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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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 시험
179# 시험
무투대회의 규칙은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규칙이라고 해봐야, 기존 북부에서 유행하던 비무규칙을 그대로 따온 것이었다.
첫째, 의도가 명백한 살인행위는 금지하며, 두 사람 중 한 명이 전투불능이 되거나 항복 선언을 했을 경우 승부가 판가름 나는 것으로 한다.
둘째, 독과 암기는 금지.
셋째, 삼십 분 이내에 승부가 나지 않을 경우 공증인 혹은 심판의 재량으로 승패를 정하도록 한다.
무투대회의 규칙은 이게 전부였다. 나름대로 몇몇 제한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당사자 간에 여러 가지 규칙을 사전에 합의하는 주스트와 비교하면 꽤 허술한 점이 많았다.
특히 모호한 것은 규칙의 첫 번째, ‘의도적 살인행위’의 판단 기준이다. 물론 심판은 가장 객관적인 위치에서 나름의 판단을 내리겠지만, 이 모호한 기준은 경우에 따라 시합을 필요 이상으로 과격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실제로 지난 세월 북부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살인행위를 금한다’는 규칙에도 불구하고 무투시합 중 사망한 헌터들의 수가 상당히 많은 편이었다. 오죽 헌터가 많이 죽어나갔으면 북부연합, 북부동맹 할 것 없이 전면적으로 무투대회를 금지시켰을까.
이처럼 인명 피해가 많이 나는 것은 전적으로 ‘그래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대회를 여는 주최자 입장에선 참가자들 간에 피가 난무하고, 잔인하고, 야만적이어야 확실한 흥행이 보장될 테니까.
다시 말하지만, 무투대회는 북부의 유서 깊은 오락거리다. 관객들도 지루한 겉핥기식 경기보다는 서로 물어뜯고 죽이려하는 경기를 훨씬 더 좋아했다.
오늘, 산치루에서 개최된 무투대회 역시 그러한 기존 대회의 특성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자, 잠깐… 우아아아악–!”
‘벌써 네 명째.’
살짝 곁눈질을 하니, 옆 경기장에서 붉은 핏줄기가 날카롭게 솟구치는 것이 보였다. 뒤이어, 격전을 벌이던 사내 중 한 명이 썩은 짚단처럼 힘없이 나자빠졌다. 하얗게 탈색된 얼굴 아래로, 길게 벌어진 목의 자상이 울컥울컥 핏물을 토해내고 있었다. 경동맥을 베인 것이다.
“시합 종료!”
판정이 떨어진 직후, 들것을 든 의무반이 급히 달려가는 게 보였지만, 피웅덩이 속에 쓰러진 사내는 이미 반쯤 요단강을 건넌 상태였다.
저건 살 수 없다. 아직 숨만 끊어지지 않았다 뿐이지, 실상 송장으로 취급해도 무방한 상태.
대회가 시작되고, 저 사내처럼 죽은 사람만 벌써 네 명째다.
사실상 살인에 준하는 행위가 발생했음에도 심판은 상대 참가자의 승리를 선언했다. 사상자가 생기긴 했으나 ‘의도적 살인행위’라고는 보지 않았다는 말이다.
물론 속사정은 전혀 다르다. 노구덕의 눈에 비쳐진 시합 내용은 비무도 뭣도 아닌, 상당한 수준 차에 의한 도살극이었다. 상대 참가자는 죽은 사내를 충분히 살려줄 수 있었음에도, 실수를 가장하여 죽여버렸다.
그 답례로 받은 것은 수천 관중들의 환호와 귀가 먹먹한 박수갈채.
그에 부응하여 의기양양하게 피에 젖은 검을 들어 보이는 남자의 표정에선 죽어버린 상대에 대한 죄책감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너무 대놓고 하지만 않으면 다 된다는 거군. 이게 북부의 관습이란 건가… 대충은 알 것 같아.’
새삼 느끼는 거지만, 공증인의 입회 아래 나름 엄격하게 규칙을 준수하는 주스트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어떻게 보면 다섯 지역 중 가장 지역색이 강한 북부다운 문화였다.
“이 늙은이가! 날 두고 감히 한눈을 파는 거냐!”
섬뜩한 예기를 발하는 창날이 서너 개의 분신을 만들어내며 명치와 복부, 사타구니를 동시에 꿰뚫었다.
“잡았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지.”
“으헉!”
노구덕의 몸뚱이에 세 개의 바람구멍이 뚫릴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내의 얼굴이 아연해졌다. 창날에 꿰뚫린 그의 몸뚱이가 호수에 비친 그림자처럼 흐물흐물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잡았다고 생각했던 그것은 상대가 남긴 잔상에 불과했다.
“나도 이런 게 싫진 않거든. 자네에겐 미안하게 됐어.”
“저리 꺼… 어어어억!”
사내의 부릅뜬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불거졌다. 어느새 복부 위쪽으로 파고든 주먹이 가지런한 갈빗대를 와장창 깨부순 것이다.
“꺼으으으…!”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에 사내의 눈알이 허옇게 뒤집어졌다. 적어도 뼈가 대여섯 개는 부러진 것 같다. 뾰족한 뼛조각들이 내부 장기를 너덜너덜하게 헤집고 있었다.
사내는 남은 여력을 모조리 체내로 돌려 더 이상의 장기 손상을 막았다.
“그, 그만… 컥!”
항복 선언을 하기도 전에 턱을 얻어맞은 사내의 몸이 풍선처럼 위로 떠올랐다가 다시 아래로 나동그라졌다. 턱뼈가 무참하게 으스러진 사내는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부들부들 몸을 떨어댔다.
사내의 의식이 이미 저 멀리 날아가 버린 것을 확인한 심판은 깃발을 위로 올리며 노구덕의 승리를 선언했다.
“시합 종료! 승자, 매거트!”
“오오오오! 역시 화끈하구만!”
“최고다! 매거트, 난 네게 걸었다고!”
노구덕은 쏟아지는 환호성을 받으며 유유히 대기실로 향하다가, 저 멀리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상석쪽을 힐끔거렸다.
동시에 시합을 진행하는 4개의 비무대가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마련된 상석에는 이번 무투대회를 주최한 명왕 강문식을 비롯해, 북부연합의 이름 있는 인사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었다.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명왕의 주변이라 그런지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 강옥교의 하얀 얼굴을 찾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강옥교의 아찔한 미모는 수많은 꽃들이 모여 있는 상석에서도 단연 독보적이어서, 마치 그녀에게만 눈부신 햇살이 비추는 느낌이었다.
강옥교의 실물을 처음 대한 노구덕의 감상은 과거 소냐가 받았던 느낌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예쁘긴 정말 예쁘군.’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그 이상의 감흥은 없었다. 미모로 따지자면 그와 십년을 함께 한 임유진, 데모나, 소피아도 소수점 아래 단위의 최상위 레벨이다. 매일 같이 꽃 중의 꽃들에게 둘러싸여 살았던 노구덕의 눈은 이미 벨룸 산맥 최정상에 두고 온지 오래였다.
바로 어젯밤만 하더라도 자타공인 스퀘어 최고의 미녀로 꼽혔던 서리여왕 하유라와, 그 못지않은 포텐셜을 가진 소냐와 삼자대면을 하지 않았던가.
‘도저히 그런 지저분한 관계를 가질 여자로는 보이지 않아. 겉만 보면 전형적인 청순발랄형인데… 역시 모르겠군. 아무리 사람은 겉만 보고 알 수 없다지만…….’
“매거트 님!”
“응?”
상념에 빠진 채 대기실 통로로 들어가던 노구덕은 통로 안쪽에서 반갑게 손을 흔들고 있는 낯익은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자네는… 양훈?”
“하하하! 기억해 주시는군요!”
그는 나이아드에서 헤어졌던 청랑단장 양훈이었다. 나이아드에서의 일이 마무리되면 듀폰으로 간다고 하더니, 도중에 무투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참가를 한 모양이었다.
그와의 만남을 꽤 좋게 기억하고 있던 노구덕은 악수를 권하는 양훈의 손을 굳게 맞잡았다.
“반갑구먼. 그래, 일은 잘 마무리했나?”
“마무리랄 것도 없지요. 씨서펜트를 잡은 이후로 해수를 목격했단 보고가 전혀 없었거든요. 해수 경보도 지금은 해제된 상탭니다.”
“그런가? 다행이군.”
“예. 다행이지요. 어찌됐든 저희는 두둑이 한 몫 챙겼으니 괜찮습니다만…. 그건 그렇고, 여기서 매거트 님을 뵐 줄은 몰랐습니다. 방금 전 시합을 봤는데 대단하시더군요.”
다시 만난 양훈은 여전히 말이 많은 사내였다.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인 노구덕은 양훈의 가슴에 달려 있는 명패를 힐끗거렸다. 참가번호가 적혀 있는 명패였다.
“음, 이왕 북부에 왔으니 늘그막에 이런 경험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말일세. 자네도 참가하는 건가? 다른 단원들은?”
“하하. 예. 보면 아시겠지만 저도 참가합니다. 다음 차례에 3번 비무대에 올라가게 될 겁니다. 다른 단원들이야 뭐, 놀고 있는 녀석도 있고, 저처럼 참가한 사람도 있지요. 어쨌든 누구라도 16강 안에 들기만 하면 한동안은 놀고먹어도 될 테니까요.”
“그건 그렇지.”
그러고 보니 16강 안에 들기만 해도 상당한 거금이 지급된다고 했던가. 확실히 청랑단 같은 용병단에겐 매력적인 조건이었을 것이다. 어차피 다른 목적으로 무투대회에 참가한 노구덕에겐 그런 상금 따위야 알 바는 아니었지만.
“이거, 이대로 가면 자네들을 만날 수도 있겠는데? 괜히 참가했다는 생각이 드는군.”
“금칠을 해주시는군요. 저야말로 방금 경기를 보니까 등골이 오싹해지는데요.”
“허, 이 사람, 그렇게 말하면서 나중에 만나면 대뜸 칼부터 뽑고 보는 거 아닌가?”
“아이고, 그럼 검사에게 칼도 없이 싸우란 말씀이십니까? 너무하십니다.”
“으허헛. 어쨌든, 상대로 만나게 되면 잘 부탁하네. 늙은이 사정 좀 봐주게나.”
“죄송합니다. 저희도 급전이 필요해서 말이지요. 그런데, 그분도 이 대회에 참가하십니까?”
줄곧 실실거리며 웃던 양훈의 표정에 미약한 긴장감이 깃들었다. 아마도 선상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선보였던 서리여왕 하유라의 참가여부를 묻는 것일 터.
“라나 말인가? 그녀는 참가하지 않는다네. 안심해도 좋아.”
“휴우, 다행이군요. 솔직히 좀 걱정이었는데요.”
“그럼 나는 괜찮고?”
“매거트 님이야 이미 참가하셨으니 어쩔 수 없잖습니까. 이크! 절 부르는군요. 빨리 가봐야겠습니다.”
주거니, 받거니. 노구덕과 신이 나서 죽을 맞추던 양훈은 3번 대회장에서 들려오는 방송 소리에 매우 다급한 얼굴이 되었다.
“나중에 또 보세나. 건투를 비네.”
“예! 들어가십쇼!”
유쾌한 떠버리, 양훈을 떠나보낸 노구덕은 다시 가던 길을 재촉했다. 그러나 태평하게 걸을 수 있던 것은 정말 잠깐 뿐이었다. 그는 불과 십 미터 정도를 가다 말고 다시 발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거 참, 오늘은 인복이 많은 날이군. 우린 저녁에 만나기로 한 게 아니었나?”
“…….”
통로에서 비스듬히 등을 기댄 채 서 있던 여위량은 조용히 노구덕을 마주보고 섰다.
“생각이 바뀌었다. 당신만 괜찮다면 지금 바로 약속 장소로 갔으면 한다.”
그 갑작스런 통보를 들은 노구덕의 미간에 미세한 골이 파였다. 약속 당일에 갑자기 시간을 바꾸는 수법. 간단하지만, 상대가 그 시간에 맞춰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다면 나름대로는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이다.
그 속내를 꿰뚫어본 노구덕은 낮은 한숨을 흘렸다.
“크흠…. 이래봬도 한 나라의 수장인데, 자네에겐 별로 믿음을 주지 못하는 모양이야.”
“믿음을 거론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야 그렇지.”
“받아들이기 힘든가?”
뜻밖의 변수가 발생했지만, 노구덕으로선 별로 거리낄 게 없는 제안이었다. 강옥교가 지금 대회장에 나와 있으니 소냐도 비번일 테고, 근처를 배회하고 있을 하유라 역시 간단한 연락만 보내면 언제든지 불러들일 수 있었다.
노구덕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이 을이고, 자네가 갑이니 별 수 있나. 그렇게 하세. 그편이 믿음을 줄 수 있다면야.”
예상외로 그가 수월하게 제안을 받아들이자, 굳어 있던 여위량의 눈빛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잠깐 말문이 막힌 듯, 하릴없이 입술을 짓씹은 여위량은 홱 뒤로 돌아섰다.
관록의 차이라고 해야 할까. 왠지 모르게 처음부터 지고 들어가는 느낌을 떨쳐낼 수 없었다.
“…좋다. 따라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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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큰 힘이 됩니다!
제가 어제 기우제를 지낸게 정말로 효과가 있었나 봅니다..
아침부터 하늘에 구멍이 뚫렸더군요. 근데 정작 날씨는 후텁지근.. ㅠㅠ
뒤로 밀려진 연재주기는 천천히 맞춰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괜히 조급하게 마음먹었다가 스트레스만 더 받는 것 같아서요!
혹시 작품 보시면서 궁금한 점 있으시면 코멘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다음화 업로드 할 때 답변해 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