
격돌 초기에는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의 접전을 펼쳤던 그들이지만, 차츰 시간이 지날수록 승기는 심준호에게 넘어갔다.
“크으윽!”
기습적으로 찔러온 백색 검기에 깊은 자상을 입은 콜트레인은 비척비척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갑옷째 갈라진 그의 복부엔 질척한 핏물이 스며들고 있었다.
“사제를 데려오지 않은 걸 보니, 서부연맹은 처음부터 난전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모양이군.”
“트흐흐… 그러는 도미니온에도 사제는 보이질 않는구먼. 레그나토르도 마찬가지고.”
이 아수라장에 사제는 단 한 명도 보이질 않는다. 세 세력 모두가 사제를 데려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사제뿐 아니라 화력 지원을 하는 마법사들도 드문드문 보이는 수준이다.
키퍼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사제와, 광범위 주문이 주를 이루는 마법사는 이런 협소한 장소에서 벌어지는 난전엔 걸맞지 않다. 말인즉, 세 세력이 단 한 명의 사제도 데려오지 않았다는 건 회담에 오기 전부터 이미 일전을 벌이기로 작심했다는 뜻이다.
“…어쩌다 이런 꼴이 되었는지…….”
쓰게 중얼거린 심준호는 투레질을 하는 페가수스의 고삐를 움켜잡으며 콜트레인에게 칼끝을 겨누었다.
“완력가에게 나이는 치명적이지. 세월만 아니었다면 좋은 승부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와하하하! 새카만 후배 주제에 이 콜트레인을 동정하려 드는 건가!”
“기분이 나빴다면 사과하지. 그럴 의도는 아니었소. 단지… 흡!”
조심스레 말을 잇던 심준호는 급히 말머리를 틀며 손바닥을 펼쳤다.
그를 깜짝 놀라게 만든 것은 느닷없이 날아온 묵색의 창이었다. 다행히 급전개한 홀리실드(Holy shield)에 가로막히긴 했으나, 왼팔을 찌릿찌릿하게 울리는 충격은 창에 깃든 힘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격분한 심준호는 부릅뜬 눈에서 광망을 일으키며 호통을 쳤다.
“누가 감히 신성한 결투에 끼어드는가!”
“아~ 죄송한데, 저랑도 한번 싸워주시면 안 될까요?”
휘리릭. 부메랑처럼 돌아온 창을 붙잡은 것은 굳은살이 잔뜩 박인 투박한 손이었다. 여인답지 않게 굵은 손마디를 지닌 그녀는 심준호를 정면으로 직시하며 벅찬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너는…!”
아는 얼굴이다. 갑갑할 정도로 두터워 보이는 중갑을 착용하고, 먹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새까만 말 위에 올라탄 여인은… 과거, 그가 이끌었던 선봉대에 속해 있던 박지현이었다.
“…팬텀랜서인가.”
“박지현이라고 불러주세요. 대장.”
대장이라. 그리운 울림이다. 그림리퍼의 주의를 끌기 위한 죽음의 질주를 끝낼 때까지, 아득바득 자신의 뒤를 쫓아오던 박지현이다. 그녀의 악바리 같은 얼굴을 떠올린 심준호의 표정에 옅은 감회가 어렸다.
“정말 많이 성장했군. 허나 지금은 회포를 풀기에 적당한 장소가 아닌 것 같은데. 더군다나 나는 결투 중이다.”
“에이… 그런 쩨쩨한 소리는 마시고요. 이건 전쟁이지, 명예를 건 결투가 아니잖아요? 게다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 대장과 싸워볼 기회가 있겠어요? 지금 저는 손이 근질거려 죽겠거든요?”
아닌 게 아니라 창대를 들어 올린 박지현의 낯빛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억누르지 못한 나머지, 절정을 맞이한 여인의 그것처럼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할 수 없군.”
일전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심준호의 손아귀에서 하얀 랜스가 소환되었다. 창에는 창, 마상전에는 마상전. 상대에게 맞춘 전술은 그의 주특기였다.
“좋아요, 좋아! 신나게 놀아봅시다!”
“심준호, 나도 있다는 걸 잊지 마라!”
재생물약으로 대강 응급처치를 마친 콜트레인의 대검이 다시 기지개를 켰다.
앞에는 콜트레인, 뒤에는 박지현. 신구(新舊) 세대를 대표하는 강자들을 맞이한 심준호는 의연히 랜스를 떨치며 기합성을 내질렀다.
“오라!”
============================ 작품 후기 ============================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어째 마지막만 보면 심준호가 주인공인듯한 느낌… 기분 탓인가??
산뜻한 연참으로 한 주의 시작을 알립니다.
내일도 힘내 볼게요!
타락한오뎅 / 연참.. 했습니다…
창파 / 왜 저를 믿지 못하세요.. 그놈의 전과! 전과가 문제입니까!
바다공원 / 이 상황이 과연 어떻게 끝날지가.. 관건이겠죠?
라포르테 / 뭐, 걔들이야 여건만 되면 무쌍 찍을 애들이니…
무꾸914 / 이미 치료되도 문제될만한 일을 저지르지 않았나요? 까짓 거기에 몇 개 더 추가해도..
Kooori / 흐뭇… god of the dog
신수[神手] / 얼마나 죽고 다칠지가 관건이겠네요
letzgo02 / 구더기는 구더기입니다. 파리가 되진 않아요..
모그퐁 / 감사합니다. 그래서 연참을 드립니다.
은신설야 / 쿠폰 감사해요! 항상 감솨르하고 있습니다!
유수월향 / 이중통수! 성공할 것인지…?
하늘ㅇㅇ / 에.. 음.. 700화 전에는 아마도 해결 되겠죠?
북치네 / 항상 추천 박아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제 맘 아시죠?
가식적썩소 / 흠, 흠흠흠…
아스라히i / 어흠, 그 문제의 볼트는 누가 날렸을까요?
인첸 / 내일도 두편을 올릴 쯤에는 윤곽이 잡힐 듯하네요
cho서든 / 이 에피소드 마무리되면서 동시 진행될듯해요
마존이 / 감사합니다 (_ _ 12시 연참!
왜이리들다재밌지 / 이러니 제가 연참을 안할수가 있나요!
네이미아 / 아;; 닉네임을 이상하게 읽었네요.. 눈이 침침한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