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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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폭주
한마디 한마디가 칼을 갈아 놓은 듯 날카롭다. 임유진은 크게 낙담하면서도, 노구덕과 유메르바인 사이를 가로막은 발을 내빼지 않았다.
“저는 당신을 사랑했고, 앞으로도 사랑할 거예요. 당신은 제 구원자니까요.”
“그렇지. 그러니까 그러면 거기서 나오면 돼.”
차가운 비수와도 같은 대답. 임유진은 크게 도리질을 쳤다.
“전 언제나 당신의 말을 따랐죠. 하지만, 이번만은 아니에요.”
“끝까지 날 방해하겠다는 소리군.”
“전 당신이 암군(暗君)이 되길 원하지 않아요. 부디… 제발 한번만 다시 생각해주세요. 이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길도 있어요. 여기 있는 사람들을 다 죽이고 나면, 그 다음은요? 들고 일어나는 서부연맹과 도미니온의 사람들도 모두 죽이실 건가요?”
“임유진.”
노구덕은 딱딱한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끊어 불렀다. 구겨진 종잇장처럼 일그러진 표정, 턱밑까지 자라난 송곳니가 그의 얼굴을 성난 맹수처럼 보이게 했다.
“같은 말 계속하게 하지 마라. 날 따르지 않는 놈들은 필요 없어. 배신? 반란? 전부 죽음뿐이다. 크로스게이트가 어떻게 되었는지 벌써 잊은 거냐?”
“…….”
임유진은 질끈 눈을 감았다. 크로스게이트. 서부연합군의 주축이 되었던 대형 클럽이자, 노구덕의 통치체제에 반발해 반란을 일으켰던 과거의 혈맹. 지금은 당시 오너를 따랐던 모든 세력들이 피의 숙청을 당하고, 오너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부 잔당만이 살아남아 일라이자의 휘하 세력이 되었다.
클럽 하나를 숙청하는 데에도 숱한 피바람이 불었는데, 그런 학살극을 서부연맹, 더 나아가 도미니온의 영토에서까지 벌이겠다니…. 만약 정말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서부 지구는 사상 유례없는 쑥대밭이 될 것이다. 시산혈해란 표현으로도 부족한 참상이 벌어질 지도 몰랐다.
노구덕은 최악의 폭군으로서 역사에 기록될 것이고, 레그나토르는 온 대륙의 지탄을 피하지 못할 터.
‘그렇게 둘 순 없어. 이이는 지금 제정신이 아니야.’
다시 눈을 뜬 그녀. 진한 비취색으로 물든 그 동공은 결연한 전의를 담고 있었다.
“당신이 어떤 가시밭길을 가더라도 전 따를 준비가 되어 있어요. 하지만… 그 선택을 하는 건, 적어도 온전한 당신이었으면 해요.”
“너….”
“전 물러나지 않겠어요. 이게 당신을 위한 길이라 생각하니까요.”
꿋꿋하게 버티고 선 임유진의 어깨 너머로 당혹스러워하는 유메르바인의 얼굴이 보인다. 두 여인의 얼굴을 일별한 노구덕은 잔혹하게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이 여편네가 정말… 보자보자하니까 끝도 없이 기어오르는군. 임유진, 이제는 내게도 십존 행세를 하려 드는 거냐?”
핏빛으로 물들어 불거진 눈은 횃불에 걸린 불덩이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오히려 그를 달래려했던 임유진의 말이 그의 야성을 폭발시키는 기폭제가 된 것 같았다. 어쩌면 알게 모르게 가지고 있었던 그녀에 대한 열등감이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일지도 몰랐다.
그의 거침없는 폭언에, 그녀의 얼굴이 구슬프게 얼룩진다. 허나 임유진은 더 이상 노구덕과 말을 섞지 않았다. 골수까지 흉성이 뻗친 그와 대화해봤자, 얻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오세요.”
“오냐, 이참에 그 버르장머리를 고쳐주마!”
성질머리가 폭발한 노구덕의 그림자가 그물처럼 덮쳐온다. 굳게 입을 앙다문 임유진 또한, 거센 홍염의 날개를 떨치고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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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요!”
“……?”
저벅저벅 걸어가던 아가레스트는 의아히 눈을 돌렸다. 그녀가 가는 경로의 끝에는 만신창이가 되어 간신히 숨만 내쉬고 있는 심준호가 쓰러져 있었다.
“뭐가 안 된다는 거죠?”
“대장… 아, 아니! 그 사람 죽이려고 하는 거 아니에요?”
“네. 그런데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박지현은 다급히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금이 간 팔다리가 심하게 욱신거렸지만, 그녀는 내색하지 않고 소리쳤다.
“싸움도 다 끝났는데 죽일 필요는 없잖아요? 우선 전부 포로로 잡아둬야…!”
“포로는 필요 없어요. 그게 제가 받은 명령이에요.”
아가레스트의 칼 같은 대답에, 뜨악한 얼굴이 된 박지현은 더듬거리며 되물었다.
“누, 누가? 누가 그랬는데요?”
“당연히 노구덕 의장님이시죠. 달리 누가 있겠어요? 자, 그럼 비켜주실래요?”
박지현의 낯빛이 바짝 탄 것처럼 캄캄해졌다. 그러나 그녀는 막아선 길에서 비켜나지 않았다.
“그, 그럴 순 없어요.”
“이해가 안 되네요. 저 사람은 당신의 적이 아니었던가요? 제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당신은 죽었을 거예요.”
“…그건 인정해요.”
박지현은 힘없이 머리를 흔들었다. 그녀의 말대로 자신은 심준호에게 패했다. 정정당당한 일대일의 승부였고, 아쉬울 여지조차 없는 깔끔한 패배였다. 그에게 목이 떨어지기 직전, 적절하게 나타난 아가레스트 덕에 구원받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심준호를 죽게 내버려둘 순 없었다. 그가 당당한 일대일을 고집하면서 서부연맹의 인사들이 끼어들지 못하게 했다는 것도 한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그걸 별개로 치더라도 심준호는 존경할 만한 헌터였다. 만약 명망높은 그를 아군으로 삼을 수만 있다면, 차후 레그나토르의 영향력을 확대하는데 지대한 도움이 될 터.
게다가, 박지현은 이번 출정에 임하면서 들은 말이 있었다.
“…의장님이 그런 명령을 내렸다고 해도… 몰살은 없어요.”
“그 말은 즉, 항명인가요?”
“그건….”
“항명이 아닙니다.”
샐쭉한 눈으로 박지현을 쳐다보고 있던 아가레스트의 낯이 왼편으로 향한다. 그곳엔 신소율과 박승찬이 서 있었다.
절단된 손목을 부여잡고 있는 신소율은 아직도 고통이 가시질 않았는지 진하게 인상을 쓰고 있었고, 여기저기 잔부상을 많이 입은 박승찬 역시 그리 편한 기색은 아니었다.
“박승찬 헌터,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항명이 아니라니요? 제가 알기로 레그나토르의 계획은 원래….”
“예. 원래는 서부연맹과 도미니온을 가리지 않고 척살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의장님의 지시였죠. 하지만 출정을 하면서 저희들끼리 따로 한 얘기가 있습니다.”
아가레스트와 똑바로 눈을 맞춘 박승찬은 분명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계획은 바뀌었습니다. 몰살은 없습니다. 우린 의장님의 명령에 따르지 않을 겁니다.”
“흐응… 반란이라도 일으킬 셈인가요?”
“반란은 무슨!”
빽 소리를 지르며 나선 이는 신소율이다. 그녀는 아가레스트의 휘황한 금빛 눈동자에도 주눅들지 않고 바락바락 언성을 높였다.
“저기요! 도와준 건 정말 고마운데, 말은 가려서 해주세요. 우린 그저 생각 없이 명령만 따르는 기계가 아니거든요? 아는지 모르겠는데, 우리 아저씨가 지금 상태가 좀 안 좋아요. 그런 명령을 무턱대고 따를 수 있겠어요?”
“그러면요? 어떻게 할 생각이죠?”
“당연히 바로 잡아야죠! 그게 우리 역할이니까!”
당당히 따지고 드는 신소율의 눈에서 굳은 의지가 넘쳐난다. 보아하니, 이미 이곳에 오기 전에 노구덕을 제외한 모든 멤버들이 사전에 합의를 본 모양이었다.
저쪽에서 잔당들을 상대하는 이두식과 클라리스만 보더라도, 대부분 살해보단 제압을 하는 식으로 포로를 늘려가고 있었다. 시먼과 이세미를 비롯한 요인들을 살해한 자신의 방식과는 극명히 대비되는 부분이었다.
‘어떻게 한다…?’
잠시 고민하던 아가레스트는 이내 싱긋 미소를 지었다. 노구덕으로부터 몰살 명령을 받긴 했지만 딱히 크게 구속력이 있는 지시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이런 식으로 돌아가는 상황에 흥미가 생겼다.
측근들이 수장에게 반해 조직적으로 들고 일어나는 봉기는 여러 번 봐 왔지만, 그 명분이 오히려 수장을 위해서라니. 무척 특이한 케이스 아닌가.
물론 결정적인 이유는 레그나토르의 존속이었다. 방금 전에는 잠시 피에 취해 판단력이 흐려졌었지만, 확실히 이대로 포로들을 다 살해하는 것보다는 살려두는 편이 효용가치가 높았다.
“알겠어요. 당신들의 뜻이 그렇다면 따를 수밖에요.”
“고마워요!”
“하지만… 저 사람은 어떨까요?”
콰아아앙!
아가레스트의 검지가 어느 한 방향을 가리키자마자,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거센 폭음이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솟아오르는 버섯 모양의 뿌연 먼지구름.
아연실색한 사람들의 시선이 위를 향하는 찰나, 그 구름 속을 뚫고 두 개의 그림자가 솟구쳤다.
노구덕과 임유진, 바로 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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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에 돌입한 노구덕의 손속엔 자비가 없었다. 그는 자기가 상대하는 사람이 아내라는 것조차 잊어버린 것 같았다.
그러나 사납게 달려드는 노구덕의 공격을 받아내는 임유진은 그처럼 모질지 못했다. 그녀의 전투스타일은 방어보다는 공격에 특화되어 있었지만, 임유진은 차마 손을 쓰지 못하고 수비에만 전념했다.
다행히 그녀는 노구덕의 싸움방식에 매우 익숙한 편이었다. 아이를 낳기 전만 하더라도 노구덕과는 심심치 않게 대련을 했었고, 맞상대를 하는 게 아니더라도 옆에서 싸우는 걸 셀 수 없이 봐왔다. 그 정도 횟수와 기간이면 평범한 사람이라도 익숙하게 느껴질 터. 하물며 임유진은 전투에 관해선 천재 중의 천재였다.
퍼엉!
쇠뭉치 같은 주먹이 간발의 차이로 임유진을 맞추지 못하고 빗나갔다. 화염 장벽을 통과한 주먹에 불길이 옮겨 붙자, 노구덕은 신경질적으로 손을 털어냈다.
“이런 제기랄!”
그러나 신격을 지닌 불길은 좀처럼 꺼지지 않았다. 짜증스럽게 손을 털던 노구덕은 불길이 꺼지지 않자 이내 포기하고 다시 주먹을 말아 쥐었다. 주먹 전체에서 불꽃이 타오르는 통에, 흡사 주먹이 거대한 불덩이로 변한 것처럼 보였다.
그의 초월적인 재생력은 신격을 품은 불길의 화력조차 이겨내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글거리는 고통이 신경을 자극할수록, 임유진에 대한 분노가 활화산처럼 치솟았다.
“이년! 아주 끝까지 가자는 거냐!”
이성을 잃어버리고 포효하는 괴물. 살기만이 가득한 야수가 되어버린 남편을 바라보는 임유진의 눈빛은 애처롭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방심할 틈은 없었다. 그녀가 맞상대하는 이는 예전의 노 탤런트가 아니라, 레그나토르라는 거대 세력의 정상에 선 거인이었으니까.
그 의미를 몸소 증명하듯, 불길에 휩싸이는 듯했던 노구덕의 신형이 번개처럼 사라진다. 그녀의 주특기, 에버플래쉬였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들어온 노구덕. 활짝 펼쳐진 그의 오른손에서 기이한 기운이 뿜어지는 것을 감지한 임유진은 급히 거리를 벌렸다.
“흡!”
하마터면 그의 손아귀에 잡힐 뻔했던 왼쪽 정강이 보호대가 푸석푸석 변하여 문드러진다. 가죽에 들어간 수분이 그 짧은 순간에 모조리 빨려나간 것이다. 제대로 잡혔다면, 아마 왼발을 못 쓰게 되었을지도 몰랐다.
‘저이… 진심이야.’
노구덕은 정말로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있었다. 임유진은 더는 소극적인 방법으로 일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노구덕을 제압할 수 없다. 존재하는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태초의 불길도 노구덕의 상상을 초월하는 재생력, 생명력 앞에선 그저 뜨거운 장작불에 불과할 뿐이다.
미쳐버린 그를 멈추기 위해선 이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이 필요했다.
“미안해요!”
콰과과과!
임유진의 전신에서 일어난 불길이 거대한 기둥으로 화하여 창공을 꿰뚫을 기세로 솟구쳐 오른다. 그녀의 발끝에서부터 피어오른 불꽃의 소용돌이는 승천하는 용이 되어 그녀의 몸을 칭칭 휘감더니, 사방으로 껌벅이는 불똥을 튀겨댔다.
솟구친 홍염이 하늘을 두 쪽으로 갈라버린 것 같은 광경은 무척 장관이었다. 흡사 하늘에 거하는 태양의 신이 여인의 몸을 빌려 이 땅에 강림한 듯했다.
그러나 이적과도 같은 장관을 몸소 실현한 임유진의 안색은 무섭도록 굳어 있었다. 찢어질 듯 부릅떠진 아름다운 눈은 금방이라도 펑펑 눈물을 쏟을 것만 같았다.
그간 갈고 닦은 자기류, 인페르노(Inferno). 그 권능의 첫 발현 대상이 남편이라니. 이 얄궂은 운명에 하늘을 저주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일대의 땅이 무른 죽처럼 끓어오르는 가운데, 거친 울음을 토해내는 야수와 마주하고 선 임유진.
어느새 약을 복용한 듯, 노구덕의 동체는 바퀴벌레처럼 거무튀튀한 흑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잠시 후, 으르렁거리던 묵빛 그림자가 땅을 박차고 튀어 오르자, 그녀는 공간을 장악한 불꽃의 와류를 모조리 폭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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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고 하는데.. 이건 물베기라고 봐야 할지.. 초가삼간을 태운다고 봐야할지…
어쨌거나 이 싸움은 그리 길게 지속되지는 않을 겁니다. 애초에 임유진과 노구덕이 싸우는 장면이 중요한 게 아니라서요.. 아직 큰 이벤트가 남아 있기도 하고..
자세한 얘기는 내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추코는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