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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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 레드테러(Red terror)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서부연맹의 맹주 오정환.
노구덕에게 처참한 죽음을 당한 이후, 시체가 통째로 연기처럼 사라졌던 그가 재앙급 카름 ‘레드테러’의 일부가 되어 부활했다.
행렬 뒤에서 묵묵히 따라오던 유메르바인 등, 소속이 다른 도미니온의 인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오정환이 이끌었던 서부연맹의 요인들조차 얼이 빠진 기색이 역력하다.
당장 핵심 간부인 콜트레인만 해도 후두부를 세게 얻어맞은 양 넋 나간 낯짝을 하고 있었으니, 다른 이들의 심정이야 오죽하겠는가. 특히 서부연맹의 헌터들은 대다수가 패닉에 빠졌다.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아아, 어떻게 이런 일이….”
모두가 현실을 부정하는 가운데, 가까스로 외출했던 정신을 수습한 콜트레인은 힘겹게 쥐어짜듯이 소리쳤다.
“오정환 맹주! 이게… 이게 어떻게 된 거요! 이성이 남아 있기는 한 거요?”
목청이 터지도록 따져 묻는 그 목소리를 들은 것일까. 거대한 머리통을 곧추세우고, 유리알처럼 투명한 눈알을 번뜩이며 헌터들을 굽어보던 레드테러의 목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콜트레인인가. 자네와는 저녁에 자주 대작을 했었지. 그때는 덩치가 굉장히 크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다시 보니 참으로 작군. 아주 작아. 그 위대한 전사도 여기서 보면 미개한 벌레와 다를 바 없군.
“허어, 허허헛….”
악문 잇새로 허탈한 웃음이 자꾸만 새어나온다. 그와의 과거 일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괴물이 된 오정환은 생전의 기억을 온전히 지니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사람이 급격히 변했을 때부터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허허, 설마 그 껍데기 숨어 있었던 것이 카름이었을 줄이야. 어처구니가 없군….”
-카름? 으하하. 좁은 잣대를 들이대는 걸 보니 너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로구나.
“그러는 당신은 인간이 아니었단 말인가?”
-미물인 너희와 비교하지 마라. 나는 위대한 신의 일부다. 형제의 도움으로 이제야 제 모습을 찾은 것이지. 그런 이 몸에 비하면… 너희들은 그저, 세상에 널린 찌꺼기를 청소하는 청소부에 불과하다. 내 입장에서 보면 널리고 널린 개미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지.
순간, 숨어서 기회를 엿보던 아가레스트의 눈썹이 미미하게 꿈틀거렸다.
‘신의 일부? 형제의 도움…?’
유난히 두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문득, 그녀가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오정환이 흘렸던 말이 생각났다.
‘으허헛! 신궁 클라리스에… 안개여왕 아가레스트…? 그간 어디 숨어있나 했더니, 서부 촌구석에 처박혀 있었단 말인가? 기사로군….’
…그때부터 쭉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지금 하는 말을 듣고 보니 틀림없다. 오정환은 한눈에 그녀의 정체를 간파했었다. 게다가, 저 말투를 보면 이제까지 그녀를 찾고 있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건 어떻게 된 것일까?
그녀는 공식적으로 반군에 의해 처형당한 존재. 하물며 그녀의 맨얼굴을 아는 사람은 극히 가까운 지인뿐이다. 측근이었던 이오가 그녀로 분한 상태로 처형당하긴 했으나, 그때의 인상과 지금의 인상은 미묘하게 다르다. 당장 이곳에 바글바글한 베테랑들도 그녀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했으니까.
그런데, 아무런 연도 없는 오정환이 자신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 오정환이 말한 형제가 그자라면… 저놈이 그놈과 동류라면…!’
빠득! 잔잔하던 황금빛 동공에 거친 격랑이 일었다. 그와 함께 그녀의 몸 주위에서 폭풍과도 같은 기세가 가시처럼 뻗쳐 나왔다
활활 타오르는 증오로 점철된 그녀의 눈앞엔 이미 한 사람의 얼굴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인위적인 이레귤러를 일으킬 수 있을 만큼 시스템에 관한 이해도와 장악력이 뛰어난 자.
각성한 신의 파편과 재앙급 카름.
그리고… 자신과의 씻을 수 없는 악연.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자는 단 한 명뿐이다.
“발레기우스으으으—!”
응어리진 원한이 한순간에 폭발하며, 온 세상이 눈부신 금빛으로 물들었다. 분노한 아가레스트의 뒤에서 후광처럼 터져나온 황금빛 광선은, 순식간에 수만 갈래의 유성으로 화하여 레드테러의 전신으로 빗발쳤다.
-이, 이년이… 크아아… 끼기기기기기이이–!
넘실거리는 금빛의 물결은 레드테러의 거대한 몸뚱이마저 순식간에 삼켜버렸다. 그나마 보이는 것은 황금의 파도 속에서 괴롭게 몸을 뒤트는 거대 지네의 실루엣 뿐. 허나 공중으로 뛰어오른 아가레스트가 악에 받친 연격을 퍼부으면서, 그조차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아가레스트의 갑작스런 폭주. 그 원인은 알 수 없었지만, 이건 틀림없는 기회였다. 임유진은 얼떨결에 찾아온 찬스를 놓치지 않았다.
“공겨억—! 모두 공격하세요!”
뼈와 살이 녹아내릴 듯한 무더위가 찾아왔다. 백색의 폭염을 옷처럼 두른 임유진은 불사조의 날개로 변한 팔을 펼쳐, 만물을 태워버리는 지옥의 업화를 쏟아냈다.
다른 헌터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에테르 임팩트(Ether Impact)!”
에테르를 함축한 박승찬의 검이 빛살처럼 쏘아졌다. 사방을 불태우는 겁화와 황금 파도 사이를 뚫고 들어간 그의 검은, 이내 일시적으로 두 기운을 주춤거리게 만들 정도로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꽈아아아앙!
한도를 넘어서는 후폭풍에 구속구를 착용한 포로들이 갈대처럼 비틀거렸다. 도일과 다른 마법사들이 서둘러 실드를 치지 않았다면 포로들 중 상당수가 크게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을 터다.
그러나 레드테러를 향한 융단폭격은 이제 겨우 포문을 열어젖혔을 뿐이다.
세차게 몰아치는 강풍은 질끈 감긴 눈꺼풀마저 사정없이 뒤집어 놓았다. 그러나 헌터들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계속해서 공세를 퍼부었다.
이두식의 검은 투기가 대기를 가르고, 신소율의 외로운 칼이 초승달 모양의 검기를 바람에 실어 보냈다. 그밖에도 마흔이 넘는 헌터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각자의 장기를 펼쳐냈다.
“으랴아아아아악-!”
대미는 사납게 소용돌이치는 묵색 기운을 휘감은 박지현의 투창이었다. 억센 손아귀를 떠난 장창은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버섯구름의 정중앙에 명중하며 드센 폭음을 자아냈다.
“며, 명중?”
마지막으로 창을 던진 박지현이 얼떨떨한 자문을 던진 찰나, 자욱하게 끼었던 구름이 돌연 기세를 일으키듯 사방으로 확 번져나갔다. 더불어 회색빛 먹구름 속에서 흐릿한 적갈색의 동체가 아른거린다 싶은 순간.
핏빛의 광채가 일대를 뒤덮었다.
“카학!”
“으아아악!”
지면을 향해 부채꼴로 쏘아진 광선 다발은 잔뜩 긴장하고 있던 선두 무리를 무자비하게 뒤덮었다. 도일과 박승찬이 미리 펼쳐둔 방어막조차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혈광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는 온통 핏물만이 그득했다. 정통으로 광선을 쬔 헌터는 뼛조각 하나 남기지 못하고 태워졌으며, 운이 좋아 빗맞은 사람도 신체 일부가 사라져 결코 좋은 형편이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보호가 미비했던 포로들의 상태는 더욱 처참했다.
대전사 콜트레인과 함께, 서부 일대에 드높은 무용을 뽐냈던 본 크러셔 바르트라.
불운하게도… 포로 무리의 맨 앞에 있었던 그는 재앙을 피하지 못했다. 우람한 근육질의 다리는 여전히 땅을 딛고 서 있으나, 그 위에 응당 있어야 할 몸뚱이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매캐한 연기를 피워대고 있는 골반 위 단면 속엔, 새까맣게 타버린 장기 일부만이 남아 꾸역꾸역 검은 피를 게워내는 중이었다.
“바, 바트르라아아아아–!”
가까스로 살아남은 콜트레인은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비통하게 부르짖었다.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살고 죽는 것은 하늘의 뜻에 달렸다지만, 이건 아니지 않은가.
한 마리 범 같은 사내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죽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서부의 위대한 전사가, 우연찮게 던진 돌에 맞아 죽은 개구리처럼 맥없이 죽어버렸다.
그것도 한때 더운 술잔을 함께 나누며 충의를 맹세했던 주군에게.
말도 되지 않는다. 납득이 되지 않았다. 어찌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난단 말인가.
“이노오오옴! 오정화아아안—-! 네놈이 그러고도 사람이더냐!”
-키익, 키기기기기긱–!
귓전을 자극하는 기괴한 울림이 신경을 긁어댄다. 잠시 후, 바르트라를 포함한 다수의 헌터들을 도살한 원흉, 레드테러가 재차 모습을 드러냈다.
먹구름 속에서 다시 나타난 레드테러는 그 폭격을 맞았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멀쩡한 모습이었다.
“죽엇!”
“하압!”
그나마 여력이 되는 아가레스트와 임유진이 쉬지 않고 맹공을 가했지만, 그 무시무시한 공격을 받아내는 레드테러에게는 오히려 약간의 여유마저 보이고 있었다. 수십의 다리를 꿈틀거리며 임유진과 아가레스트를 떨쳐내는 지네의 몸짓은 흡사 귀찮은 날파리를 상대하는 것처럼 무성의했다.
-으하하하! 생각보다 별 거 아니군. 역시 신의 육체다워!
“노옴…!”
지네의 미간에서 광소를 터뜨리는 오정환의 얼굴이 똑똑히 보인다. 그의 표정에는 자신을 따르던 부하들을 도살한 죄책감 따위는 추호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추악한 낯짝을 원한 가득한 눈으로 노려보던 콜트레인은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보게, 룬메이커!”
불처럼 강한 의지가 서린 음성이다. 가만히 심호흡을 하며 마력을 회복하던 도일은 힘겹게 고개를 틀어 그를 바라보았다.
“부탁 하나 하지! 나를, 우리를 풀어주게!”
“무슨….”
“어차피 이대로라면 우린 전부 끝장이야! 자네들만으로 레드테러를 감당할 수 있다고 보는 건가!”
“…음.”
도일의 눈빛이 크게 흔들리자, 콜트레인은 때를 놓치지 않고 간곡히 부탁했다.
“염치가 없다는 건 알고 있네! 하지만 죽을 때 죽더라도, 한 사람의 헌터로서 저 인면수심의 괴물과 싸우다 죽을 기회를 주면 안 되겠나?”
“하지만 저자는 서부연맹의….”
“이미 바르트라가 죽었어. 더는 서부연맹의 그 누구도 저 괴물을 맹주라고 인정하지 않아!”
분노로 끓어오르는 콜트레인의 말이 끝나자마자 주변에서 듣고 있던 서부연맹의 헌터들이 너도나도 들고 일어났다.
“부디 기회를 주시오! 함께 싸우겠소!”
“이대로 개죽음을 당할 바엔, 저 위선자의 심장에 칼을 꽂고 죽겠어요!”
“선봉은 내가 맡겠다! 바르트라 형님의 복수를 하겠어! 제발 부탁이다!”
오정환에게 배신당한 여파가 워낙 컸던지, 콜트레인의 뒤를 따라 일어난 서부연맹의 헌터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서로 싸우겠다고 소리쳤다.
난처한 입장이 된 도일은 작게 손사래를 쳤다.
“말씀에 일리는 있습니다만, 제게는 결정할 권한이…….”
“그렇게 하죠, 도일 오빠.”
가쁜 숨소리와 뒤섞인 여인의 목소리. 신소율이었다. 도일의 옆에서 다가온 그녀는 너덜너덜하게 날이 빠진 위도우메이커를 들어 보이며 실없이 웃었다.
“책임은 제가 질게요. 모두 풀어줘요.”
“소율아.”
“저 아저씨 말이 맞잖아요? 이대로 가면 다 죽어요. 우리도 더는 포로들을 보호할 여력이 없고요. 지금은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힘을 합쳐야 할 때예요. 그렇죠?”
달리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콜트레인은 그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부탁한다.”
“좋아요.”
고개를 주억인 신소율은 앞장서서 콜트레인의 구속구를 풀어주었다.
“왠지 옛날 생각나네요. 이건 노파심에 하는 말인데요, 배신할 생각은 말아요.”
“…뭘 모르는군, 나이트리퍼. 이 콜트레인, 적어도 인두겁을 쓴 짐승은 아니다.”
홀가분해진 팔다리를 이리저리 휘저은 콜트레인은 스산한 눈을 부릅뜨며 대검을 소환했다.
“저 괴물과는 다르게 말이지.”
지긋한 나이에 걸맞지 않은 근육들이 돌덩이처럼 팽창했다. 혼신의 투기를 끌어올린 콜트레인은 대검을 하늘 높이 들어 올리며 천둥벼락 같은 포효를 내질렀다.
“우오오오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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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오늘 비가 시원하게 내리는군요.. 이 파트도 종반부를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이 에피소드가 끝나면 조금 특별한(?) 상황이 전개될 것 같네요.
구더기가 다시 쩌리로 회귀한 듯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기분탓입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구더기가 맞습니다.
그나저나 봐야 할 소설이 하나 있는데~ 정산액이 들어오면 하루 날 잡고 한번 읽어야겠네요. ㅎㅎ;
오늘 밤도 평안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내일도 연참은 이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추코 달아주시면 감사히 받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