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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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 시험
“주인이라고? 잘도 그런 말을…! 네년이 내게 한 짓을 잊은 거냐?”
“내가 구한 목숨이다. 어떻게 다루든 내 마음일 텐데?”
“뭐라!”
분노한 여위량의 눈자위가 붉게 물들었다. 그의 손에 들린 창날에 반투명한 투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는 것을 본 소냐는 고개를 돌려 노구덕을 바라보았다.
“대부님, 말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냥 두고 보자. 자고로 싸움 구경만큼 재밌는 게 또 없거든.”
“…….”
무슨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노구덕은 일촉즉발로 치닫는 두 사람을 말릴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말 잘 듣는 착한 아이인 소냐는 그의 말에 따라 잠자코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싸움구경을 즐기는 건 아니었지만, 그녀 또한 고수들의 대결에는 큰 흥미가 있었다.
그 사이, 하유라의 뻔뻔한 태도에 눈이 뒤집힌 여위량은 기어코 선수를 치고 말았다. 투기가 그득 담긴 창날을 하유라의 앞섶을 향해 번개처럼 내뻗은 것이다.
“이 더러운 악녀!”
앞으로 튀어나간 여위량의 창은 마치 살아있는 연체동물 같았다. 창이 아니라 채찍인 양, 낭창낭창하게 휘어진 그의 창대는 영활한 뱀처럼 갈지자를 그리며 하유라의 명치를 물어뜯으려고 했다.
삽시간에 위험천만한 지경에 처한 하유라. 그러나 그녀는 당황하긴커녕 냉랭한 코웃음을 치며 번쩍이는 섬광을 내뿜었다.
“흥!”
여위량의 창날을 정면으로 튕겨낸 섬광의 정체는 그녀의 등에 메여 있던 단창이었다. 언제부터 손이 등에 가 있었던 것인지는 몰라도, 마치 발도(拔刀)를 하는 것처럼 창을 뽑아내 단숨에 여위량의 공격을 무위로 돌려버린 것이다.
구불구불 어지럽게 쇄도하는 창날의 끝을 정확히 타격해 반대방향으로 튕겨낸다.
북부에서도 특히나 고도의 기예로 일컬어지는 후발선제(後發先制)의 묘리다. 간단한 설명과는 달리, 실전에서의 사용은 숱한 창술의 달인들도 함부로 자신할 수 없을 만큼 까다로운 기술이었다.
그것도 그 상대가 섬전창 여위량이라면 더더욱 그러할 터.
“저럴 수가… 후발선제…?”
“말도 안 되는! 대체 저 여자가 누구이길래?”
이런 상황이니, 여위량의 수하들이 입을 벌리며 경악하는 것도 당연했다. 복식을 보면 북부가 아니라 타 지역 사람인 것 같은데, 북부의 노련한 무인들도 사용에 애를 먹는 기술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사용하니 기가 막힐 수밖에.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관점일 뿐. 반대쪽에서 관전하는 노구덕과 소냐에겐 별달리 수선 떨 일도 아니었다.
“잘 봐두거라. 이런 싸움은 북부가 아니면 좀처럼 구경하기 어려우니까. 나도 예전에는 기교파들에게 상당히 애를 먹었단다.”
“그렇군요. 확실히 저런 수법은 서부나 동부에선 보지 못했던 기술입니다.”
“뭐, 북부는 온갖 무학의 발상지니…. 덕분에 배우기도 힘들고 자부심이 지나친 면도 없잖아 있지만, 기술의 수준 자체는 굉장히 높은 건 사실이다.”
“저분은 그런 기술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거군요.”
“음. 달리 만능이 아니지.”
솔직히 성격만 보면 상종하기 싫은 인간이지만… 헌터로서의 능력만을 따졌을 때, 하유라의 재능은 천재 중의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능(萬能).
모든 종류의 무기를 명인급 이상으로 다룰 수 있으며, 모든 종류의 마법과 신성 주문에 두루 능통하다. 세상에 그런 인간은 저 하유라밖에 없으리라.
무엇보다 그녀의 가장 무서운 점은, 단순히 재능만 뛰어난 게 아니라 배우고 습득하는 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경이적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학습하는 능력’ 하나만은 Lv6 재능자인 김정인이나 소냐보다 뛰어날지도 몰랐다.
여위량과 하유라의 공방을 지켜보고 있던 노구덕은 돌연 작게 쓴웃음을 지었다.
‘그 뛰어난 학습력 때문에 오히려 단련에 게을러졌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이건 좀 아이러니군.’
여위량 대 하유라의 일전은 슬슬 종반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딱히 싸움의 유불리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사나운 공격을 퍼붓던 여위량의 창에서 서서히 독기가 빠져나간 탓이다.
어쨌든 노구덕에 제안에 응해 이렇게 자리가 마련된 이상, 여위량은 그의 일행인 하유라를 죽일 수 없다. 물론 애초에 죽일 능력도 안 되겠지만.
그러니까 지금 이 싸움은 그저 단순한 화풀이, 혹은 투정에 불과하다. 그게 아니면…….
“쓰레기. 내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는 게 아니라면, 이쯤 하는 게 좋을 거다. 너 같은 벌레가 내 실력을 가늠하기엔 천년은 이르니까.”
“후욱, 훅….”
숨을 헐떡인 여위량은 앞으로 곤두선 창날을 천천히 거둬들였다.
짧은 시간에 맹공을 퍼부었으나 상대가 둘러친 철의 방벽을 뚫진 못했다. 그게 현실이었다.
‘변한 게… 없다니.’
지난 세월 동안 각고의 노력을 했다. 그래서 어느 정도 격차가 좁혀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마주한 서리여왕 하유라의 벽은 여전히 높기만 했다.
당연히 전력을 다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하유라도 마찬가지일 터다. 그나마 소득이 있다면, 하유라가 허리춤에 달고 있던 장검을 쓰게 만들었다는 것인데… 그걸 과연 소득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제길.”
여위량은 쓴물을 삼키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가 물러나는 것을 본 하유라 또한 들고 있던 단창을 다시 뒤로 접어 멨다.
“여어. 창만으로는 약간 무리였나보지? 검까지 꺼낸 걸 보면 말이야.”
“…닥쳐라.”
“미리 말했으면 아발란체라도 빌려줬을 텐데.”
심기를 살살 긁어대는 노구덕을 무섭게 노려본 하유라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발톱에 낀 때만도 못한 존재로 여겼던 상대에게 ‘검’을 꺼내들었단 사실에 굉장히 심기가 불편해진 듯했다. 여위량의 앞에서 거만하게 말했던 것과는 완전히 딴판인 얼굴이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여위량은 좀 더 자부심을 가져도 괜찮았다. 모르는 이들은 서리여왕의 주력 병기가 창인 줄 알고 있지만, 실제 그녀가 가장 조예가 깊은 병기는 검이다. 대련이든, 실전이든, 일 대 일 대결에서 그녀가 검을 빼든 상대는 모두 그에 걸맞은 강자들이었다.
‘여위량 저놈, 기술적으로는 이미 완성된 그릇이군. 막상 제대로 수련할 수 있엇던 기간은 얼마 되지 않을 텐데… 지원만 좀 더 해주면 크게 만개할 놈이야.’
이것도 직업병인 것인지, 될성부른 떡잎을 보면 일단 가지고 싶다는 욕심부터 부리는 노구덕이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는 조금…이 아니라 많이 힘들었다. 장차 북부연합의 중추를 담당할 창창한 인재가 보장된 앞날을 버리고 레그나토르에 투신할 리는 없었으니까.
“분풀이는 끝났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다짜고짜 창부터 휘두르면 어떡하나?”
“…당신은 모른다. 저 악녀가 내게 어떤…….”
“구구절절한 사연 듣지 않아도 빌어먹을 악녀라는 건 잘 알고 있네. 나도 크게 데인 적이 있어서. 지금은 목적이 같아서 잠시 힘을 합쳤을 뿐이지.”
“그, 그런가.”
하유라가 가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말을 지껄이는 노구덕의 언사에 깜짝 놀란 여위량은 이내 그의 위치를 상기하고는 납득한 듯이 고개를 주억였다.
그에게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인 노구덕은 뒤쪽에 있는 소냐를 돌아보았다.
“얘야, 준비되었느냐?”
“예.”
어느새 뒤쪽에는 반지름 2미터 정도의 중형 마법진이 완성되어 있었다. 티렐의 진전을 이어받은 소냐가 설계한 하이드 각인 마법진이었다.
아라베스크처럼 유려한 곡선과 도형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그득하게 들어찬 마법진의 중앙에는 딱 성인 한 명이 딛고 서 있을 정도의 빈 공간이 있었다.
“보면 알겠지만, 저기 중앙에 잠깐 서 있기만 하면 모든 게 끝난다네. 영혼 자체에 각인을 새기는 술식이라 피부에 따로 흔적도 남지 않지. 아, 매개체로 사용할 피를 조금 내주겠나? 이 잔을 채울 정도면 되네.”
“…….”
기이한 형상의 마법진을 날카롭게 살핀 여위량은, 이윽고 지니고 있던 소검으로 손바닥에 기다란 상처를 냈다. 긴 자상에서 울컥울컥 흘러내린 핏물은 노구덕이 내민 잔 속을 금방 가득 채웠다.
“이 정도면 되었겠지?”
“충분해. 이제 마법진 위로 가 주겠나?”
“아니. 그전에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다. 내가 마법진 위에 올라가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상호 신뢰가 없으니 몇 번이고 의심하는 건 당연한 일. 그의 반응을 예상했던 노구덕은 미리 준비했던 대답을 술술 풀어놓았다.
“술식이 자리 잡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오 분 정도. 성공적으로 술식이 새겨지면 마법진 전체에서 강한 빛이 뿜어질 텐데, 그러면 그냥 끝일세. 어때, 간단하지?”
“당신은… 저주를 풀기 위해 시스템의 힘이 필요하다고 했지. 내가 이대로 당신과 함께 가지 않아도 괜찮은 건가?”
여위량은 전에 몇 번이고 확인했던 내용들을 계속해서 되물었다. 그 이유야 뻔하다.
대가 없는 호의는 수상하다. 그가 처음에 말했듯이, 여위량은 여전히 노구덕 일행에 대한 의혹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랬지. 하지만 어쩌겠나. 신의 조각이 자네만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을 찾아보든가 해야지. 자네를 억지로 데려갔다간 명왕이 노발대발할 테니. 우리도 급하긴 하지만 그런 리스크를 감수할 정도는 아니야. 그리고 자네도 나름대로 수를 써두지 않았나?”
“알고… 있었군.”
여위량의 눈빛이 흔들리는 촛불처럼 일렁였다. 확실히, 그는 일정 시간 내로 자신이 복귀하지 않거나 신변에 이상이 생긴다면 무투대회에 참가한 노구덕의 정체를 폭로하는 장치를 마련해 두었다.
헌데, 상대는 거기까지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도대체 이곳 산치루가 그의 안마당인지, 저들의 안마당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기분 나빠하지는 말게. 서로 못 믿는 처지에 그 정도 감시는 당연한 거지.”
“음…. 내가 저 마법진 위에 올라가지 않는다면?”
“그럴 생각으로 여기까지 나온 거였나? 조금 섭섭하군. 그러면 뭐… 자네는 무투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하게 될 거야. 내게 지고 말 테니까. 그러면 자네가 이뤄야 한다는 사명인지 뭔지도 큰 차질이 생기겠지?”
“…그래서 무투대회에 참가한 건가? 여차하면 날 방해하려고?”
“겸사겸사라고 말해두지. 이보게, 피차 번거롭게 시간낭비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몇 번이나 말했지만 나는 자네에게 해를 끼치고 싶지 않아. 신의 조각을 찾아다니는 발레기우스란 놈의 존재가 없었다면 이런 귀찮은 제안도 하지 않았을 거야.”
“…….”
“선택하게. 마법진 위에 올라갈 것인지, 아니면 제안을 거부할 것인지.”
답은 정해져 있었다. 가진 세력도, 개인의 무력도 한참이나 떨어지는 그로선 노구덕의 제안을 거부했을 시 돌아오는 대가를 감당할 역량이 없었다.
짧은 침묵을 끝낸 여위량은 뒤에서 굳은 얼굴로 시립해 있는 부하들을 돌아보았다.
“내게 무슨 일이 생기거든 시킨 대로 움직여라.”
“형님.”
“난 신경 쓰지 마라. 절대로.”
“…명심하겠습니다.”
지시를 내려두긴 했지만, 사실 저들의 능력을 생각한다면 불필요한 일이었다. 하유라가 마음만 먹는다면 이들 다섯 명은 단 한 명도 살아 돌아갈 수 없을 테니까.
짧은 지시를 남긴 여위량은 작게 심호흡을 하며 마법진 위로 올라갔다. 그 후 노구덕이 마법진 위에 넓게 피를 흩뿌리자, 마법진 내부의 문양들이 은은한 광채를 흘리며 어지럽게 뒤엉키기 시작했다.
노구덕, 하유라, 소냐, 여위량 일당… 모두의 긴장된 시선이 막 발동된 마법진 중앙에 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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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새벽에 또 한편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른 새벽이 될지, 늦은 새벽이 될지는 저도 모르겠네요 ㅠㅠ 일단 영화관 다녀와서 열심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나저나 666화라니.. 저도 미처 모르고 있었네요. 축하해주신 모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777이면 더 좋았을 텐데요. 열심히 달려봐야죠.
질문해주신 무릴로의 강함에 대해선 아마 몇십화 내로 대충 가늠하실 수 있는 내용이 나올 겁니다.
그럼, 새벽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