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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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섬전창(閃電槍)
176# 섬전창(閃電槍)
꾸욱.
아다만티움을 가공하여 만든 바늘 끝이 살갗을 투과한다. 호숫가에 넘실대는 찬공기와 더불어, 바늘 끝에서 시작된 으스스한 한기가 팔팔한 혈관 속을 싸늘하게 식혔다.
“크으으….”
진정제의 투약을 끝낸 노구덕은 앓는 신음을 흘리며 주사기를 집어넣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약을 복용할 때마다 밀려오는 구토감은 정말로 참기 어려웠다.
노구덕은 메슥거리는 속내를 진정시키기 위해 천천히 단전호흡을 했다. 호수 위를 맴도는 희뿌연 안개 너머로, 거무스름한 육지가 내다보였다.
“곧 도착하겠군.”
아직 뭍과의 거리는 상당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그의 시력으로도 희미하게 보일 정도니, 안내 방송이 나오려면 조금 시간이 지나야 될 터.
정박 준비를 위해 부산스레 움직이는 선원들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그는 이내 발길을 돌려 다시 객실 안으로 들어갔다.
달칵.
문을 열자마자 확 밀려나오는 쌀쌀한 공기. 마치 냉동고의 문을 연 듯하다.
방 안의 정경을 살핀 노구덕은 이젠 정말 답도 없다는 듯,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가벼운 여흥으로 거북했던 공기를 조금이나마 해소하려고 했는데, 이건 어째 전보다 더 심해진 것 같았다.
“꼭 그래야만 했습니까?”
“끈질기군. 벌칙까지 다 끝난 마당에 얼마나 더 구차한 모습을 보이려는 거지?”
“그런 옹졸한 반.칙.이 십존의 방식입니까?”
“반칙? 그건 내 방식이 규칙에 저촉될 때의 얘기지.”
보아하니 아직도 ‘여흥’의 후폭풍이 가시지 않은 모양이다. 탄식 섞인 한숨을 내쉰 노구덕은 살벌하게 대치하고 있는 두 사람을 만류했다.
“놀이 가지고 싸우고 있는 거냐. 얘야, 그만해라.”
노구덕이 들어오자, 강아지가 주인을 반기듯 벌떡 일어난 소냐.
그러나 이어진 노구덕의 말은, 그녀의 뾰족한 귀 끝을 힘없이 시들게 만들었다. 그가 자신을 편들어 주지 않는 것이 꽤나 서운한 한 듯했다. 잠시 잘근잘근 입술을 짓씹던 소냐는 납득할 수 없다는 듯 기어코 한마디를 내뱉었다.
“…팔뚝을 얼음송곳으로 찌르는 게 놀이로 보이진 않습니다만.”
“…흠흠.”
이번엔 노구덕의 말문이 막혔다. 뒤통수를 긁적인 노구덕은 멀쩡한 팔뚝을 들어 보이며 겸연쩍은 웃음을 지었다.
“일반적으로 그렇긴 하다만. 어쨌든 난 멀쩡하잖니. 봐라. 상처 하나 없지?”
“저는 대부님께서 벌칙을 수행하신 것 자체를 납득할 수 없습니다. 놀이에 통용되는 대부분의 통념을 상식으로 두었을 때, 그건 명백한 반칙입니다.”
“정말 말이 많군. 나는 하찮은 놀이 따윈 즐기지 않아.”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너희에겐 겨우 놀이였을지 몰라도, 내게는 진지한 승부였다는 말이다.”
잠깐 신경을 쓰지 못하는 사이에 다시 시작된 말싸움. 끝이 존재하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가 따로 없다.
“…어이쿠.”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노구덕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쪽도 저쪽도 나름의 논리가 있어 어느 한쪽이 자존심을 꺾을 때까진 절대 끝나지 않을 말싸움이었다.
이 무한 루프의 원인은 조금 전, 꽁다리 날리기 놀이에서 하유라가 썼던 방식에서 기인했다.
그녀에게 넘겨진 그릇은 그야말로 터지기 직전의 시한폭탄이었다. 꽁다리와 그릇을 이은 이음매가 실오라기만큼 가늘게 남아 있어, 살짝 바람만 불어도 툭 떨어지는 절체절명의 상황.
앞서 폭탄을 넘겨받았던 노구덕과 소냐가 천운으로 위기를 넘기면서, 운명의 여신은 하유라의 패배를 선언하는 듯했다.
그러나 정작 폭탄을 앞에 둔 하유라는 너무 침착했다. 아니, 지나치게 뻔뻔했다.
틱!
세게 튕겨진 손가락에도 불구하고, 꽁다리는 날아가지 않았다.
날아갈 수 있을 리 없었다. 꽁다리와 그릇의 접합부는 그녀가 방출한 한기로 인해 꽁꽁 얼어붙어 있었으니까. 즉, 마력을 사용한 것이다.
반칙.
당장에 소냐가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이건 반칙패입니다.’
‘마력을 사용하지 말라는 규칙은 없을 텐데?’
‘궤변입니다. 상식선에서 판단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때부터 시작된 전쟁.
하유라의 승부욕을 얕보고 있었던 노구덕은 순순히 실수를 인정하며 패배를 시인했다. 마력 싸움으로 넘어간다면 그가 저 두 사람을 이길 수 있을 리도 없을뿐더러, 어차피 어지간하면 그가 걸려줄 속셈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목적은 분위기 쇄신이었지, 이깟 게임의 승패를 가지고 치고받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정색을 할 줄은…….’
아무래도 이후에 행해진 벌칙이 소냐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만든 것 같았다.
소냐가 작은 손가락으로 살짝 손목을 건드린 것에 비해, 하유라는 무자비하게도 얼음송곳을 만들어 그의 손목을 찔러버렸다. 물론 얼음송곳은 그의 피부를 살짝 긁고 부서져버렸지만, 그 행위 자체는 소냐의 눈에 쌍심지를 켜게 만들기 충분했다.
어쨌거나 계속 이렇게 불이 붙은 채로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조금 강경하게 나가야 할 필요성을 느낀 노구덕은 짝짝 크게 손뼉을 쳤다.
“자, 자. 소냐, 그만해라. 다 끝난 일이니까.”
“…네.”
노구덕의 엄중한 눈길을 받은 소냐는 금세 기가 죽어 어깨를 움츠러뜨렸다. 때마침, 밖에서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한 차례 풍파를 넘긴 노구덕은 창밖 너머로 눈을 돌렸다. 아까 전 어슴푸레하게 보였던 육지가 어느새 코앞까지 성큼 다가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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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히 북부연합의 영역에 발을 디딘 일행은 곧바로 목적지인 산치루로 향했다. 거리상으로 보면 나이아드에서 넘어올 때보다 훨씬 더 멀었지만, 여기서부터는 워프게이트 이용이 가능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빨리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장장 보름이 넘는 여정 끝에 도착한 산치루.
노구덕은 바로 신의 조각을 찾길 바랐지만, 하유라는 먼저 들러야 할 곳이 있다고 했다.
“신의 조각은 장룡지부에 있다.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어.”
“장룡지부?”
“이곳 산치루를 관할하는 세력의 명칭이다.”
북부연합은 말 그대로 북부지역에 위치한 무수한 클럽들의 모임이다. 비록 클럽이란 고루한 형식은 사라졌을지언정, 그 세력과 영역은 그대로 남아 각 지역을 통제하고 있었다.
하유라의 설명에 따르면, 본래 산치루를 대표하는 연고 클럽은 ‘장룡문(長龍門)’이라고 했다. 그 장룡문이 북부연합에 가담하면서 장룡지부가 되었고, 일행이 찾는 신의 조각은 그 장룡지부의 핵심인사라는 것이었다.
“…골치 아프게 됐는데. 그러면 만나기도 쉽지 않겠어.”
“나도 대략적인 상황만 전해들었을 뿐이다. 자세한 사정은 정보원을 직접 만나봐야 알겠지.”
“접선 장소는 어디지?”
“따라오기나 해라.”
퉁명스레 대꾸한 하유라는 일행은 내버려둔 채, 멋대로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했다. 전에 와 본 적이 있는 듯, 거침없는 걸음걸이였다.
하유라의 뒤를 따르는 동안, 노구덕과 소냐는 느긋하게 도시의 정경을 감상했다. 특히 하선 직후부터 내내 풀이 죽어 있던 소냐는 귀까지 쫑긋 세우며 열심히 곁눈질을 하는 모습이었다. 나름대로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게 역력했지만, 생전 처음 보는 풍경에 들떠있는 기분이 어떻게 해도 표가 났다.
그런 그녀를 편하게 해주기 위해 일부러 시선을 반대편으로 돌리고 있는 노구덕 역시 스치는 풍광에 신선한 기분이 들기는 마찬가지.
‘굉장히 이국적인 동네군. 친숙하기도 하고.’
북부 지구는 스퀘어의 다섯 지역 가운데서도 가장 폐쇄적인 지역으로 꼽힌다. 동부와 서부로 통하는 길이 산맥으로 막혀 있고, 중간에는 거울의 숲과 사르골 호수를 끼고 있어 지리적으로도 꽉 막힐 수밖에 없는 지형이었다.
하지만 그런 지형학적 위치를 감안하더라도 북부인들은 타지역에 굉장히 배타적이었는데, 이는 북부의 문화적, 인종별 특성에 기인했다.
익히 알고 있듯이, 북부와 남부의 헌터들은 지구가 아닌 전혀 다른 차원에서 온 존재들이다. 마법이 발달한 차원에서 유입된 남부 헌터들은 현 스퀘어 마법체계의 기틀을 새로이 정립했고, 무예를 숭앙하는 세계에서 온 북부 헌터들은 무예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특이한 것은 이들의 사고방식과 문화가 고대 중국의 중화사상과 매우 닮아 있다는 것이다.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이 걸치고 있는 옷의 꾸밈새와 사소한 장신구부터 시작해서, 즐비하게 늘어선 고루거각들이 동양적인 색채로 진하게 채색되어 있었다.
고대 중국을 테마로 한 테마파크에 온 느낌이랄까. 친숙한 느낌이라는 건 이런 의미였다.
‘북부인들은 자부심이 굉장하다고 하던데… 타 지역에 배타적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테지.’
청랑단 사람들에게선 전혀 그런 기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이런 건 개인차가 있으니 주의해서 나쁠 건 없었다.
하유라가 일행을 인도한 곳은 어느 후미진 골목길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낡은 주점이었다.
“…응? 손님인가? 어서 옵쇼!”
끈적한 기름때가 반지르르하게 흐르는 카운터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던 주인은 하유라가 손으로 어떤 모양을 만들어 보이자 단번에 안색이 급변했다.
“주, 주인님!”
“젠룽에게 안내해라.”
“바로 모시겠습니다!”
사내는 꽁지에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재빠르게 움직였다. 서둘러 가게 문을 닫아 잠근 그는 술창고로 보이는 지하실로 일행을 안내했다.
“누추하더라도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라.”
“예!”
엎드려 있는 사내의 몸이 부르르 떨린다. 그것만 봐도 하유라가 그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주인 사내가 사라지고 오 분 정도가 지났을까. 지하실 위쪽에서부터 쿵쾅거리는 소음이 나더니, 멧돼지처럼 비대한 몸집을 지닌 사내가 숨을 헐떡이며 들이닥쳤다.
“소, 속하 젠룽! 주인님을 뵙습니다!”
“시간 끌지 말고 자리에 앉아라.”
“예엡!”
푸짐한 몸을 날려 자리에 앉은 젠룽은 그제야 하유라와 함께 둘러앉은 노구덕, 소냐의 존재를 인지하고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 이분들은…?”
“네가 신경 쓸 바 아니다. 내가 지시한 건 알아봤겠지?”
“물론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읊어라.”
보고 있는 노구덕과 소냐의 기분이 가빠질 만큼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이어지는 명령.
그러나 이런 방식에 이미 넌더리가 날 정도로 익숙한 젠룽은 흥건한 땀을 닦아내며 입을 열었다.
“예전부터 말씀하신대로 계속 감시를 이어오고 있습니다만, 조금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그 노예 놈이 꽤 출세를 했으니까요.”
말을 이어가던 노구덕과 소냐를 힐끔거렸다. ‘처음부터 끝까지’라는 하유라의 명령을 나름대로 해석한 사내는 아예 기초신상부터 읊기 시작했다.
“그놈의 이름은 여위량. 몇 년 전만 해도 비천한 노예 출신이었지만, 주인님께서 손수 은혜를 베풀어주신 이후에는 이곳에서 나름대로 승승자구를 했습니다. 지금은 장룡지부의 유력한 후계자로서 섬전창(閃電槍) 여위량이라 불리고 있지요.”
노구덕의 눈빛이 칼날 같은 빛을 뿌렸다. 섬전창 여위량. 비로소 찾고 있는 신의 조각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겠지만, 이젠 그렇지가 않습니다.”
“왜지? 그놈도 노예 출신이라는 걸 알리고 싶진 않을 텐데?”
“그렇긴 합니다만…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사정?”
“그것이… 그놈이 명왕 강문식의 사위로 들어간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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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올려서 죄송합니다 ㅠㅠ 요새 본업이 바쁘다보니 짬을 내기가 쉽지 않네요..
8월 휴가철만 손꼽아 기다리는 처지입니다.. 사실 휴가 가봐야 살만 문드러지게 태우고 돌아오겠지만요.
무더위에 다들 고생이신데 더위가 빨리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P.S / 가식적썩소님 오타제보, 슈리온님 오류 제보 감사합니다. 구더기는 저널 정보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