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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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 레드테러(Red terror)
169# 레드테러(Red terror)
산맥을 통째로 뒤흔들던 대지진은 그로부터 이삼십 분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사방이 단단한 장막으로 가로막힌 탓에, 장독 안의 생쥐처럼 갇혀버린 임유진 일행은 필사적으로 포로들을 보호하며 지진이 멈추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지진이 멈추고, 무리를 두 패로 갈라놓은 균열 근처로 다가가 살핀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땅거죽을 길쭉하게 째 놓은 듯한 틈 아래로, 도저히 그 너비를 가늠할 수 없는 대공동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매의 눈’ 특성을 발휘해 유심히 공동 안을 살피던 임유진은 슬며시 이마를 짚었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박승찬이 조심스런 물음을 던졌다.
“대모님, 뭔가 보이는 게 있습니까?”
“…아니요. 바닥이 보이질 않아요. 게다가 제 능력은 야간 시야에 특화된 게 아니라서……. 소율아, 너는 어떠니?”
“저도 그래요. 이거 엄청 깊은 것 같은데… 이게 말로만 듣던 싱크홀(Sinkhole)인 것 같은데요?”
“그런 것 같구나.”
나이트리퍼 클래스를 가진 신소율은 여기 있는 누구보다 밤눈이 밝았다. 그런 그녀가 구덩이의 깊이를 가늠하지 못할 정도라면… 도대체 땅이 얼마나 깊게 꺼진 것인지 짐작이 되질 않았다.
“일단 나뉜 일행을 한쪽으로 옮겨야겠어요.”
“제가 에테르로 다리를 놓겠습니다.”
“간이 다리라면 저도 만들 수 있습니다.”
박승찬을 비롯해 아직 부상에서 헤어나지 못한 도일, 그리고 몇몇 마법사들이 다리를 놓겠다고 자청하며 나섰다. 확실히 일일이 비행 주문으로 옮기는 것보다는 몇 개의 다리를 놓아서 이동하는 편이 효율적일 터. 구속구를 착용하고 있는 포로들을 감안하면 이 방법이 최선이었다.
인원을 선별한 임유진은 신속하게 지시를 내렸다.
“고마워요. 다른 분들은 멀찍이 물러서는 게 좋겠어요. 공동 때문에 지반이 많이 약해졌으니까요. 잘못하면 무너질 위험이 있어요.”
“알겠습니다.”
지시를 받은 모두가 부산스럽게 움직이는데, 오직 한 사람이 여전히 자리에 남아, 시커먼 균열 내부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아가레스트였다.
“저…….”
소리내어 그녀를 부르려던 임유진은 일순 말끝을 흐렸다. 그러고 보니 이름조차 모르는 여인이다. 여보세요? 저기? 당신? 뭐라고 불러야 할지… 마땅히 적합하다 생각되는 호칭이 없었다. 전장에서 보여준 무력도 결코 자신의 아래가 아닌데다가, 결정적으로 그녀는 레그나토르 소속 사람이 아니다. 애초에 지시를 권한 같은 것도 없었다.
임유진이 실없는 고민으로 머리를 싸매고 있는 그때, 우두커니 공동 안을 응시하던 아가레스트의 입이 열렸다.
“이상하네요.”
“네. 이상 씨… 네, 네?”
엉겁결에 헛소리를 내뱉었다가 입을 틀어막는 임유진이다. 아가레스트는 그런 그녀를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다가, 설레설레 머리를 내저었다. 그러자 그녀와 마주 선 임유진의 얼굴이 멋쩍게 붉어졌다.
“뭐, 뭐가 이상한가요?”
“이 안을 보세요.”
“……?”
가늘게 좁혀진 임유진의 눈매가 아가레스트의 손가락 끝을 따라간다. 그러나 역시 보이는 건 평범하기 짝이 없는 돌과 암석, 그리고 겹쳐 놓은 팬케이크 같은 지층들뿐이었다. 쩍쩍 갈라졌다는 걸 제외하면 어딜 보나 평범한 지반. 대체 뭘 보라는 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조금 자존심이 상하긴 했지만, 역시 봐도 봐도 모르겠다. 임유진은 솔직히 사실을 시인했다.
“…잘 모르겠네요. 어디가 이상하다는 거죠? 어딜 보나 평범한 지반 아닌가요?”
“그게 이상하다는 거죠. 이 장소가 어딘지 잊은 건가요?”
“…앗!”
“그, 그러고 보니!”
그제야 뭔가를 깨달은 임유진의 동공에 커다란 파문이 일었다. 더불어,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헌터들도 흠칫 놀란 얼굴들이었다.
아가레스트가 지적한 맹점.
그것은 이 장소가 평범한 땅이 아닌 광산지대라는 점이다. 그것도 엄청난 양의 아다만티움이 묻혀 있는 아다만티움 광산.
더욱이 이곳은 광산 중심부인 회담 장소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사전조사로 추정된 아다만티움 광맥의 분포와 매장량이라면, 단절된 지층 표면에 묻혀 있는 아다만티움 원석의 일부라도 보여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그 무진장의 아다만티움이 어떻게 된 게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엷은 붉은빛을 발하는 아다만티움 층은 고사하고, 까무잡잡한 돌덩이들과 암반, 시커먼 어둠만이 눈에 보이는 전부였다.
“광맥이… 사라졌어?”
절로 허탈한 음성이 흘러나온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이 증발해버렸으니, 어찌 황당하지 않겠는가. 꼭 귀신에라도 씌인 듯한 기분이었다.
“아니… 아직 단정짓기엔 이르지 않습니까? 이곳이 광산 중심부도 아니고….”
“맞습니다. 광맥에서 떨어져서 보이지 않는 것일 수도….”
“광맥은 사라졌어요. 방금 전의 지진, 그리고 이 정체불명의 싱크홀. 이것들이 어떻게 생겨났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반론을 제기하던 이들의 입이 벙어리처럼 다물린다.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모두의 얼굴에 음습한 기운이 깔리면서, 침중한 기류가 감돌았다.
“아다만티움 광맥이 증발하면서 약해진 지반이… 무너져 내렸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정확해요.”
“어떻게 그런… 아다만티움은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광물이 아닙니까? 가공되지 않은 아다만티움이라도 강철보다 훨씬 더한 강도와 무게를 가지고 있다 들었습니다. 지하수라면 모를까 어떻게 그런 금속이 한순간에 증발할 수 있단 말입니까?”
“…잠깐, 잠깐만요.”
갑자기 손을 들어 도일의 말을 제지한 아가레스트의 표정이 짧은 시간 동안 무수한 변화를 일으켰다. 인상을 쓰기도 하고, 입술을 잘근잘근 씹기도 하고. 종래엔 그녀답지 않게 굉장히 다급한 얼굴이 되었다.
“이럴 수가…. 저 장막, 지진, 사라진 광맥… 하, 이제야 이해가 되는군요. 처음부터 이럴 속셈이었어.”
“무슨…?”
“이럴 때가 아니에요. 지금 당장 작업을 중단하고, 전투태세를 갖추세요.”
파아아앗!
껍데기만 남은 지표면에 찬란한 황금의 탑이 현신했다. 느닷없이 전능의 탑을 소환한 아가레스트는 깜짝 놀란 시선을 보내는 모든 헌터들에게 고했다.
“이레귤러입니다. 어쩌면, 최악의 상황이…….”
“끼아아악—!”
“…칫!”
짧게 혀를 찬 아가레스트는 재빨리 땅을 박찼다.
균열의 중앙을 건너고 있던 포로 한 명이 공중에서 사지를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창백한 낯으로 연신 피를 게워내는 그녀의 복부엔 굵직한 송곳 같은 것이 박혀 있었다. 붉은 각갑으로 번들거리는 그것은 얼핏 보기에 거대 말벌의 벌침처럼 보였다.
금빛 광휘를 몸에 두른 아가레스트는 반달 모양의 마력포를 쏘아 보내, 균열로부터 삐죽하게 솟아오른 ‘그것’을 베어내고 포로를 구출했다.
아니, 구출했다는 표현은 틀렸다. 아가레스트에게 붙들린 여성 포로의 눈에는 이미 생기가 하나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 피로 물들어 힘없이 벌어진 턱만이 인형처럼 삐걱거릴 따름이었다.
“요한나! 아, 아아아!”
명을 달리한 여인의 이름이었을까. 절망 가득한 절규를 토하는 남성의 앞에 여인의 사체를 내려놓은 아가레스트는 쉴 틈도 없이 다시 몸을 날렸다.
그녀는 보았던 것이다. 여인을 낚아챌 때, 저 무저갱 아래에서 깜박이는 거대한 한 쌍의 눈을.
“오라! 발할라의 영령들이여!”
전능의 탑에서 내뿜어진 황금 빛무리가 아가레스트의 깃털 같은 육신에 스며들었다. 막강한 기운을 한데 응축한 아가레스트는 악마의 아가리처럼 입을 벌린 균열을 향해 손을 뻗었다.
팟!
작은 손아귀에서 두터운 황금빛 광선이 발사되었다. 그와 동시에, 엄청난 폭음이 지축을 뒤흔들었다. 지표면을 재차 강타한 지진은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렬했다.
꽈르르릉! 콰릉!
-키기기기기기기–!
하늘과 땅이 뒤집히는 동안에도 대열을 유지하려 애쓰던 헌터들의 안색이 일변했다. 땅이 울부짖는 굉음 말고도 기이한 괴성이 귓전을 어지럽혔기 때문이다. 뾰족한 날붙이로 강철판을 자각자각 긁어대는 듯한 기음……. 이건 절대로 돌과 돌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아니었다.
노련한 헌터들은 단번에 이 기음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아니, 알아차리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방금 전의 지진으로 급격히 벌어진 균열 속. 그 틈바구니 속에서 한 쌍의 거대한 더듬이가 불쑥 튀어나왔으니까.
“카름이다!”
“전원 전투 준비!”
“포로들은 뒤로 물리도록 하세요!”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사태였지만, 꼴사납게 우왕좌왕하는 이들은 없었다. 이들은 모두 고르고 고른 정예. 예고 없이 발생하는 돌발 상황에는 누구보다 익숙했다.
두 패로 갈라진 헌터들이 서둘러 전열을 갖추는 사이, 지저에서 솟아난 괴물의 상체가 온전히 그 위용을 드러냈다.
그것은 거대한 지네였다.
아니, 거대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압도적인 크기다. 균열 밖으로 드러난 다섯 개의 마디만 해도 이십 미터가 훌쩍 넘었으니, 땅속에 묻혀 있는 나머지 몸통을 감안하면 아무리 작게 잡아도 오십 미터… 어쩌면 백 미터에 가까운 초대형 개체일지도 몰랐다.
반질반질한 각갑으로 뒤덮인 놈의 몸통은 연한 붉은색이었다. 척추처럼 차곡차곡 달라붙어 있는 각 마디의 좌우에는 각기 서너 개의 길쭉한 발이 징그럽게 꿈틀거리고 있다.
모서리가 둥근 세모꼴 형태로 되어 있는 머리통에는, 최초로 선보였던 길쭉한 더듬이가 마치 일행을 노려보는 것처럼 구부러져 있었다. 아마도 그 더듬이에서 발사된 침이 조금 전 여성 헌터의 복부를 꿰뚫은 흉기인 것 같았다.
찰칵! 찰칵!
-키키키키키!
입아귀에 달린 두 개의 날카로운 이빨이 집게처럼 맞부딪치며 거슬리는 소리를 낸다. 거대한 동체를 부르르 떨며 기이한 소리를 내는 게, 마치 일행을 비웃는 것처럼 보였다.
헌터들은 모두 말을 잊었다. 지하에서 튀어나온 카름의 규격과 형상이 상상을 아득히 초월했기 때문이다. 근 5년 간, ‘대재앙’이라 불렸던 카름들을 제외하고 저만한 크기의 카름이 나타난 적이 있었던가?
“레드테러(Red terror)….”
“예?”
몇몇 이들의 시선이 뒤를 향한다. 탄식과도 같은 중얼거림을 내뱉은 건, 경악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린 콜트레인이었다.
“말도 안 되는… 저건 레드테러가 아닌가! 거의 한 세기 전에 나타났던 재앙급 카름이야!”
“……!”
이곳에 모인 이들 중 가장 연륜이 깊은 콜트레인의 비명은 일행 전체에 큰 파장을 미쳤다.
재앙급 카름.
레드테러는 몰라도, 재앙급 카름이 지닌 위험성을 모르는 이들은 없다. 불과 몇 년전만 해도 각 지구에 나타난 재앙급 카름 때문에 유례없는 연합군을 결성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런 장소에서 뜬금없이 재앙급 카름이 출현하다니. 실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재앙급 카름이든 뭐든, 어쨌거나 이 자리에서 처리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당연한 말씀입니다.”
임유진의 주위로 이글거리는 백여 개의 단검이 떠오른다. 여전히 일행을 깔보듯이 쳐다보고 있는 놈의 머리를 지그시 노려본 임유진은 팔을 휘둘러 붉은 비를 흩뿌렸다. 그 뒤를 이어, 박승찬이 빚어낸 에테르의 화살이 쇄도했다.
“조심하게! 놈은 몸 전체가 아다만티움으로 이루어져 있어!”
쾅! 콰콰쾅!
콜트레인의 말은 사실이었다. 십존, 그리고 그에 근접한 강자의 맹공에 직격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캐한 연기 사이로 엿보이는 놈의 껍질은 그슬린 자국 하나 없이 멀쩡했다.
놀랄 일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간지럽군.
임유진과 박승찬의 뒤를 이어 공세를 가하려던 헌터들이 한꺼번에 주춤거렸다.
“말…?”
“방금… 저놈이 말한 건가?”
-우하하하하. 이것 참… 다시 태어난 기분이구나. 비로소 있을 곳을 찾은 느낌이야.
“허업! 저, 저기! 저길 봐!”
불신과 경악이 뒤섞인 가운데, 누군가의 다급하게 외치며 어느 한쪽을 가리켰다. 벌벌 두려움에 떨리는 손가락이 향한 곳은 지네의 머리, 사람으로 치자면 미간 사이였다.
불길한 목소리는 바로 그곳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벌레 같은 것들. 너희는 이곳에서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지네의 미간에는 다름 아닌 사람의 얼굴이 박혀 있었다. 괴물의 각갑 속에 파묻힌 중년인의 얼굴은 쉬지 않고 입가를 꾸물거리며 살기 짙은 목소리를 토해내고 있었다.
“오정환 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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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12시 즈음에 한편 더 올리겠습니다~!
호흡이 긴 건 제 종특 같은거라.. 다소 늘어지더라도 양해 바랍니다 ㅠㅠ 중요한 파트라서 단축하는 건 별로 내키지 않네요.
대신 열심히 연참할 테니까요!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