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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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발발(勃發)
168# 발발(勃發)
“으하하. 적이지만 멋지군. 멋진 결속이야.”
구속구를 장비한 채 꿇어앉은 콜트레인. 박승찬과 레그나토르의 헌터들이 결속을 다지는 과정을 지켜본 그는 짤막한 감탄사를 토해냈다.
“뭐가 말입니까?”
묵묵히 제압당한 포로들의 상태를 살피던 이두식의 물음이다. 콜트레인은 여전히 웃음기 어린 얼굴로 말했다.
“대개 지도자란 건 그 치부는 숨기고, 위엄만을 보이려 하는 법이지. 삿된 면모가 드러날수록 권위를 잃게 되니까. 특히, 레그나토르처럼 지도자 한 사람에게 권력이 몰려있는 구조라면 더욱 그럴 수밖에 없어.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노구덕 의장의 광증을 만천하에 까발린 행위는 치명적인 악수가 될 수도 있었네.”
“그렇습니까.”
“그렇지. 하지만… 저 모습을 보아하니 아직까진 별 걱정이 없어 보이는군. 예상보다 수뇌에 대한 신뢰가 깊어 보여. 레그나토르는 노구덕 의장의 압제(壓制)로 유지되고 있다 생각했는데… 내 생각이 틀린 모양이야.”
콜트레인의 말대로다. 임유진 등이 선택한 극약처방은, 간부들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없다면 처음부터 불가한 수단이었다. 아니, 어느 정도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해도 잘 쳐봐야 모 아니면 도식의 도박수라고 할 수 있으리라.
다행히 그 도박은 성공했고, 노구덕의 잠정적 폐위(廢位)에 대한 합의도 이끌어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말로 듣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은 그 무게의 차원이 달랐기 때문이다.
만약 임유진이 노구덕을 일찌감치 제압하고 말로써 간부들을 설득하려고 했다면, 아마도 이런 결과를 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노구덕을 지지하는 층이 모여 내전이 발발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만큼 레그나토르의 상층부에 대한 노구덕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으니까.
허나 그의 미쳐버린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이상, 아무리 열렬한 지지층이라도 노구덕이 더 이상 정상적으로 통치를 할 수 없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지금 그에게 전과 같은 전권을 준다는 건, 사리분별 못하는 어린아이에게 지고의 보검을 쥐어 준다는 것과 같았다.
‘이 계책의 가장 큰 단점이라면… 차후의 노구덕 의장의 권위 회복이 힘들다는 것이겠지.’
극약처방은 그 부작용도 크다. 콜트레인은 굳이 그런 말까지 입밖에 내진 않았다.
시스템의 부작용으로 인한 헌터들의 변화는 그가 속한 서부연맹에서도 오래전부터 인지했던 문제였고, 전담반을 만들어 대책을 찾고 있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성과는 없다. 애초에 시스템의 결함으로 생긴 문제를 어찌 인력으로 해결한단 말인가. 그렇기 때문에 그는 박승찬이 했던 말도 회의적으로 보고 있었다.
‘아마도… 당장 간부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겠지.’
그러나 그런 식의 임시방편은 오래가지 못한다. 노구덕의 광증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찾아내지 못하는 한, 노구덕의 자리는 여전히 공석으로 남을 것이고, 지도자의 긴 부재는 차후 레그나토르의 분열로 이어질 것이다. 어찌어찌 중간에 복귀한다고 해도 그 권위는 절대 예전 같지 않을 터. 한번 무너진 위엄을 바로 세우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콜트레인은 노구덕과 임유진이 벌인 싸움의 여파로 초토화된 대지를 훑어보았다. 업화에 의해 녹아내린 암석과 바위들… 그 면적만도 반경 수십 미터. 유메르바인과 클라리스가 나서서 막지 않았다면 그 범위가 더욱 넓었을 것이다.
“장소 선정을 잘했군. 칼립스에서 싸움이 일어났더라면… 엄청난 재앙이었을 테니.”
“형수님들께서 일을 잘 처리하신 덕분이지요.”
“소피아 총수의 계획인가? 하긴, 그녀라면 이런 기책을 낼 법도 해. 아쉽군. 레전더리에서도 십년 전부터 눈독을 들이던 인재였는데… 그때 천만금을 줘서라도 영입을 했어야 했어.”
“소피아 형수님은 돈에 흔들릴 분이 아닙니다.”
“프하하. 그렇겠지. 그나저나 우린 어떻게 되는 건가?”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포로 신세가 되었음에도 콜트레인의 호탕함은 여전했다. 아니면, 달리 믿는 바가 있는 것일까.
이두식은 황소처럼 우묵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조금 전까지 광포하게 포효하며 적들을 몰아치던 검은 야수와 동일인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고요했다.
“이대로 레그나토르의 비밀 감옥으로 압송될 겁니다. 몸이 편하진 못하겠지만, 그 정도는 감수해 주십시오.”
“하하. 패자가 무슨 할 말이 있을까. 하지만… 지금 밑에 기다리고 있는 기자들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위에서 이만큼 소란을 피웠는데, 아마 아래도 난리가 났겠지. 그들의 눈을 피할 수 있으리라 보나?”
“콜트레인 님이 걱정하실 일이 아닙니다.”
“걱정이라기보다… 그냥 알려주는 거라네. 어차피 곧 알게 될 일이기도 하고. 고작 싸움 한번 이겼다고 서부를 손에 넣을 수 있을 줄 알았나?”
뱀이 종아리를 타고 기어오르는 것처럼 께름칙한 어조…. 굉장히 불길한 여운을 남기는 말이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래 기자들 중에 끄나풀이 꽤 많거든. 지금쯤 온 대륙에 방송이 송출되고 있을 거야. 이번 회담은 두 세력을 잡아먹기 위한 레그나토르의 함정이었다는 식으로 말이지.”
“……!”
“전쟁이다. 레그나토르가 비열한 방식으로 선수를 쳤으니, 서부연맹과 도미니온으로선 어쩔 수 없는 결정이지. 모든 책임은 자네들이 지게 되는 거고. 허허… 이 싸움에서 일방적으로 패배할 줄은 미처 몰랐지만 말이야.”
이두식의 동공이 파도처럼 출렁였다. 말인즉, 서부연맹과 도미니온의 음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그들은 이미 방아쇠를 당겼다. 이번 싸움의 결과와는 상관없이 전쟁을 일으킬 작정이었고, 언론사를 통제하여 미리 포석을 깔아두었다.
하지만….
“…그리 호락호락하게 당하진 않을 겁니다.”
“뭐라?”
“당신들이 그랬듯이, 우리도 준비를 소홀히 한 게 아니니까요. 저는 동료들을 믿습니다.”
이두식은 어리둥절해하는 콜트레인의 어깨를 툭 치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런 그의 눈은 저 아래 펼쳐진 산등성이를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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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그나토르와 서부연맹, 도미니온의 무력충돌이 벌어진 그 시각.
원래대로라면 회담 결과를 기다리고 있어야 할 광산 아래의 임시 캠프는 부산을 떠는 사람들의 고성과 소음으로 소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속보! 레그나토르, 도미니온과 서부연맹을 함정에 빠트려…… 이봐, 지금 이거 제대로 나가고 있는 거야?”
“아니, 그게… 먹통입니다. 대체 어떻게 된 건지….”
“이런, 제기랄!”
회담이 펼쳐지고 있는 광산을 배경 삼아, 심각하게 속보를 내보내던 중년 사내의 인상이 와락 구겨진다. 그를 비롯한 취재팀은 서부의 유력한 정론지에 소속되어 있는 이들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제대로 됐잖아! 장비불량이라도 일으킨 것 아냐?”
“그럴 리가 없습니다! 보십쇼, 다른 팀들도 마찬가지라고요!”
영상수정을 들고 있던 남자가 억울하다는 듯 항변하자, 사내는 크게 혀를 찼다.
과연 그의 말대로 다른 언론사의 취재팀들 역시 똑같은 문제로 우왕좌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좀 전까지만 해도 제대로 송출되었던 영상이 갑자기 왜 먹통이 되었는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전전긍긍하던 사내는 급기야 초조함을 이기지 못하고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봐… 이번에 돈을 얼마나 받았는 줄 알아? 아니, 돈이 문제가 아냐! 방송을 내보내지 못하면 본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말씀하셔도 저로선…….”
“크으으윽! 고쳐! 어떻게든 고치란 말이다!”
털썩 주저앉은 사내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다른 스태프들을 다그쳤다. 성화를 들은 스태프들은 남몰래 투덜거리면서도 어떻게든 방송을 정상화하기 위해 아등바등 매달리기 시작했다. 그들도 이번 방송에 직장의 명운이 걸려있다는 것을 아는 탓이다.
그들이 내보내려고 했던 속보의 내용처럼,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이런 전쟁 통에 언론사 한둘 쯤 사라진다 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밥줄을 잃지 않으려면 필사적으로 매달릴 수밖에.
혼자 멀거니 주저앉은 사내는 멍청히 고개를 들어 산 위쪽을 바라보았다. 회담이 개시된 이래, 기이하다 싶을 정도로 조용한 산 위를.
“도대체… 이게 어찌된 일이냔 말이야…. 통신도 안 되고, 영상 송출은 불량인데다가… 왜 위에선 아무런 일도 없는 거지? 죄다 자빠져 자고 있는 거 아니냐고?”
누군가에게 따지듯이 중얼거리는 사내였지만, 그의 넋 나간 물음에 답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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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리스와 시각을 공유해, 회담 장소의 상황을 살피던 데모나는 숨을 씨근덕거리며 코허리에 깊은 잔주름을 만들었다.
“망할 구더기 같으니라고…. 임유진, 이 바보도 정말 구제불능이네.”
거듭된 폭언과 공격에 이성이 무너져버린 임유진이 저항을 포기했을 때에는 정말이지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유메르바인이 약간만 늦었거나, 클라리스가 움직이는 게 조금만 늦었으면 천추의 한으로 남았으리라.
그녀가 약에 섞은 것은 일전에 언급했던 대 카름용 진정제였다. 단지 복용만 했을 때에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지만, 클라리스의 화살촉에 묻어있는 촉진제와 결합하면 강력한 반응을 일으킨다.
평소의 노구덕이라면 이런 진정제가 통용될 리 없다. 그러나 카르믹스톤을 복용해 카름 조직을 극도로 활성화한 상태의 그라면, 그 지분에 비례해 진정제의 효과도 올라가게 된다. 게다가 그 약의 농도는 한 방울만으로도 오우거 백 마리를 잠재울 수 있을 정도였으니… 아무리 괴물 같은 저항력을 가진 노구덕이라도 버텨낼 수 있을 리 없다.
원래 카름용 진정제는 제압된 카름에게 마법적 수식을 새겨 넣은 뒤에 사용하는 게 정석이지만, 그의 몸에 뿌리내린 카름 조직의 구조와 성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데모나는 그의 몸에 심어 둔 주술식으로 수식을 대체했다.
“왜 그러느냐? 주인이 무슨 짓을 저지르기라도 한 게냐?”
옆에서 사람 형상을 한 파충류가 뭐라뭐라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렸지만, 데모나는 그녀의 말을 가뿐히 무시했다.
“그보다… 제법인데? 꼬맹이.”
“히히. 그건 이 몸보고 하는 소리더냐? 악독한 마녀도 제법 옳은 소리를 할 때가 다 있구나.”
브리트라는 커다란 마법진 위에서 광역 환상 주문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간만에 칭찬을 받은 게 어지간히 기뻤는지, 덩실덩실 어깨춤까지 추며 기뻐했지만… 안쓰럽게도 데모나의 눈길은 그녀를 향하고 있지 않았다.
“…제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나직하게 답한 소냐는 겸손히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긴 해. 처음부터 네가 자청한 임무니까. 만약 해내지 못했으면 내가 가만두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열다섯 살짜리가 산맥 전체를 뒤덮는 마력파장을 발산하는 건 차원이 조금 다른 얘기지.”
스펠브레이커나 안티메이거스처럼 특수한 클래스를 지닌 이들이 반(反) 마력, 혹은 마력동결을 행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 헌터들이 파장을 펼치는 건 엄연히 다른 문제다.
마력을 다루는데 특출 난 마법사들이 상대의 마력을 점하거나 방해하는 건 흔히 있는 일이지만, 그건 협소한 공간이나 짧은 시간에 국한된다.
말인즉슨, 아무리 경지가 뛰어난 마법사라도 광범위한 산지에 걸쳐 방해파장을 발산하고, 유지하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이미 그 마법사는 십존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서리여왕 하유라나 임유진은 비슷한 규모의 마력통제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녀들의 경우엔 한쪽은 얼리고, 다른 한쪽은 태운다는 게 맞겠지만.
헌데 소냐는 그런 수준에서나 가능한 일을 보란 듯이 해냈다.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히고, 의복 전체가 땀으로 흠뻑 젖어 눅진눅진해지긴 했어도… 아직까지 굳건히 마력장을 유지하고 있었다.
‘괴물이잖아…. 대륙사를 다 뒤져봐도 이런 전례는 없을 거야.’
냉막한 눈빛 위로 짧은 감탄이 스쳤다. 치미는 놀라움을 접어둔 데모나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두 사람을 독려했다.
“둘 다 조금 더 버텨.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조만간 결착이 날 거야.”
“예.”
“배가 고픈데…. 아, 알겠다. 하면 되지 않느냐.”
칭얼대는 브리트라를 무서운 눈빛으로 쏘아본 데모나는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 작품 후기 ============================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비가 내리라고 했는데.. 오늘 아주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쏟아지네요.
그런데 그렇게 시원하지가 않아요.. ㅠㅠ
아주 밤이 되면 좀 나으려나요? 간절히 바라야겠네요..
12시 이후에 한편 더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