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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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무투회
177# 무투회
그날 중, 명왕 강문식의 공식 방문으로 온종일 시끄러웠던 산치루 시내는 재차 들이닥친 풍파에 또 한 번 들썩였다.
그 풍파란 다름 아닌 명왕 강문식의 이름으로 공포된 하나의 소식이었다.
‘북부연합 맹주의 이름으로, 이곳 산치루에서 무투회를 개최한다.’
산치루 장룡지부장을 통해 발표된 이 소식은, 이후 장룡지부의 행정원들이 도시 곳곳의 게시판에 큼지막한 방문을 써 붙이면서 도시 전체를 후텁지근한 열기로 뒤덮이게 만들었다.
무투회, 혹은 비무대회.
북부는 숭무(崇武)라는 지역 특성상, 비무라는 이름의 실전대련이 특히 일반화된 곳이다. 별다른 오락거리가 없는 사람들은 헌터들의 불꽃 튀기는 일전을 감상하는 것을 낙으로 삼았고, 헌터들 또한 말보다는 검으로서 스스로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것을 선호했다.
오죽하면 ‘싸우고 싶다면 북부로 가라.’는 말까지 있을까. 그 대표적인 것이 북부의 음지에서 횡행했던 지하무투장으로, 오직 타지역에 극도로 폐쇄적인 북부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위원회의 영향력을 강하게 받았던 다른 지역이라면, 헌터들 간의 무력 다툼을 조장하는 그 같은 불법 행위는 절대 용인되지 못했을 테니까.
당연한 일이다. 가상의 분신을 만들어 겨루는 십존쟁탈이나 플레이오프가 아닌, 실제로 피와 살이 난무하는 대전(對戰)을 위원회가 용납할 리 없지 않은가?
어쨌든, 이토록 음성적으로 만연했던 북부의 무투문화는 근 5년에 들어서 급격히 사그라들었다. 정확히는 위원회에서 벗어난 두 개의 독립정권, 북부연합과 북부동맹이 성립하면서부터였다.
두 국가에서 무투대회를 자제시킨 것은 과거 위원회가 내걸었던 논리와 똑같았다.
다수가 참여하는 무투회든, 합의된 비무든 간에, 헌터들 간의 싸움은 필연적으로 승자와 패자를 낳게 마련이고, 결과적으로 국가전력의 손실을 가져온다. 먹느냐, 먹히느냐의 이 난세에서 그런 식의 제 살 깎아먹기 문화는 대승적 차원에서 전혀 이로울 게 없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다른 누구도 아니고 북부연합의 맹주인 명왕 강문식이 공개적으로 자기 이름을 내건 무투회의 개최를 발표한 것이다.
산치루 뿐만이 아니다. 이 소식은 삽시간에 북부 전체로 퍼져 나가면서, 과거의 스릴 넘치는 무투회를 그리워하고 있던 북부인들을 열광시켰다. 어쩌면, 이번 대회를 기점으로 침체기에 접어들었던 무투문화가 되살아나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이 싹튼 것이다.
무투회의 개최일은 발표 시점에서 2주 뒤로, 북부연합 맹주의 이름으로 개최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일정이 지나치게 촉박한 감이 있었다.
그러나 유흥거리에 메마른 북부인들에게 그런 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심지어 북부연합과 북부동맹의 국경선에는 이 무투회를 직접 눈으로 관람하기 위해 매일 같이 수백 명이 넘는 인원들이 밀입국을 시도한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었다.
북부의 그저 그런 중도시, 산치루를 중심으로 일기 시작하여 북부 전체를 뒤덮어버린 거대한 폭풍.
노구덕 일행은 그 폭풍의 중심지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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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치루 장룡지부의 정문 앞에는 개미떼처럼 기다란 행렬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었다. 모두 이번 무투회에 참가하기 위해 심사를 받으려는 헌터들이었다.
“이거야 원, 인간들이 뭐 이리 많아? 북부에 있는 백수란 백수들은 죄다 모인 것 같군.”
“누가 아니래. 벌써 두 시간이 넘었는데도 사람 빠질 기미가 안보이니…….”
골목과 골목을 거치며 구불구불 꼬리를 물고 늘어선 행렬에 중간에 서 있던 홀쭉이와 뚱보의 대화였다. 오랜 기다림에 지친 듯, 말을 주고받는 그들의 말투는 짜증이 한가득 배어 있었다.
“끙. 어중이떠중이들은 대충 걸러내면 될 텐데. 장룡지부에는 그 정도 눈을 가진 인물도 없는 건가?”
“그래도 형식상 테스트는 해보겠다는 거겠지.”
“시간 아깝게 쓸데없는 짓을…. 어차피 여기 있는 인간들은 구할 이상이 삼류일 텐데. …근데 이 새끼들이 뭘 보고 자빠졌어! 눈 안 돌려!”
뚱보의 노골적인 비아냥을 들은 주변 이들의 표정이 불편하게 변했다. 그러나 섣불리 화내며 대들고 나서는 자는 없었다. 지금 투덜거리는 뚱보와 홀쭉이는 이 주변에서 활동하는 프리 헌터들 중에서도 꽤 이름이 알려진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따지고 보면 뚱보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이 무투대회는 명왕이 직접 이름을 내걸었다 뿐, 실상 그 내용을 보면 상당한 졸속 대회였다.
보통 큰 규모의 무투대회라고 한다면 최소한 한 달 이전부터 공표를 하고 준비를 하는 게 일반적인데, 이 대회는 그 절반인 2주의 준비 기간 밖에 두지 않았다. 그러니 대부분 세력에 소속되어 있는 강자들이 일정을 조절할 수 있을 리가 있나.
즉, 여기 늘어서 있는 노상 행렬의 절대다수는 소속이 얽매이지 않은 프리헌터들, 혹은 그저 그런 어중이떠중이들이 대다수라는 얘기가 된다. 또, 애초에 대도시도 아닌 산치루의 행정 인력이 대규모의 수준 높은 대회를 준비할 역량이 되는지부터도 의문이었다.
그렇다면 명왕은 왜 굳이 자기 이름에 걸맞지 않은 대회를 열었을까?
마침, 뚱보와 홀쭉이가 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듣자하니, 이건 그냥 섬전창의 이름을 날리게 해 줄 의도된 이벤트란 말이 있어.”
“섬전창? 아아, 그… 여위량이랬나?”
“그래. 운 좋게 맹주 사위로 낙점된 놈. 내가 들었는데, 그놈이 명왕에게 무투회를 열어주십사 하고 부탁했다던데?”
“그놈이? 왜?”
“뻔하지. 근본도 없는 거렁뱅이가 갑자기 맹주 사위로 들어가면 입지가 뭐가 되겠냐? 누가 반겨주겠냐고? 하지만 북부 최초, 명왕이 이름을 내건 무투대회의 우승자라면 얘기가 다르겠지. 무투대회를 우승한 시점에 혼인 발표를 하면 파급력도 훨씬 커질 테고, 인지도도 엄청 올라갈 테니까.”
무슨 얘기인가 싶어 은근히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던 사람들은 금세 시큰둥한 얼굴이 되었다. 뚱보는 자기 생각인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지껄이고 있었지만, 실상 그의 말은 이미 무투대회에 참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정설이었던 것이다.
이번 무투대회는 섬전창 여위량의 명성을 드높이기 위해 준비된 극적 이벤트에 불과하다. 몇몇 언론에서는 벌써부터 그렇게 떠들어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잡음에도 불구하고, 무투대회의 열기는 날이 지날수록 뜨거워졌다.
준비된 이벤트면 어떠랴? 언론에서 아무리 떠들어봤자 승자가 결정된 것은 아니다. 누구라도 참가해서 섬전창 여위량을 꺾으면 되는 것이다. 그 전에 섬전창 여위량이 결승전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잖은가.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다. 섬전창이든, 일확천금을 노리고 참가한 프리헌터든, 하루살이처럼 살아가는 부랑자든 간에, 칼 한자루만 쥘 수 있으면 누구나 테스트를 받고 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
우승자에게는 상상하지도 못할 어마어마한 거액의 상금과, 북부연합에서 준비한 지보(至寶)들 중에서 하나를 고를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뿐만 아니라 명왕의 이름을 건 대회답게 16강에 들기만 해도 북부연합의 중간직에 임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며, 상당한 상금을 거머쥘 수 있게 된다. 이쯤 되면 열기가 치솟다 못해 과열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한참을 구시렁구시렁 떠들던 뚱보와 홀쭉이는 어느새 코앞까지 임박한 장룡지부의 정문을 힐끔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이제 좀 줄이 빠지는군. 몇 시간이나 지난 거야?”
“얼마 있으면 곧 우리 차례야. 그런데… 무슨 테스트를 하는 걸까?”
“난들 알겠냐. 그래봤자 별 거 없겠지… 어엉?”
무성의하게 대꾸한 뚱보의 눈이 별안간 실처럼 가늘게 쭉 찢어졌다. 뒤쪽에서 웬 후드를 뒤집어 쓴 장대 같은 사내가 자신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던 탓이다. 남부 출신인 것인지, 후드와 옷 밖으로 드러난 사내의 피부는 온통 새까만 색이었다.
“숯검댕이, 넌 뭐냐? 기분 나쁘게 뭘 그렇게 째려보고 있어? 눈 안 깔아?”
“허허. 젊은 사람이 말버릇이 험하구만.”
얼굴이 까맣게 탄 사내가 실없는 웃음을 흘리자, 뚱보의 얼굴이 더욱 험하게 찌그러졌다.
“이 대머리 새끼가, 내가 누군 줄 알고…….”
“자네가 누군지는 알 것도 없고, 두 시간 가까이 욕을 해대면서 지치지도 않나? 여기 자네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곧 시험도 볼 텐데 남 깔아뭉개면서 떠드는 건 자제해줬으면 좋겠어.”
“뭐라고?”
“거기! 분란을 일으키면 자동 실격입니다!”
후드 사내에게 다가가던 뚱보와 홀쭉이는 어쩔 수 없이 발을 멈추었다. 그들은 마지못해 물러나면서도, 얼굴 근육을 험하게 씰룩이며 사내를 노려보는 걸 잊지 않았다.
“이 새끼, 왜 갑자기 떠드나 했더니… 시험관 앞이라 기고만장해진 거였군.”
“끝나면 두고 보자.”
두 사람이 상투적인 협박투로 사내를 을러대는 사이, 닫혀 있던 대문이 열리며 시험관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음! 선두부터 스무 명, 들어오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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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앞두고 벌어진 사소한 실랑이, 그 앙갚음의 시간은 생각보다 더욱 빨리 찾아왔다.
“흐흐흐흐.”
허수아비처럼 서 있는 상대를 앞에 둔 뚱보는 음침한 미소를 흘렸다. 우두커니 선 상대는 다름 아닌 조금 전 그와 실랑이를 벌였던 그 후드 사내였다.
무투회의 주최위원회에서 준비한 시험은 생각보다 훨씬 더 간단한 것이었다. 총 다섯 가지 종목으로 구성된 테스트는 참가자들의 기본적인 역량을 시험하기 위한 최소한의 합격선이었다.
뚱보는 어렵지 않게 앞서 네 가지 종목을 통과했다. 그래도 나름대로 중견 헌터로서 잔뼈가 굵은 그에게 있어, 쇠공 들어올리기나 나무화살 쳐내기 같은 시험 종목들은 애들 장난이나 진배없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마지막 종목. 이것만 통과하면 무투대회의 참가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주최측에서 준비한 마지막 시험은 대련. 앞서 네 관문을 통과한 참가후보자들이 두 명씩 짝을 지어 자유롭게 겨루는 것이었다. 기초적인 능력을 입증한 후보자들의 대인전투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종목이었다.
제한 시간은 오 분. 살상행위는 금지. 투기와 마력사용도 금지. 무기 또한 미리 준비된 목제(木製)를 사용. 시간 내에 승리한 승자는 무조건 합격이지만, 패자를 했거나 무승부로 끝난 경우는 조금 다르다. 이 경우, 시험관의 눈에 ‘전투능력미달’로 비쳐지면 불합격이었다.
“졸려서 하품이 나올 지경이었는데, 그래도 마지막 시험은 제대로 준비해놨군. 아주 묵사발을 내주마.”
“…….”
후드 사내는 잡아먹을 것처럼 으르렁거리는 뚱보의 말에도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뚱보는 그것이 후드 사내가 겁을 집어먹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말도 제대로 못하는군. 그러니까 낄 때 안 낄 때 가려서 꼈어야지.’
투기를 사용하지 못하더라도 저런 늙은이를 묵사발 내놓을 방법이야 많다. 애당초 투기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조건은 나이를 먹은 헌터들에게 있어 매우 불리한 조건이었다.
“양측, 다시 말씀드리지만 시합 중 살상 행위는 금지입니다. 제한 시간 또한 오 분이라는 점, 명심해 주십시오. 또한, 과도하게 탐색전을 벌여 제대로 된 실력을 보이지 못하는 경우에도 기량미달로 탈락할 수 있습니다.”
“알았으니까 빨리 시작이나 해.”
“…알겠습니다.”
살짝 불쾌한 얼굴로 뚱보 사내를 흘긴 시험관은 뒤로 물러나 하얀 깃발을 수직으로 높이 쳐들었다. 이윽고, 하늘로 올라간 하얀 깃발이 아래로 홱 휘둘러졌다.
“경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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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여행 무탈하게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어김없이 비가 오는 바람에 고생을 많이 하고 왔네요 ㅠㅠ
무투대회 자체는 그리 오래 끌지 않을 겁니다. 무투대회가 중요한 에피소드가 아니니까요.
다음화는 저녁에 업로드하도록 하겠습니다!
참, 아주 오랜만에 서평이 생겼는데요! 소중한 시간 들여 분에 넘치는 서평 써주신 땅파고삽질하기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서평에는 따로 코멘트를 달아 놓았습니다!
그리고 잠깐 잊고 있었는데, 하유라가 왜 굳이 노예들을 관리하지 않고 풀어놨느냐! 하는 질문이 있었는데요. 요약하자면 리스크 분산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리고 반군에서조차 쫓기면서 입지가 굉장히 좁아진 하유라가 노예들을 전부 관리할 여건이 되지 않았기도 하고요. 그 건에 대해서는 조만간 작품 내에서 좀 더 디테일하게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금방 다음화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