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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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새로운 여정
175# 새로운 여정
도미니온과 북부연합 사이에는 ‘사르골’이란 커다란 호수가 있다.
작은 바다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이 호수는, 서부 지구를 관통하는 벨룸 산맥과 더불어 북부연합과 도미니온, 이레시온 간의 국경을 이루는 천연 경계이다.
그리고 이 남자.
머리 가운데의 허허벌판을 몇 가닥 수풀로 간신히 덮어놓아 더욱 안쓰럽게 느껴지는 중년 남성의 이름은 우명호.
그는 도미니온의 최북단, 사르골 호수의 기슭에서 잡화상 겸, 술집 겸, 숙박업도 겸하고 있는 풍년 여관의 주인장되시겠다.
“허 참…. 이상한데.”
카운터에 한가로이 앉아 하릴없이 파리채를 휘두르던 우명호는, 갑자기 늙은이처럼 끌끌 혀를 찼다.
“분명 아까는 지금보다 조금 더 컸던 것 같은데…. 잘못 본 건가?”
이상하다, 이상하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시선은 가게의 어느 한 구석을 쉴 새 없이 곁눈질하고 있었다.
그곳에 보이는 건 구석의 테이블을 두고 마주 앉은 일행이었다. 총원은 세 명, 여행자로 보이는 한 명의 남자와 두 명의 여자다.
삼삼오오 모여 호수를 건너가는 여행객들이야, 별로 특이할 것도 없는 그의 주 고객들이다. 양국을 잇는 국경지대인 만큼, 사르골 호수 주변의 마을과 도시에는 북부연합과 도미니온을 왕래하는 여행객들이 상당히 많았다.
여자 둘에 남자 하나…. 보통은 남자 비율이 많은 게 일반적이지만, 저것도 딱히 이상하다 싶을 정도의 인원구성은 아니다.
여자 둘은 그런대로 고운 외모를 지녔다. 거무튀튀한 경갑을 걸친 여인은 허리에 검을 패용하고, 어깨에 단창을 멘 것으로 봐서는 전사 포지션인 듯싶고, 조금 앙상해 보이는 여인은 아무래도 마법사나 정령사인 것 같았다. 지팡이라든가 완드 같은 게 보이지 않긴 하지만… 대충 눈치라는 게 있지 않은가. 이건 숱한 손님들을 상대하며 쌓아 온 그의 관록이라고 봐도 좋았다. 일단 외모가 출중한 여자면 열에 아홉은 헌터였으니까.
여하튼 여자 쪽은 별로 문제될 게 없다. 실은, 아까부터 그의 신경을 긁어댄 건 여자들이 아니라 남자 쪽이었다.
남자는 여관 입구에 들어설 때부터 상당히 눈에 띄던 장신(長身)이다. 그래도 살집이 많은 오크나, 멀대 같이 키가 큰 일부 엘프들을 고려해 나름대로 높게 만들어둔 입구인데, 입구의 꼭대기에 정수리를 찧었으니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겠는가? 못해도 2m는 넘을 거다.
대신, 키에 비해선 영 몸이 부실해 보였다. 그렇다고 홀쭉이까진 아니었지만, 영 못 미덥다고 해야 할까. 저 키에 근육만 적당히 있으면 전사로서 상당히 유리할 것 같은데, 헐렁한 소매 밖으로 드러난 팔은 돌덩이 같은 근육이 붙어있기는커녕 그저 밋밋하기만 했다.
‘전사계열은 아닌 것 같고… 마법사인가? 아니면 주술사? 사제? 사막 출신인 것 같은데.’
반들반들한 대머리에 새까맣게 그을린 피부. 남부 사막지대 출신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뭐, 여기까지는 상관없다. 구석에 앉은 세 사람이 바지런하게 입을 놀리는데도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것 역시 이상할 게 없었다. 조용한 걸 좋아하는 여행자들 중엔 대화할 때 방음막을 쳐놓는 자들이 꽤 많았으니까.
정말 수상쩍은 건 따로 있었다.
‘저놈, 키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 같은데….’
기이한 위화감을 느낀 건 조금 전이었다.
들어올 때부터 입구에 머리를 찧을 만큼 범상치 않은 신장을 자랑했던 남자. 당연히 앉은키도 상당해서, 막 자리에 앉았을 때는 그 눈높이가 쟁반을 들고 주문을 받는 웨이트리스의 턱밑까지 닿았을 정도다. 그때 주문을 받는 걸 봤으니, 이건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턱밑이 아니라 거의 쇄골? 아니, 그보다 조금 아래까지 줄었다. 자세는 그대로인데, 희한하게도 키가 줄어든 것이다.
착각했나 싶어서 몇 번 눈을 비벼도 봤지만, 그의 눈에 이상은 없었다. 사내의 키가 줄어든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대체 뭐지? 사람 몸이 고무줄도 아니고… 기분 나쁜 놈이야. 그나저나 왜 아무도 그걸 모르는 거지? 내 눈이 이상한 거야?’
치미는 의구심을 가눌 수 없게 된 우명호는 마침 짬이 나서 한숨 돌리고 있는 웨이트리스를 손짓하며 불렀다.
“라나야.”
“아이, 왜 불러요? 이제 좀 쉬나 했는데.”
“이 계집애야, 구시렁대지 말고 사장이 오라면 그냥 좀 와 봐.”
“칫. 돈도 별로 안주면서 사장타령은…….”
그녀의 투덜거림을 한귀로 흘려버린 우명호는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하며 수상쩍은 일행을 가리켰다.
“저것들 말이다, 좀 이상하지 않냐? 특히 저 남자.”
“이상하긴 뭐가요? 셋이서 맥주만 달랑 두 잔 시켜놓고 한 시간 넘게 죽치고 앉아 있는 거요? 아니꼽긴 하네. 내가 사장이었으면 당장 내쫓았을 텐데. 입구에는 소금 좀 치고.”
“그것도 그렇긴 한데… 키가 좀 줄지 않았냐?”
“그건 뭔 소리래요?”
“저 남자, 너도 봤을 거 아니냐. 들어올 때 문에 머리 박는 거.”
“그랬었나? 언제요?”
“언제라니….”
우명호는 어이가 없었다. 바로 코앞에서 쿵! 하고 머리를 처박는 걸 분명히 봤을 텐데 모르쇠라니. 대가리가 붕어 수준으로 멍청한 건지, 아니면 자길 놀리는 건지 알 길이 없었다.
“이 멍청한 것아, 그걸 못 봤다고? 너도 내 옆에 있었잖아. 시치미 떼지 말고…”
“아! 못 본 걸 못 봤다고 하는데 무슨 헛소리예요? 내가 배운 거 없는 건 맞는데, 그렇다고 사장님한테 멍청하다는 소리 들을 정돈 아니거든요? 자기도 무식하긴 마찬가지면서… 별꼴이야, 정말!”
“뭐, 뭐라고… 헉?”
계집애가 따박따박 까불어도 유분수지, 이건 좀 심했다.
화를 참지 못하고 벌컥 성을 내려했던 우명호는, 갑자기 어둑한 그림자가 시야를 가리는 걸 깨닫고 짧게 헛바람을 내뱉었다.
자꾸만 그의 신경을 건드리던 수상쩍은 남자. 그 남자가 어느새 바로 앞까지 다가와 손을 내밀고 있었던 것이다.
“잘 마셨소. 여기 계산.”
“어, 어… 감사합니다….”
“매상에 도움이 되지 못해서 미안하군. 기회가 되면 다음에 또 오겠소. 그때는 가게 모든 메뉴를 사도록 하지. 기억하진 못하겠지만.”
“예에…….”
묘한 뉘앙스를 풍기는 사내의 말. 헌데, 그가 건네는 돈을 받아드는 우명호의 표정이 조금 이상했다.
죽은 생선처럼 탁하게 풀린 눈동자하며, 바보처럼 벌어진 입술이 꼭 마약이라도 한 사람 같다. 그건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웨이트리스도 마찬가지였다.
수상쩍은 사내가 일행과 함께 사라지고 수십 초 정도가 지났을까.
몽롱히 꿈속을 거닐고 있던 우명호의 눈이 반짝이며 사라졌던 초점이 돌아왔다. 핫! 하고 정신을 차린 우명호는 옆 의자에서 꾸벅꾸벅 목을 기울이며 졸고 있는 웨이트리스의 등짝을 세게 후려쳤다.
“이 계집애가 한창 일하고 있는데 어디서 자빠져 자고 있어!”
“아얏! 아! 피곤하면 잠깐 졸 수도 있지, 왜 때려요! 때려치우든가 해야지!”
“뭐얏!”
술을 마시던 단골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아웅다웅하는 두 사람을 구경하며 박장대소했다.
여느 때처럼 평화로운 일상.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이들 중, 구석진 곳의 텅 빈 테이블에서 술을 마셨던 손님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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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 여관을 나선 수상한 일행은 호수 언저리에 나 있는 도로를 걷고 있었다.
“무능한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대체 아직도 완벽하게 습득하질 못하다니. 어깨 위의 그건 장식인 건가?”
“…….”
선두의 여인이 흘리듯이 말하자, 맨 뒤에서 뒤따르고 있던 로브 사내의 어깨가 제 발이라도 저린 듯 움찔거린다. 선두 여인의 힐난이 자신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흥. 무능한 쓰레기.”
재차 이어진 독설. 사내는 아까와 매한가지로 아무런 말이 없었지만, 대신 대열 중간의 여인이 사내를 변호하며 나섰다.
“말씀이 과하십니다.”
“과하다고? 어디가?”
“제가 알기로, 축골공(縮骨功)은 북부의 숱한 기예들 중에서도 습득 난이도가 매우 어려운 기술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길을 떠난 지 겨우 보름이 지났을 뿐입니다. 따로 수련에 집중할 시간도 없었고요. 그런 열악한 상황에서 대부님 정도의 숙련도라면 굉장히 괄목할 만한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평범보다는 낫다, 평균 이상이다… 비천한 패배자들이 단골로 지껄여대는 변명일 뿐이지. 그딴 잡기를 익히는데 2주가 넘는다는 것 자체가 무능한 버러지라는 증거다. 내게는 이딴 잡기, 하루면 차고 넘쳤어.”
“…비교대상이 만능지재를 가진 분이라면, 누구라도 초라해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나와 비교하면 초라해져? 네 입에서 그런 소리를 들으니 웃기지도 않는군.”
“별말씀을요.”
예의 그 푸르스름한 한기를 피워 올리는 하유라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보랏빛 아지랑이를 일으키는 소냐. 처음에는 정말로 무슨 일이 터지지 않을까 조마조마했었지만… 여행을 시작한지 2주가 넘은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다지 별 감흥도 일지 않는 평범한 일상에 불과했다.
한숨을 내쉰 노구덕은 지그시 타이르듯이 말했다.
“내가 다 잘못했으니 그만들 싸워라. 노상에서 뭔 짓이냐?”
“쓰레기, 내게 명령하지 마라.”
“싸우지 않았습니다.”
“…….”
어째 하유라가 입을 열수록 저 조용하고 차분하던 소냐까지 공격적으로 물들어가는 것 같다. 또다시 터져 나오는 한숨을 삼킨 노구덕은 힘없이 머리를 흔들었다.
이번 여정은 하유라가 처음 제안을 꺼냈을 때부터 많은 우려를 샀던 여행이었다. 우선 인선만 봐도 그랬다.
노구덕과 하유라, 소냐.
그야말로 당사자와 안내자, 해결사만을 집어넣어 최소한으로 간추린 인원이다. 임유진과 소피아는 아가레스트나 신소율 등을 데려가라고 말했지만, 노구덕은 딱 잘라서 거절했다. 아가레스트 정도의 강자는 그가 데려가서 썩히느니, 전쟁을 앞둔 레그나토르에서 써먹는 편이 훨씬 합리적이었다. 손목을 다친 신소율은 별로 도움도 되지 않을 테고, 외부의 시선도 생각해야만 했다.
그런 고민을 안고 짠 인선이지만… 문제는 역시 하유라였다.
솔직히, 그녀가 순순히 세례를 받아들일 줄은 노구덕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비록 아가레스트나 플랑기스에게 새긴 복종의 각인에 비할 수 없는 저급 세례이긴 했지만, 어쨌든 세례를 했다는 게 중요했다.
다만 상대가 상대인지라, 세례를 하고도 안심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와 그녀 사이엔 씻을 수 없는 원한이 남아 있지 않던가.
노구덕은 그녀의 제의를 받아들이면서, 하유라에게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원한을 모두 뒤로 미루었다. 그녀에게 도움을 받는 것은 사실이고, 원만하게 일을 해결하고 싶다면 불협화음을 일으킬 만한 일은 최대한 만들지 않는 것이 현명한 처사였다.
그렇게 미리 마음을 비워둔 노구덕은, 여행 내내 하유라에게 온갖 모욕을 들어가면서도 덤덤히 강물처럼 흘려보낼 수 있었다. 진실을 고백하자면 어지간한 욕설에는 꿈쩍도 하지 않을 내성을 길러준 데모나의 공이 컸다.
그런 식으로 갈등을 봉합하는가 싶었는데… 엉뚱한 곳에서 일이 터졌다.
전혀 갈등 요소로 여기지 않았던 인물, 소냐가 하유라와 대립각을 세웠던 것이다. 그녀는 노구덕이 하유라에게 욕을 들어먹는 걸 못마땅하게 여기며, 그녀가 독설을 내뱉을 때마다 사사건건 딴지를 걸었다.
감싸주는 거야 기특한 일이지만, 이래서는 분란의 여지가 있었다. 그리 생각한 노구덕은 남몰래 소냐의 설득을 시도하기도 했다.
‘얘야, 나는 괜찮으니 우리 조용히 여행을 즐기면 안 되겠니?’
‘대부님께선 저런 욕을 들을 이유가 없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나는 괜찮대두.’
‘제가 괜찮지 않습니다.’
그러나 설득은 실패. 평소 고분고분하던 아이가 유난히 그 건에 대해선 막무가내였다. 얘가 어디서 황소심줄을 삶아먹었는지 몰라도, 고집이 참으로 대단했다.
결국, 조용하고 평탄한 여행을 원했던 노구덕은 그 소박한 소원을 쓰린 속내에 묻어둘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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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후.. 이틀 동안 바쁘고 피곤해서 연참을 하지 못했습니다 ㅠㅠ 오늘도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축축 늘어지네요..
자외선 조심하세요. 저는 다시 일하러 가겠습니다..
12시 연재 확률은 반반입니다. 만약 못하게 되면 언제나처럼 이번화에 코멘 남기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