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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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 수성(守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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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정령 게오베르그.
북문을 홀로 도맡아 수호하던 그 거인이 사라졌을 때, 간신히 유지되고 있던 칼립스의 희망도 함께 사라졌다.
북문에 배치된 적병들은 서부연맹의 주력이다. 마구잡이로 공격해오는 타 방향의 부대들과는 달리, 게오베르그를 상대로 일사불란하게 치고 빠지는 전술을 유기적으로 수행하는 능력만 봐도 그 점은 명확했다.
말하자면 북문의 병력은 서부연맹이 칼립스를 끝장내기 위해 아껴둔 회심의 비수였다. 심지어 그들은 게오베르그를 상대하면서도 큰 전력의 손실이 없었다.
그런 전력을, 가장 질적으로 뒤떨어지는 예비대가 막아낸다?
한 번, 두 번, 열 번을 거듭 생각해도 가능성이 없었다.
실제로 예비대가 투입된 북문은 그간의 견고함이 마치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가장 큰 이유는 서부연맹의 실력자들을 상대할 강자의 부재였다. 동부, 남부, 서부의 몇몇 정예들이 긴급히 투입되기는 했지만, 그조차도 오래 버티기는 힘들어 보였다.
소피아가 탈진하고, 북문이 뚫릴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은 금세 칼립스 전체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트렸다. 급격히 퍼져나간 좌절의 기운은 가뜩이나 지친 칼립스 병사들의 손발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끝났어….”
“의장님께선 대체 언제 오시는 거지? 대모님은? 조금만 버티면 된다고 하더니….”
“차라리 기회가 있을 때 도망칠 것을…….”
“설마 칼립스를 버리신 건가?”
전황이 어두워짐에 따라, 전투 시작전 사기를 끌어올렸던 소피아의 연설조차 역효과를 내고 있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지원군이 오지 않으니, 오로지 그것에 희망을 건 채 버티고 있던 병사들이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다. 모두가 진창에 빠진 와중에도 사람들을 독려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이들이 있었다.
“포기하지 마라! 우리에겐 아직 여력이 남아 있다! 끝까지 버티면 승기는 반드시 우리에게 온다!”
쩌렁쩌렁한 고함을 내지르며 병사들을 격려하는 이는 백발이 성성한 늙은 전사였다. 날이 번뜩이는 도끼를 메고 앞으로 나선 노전사는 막 성벽을 기어 올라온 적병의 목을 단숨에 내리쳤다.
“크아아압!”
“늙은이가!”
거센 풍압을 일으키며 쇄도한 도끼는 적병의 완갑에 가로막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전성기였다면 완갑째로 적의 목을 취할 수 있었겠지만, 야속한 세월 앞에 멀쩡한 것은 말끔하게 벼리어진 도끼날뿐이었다.
“킁! 이놈들, 급하긴 급한 모양이군! 어디서 뒷방 늙은이까지 나와 가지곤… 엇?”
노전사를 조롱하던 적병의 얼굴이 갑작스레 짙은 당혹감으로 얼룩졌다. 완갑으로 멀리 쳐낸 줄 알았던 도끼날이 자석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았던 것이다.
단단히 붙어있는 도끼날이 팔을 타고 아래로 쑥 미끄러지는 것을 본 적병은 다급히 몸을 비틀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이, 이게… 크아아악!”
팔을 타고 비스듬히 흘러내린 도끼날은 적병의 완갑 이음매를 정확히 파고들어, 팔뚝을 통째로 날려버렸다. 검술에서나 쓰일 법한 고난이도의 기교를 묵직한 배틀액스로 선보인 것이다.
“노병을 얕보면 곤란하지, 친구.”
비명을 지르며 성벽 아래로 떨어지는 적병에게 짤막한 인사를 건넨 노전사는 흠칫 안색을 굳혔다.
“컥!”
답답한 신음과 함께, 뒤에서 그를 기습하려고 했던 적병이 힘없이 허물어졌다. 큼지막한 구멍이 뻥 뚫린 그의 복부엔, 주먹만 한 핏빛 구체가 박힌 채 맹렬한 회전을 일으키고 있었다.
“자네, 아직 감을 덜 잡은 모양이구먼.”
“커허험! 거 무슨 말씀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허허. 그런가? 내가 괜한 짓을 했군.”
뒤편에서 너털웃음을 짓는 이는 도끼를 멘 노전사보다도 훨씬 나이가 들어 보이는 노인이었다.
짧은 순간 두 명의 적병을 처리하며 강렬한 인상을 새긴 두 노인은 다름 아닌 가이탄과 울펜이었다. 칼립스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자, 이미 일찌감치 은퇴하여 일선에서 물러난 그들이 다시 무기를 들고 전장에 나선 것이다.
두 사람만 나선 것이 아니다. 이미 북쪽 성벽의 후방으로는 오래 전에 은퇴한 백발의 헌터들이 형형한 안광을 빛내며 전선에 복귀하는 중이었다. 그중에는 오랜 칩거를 깨고 나선 허문수도 끼어 있었다.
“신의 가호!”
은은한 황금빛의 장막이 성벽 주위로 내려앉는 것을 본 가이탄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젊은 병사들을 향해 목청껏 소리쳤다.
“여기서 물러나면 죽음뿐이다! 과연 저 미치광이들이 자비를 베풀 것이라 생각하는가! 긴말하지 않겠다! 우리는 겁쟁이가 아니다! 전사의 기개를 보여라! 이 늙은이가 앞장서겠다!”
“오, 오오오–!”
네 방위의 전장 가운데 가장 열세에 처한 북쪽 성문.
금방이라도 뚫릴 듯했던 방벽은 지긋한 노병들의 합류로 겨우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신병과 노병, 베테랑들이 어우러진 수비대는 죽음의 위험을 도외시하며 안간 힘을 다해 농성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가까스로 되찾은 전선의 견고함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체력과 지구력이 많이 저하된 노전사들이 계속되는 파상 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북문 일부가 파괴되어 무너지면서, 전황은 다시금 암울한 양상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크윽!”
안면으로 날아드는 화살을 쳐낸 가이탄은 얼얼한 손목을 부여잡으며 이를 악물었다. 고작 이 정도 화살에도 쩔쩔 매야하는 자신의 처지가 한스러웠다.
“여기까진가….”
한도 끝도 없이 밀려드는 적군을 바라보는 눈빛이 음울하게 젖어들었다. 장상기를 비롯한 골렘술사들이 억지로 골렘을 우겨넣어 시간을 끌고 있었지만, 그것도 여기까지다. 넝마가 된 성문이 뚫리는 건 시간문제였다.
서문의 안세희, 남문의 헨더슨 등. 도시의 정예들이 사방에 퍼져있는 탓에 지원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여기까지 버틴 것도 용한 거다. 그렇게 자위한 가이탄이 후들거리는 팔을 들어 올리려는 찰나였다. 그의 옆에서 같이 병사들을 독려하던 예비대 지휘관이 갑자기 다급한 외침을 발했다.
“가이탄 님! 울펜 님! 상부의 지시입니다! 전 병력을 뒤로 물리라고 합니다! 전군! 퇴각하라! 성문 뒤로 퇴각하라!”
그 말을 들은 가이탄은 귀를 의심했다. 그는 힘껏 퇴각을 부르짖는 지휘관의 팔을 붙잡았다.
“그게 무슨 소린가? 퇴각이라니? 북문을 포기하겠단 건가! 누가 그런 명령을…!”
“긴트 총독의 지시입니다! 저도 자세한 건 모릅니다. 그저 무조건 병력을 물리라고….”
“긴트 총독? 황석문, 그 사람이 퇴각 명령을 내렸다고? 외성을 포기하고 내성에서 농성할 셈인가? 그런 말도 안 되는…!”
“퇴각! 퇴각하라!”
이미 녹초가 되어버린 병사들에게 있어, ‘퇴각’이란 명령은 거부하기에 너무나 달콤한 유혹이었다. 빠듯하게 유지되던 북문 전선은 가이탄이 어쩔 새도 없이 급격하게 무너져 내렸다.
“이, 이런…! 이대로 퇴각하면 외성의 주민들은 어쩌란 말인가!”
“자네….”
“형님, 통신구는 없습니까? 뭐라고 말이라도 해주십시오!”
“…아닐세. 지금은, 퇴각을 하는 게 맞아.”
우두커니 서 있는 울펜의 시선은 후방의 어느 한 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기색을 알아차리지 못한 가이탄은 답답한 가슴을 두드리며 그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외성을 포기하면, 칼립스 전체가 무너지는…….”
“저길 보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나?”
“…헉!”
주름진 손가락 끝을 따라 시선을 돌린 가이탄은 자기도 모르게 크게 기함하며 눈을 치떴다.
도심과 이어진 북쪽 대로. 그 대로의 중앙에서 거대한 한파가 몰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서 있는 것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은빛 일색인 여인이었다. 한 마리 은어처럼 매끄러운 굴곡이 선연히 눈을 자극하는 절세의 미녀. 여기저기 해지고 닳아 떨어진 갑주의 상태가 흠이긴 했으나, 서릿발처럼 매서운 그 위엄은 여전했다.
엄청난 충격에 잠시 기능을 정지했던 가이탄의 뇌는 오륙 초 정도가 지나서야 겨우 여인의 이름을 밖으로 토해냈다.
“서, 서리여왕 하유라?”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나도 지금 놀라자빠질 지경이니까. 사령부가 왜 퇴각명령을 내렸는지 알 것 같군.”
“서리여왕 하유라가 마, 맞는 겁니까?”
“고민할 시간 없네. 싸우면 피아를 가릴 위인이 아니야. 솔직히 아군이 맞는지도 모르겠고. 휘말리면 죽을 걸세. 어서 가자고.”
“아, 알겠습니다.”
멍청히 고개를 끄덕인 가이탄은 서둘러 후방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남아있는다고 달리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이미 북쪽 성벽은 그새 기어 올라온 적병들에 의해 반쯤 점령당한 상태. 게다가 반파된 성문 사이로 살기등등한 눈알을 희번덕거리는 적군들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어떻게 서리여왕이 여기에……?’
여전히 물음표를 떨쳐내지 못한 가이탄. 열심히 달음박질을 하는 그의 시야에, 겨울의 화신처럼 강림한 서리여왕 하유라가 지그시 한손을 들어 올리는 것이 보였다.
“크라이어제닉 쇼크.”
옥구슬 같은 미성이 귓전을 또르르 간지럽힌다고 느낀 순간, 새하얀 손끝에서 시작된 냉풍이 일시에 북문 일대를 뒤덮었다.
그리고, 차디찬 바람에 휘감긴 적병들이 아연히 입을 벌리려는 찰나.
쩌저저저저적–!
온 세계가 하얗게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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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립스의 북문 일대가 거대한 빙하 속에 잠겨버린 그때, 칼립스 근방의 어느 이름 없는 야산은 느닷없는 터져 나온 절규로 인해 때 아닌 몸살을 앓는 중이었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
까마귀처럼 히스테릭한 비명의 주인공은 진보라색 머리카락을 해초처럼 늘어뜨린 여인이었다. 가슴과 허벅지를 절반이상 노출한 민망한 의상에, 창부처럼 퇴폐적인 색기를 흘려대는 여인은 핏물처럼 진한 입술을 아작아작 짓씹으며 혈안(血眼)을 희번덕거렸다.
“어째서! 어째서어어어어—!”
“그만해.”
그녀의 옆에는 쥐방울처럼 작고 귀여운 소녀가 앉아 있었다. 허나 절규하는 여인의 귀에는 소녀의 맑은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유라! 이 개 같은 년! 좆 같은 년! 이 씨발년이 왜 여기서 튀어 나와? 왜? 대체 왜애애애애—!”
쫙쫙 갈라지는 목소리가 꼭 부푼 목청을 째서 피를 토해내는 것만 같다. 얼마나 원통했는지, 고함을 지르며 날뛰는 여인의 커다란 눈시울에는 맑은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
바이올렛이 발광하는 것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우르슬라는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하유라와 바이올렛 간의 악연을 잘 알고 있는 그녀다. 지금의 바이올렛에겐 그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끝났어. 돌아가자.”
“이대로는 못 돌아가! 이런 꼴로 어떻게 발레기우스 님을 뵈란 말이야! 우르슬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너와 내가 나선다면 저년을 죽일 수 있어!”
궁지에 몰린 바이올렛의 눈알은 짙은 광기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러나 우르슬라는 단호히 그녀의 제안을 끊어냈다.
“의미가 없어.”
“뭣! 의미가 없다니!”
“그래봐야 경각심만 심어줄 뿐이야. 방금 연락 받았잖아? 오정환도 실패했고, 최훈도 실패했어. 조금 있으면 레드레인 일행이 복귀할 거야. 너와 나, 둘이서 그것들을 이길 수 있겠어?”
“이길 수 있어! 이길 수 있다고!”
“헛소리 마. 최선책은 남은 전력을 수습해서 복귀하는 거야.”
“이 겁쟁이! 네가 가지 않는다면 나 혼자라도…!”
“적당히 해. 발레기우스 님께 누가 되고 싶은 거야?”
“그으으으읏!”
발레기우스의 이름을 앞세우자, 암사자처럼 고집을 부리던 바이올렛은 몸서리를 치며 꼼짝도 하지 못했다.
깊은 한숨을 내쉰 우르슬라는 까득까득 잇소리를 내는 동료를 뒤로 한 채, 먼 곳에서 내려다보이는 칼립스의 전경을 바라보았다.
‘설마 그분의 계책이 실패할 줄은….’
완벽한 실패. 인정하긴 싫었지만, 발레기우스가 주도한 모든 계책은 실패로 끝났다. 예상 못한 변수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불쾌한 심기를 감추려는 듯, 한 차례 콧잔등을 씰룩인 우르슬라는 고사리처럼 작은 손을 뻗어 연락용 수정구를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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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전쟁이 끝났습니다. 위기를 넘겼네요.
오늘은 제가 오후에 개인적인 약속이 있어서, 한화는 건너뛰었네요. 일요일도 약속이 있는데.. 연참은 힘들더라도 한편 정도는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자세한 연재일정은 이번화 코멘에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