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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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검왕, 거병하다
174# 검왕, 거병하다
얽히고설킨 모두의 눈이 오직 한 곳, 상좌에 앉은 왕의 입을 향한다.
자유연합 리베르타를 대표하는 십여 명의 대간부들.
그들을 아래에 둔 유일한 지배자는 엄숙히 선언했다.
“팔콘에 선전포고를 하겠습니다.”
“…….”
누군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저 한마디가 이 대륙에 얼마나 큰 연쇄작용을 가져올지 상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누군가가 물었다.
“…팔콘을 치신다면 솔라리스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팔콘의 왕도엔 솔라리스의 정예군이 주둔하고 있으니까요.”
“그럴 겁니다. 저는 솔라리스가 나서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팔콘과 솔라리스… 양국과 전쟁을 하시겠다는…?”
“그 말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전 찬성입니다.”
호걸다운 기상을 뽐내는 거한이 김정인의 선언을 지지하고 나섰다. 곰처럼 형형한 안광을 번뜩이는 그는 일전에 솔라리스의 군대에게 큰 빚을 졌던 로열나이트 김상목이었다.
“하태경은 죽었고, 투르도 망해버려 책임을 물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멀쩡한 솔라리스는 경우가 다릅니다. 그 무도한 놈들의 손에 죽어간 목숨이 수백일진대, 그놈들은 사과는커녕 발뺌만 하고 있습니다.”
무쇠 같은 턱이 어긋나게 맞물리며 뿌드득 이 가는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당시 사자왕이 이끄는 솔라리스의 군대에게 당해 큰 중상을 입었던 김상목은, 부리부리한 눈에서 새파란 원한의 불길을 뿜어냈다.
“김상목 대장의 말이 옳습니다. 놈들에게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합니다. 이대로 덮어둔다면 모두가 우릴 업신여길 겁니다.”
“팔콘과 솔라리스를 칠 거라면, 절 선봉에 세워주세요. 그 모래두더지 같은 놈들을 뼛속까지 얼려버릴테니까요.”
내전 당시 김상목 휘하의 부대장이었던 트릭스터 조용진과 크리스탈 메이지 아리엔도 김상목의 의견을 두둔하고 나섰다.
“검왕께서 명하신다면, 따르겠습니다.”
“말할 필요도 없지요.”
“군은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 언제든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행정부, 감찰부, 군무부의 수장들이 차례로 지지의 뜻을 보냈다.
이건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다. 검왕이 전쟁을 벌이기로 작정한 이상, 누구도 그의 의지를 거스를 순 없다.
대부분의 간부들에게서 동의를 얻어낸 김정인은 오른편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전 이후 자결한 하태경의 뒤를 이어, 행정부의 수반이 된 윤희지. 여느 때라면 누구보다 앞서 지지를 보내왔을 그녀가 회의 내내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자세히 보니 회의에 집중하고 있지 않는 눈치다. 그녀의 시선은 앞쪽의 빈자리, 즉 김정인의 왼편에 멈춘 듯이 고정되어 있었다.
쓸쓸하게 비어있는 저 자리는 김정인의 두 번째 부인, 크라벨의 자리다.
크라벨은 반란군의 수괴인 하태경에게 드래곤 탈리스만을 건넴으로써, 용혈독의 제조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비록 그 사실을 몰랐던 데다, 그녀 자신이 용혈독의 피해자가 되었다곤 해도 그 사실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까닭에, 크라벨은 현재 지하 감옥에 투옥되어 있었다. 스스로 죄를 인정하고 죗값을 치르겠다며 들어간 것이니 투옥이라기보단 근신에 가까웠지만…. 어쨌든, 그녀의 자리가 비어있는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희지 씨는 라스바덴에 머무르면서 후방 보급을 맡아줬으면 합니다. 괜찮을까요?”
딴생각에 잠겨 있던 윤희지는 퍼뜩 놀란 눈을 깜박였다.
“네? 아… 문제없어요. 진주도 데려가실 건가요?”
“물론입니다.”
윤희지에게서 시선을 뗀 김정인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팔걸이에 올려져 있던 왼쪽 소맷자락이 힘없이 늘어지며, 너울너울 좌우로 흔들렸다.
외팔이가 된 검왕. 그러나 누구도 안타깝거나 동정어린 눈길을 보내는 이는 없었다.
팔 한쪽이 없어졌다고 해도 그의 검은 꺾이지 않는다. 물리적인 크기는 줄었을지언정, 대해의 줄기처럼 도도하게 굽이치는 위압은 이전보다 훨씬 더 거대하게 다가왔다.
“출진은 내일 아침. 출진 병력은 라스바덴의 주둔군만으로 한정합니다.”
“…….”
적다. 라스바덴에서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기껏해야 6천 정도. 최소한의 수비군을 제외하면 많아야 4천이다. 1만을 훌쩍 넘던 병력들이 이번 내전으로 많이 죽거나 다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살타나 다른 대도시의 원병으로 충당하면 된다. 그러면 어찌어찌 1만 5천 정도의 원정군은 편성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김정인이 출진 병력을 라스바덴의 병력만으로 한정했다는 것이다.
“이틀 내로 트랑키아를 함락시킵니다. 그 다음은 오키도. 닷새 안으로 현재 솔라리스가 점거하고 있는 팔콘 남부를 손에 넣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솔라리스가 가만히 있지 않을 터. 김정인은 이미 그것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듯했다.
“이후엔 카잘 군도입니다. 네뷸라에서 병력을 충당해 곧바로 카잘 군도를 점령하고, 말리크로 향하겠습니다.”
이번만큼은 모두 눈을 휘둥그레 뜰 수밖에 없었다. 말리크는 바이바르스와 함께 구왕조의 수도였던 곳. 이곳을 친다는 것은 곧 솔라리스의 심장을 치겠다는 말이나 진배없었기 때문이다.
이건 허수아비나 다름없는 팔콘을 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솔라리스는 남부 사막을 주름잡는 강국. 비루한 팔콘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거대 세력이었으니까.
“마, 말리크까지 말입니까?”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염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허나, 김정인은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선봉에 서겠습니다.”
“……!”
가능하다는 확답이 아니다. 하지만 리베르타의 간부들에겐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니, 확신 그 이상의 대답이었다.
검왕이 선봉을 맡는다… 이건 곧, 전쟁의 신이 함께한다는 소리나 마찬가지. 그 앞에 패배는 있을 수 없다. 십존 네 명의 합공을 물리친 무신이 앞장서겠다는데 무엇이 두렵겠는가.
세상에서 가장 두꺼운 성벽도, 십존에 이름을 올린 강자도, 대사막의 가혹한 모래바람도, 그의 검 앞에선 한낱 부스러질 먼지에 불과할 뿐이다.
장내의 휘감고 도는 공기가 한순간에 뜨겁게 달아올랐다. 모두의 심장 소리가 하나 되어 두방망이질하는 듯했다.
격동한 사람들은 하나둘 무릎을 꿇으며 그의 발밑에 머리를 조아렸다.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부디 절 선봉에 세워주십시오!”
“리베르타에 영광을!”
마침내, 장내의 모든 무릎이 검왕 김정인 앞에 꿇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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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으로 돌아온 윤희지는 왠지 모를 오한에 양 팔을 어루만졌다. 그 장엄한 열기의 현장에서 빠져나온 지 겨우 수십 분이 지났을 뿐인데, 희한하게도 그녀의 팔엔 작게 소름이 돋아나 있었다.
‘정복전쟁….’
물론 김정인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선택은 언제나 옳았고, 항상 성공했다. 이유나 확률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터무니없는 장벽이 가로막고 있을지라도, 그는 그 장벽을 통째로 부술 수 있는 남자였다.
그에 대한 믿음은 지금도 변함없다. 하지만… 왜일까. 이 쓸쓸한 기분은.
윤희지는 옆으로 눈을 돌렸다.
새근새근 잠자고 있는 귀여운 여아가 보인다.
김수연. 그와 그녀 사이의 유일한 결실이며,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딸아이다.
최근 딸아이는 부쩍 잠이 많아졌다. 예전 같았으면 한창 뛰놀 시간대인데도, 늘 잠이 부족한 사람처럼 이부자리를 찾았다. 그 좋아하던 술래잡기와 강아지 산책도 이제는 하지 않았다.
왜 그럴까. 걱정스런 마음에 의사와 신관을 데려와 아이를 살피게 했지만, 딱히 눈에 띄는 징후는 없었다. 오히려, 타고난 마력이 대단하니 장래에 굉장한 마법사가 될 수 있겠다는 덕담을 들었을 뿐이다.
그들의 소견을 옆에서 들었던 김정인은 그저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을 뿐이다. 그는 성장기에 일시적으로 잠이 많아질 수도 있다는 그들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딸아이에 대해 그리 깊게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이건 그녀의 작감이었다.
커다란 내전을 겪고, 한 팔을 잃은 후, 김정인의 눈은 더욱더 먼 곳을 향했다. 원래부터 그리 가정적인 남자는 아니었지만 한바탕 일을 겪은 후에는 보다 심해진 느낌이었다.
수련, 수련, 수련.
검, 검, 검.
그에겐 그 두 개밖에 보이지 않는 듯했다.
그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폐관에 들었고, 어제서야 겨우 수련을 끝내고 일선에 복귀했다. 그리고 오늘, 회의를 소집하여 전쟁을 선포했다.
그 기간 동안… 의사 소견을 듣기 위해 온 것을 제외하면, 그는 단 한 번도 수연이를 찾지 않았다.
갑작스레 한마디가 떠오른다. 하태경이 죽기 직전, 조소와 함께 남겼던 말.
‘검왕은 신선놀음을 하고 있어.’
“아니야!”
윤희지는 세차게 도리질을 하며 팔을 허우적거렸다. 마치 눈앞에 아른거리는 죽은 이의 망령을 떨쳐내려는 것처럼.
“이번… 이번 전쟁이 끝나면… 그이도 바라봐줄 거야.”
목구멍을 쥐어짜듯이 중얼거린 윤희지는 갑자기 까득 이를 악물었다. 서슬 퍼런 독기로 타오르는 눈동자는 이 자리에 없는 누군가의 얼굴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크라벨… 그년만 아니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그 멍청한 년이 드래곤 탈리스만을 하태경에게 건네지 않았다면, 반란이 이처럼 크게 일어나지도 못했을 테고, 김정인이 변하지도 않았을 텐데.
죄가 밝혀지고 나선 어땠지?
순교하는 성녀라도 되는 양, 제 발로 어둡고 축축한 지하로 기어들어갔다. 더 큰 것을 잃기 전에 미리 선수를 친 것이다. 고작 몇 달 지하에 처박혀 있는 게 무슨 대수라고!
모든 게 의심스러웠다.
크라벨은 과연 하태경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을까?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용혈을 건네준 것일까? 이번 내전에서 크라벨 계파가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은 게 정말로 우연일까?
크라벨 계파에 생각이 미치니, 자연히 어떤 남자의 얼굴이 떠오른다.
살타의 수비대장, 엘리엇.
윤희지는 그의 휘하에서 몇몇 병사들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하나 같이 사라지기 전까지 진탕 술을 마시는 등, 누가 봐도 불안한 행동을 일삼았던 이들이었다. 그리고 살타 공방전 당시, 반군 주둔지에서 민간인처럼 보이는 포로를 봤다는 몇몇 증언들….
드러난 정황이 매우 수상쩍었지만, 그녀는 그 사실을 노구덕에게 알리지 않았다.
노구덕에게 알려서 어떻게 할 것인가? 엘리엇을 옭아맬 증거는 너무나 빈약하다. 솔직히 그가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노한 노구덕은 그런 것 따위는 상관없이 책임을 추궁할 테고, 자칫하면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 때문에.
그렇게 되면, 가뜩이나 입지가 좁아진 그녀는 설 곳을 잃게 될게 뻔했다. 결정적 증거가 없는 이상 엘리엇을 추궁할 수는 없을 테고, 도리어 치졸한 수로 정적을 제거하려는 것처럼 비쳐질지도 모른다.
그건 최악이다…. 다른 건 몰라도, 크라벨에게 입지가 밀리는 것만은 참을 수 없었다. 그건 곧 아이들의 후계 순위가 뒤바뀐다는 것이었으니까.
윤희지는 생각 끝에 조용히 일을 덮기로 했다. 그녀로선 그게 최선이었다. 자인만 하지 않는다면 확증이 없는 노구덕도 크게 따지고 들 순 없을 테고, 그가 심증을 반군 쪽으로 돌린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았다.
궁리에 잠겨 있던 윤희지는 불현듯 힘껏 주먹을 말아쥐었다. 가느다란 힘줄이 불거진 작은 주먹이 격한 떨림을 보였다.
“내가 왜… 내가 왜 이런 꼴을….”
어처구니가 없었다. 정적을 살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이 처지라니. 왜 자신이 이런 고민을 해야 한단 말인가? 모든 일의 원흉인 그년은 속편하게 지하에서 자빠져 있을 텐데!
갑자기 지독한 외로움이 엄습했다.
“추워….”
부르르. 오한을 견디다 못한 윤희지는 다시 꼭 팔짱을 꼈다.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딸아이 옆에 쭈그리고 앉은 그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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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어제 늦게 코멘을 남겨서 죄송합니다.. 어제는 너무 늦게 끝나기도 했고, 피곤하기도 해서 그냥 자버렸네요.
리베르타 페이즈는 한편으로 짧게 끝났습니다.
다음화는 다시 노구덕 시점으로. 본격 여행 시작이네요.
밤에 업로드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