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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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신의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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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게 발발했던 서부 지구의 전쟁은 개전 이틀 만에 레그나토르가 도미니온, 서부연맹 연합의 침공을 막아내면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사람들은 그 이틀 사이에 일어났던 변화를 ‘천지개벽(天地開闢)’이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이 전쟁이 대륙에 미친 파급력은 지대했다.
전쟁 초기,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했던 것은 누가, 무엇이 전쟁의 시발점이 되었느냐는 것이었다. 사람 간의 싸움에도 잘잘못을 가리는데, 하물며 이건 국가 간의 전쟁이다. 어느 쪽이 싸움의 단초를 제공했느냐에 따라 명분의 유무가 갈릴 수도 있었다.
먼저 군사를 일으킨 서부연맹과 도미니온은 광산 회담의 주최자인 레그나토르가 함정을 파서 수뇌부를 몰살시켰다고 선언했다.
레그나토르는 서부연맹과 도미니온이 비밀 연대를 맺어 자국을 옭아매려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어느 쪽도 자기주장을 뒷받침할 결정적 근거를 제시하진 못했다. 사실여부를 증명해줄 아다만티움 광산은 정체불명의 막으로 인해 외부와 완전히 격리된 상태였으니까.
레그나토르의 의장과 레드레인, 도미니온의 파멸의 현자, 서부연맹의 맹주 등.
각국을 대표하는 주요 인사들이 전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사태는 점점 더 오리무중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 숱한 이들의 핏물을 삼킨 밤이 물러났을 때.
대반전이 일어났다.
-광산 회담의 진실.
-‘의도된’ 이레귤러가 불러온 참사.
-재앙급 카름 레드테러, 인간 오정환의 몸에서 부활하다.
-최초 보도! 서부연맹의 맹주는 어떻게 해서 카름이 되었나?
-전쟁, 그 이면에 감춰진 추잡한 뒷사정.
-전쟁의 배후에 있었던 수수께끼의 괴인들. 그들의 정체는?
전쟁이 이틀째로 접어드는 새벽녘부터, 서부의 유력 언론사들이 하나같이 자극적인 제목을 덧붙인 호외를 미친 듯이 찍어냈던 것이다. 여기엔 일간지, 주간지, 월간지의 구분이 따로 없었다. 특히 공신력이라면 서부에서 첫째, 둘째를 다투는 언론사들이 일을 주도하면서, 그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삽시간에 대륙 전역으로 퍼져나간 소식은 세상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단지 기사에 글만 있었다면 이 정도 파급력까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일 아침나절, 열 개 언론사 합동으로 공개된 영상에는 아다만티움 광산에서 벌어졌던 사건의 진상이 담겨 있었다.
광산지대에서 부활한 레드테러, 그에 맞서 처절하게 싸우는 삼국의 헌터들. 그리고 영상 말미에 힘을 합친 헌터들에게 패하여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간 오정환의 모습은 그야말로 빼도 박도 못하는 결정적 증거였다.
그 영상이 담고 있는 내용은 그간 서부연맹과 도미니온이 주장했던 내용과는 커다란 괴리가 있었다. 애초에 레그나토르가 함정을 팠다면 양국을 대표하는 유메르바인과 콜트레인이 그들과 연합할 리가 없지 않은가.
어둠에 묻힌 진실은 다소 복잡했지만, 어쨌든 드러난 장면만 보자면 그랬다.
게다가 다른 건 다 제쳐두고라도, 아다만티움 광산 자체가 이레귤러였으며, 오정환이 깔아둔 함정이었다는 사실은 전쟁이 치러지는 동안 긴가민가하며 중립을 유지하던 대다수의 여론을 한순간에 레그나토르의 편으로 돌려놓기 충분했다.
“서부연맹의 오정환 맹주가 재앙급 카름으로 변했다고? 잠깐만, 그렇다면 재앙급 카름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단 말이잖아?”
“새삼스러울 게 어딨어! 이미 위원회 놈들이 이레귤러를 제멋대로 다루고 있었다는 건 다들 알고 있었잖아!”
“그건 소문일 뿐, 제대로 된 증거는 없었잖아요? 이번 경우는…….”
“완전히 다르지. 그러면 혹시 5년 전에 한꺼번에 나타난 그놈들도… 서부연맹의 작품이라는 건가?”
“이 죽일 놈들!”
순식간에 대륙민들의 공분을 산 서부연맹에서는 나름대로 변명이랍시고 어설픈 성명을 발표했지만, 그건 오히려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었다.
극도로 분노한 사람들은 둘만 모이면 서부연맹과 도미니온을 성토했으며, 대륙 각국도 이 사태에 유감을 표하며 양국을 비난했다.
설상가상으로 칼립스 점령전도 패전으로 끝나면서, 서부연맹과 도미니온의 국제적 위신은 더 이상 떨어질 것도 없는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국제여론은 연일 최악을 밑도는 데다, 자긍심을 잃어버린 자국민들조차 수뇌부에 대한 믿음을 가지지 못했으니 나라가 제대로 돌아갈 턱이 없다. 더욱이 전쟁까지 얻는 것 없이 끝났으니… 워낙 국내외의 여론이 흉흉해진 탓에, 전범의 낙인이 찍힌 양국… 특히 서부연맹 쪽은 언제 반란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한편, 레그나토르는 서부연맹과 도미니온이 자국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린 덕분에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내부적으로는 당장 역으로 국경을 넘어 적들의 수도를 치자는 의견도 팽배했으나, 현실적으로 그건 무리였다.
짧은 전쟁이었지만 피해가 막심했다. 전사자들과 부상자들을 수습하고 챙기는 일은 당연하고, 사로잡은 포로들의 처우 등 내외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였다.
전쟁은 이겼으나 득을 본 것은 그다지 없었다. 오히려 이번 일로 각국의 극심한 견제를 받게 될 것이 자명했다. 서리여왕 하유라, 안개여왕 아가레스트, 신궁 클라리스의 존재가 이번 일로 드러나게 되었으니까. 지금은 워낙 앞서 터뜨린 사안이 커서 조금 묻힌 감이 없잖아 있으나, 조만간 그들의 존재에 대한 해명도 해야 할 터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보다도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바로 노구덕. 레그나토르의 상징과도 같은 그의 정신을 멀쩡히 되돌려 놓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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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뵙습니다. 노구덕 의장님.”
“…그래. 오랜만이군.”
노구덕은 조금 어색한 얼굴로 님로드의 인사에 답했다. 티렐과 함께 떠나간 그녀를 여기서 보게 되리라곤 생각하지도 못했던 탓이다.
“위기에 처한 아군을 도와줬다고 들었는데… 레그나토르를 대표해서 감사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네.”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런가…. 어쨌든 차후에 반드시 사례를 할 테니 사양하지는 말아주게. 아, 그리고… 티렐 일은 안됐군. 진심으로 유감이야.”
“…감사합니다.”
님로드와 대화를 마친 노구덕은 임유진이 빼준 의자에 앉으며 미약한 신음을 흘렸다. 방의 한쪽 귀퉁이에 앉아 있는 여인, 서리여왕 하유라의 존재가 자꾸만 신경을 긁어댔기 때문이다.
칼립스 근교에 위치한 비밀 안가엔 하나 같이 쟁쟁한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노구덕과 임유진, 소피아, 데모나 등 레그나토르 측 인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아가레스트와 하유라, 님로드… 게다가 소냐까지. 프라임리그 상위권의 랭커였던 님로드가 최약체로 보일 정도이니, 말은 다 한 셈이다.
“…….”
“…….”
노구덕과 하유라를 중심으로, 험악하게 일어난 기세가 얽히고설키며 사방으로 불똥을 튀겨댔다. 서로에게 깊은 원한을 가지고 있는 만큼, 두 사람이 서로를 쳐다보는 눈빛은 불구대천의 원수를 대하는 것 같았다.
이래선 도저히 대화가 성립되지 않는다. 다행히 이곳엔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는 강자들이 있었다.
먼저 나선 이는 아가레스트였다.
“서로 죽도록 싫어하는 건 알겠는데, 괜히 티를 낼 필요는 없지 않겠어요? 바로 시작하는 게 어때요?”
“…그게 좋겠네요. 우선은, 이이에게 사정을 설명하는 게 먼저겠죠. 님로드 단장? 제반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예.”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으로 봐선 미리 약속이 되어 있었던 듯했다. 님로드는 원탁에 둘러앉은 이들을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인 뒤, 다소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문을 열었다.
“얼마 전, 흡혈왕의 종적을 쫓던 주인께서는 카잘 군도에서 그자와 일전을 벌이셨습니다. 그리고… 죽임을 당하셨지요. 미욱한 저희는 주인의 시체조차 수습하지 못했습니다.”
살짝 아래를 향하고 있던 소냐의 시선이 더욱 밑으로 기울어졌다. 그 옆에 앉아 있던 소피아는 조카딸의 떨리는 어깨를 꼭 안으며 달래주었다.
임유진을 통해 티렐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노구덕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그렇게 무모한 짓을? 그놈을 이길 수 없다는 건 티렐도 알고 있었을 텐데.”
“무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의미 없는 일도 아니었지요. 어디까지나 후사를 위한 포석이었습니다.”
강하게 고갯짓을 한 님로드는 소냐를 바라보았다.
“흡혈왕은 신의 조각, 달리 말하면 시스템의 화신이나 다름없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주인께선 평생을 갈고 닦은 마도로 시스템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했지요. 실제로 그 이론은 이미 완성단계에 다다랐습니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단 하나…… 실전에서 축적된 데이터와 응용이었습니다.”
“음….”
노구덕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마도이론의 완성을 위해 스스로의 몸을 불사르는 그 집요함, 그 광기라니. 정말 티렐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 일이 있다고 하더니만… 그게 이런 거였나. 스승 노릇 한 번 제대로 하고 가는군. …고맙다.’
티렐이 화룡점정을 찍은 그 정수는 님로드를 통해 고스란히 소냐에게 전해졌다. 마도왕 필생의 역작이 저 조그마한 천재의 손에서 어떻게 발현될 것인지… 발레기우스는 또 하나의 예측불가한 변수를 만들어버린 셈이었다.
“그런데… 발레기우스가 카잘 군도에 있었다고? 지금까지 그곳에 숨어 있었던 건가? 티렐은 그놈을 어떻게 찾은 거지?”
“사전에 서리여왕님께 받은 정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슨?”
“발레기우스는 지금까지 신의 조각들을 찾고 있었을 겁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릇’이라고 해야겠지요.”
이제부터가 정말로 중요한 얘기다. 그것을 직감한 모두는 숨을죽이며 그녀의 뒷말을 기다렸다.
사안의 중대성이 벅차게 다가온 것일까. 잠시 가빠진 숨을 고른 님로드는 천천히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여기 서리여왕님께서도 계시지만, 저는 흡혈왕이 결성한 반군에 오랫동안 몸담아 온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의 목적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지요. 제 생각은 곧 주인님의 생각이기도 합니다.”
“반군을 결성한 발레기우스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반란으로 인한 혼란의 초래와 위원회의 몰락, 그리고 카멜롯의 파괴였습니다.”
“카멜롯….”
“예. 당시 세계를 유지하는 시스템 기능의 대다수를 관장하는 보고의 이름이지요. 저도 직접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당시 흡혈왕을 비롯한 반군의 정예가 그곳을 초토화시켰다고 알고 있습니다. 제가 듣기론 서리여왕님도 그 작전에 참가하셨다고…….”
님로드의 눈길은 하유라는 무심히 머리를 끄덕였다.
“맞다.”
“…여러분께선 이 시스템이란 것이 ‘관리자’라 불렸던 신이 스스로의 의식을 봉인시켜 만든 체계라는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그렇다면, 카멜롯이 파괴된 이후 그 안에 봉인되어 있던 힘… 신의 잔재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발레기우스가 그 힘을 회수한 것이 아니었나?”
“주인께서 말씀하시길, 그 힘은 당시 흡혈왕으로서도 다룰 수 없었던 거대한 힘이었다고 합니다. 이 세계 자체를 유지해왔던 힘이니까요. 그래서 흡혈왕은 다수의 그릇들을 준비해 카멜롯에서 방출한 힘을 보관하고, 관리하려고 했습니다.”
“그릇? 오정환 같은 자들을 말하는 건가?”
“오정환은 준비된 그릇이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흡혈왕이 모종의 방법을 통해 억지로 ‘신의 조각’으로 만들었을 겁니다. 불완전한 각성은 그 부작용일 테고요.”
“그게 불완전한 각성이었다니…….”
노구덕은 기가 막힌 나머지 혀를 찼다. 하긴,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같은 재앙급 카름이라고 해도 그림리퍼에 비해 살짝 약한 감이 있기는 했었다. 그래도 무지막지하게 강했다는 건 변하지 않지만.
그때, 잠자코 듣고 있던 소피아가 침침한 눈을 빛내며 말했다.
“대충 윤곽이 잡히는 것 같네요. 한마디로 그 그릇들은 어떤 ‘자질’이 필요한 사람의 육체를 뜻하는 거겠죠?”
“정확합니다.”
“그리고 마도왕이 서리여왕에게서 얻었다는 그 정보란 건…. 아마도 퀸즈가든과 관련이 있겠고요?”
“예. 서리여왕께선 반란을 도모하기 훨씬 이전부터 그 그릇들을 준비하는 역할을 맡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흡혈왕과 갈라서면서, 그간 준비해두었던 그릇들을 전부 세상에 풀어버리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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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 즈음에 한편 더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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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나깨나 더위조심 ..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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