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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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발발(勃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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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한 전쟁의 서막이었다.
벨룸 산맥을 넘어, 레그나토르를 침공하려는 도미니온의 군대와 협곡 관문에서 그들을 막아야만 하는 루가니의 3천 병력이 충돌했다.
전황은 누가 봐도 열세.
서부 삼국 중 가장 강력한 국력을 자랑하는 도미니온이다. 영토가 넓고 인구가 많은 만큼 그 군사력도 압도적. 협곡 관문의 3천 병력이 용맹하게 싸운다한들, 예닐곱 배를 웃도는 병력의 차이는 기세만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반드시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었으나, 정작 배후지인 칼립스는 군을 움직일 수 없는 처지였다.
도미니온의 군대가 산맥에 진입한 그 시각, 북쪽의 서부연맹에서도 국경선을 넘은 것이다.
서부연맹과 맞닿아 있는 국경을 넘으면 수도인 칼립스가 지척이다.
국경지대를 초토화시킨 서부연맹의 병력은 파죽지세의 기세로 칼립스를 향해 밀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예고 없이 시작된 전쟁.
암암리에 동맹을 맺은 도미니온과 서부연맹이 레그나토르를 양쪽에서 침공했다는 소문은 금세 칼립스 전역을 흉흉하게 만들었다.
불안에 휩싸인 시민들 중 상당수가 짐을 싸서 피난길에 올랐다. 병사들을 도와 항전을 하겠다는 자들도 많았지만, 대다수 시민들은 돌아가는 전황에 극히 부정적이었다. 상식적으로 두 국가가 연합해서 쳐들어오고 있다는데, 굳건히 믿음을 유지할 수 있는 자들이 얼마나 있을까.
시민들의 동요가 심해지자, 소피아는 총사직권으로 비상계엄령을 발동시켰다. 그리고 도시 전역에 송출되는 방송에 직접 나와, 시민들에게 간절히 호소했다.
“칼립스의 시민들에게 고합니다. 이미 알고 계신 분도 계시겠지만, 우린 전례 없는 위협에 맞닥뜨렸습니다. 북에서는 서부연맹이 국경을 넘었고, 동에서는 도미니온의 군대가 산맥을 넘으려 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우리의 용맹한 병사들이 골리앗 게이트에서 선전하고 있지만, 상황은 낙담할 수 없습니다.”
“방금 전, 북쪽의 국경도시 딕툼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아마도 서너 시간 뒤에는 서부연맹의 병력들이 칼립스에 도착할 겁니다.”
소피아는 불리한 형편을 숨기지 않았다. 각지의 상행이 활발하게 오가는 칼립스의 특성상 정보 통제에는 한계가 있었으며, 오히려 섣불리 거짓을 말하다가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모든 것을 밝히는 대신, 칼립스 시민들의 믿음에 기대는 방식을 택했다. 불확실한 감성에 기대는 건 그녀의 방식이 아니었지만, 확산되는 동요를 막기 위해선 다른 수가 없었다.
“도시를 떠나는 피난민은 막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히 알아주십시오. 도시가 함락되는 그 순간, 가장 먼저 죽는 것은 제가 될 것입니다. 제가 살아 숨 쉬는 한, 절대로 놈들의 군홧발은 칼립스의 성문을 넘지 못할 겁니다.”
“칼립스를 위해 목숨을 버려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단지, 레그나토르가 투르의, 구 라만 왕국의 전철을 밟지 않는 것입니다. 나라를 잃어버린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해 주십시오. 그리고, 레그나토르가 사라진 이후에 과연 지금보다 나은 삶을 누릴 수 있을지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이리스에서 시작해 레그나토르에 이르기까지, 햇수로 칠팔년에 가까운 세월을 이 도시에 몸 바쳤습니다. 그 기간 동안 저희는 여러분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건 앞으로도 계속되겠지요.”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이것뿐입니다. 선택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그럼… 전장에서 뵙겠습니다.”
소피아의 공표 전문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발표가 끝난 뒤에는, 긴트 총독 황석문이 출연하여 이 전쟁의 부당함과 도미니온, 서부연맹의 만행을 지탄했다.
아다만티움 광산의 회담 자리에서 두 세력이 연합하여 레그나토르 수뇌부를 습격하고, 그도 모자라 계획된 전쟁을 일으켰으며, 그 전투에서 승리한 레그나토르가 파멸의 현자를 포함한 주요 인물들을 포로로 잡았다는 것이 해당 발표의 주된 골자였다.
“이길 필요도 없다! 그저 버티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놈들에게는 그토록 자랑하던 파멸의 현자도, 대전사 콜트레인도, 그 누구도 남은 이들이 없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여전히 대륙 최고로 꼽히는 강자들이 남아 있지! 그리고 드높은 칼립스의 성벽과 강철대로의 풍족한 물자들이 있다! 이토록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데, 겨우 이가 빠진 칼이 두려워서 도망칠 것인가!”
“패배를 바라보는 전투가 아니다! 말하자면 이건 발악, 머리를 잃어버린 가증스런 짐승들의 마지막 몸부림인 것이다! 의장님과 대모님께서 복귀하시면, 놈들의 음모도 분쇄될 것이다! 지금 몰려오는 놈들은 그저 수만 많은 양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소피아와 황석문의 공표는 공황 상태에 빠져 있던 칼립스의 분위기를 급격히 가라앉게 만들었다.
사실, 건립된 지 5년도 되지 않은 레그나토르의 시민들에게 목숨을 바칠 정도의 애국심을 바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다. 아니, 아무리 충만한 애국심을 가지고 있더라도 패배가 확정된 전투에 목숨을 불사르며 나설 수 있는 시민들이 얼마나 될 것인가?
중요한 것은 승리의 가능성. 그것을 인지시키는 것이다.
소피아는 섣불리 승리를 장담하지 않았다. 다만, 황석문의 발표를 통해 싸우기만 하면 ‘지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했다.
같은 배수의 진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이겨야하는 것과 지지 않기만 해도 되는 것의 차이는 크다.
회담에 나간 수뇌들이 복귀할 때까지 버티기만 한다면…….
전쟁에 진다면 우리 모두 노예가 될 것이다! 그렇게 둘 순 없어!
하물며 그들에게는 남아 있는 정예들이 없다고 하지 않은가? 그 파멸의 현자를 포함해서!
바람잡이들을 주축으로 만들어진 호응의 기류는, 이내 뜨거운 열풍이 되어 칼립스 전역을 휩쓸었다.
강철대로의 장인들은 팔이 부러져라 망치를 두드렸으며, 짐을 꾸렸던 칼립스의 시민들은 꾸러미를 풀고 칼과 창을 잡았다. 힘이 없는 아낙네들은 치마를 찢어 성벽으로 물자를 날랐다. 덜 여문 아이들도 어미를 도와 고사리 같은 손을 보탰다.
그 이후 긴트에서 보낸 지원군이 때맞춰 도착함에 따라, 도시를 둘러싼 항전의 열기는 절정에 달했다.
“총사님, 물자 징집이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강철대로의 장인들도 징발에 협조적이고요.”
“다행이네요. 시민들은요?”
“공표 전만 해도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지만, 지금은 맞서 싸우자는 분위기가 큽니다. 피난민들도 크게 줄었고요. 방송이 확실히 효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고무적인 상황이건만, 고개를 끄덕이는 소피아의 낯빛은 여전히 어둡기만 했다.
“…상황이 말처럼 흘러가면 얼마나 좋을까요.”
“분명히 그리 될 겁니다. 실제로 저쪽엔 눈여겨 볼만한 강자들이 별로 남아 있지 않잖습니까?”
“그게 이상하다는 거예요. 그리 승산이 높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왜 군을 일으켰을까요? 그들은 포로 협상조차 응하지 않고 있어요. 모든 통신 라인이 두절된 상태인데… 이건 너무 비정상적이에요.”
“마지막 발악이겠지요. 언론을 이용한 흔들기도 수포로 돌아가지 않았습니까? 모든 계획이 실패했으니, 남아 있는 수단이 없었을 겁니다.”
“으으음….”
황석문의 말에도 굳은 표정을 풀지 않는 소피아.
“대모님과는 아직도 연락이 닿지 않고 있나요?”
“그게… 아직입니다. 통신 회선 문제인지… 잠깐 연락이 되지 않는 것뿐이니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랬으면 좋겠네요.”
소피아의 하얀 낯빛에 어린 그늘이 더더욱 짙어진다. 긍정적인 생각만을 하는 것도 좋지만, 그녀는 언제나 최악을 대비해야 하는 책사다.
그녀가 상정한 최악은 도미니온과 서부연맹의 동맹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불길한 예측은 들어맞았고, 혹시나 해서 골리앗 게이트에 병력을 주둔시킨 것이 신의 한수가 되었다.
소피아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회담 쪽에도 신경을 썼다. 신궁 클라리스와 데모나를 매복시켰고, 루키 수준을 훨씬 뛰어넘은 소냐와 여차하면 조커로 활용할 수 있는 브리트라까지 투입했다. 소냐를 전선에 배치시킬 때는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도미니온과 서부연맹이 연합한 전력을 상대하려면 갓난아이의 손이라도 빌려야 했으니까.
다행히 그 판단은 주효했고, 야욕을 두러낸 두 세력의 기습을 성공적으로 받아칠 수 있었다.
이제 다른 변수는 없을 터. 그런데… 아직도 불안감이 가시질 않았다. 그 정체불명의 스산함에 방점을 찍은 것은,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문제없이 교신하던 임유진과의 연락두절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빛을 잃은 수정구를 응시하는 눈길에 암울한 기운이 드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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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벨룸 산맥에 남아 있는 임유진 일행 역시 큰 곤란을 겪고 있었다.
날뛰는 노구덕을 제압하고, 무력화된 포로들을 데리고 산을 내려갈 채비를 할 때만 하더라도 분명 분위기는 괜찮았다.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임유진이 한동안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긴 했지만, 그걸 제외하면 큰 동요는 없는 편이었다.
어쨌거나 전투는 승리했고, 적들의 요인들을 포로로 잡았다. 앞으로 다가올 전쟁에 있어 이 전과는 분명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불현듯 날아든 급보로 인해, 들뜬 분위기는 한순간에 차갑게 가라앉고 말았다.
도미니온과 서부연맹의 동시침공.
크게 놀란 임유진 일행은 곧바로 두 세력의 수뇌부와 협상을 하고자 통신망을 가동했지만, 영상수정에 보이는 것이라곤 먹통을 의미하는 까만 화면뿐이었다.
거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로부터 얼마 뒤에는 알 수 없는 원인으로 그나마 가동되던 통신망 전체가 불통이 되어버렸다. 워프게이트도 마찬가지로 사용불가.
더욱 더 큰 문제는 통신과 이동을 방해하는 이 파장이 산을 내려가는 길목까지 막고 있다는 것이었다.
“…저도 모르겠군요. 이런 파장은 처음이에요. 방어력이 뛰어나다기보다, 표면에 닿기도 전에 마력과 투기를 모두 와해시키고 있어요. 애초에 맞출 수가 없으니 뚫을 수도 없는 거죠.”
길을 가로막은 장막의 표면을 신중하게 살핀 아가레스트의 말이었다.
“…그러면 장막을 깨부술 방법이 없다는 건가요?”
“이론적인 방법은 떠오르지 않네요. 혹시 모르죠. 여기 있는 인원이 총공격을 한다면 가능할지도요. 저로선 회의적이지만요.”
그 말을 들은 이들의 낯빛이 심각해진다. 그게 말이 되느냐 외치고 싶어도, 아가레스트가 소환한 황금 군대가 장막을 뚫어내지 못하는 것을 직접 목도한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무리의 선두에 선 임유진은 뒤를 돌아보았다. 선두와 후미를 맡고 있는 레그나토르의 병력들과, 그 중간에서 굴비처럼 엮인 채 끌려오고 있는 포로들의 얼굴이 보인다. 그 숫자가 대략 백오십 명.
“어떻게 할 건가요?”
“총공격을 해야겠어요. 더는 이곳에서 시간을 지체할 순 없으니까요.”
아가레스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라도 임유진과 같은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그럴 줄 알았어요. 힘을 보태도록 하죠.”
“…고마워요.”
여러 의미를 담은 눈빛이 교차한다. 묘한 빛을 띤 아가레스트의 동공과 눈을 맞춘 임유진은 상당히 복잡한 기색이었다. 아직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저 여인이 쌍둥이의 친모라고 생각하니 어쩐지 기분이 이상했다.
그도 잠시, 평정을 되찾은 임유진은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일거에 장막을 깨부술 정예들을 호명하기 위함이었다.
“승찬 씨…….”
쿠르르릉!
별안간, 땅속 깊은 곳에서 일어난 굉음이 그녀의 목소리를 흔적도 없이 삼켜버렸다.
“뭐, 뭐야!”
“지진이다!”
“어어어엇! 조, 조심해!”
쿠궁! 쿠구구궁!
우레와 같은 굉음이 울리는 가운데, 여기저기서 터져나온 고함과 비명이 잇따랐다. 지면이 정신없이 들썩이는 와중에 겨우 균형을 잡은 임유진은 급히 고개를 틀었다가, 두 눈을 한껏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길게 이어진 행렬이 두 개로 나뉘고 있었다.
정확히는 땅이 갈라지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무저갱을 중심으로, 지표면이 두 쪽으로 갈라져 밀려나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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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주말 잘 보내셨는지요?
작가는 일요일 온종일 푹 쉬었습니다. 전날의 숙취도 있고 해서요.. 도저히 선뜻 키보드에 손이 올라가질 않더군요.
원래는 토요일날 올리려고 했던 연재분을 올립니다. 쉴만큼 쉬었으니, 내일은 무리없이 연참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늘상 그렇지만, 한 주가 시작되었으니 열심히 달려봐야죠.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