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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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갈등
16# 갈등
예상치 못한 그녀와의 조우에 잠시 멍해 있던 노구덕은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너… 네가 지금 왜 여기 있어? 그 옆은 뭐고?”
“아이, 항상 아가씨라고 하시다가 너라고 하니까 되게 어색하다. 그치만 봐줄게요. 난 속이 넓으니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잖아!”
스릉.
뒤따라온 김정인은 말없이 검을 뽑아들었다.
소피아의 옆에는 초주검이 된 사람의 몸뚱이가 정육점에 진열된 고깃덩이처럼 걸려 있었다. 얼마나 채찍으로 두들겨 맞았는지, 굵직굵직하게 생살이 뜯겨나간 상처가 거미줄처럼 수놓아진 몸뚱이에서 흘러내린 핏물이 그 아래에 고여 작은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소피아는 노구덕과 김정인이 자신을 적대시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작은 머리를 모로 기울였다.
“왜 여기 있냐뇨? 여긴 제가 마련한 안가잖아요?”
“오늘은 우리가 만나는 날이 아닐 텐데?”
“우후후. 저도 눈과 귀는 있거든요. 소중한 사업 파트너가 위기에 처했는데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죠.”
미심쩍었다. 아무리 정보가 빨라도, 박준혁의 습격은 불과 조금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사이에 아이리스의 도주 경로를 예측해 안가에 미리 와 있는다? 불가능한 얘기였다. 더군다나 그녀는 방금 전까지 노예를 ‘길들이고’ 있었던 모양. 이미 한참 전에 도착해 있었다는 소리였다.
노구덕과 김정인은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박준혁의 습격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이번 습격과 관련해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을.
“…옆의 그건 노예인가?”
“아, 맞아요. 말을 듣지 않아서 교육 중이었죠. 오늘 여기서 다 죽을지도 모른다고 하니까, 발광하면서 도망치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본보기로 삼았어요.”
“너, 내 소유의 노예를 허락도 없이……!”
“어라? 썩어빠진 정신머리를 고쳐 준 제게 감사해야 되는 것 아닌가요? 어차피 여기 노예들, 총알받이로 내세울 거잖아요? 그게 아니라면 정중히 사죄할게요.”
“……!”
노구덕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이 여자, 소피아는 마치 그의 속마음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모든 수를 읽고 있었다. 여기서 자존심 세운답시고 아니라고 부정해봐야 자기만 더 비참해지는 꼴이었다. 실제로 그럴 셈이었으니까.
“…하나 묻자. 넌 아군이냐?”
“물론이에요. 우린 소중한 비즈니스 파트너잖아요? 전 노예를 공급하고, 노구덕 헌터는 노예를 검수하는 관계죠.”
영악한 소피아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설명까지 덧붙였다. 마지막 말은, 노구덕이 아닌 뒤에서 듣고 있던 김정인을 겨냥한 말이었다.
김정인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노구덕을 쳐다봤다. 그로서는 도저히 믿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노예라고는 해도 사람을 채찍으로 갈기갈기 찢어 놓은 저 악녀와, 아이리스의 큰형님인 있는 노구덕이 동업자라니?
제발 악녀의 말이 거짓이길 빌며, 그는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형님. 저 여자 말이… 사실입니까?”
“…그래.”
꾸욱. 칼자루를 쥔 손아귀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노예를 검수하는 일을 하신다고요?”
“그래. 그런 일을 하고 있었지.”
불편한 얼굴이었지만, 이번에도 어김없이 수긍하는 노구덕이었다. 그 또한 심중이 복잡했다. 적어도, 그가 이곳 안가에 출입하는 동안에는 저런 식으로 노예를 가혹하게 관리한 적은 없었다. 그도, 소피아도 그랬다. 지금 그들 앞에 처참한 지경이 되어 걸려 있는 노예는, 아마 무엇인가를 의도한 소피아의 작위적인 연출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 요망한…….’
마음 같아서는 멱살을 잡고 뺨이라도 후려치고 싶었지만, 괜히 소피아를 적대해서 얻을 것은 없었다. 거기다 자신에게는 무엇보다 급한 일이 있지 않던가.
“대체 왜 말도 없이 이런……!”
“정인아. 지금 이런 일 가지고 시시콜콜 떠들 때가 아니다.”
“시시콜콜한 일이라니요! 저런 꼴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십니까!”
김정인이 가리킨 것은 도축된 고기처럼 너저분하게 걸려 있는 노예였다. 한시가 급한 마당에 그가 자꾸 물고 늘어지자 짜증이 치민 노구덕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제길! 네 맘이 어떤지는 알겠는데, 나중에, 나중에 얘기하잔 말이다! 지금 유진이 상태가 어떤지 몰라서 그래? 이럴 시간 있으면 유진이나 데리고 와! 한시라도 빨리 수혈해야 하니까!”
“…임유진 씨, 데리고 오겠습니다.”
지그시 노구덕과 소피아를 번갈아 노려본 김정인은 휭 하는 바람 소리와 함께 위로 올라가버렸다.
“우후후. 가족처럼 화목한 클럽이라 참 보기 좋네요.”
타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것도 모자라 염장질까지 더하는 소피아였다. 노구덕은 다시 한 번 펄펄 끓어오르는 살의를 억누르며, 품속에서 데모나에게 받은 시약병을 꺼냈다.
“수혈을 급히 필요로 하는 환자가 있어. 혈액 반응이 주황색인 노예를 찾아야 돼.”
“그거야 간단한 일이죠.”
소피아는 여유롭게 걸음을 옮겨 뒤쪽에 있는 철창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어색하게 늘어서 있는 십여 명의 노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 같이 소피아를 보고 마른 침을 삼키거나 몸을 떨며 두려운 기색을 내비치는 것이, ‘본보기’를 보였다는 소피아의 말이 이해가 될 것 같았다.
그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걸려 있는 노예 쪽은 애써 외면하며 철창 밖으로 걸어 나왔다.
“제가 할까요?”
“아니, 내가 직접 하지.”
사람의 시체라면 질리도록 해부해 본 노구덕이었다. 그는 가지고 있던 손칼로 줄지어 늘어서 있는 노예들의 손가락에 작은 생채기를 내고는, 그 위에 시약을 한 방울 떨어뜨리는 식으로 검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10명의 노예 중 임유진과 같은 성질의 혈액을 지닌 이는 2명. 삼십 대의 건장한 남자 노예와 조금 앳된 티가 남아 있는 이십 대의 여자 노예였다.
“너, 이리 나와.”
이왕 수혈할 거면 성별이 같은 편이 나을 거라 생각한 노구덕은 여자 노예를 지목했다. 영문도 모르고 지목을 당한 여자 노예는 불안한 얼굴로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안 그래도 소피아에게 ‘너희들은 여기서 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엄포를 들은 터라, 모든 것이 두렵기만 했다.
임유진을 안은 김정인이 데모나와 함께 내려 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겨우 지하실 계단을 내려왔을 뿐인데도 데모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서당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노구덕은 그것이 ‘대주문’의 여파에 의한 것임을 단박에 알아보았다.
“무슨 주문을 쓴 거야?”
“…숲 속의 안식처. 거기에 윤희지의 마법을 더해서 이곳을 요새화시켰어.”
숲 속의 안식처라면 이전 티라녹의 마굴에서 우타마의 자폭을 막아내기도 한 데모나의 비전 주문이었다.
힐끗, 죄인처럼 늘어서 있는 노예들을 일별한 김정인이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추적자들이 지척에 도달했습니다. 아마도 지금쯤…….”
쿠구구궁!
박준혁도 양반은 못되는 인간이었다.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요란한 굉음이 위쪽에서 울려 퍼지자, 노구덕은 황급히 데모나를 재촉했다.
“얘가 유진이와 같은 혈액 반응을 보였어. 나머진 네게 맡긴다.”
“하아. 어차피 이제 남은 씨앗도 없어. 전투에는 별 도움이 안 될 거야.”
그러면서 구석에서 웃고 있는 소피아에게 턱짓을 해 보이는 데모나였다.
“듣자 하니 아군이라며? 힘 좀 써 달라 하지 그래?”
“후유우. 그건 곤란해요. 저도 입장이 있는지라.”
“핑계는 좋네.”
쿠우웅!
두 번째 폭음. 지축이 뒤흔들리며 위로부터 작은 돌가루가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데모나가 펼친 ‘숲 속의 안식처’를 이루는 고목이 땅에 뿌리를 박고 있는 탓에 그 충격의 여파가 지하실의 지반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았다.
“안 되겠군.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아. 나가 봐야겠어. 정인아, 가자.”
“…예.”
두 사람이 지하실을 빠져 나가려고 할 때, 소피아의 나른한 음성이 그 발목을 붙잡았다.
“지금 아이리스 전력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을 텐데요. 우리 노예들, 필요 없으세요? 총알받이에는 이만한 애들도 없다구요?”
악마의 속삭임처럼 달콤한 유혹이었다. 소피아가 대놓고 부추기지만 않았더라면 정말로 그녀 말대로 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런 구도,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노예들을 투입한단 말인가. 노구덕은 잠깐 멈칫했다가, 고개를 내젓는 김정인을 보고는 흔들리는 마음을 바로 잡았다.
“…필요 없어. 데모나, 유진이를 부탁한다.”
“흐흐흥. 그러시구나. 혹시나 필요 하시면 언제든지 불러주세요~. 이 아이들은 노구덕 헌터의 소유물이니까요.”
“짜증나는 년이네, 정말.”
노구덕은 소피아의 속삭임을 무시하고 계단을 올라갔다. 그나마 뒤에서 들려오는 데모나의 한마디가 부글부글 끓는 속을 조금이나마 풀어주는 것 같았다.
상황은 좋지 않았다. 추격자들의 거듭되는 공세에 고목으로 이루어진 쉘터는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했다.
“정인 씨!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아요!”
“아저씨! 우리 어떡해요?”
“형님들! 제가 밖에서 시간을 끌어 보겠습니다!”
진땀을 흘리며 쉘터의 빈틈을 마법으로 메우고 있는 윤희지, 안절부절 못하며 노구덕에게 다가온 신소율, 상처 입은 몸으로 전의를 불태우고 있는 이두식. 아직 싸울 여력은 남아 있었지만,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괜히 허세를 부렸나…….’
멤버들의 상태를 보니 지하실에 두고 온 노예들이 새삼 아깝게 느껴졌다.
쿵!
마침내, 오두막을 보호하는 쉘터를 이루고 있던 고목 한 그루가 거대한 뿌리 일부를 드러내며 쓰러졌다. 그러자 널찍하게 뚫린 공간 사이로 붉은색의 안광을 번뜩이는 그림자들이 속속들이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휘유우~. 많이도 왔네. 열다섯? 아니, 열여섯 정도 되려나?”
뒤에서 들려온 실없는 목소리에 일행은 너나 할 것 없이 그쪽을 돌아보았다. 거기엔 십여 명의 노예를 대동한 소피아가 지하실 계단을 올라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입장이니 뭐니 하면서 방관한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렇게 나타난단 말인가. 어처구니가 없어진 노구덕은 소피아를 향해 마구 삿대질을 했다.
“무슨 짓이야? 노예는 필요 없다고 했잖아!”
“그냥 관람이에요. 관람. 그리고 뭐어, 여차하면 예비군이 필요할지도 모르잖아요? 준비해 둬서 나쁠 거 없죠.”
장난스러운 어조 어딘가에는, 분명히 자신의 말대로 되리란 확신이 강하게 묻어 나오고 있었다.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소피아를 못마땅하게 노려본 김정인은 핏빛 마검을 똑바로 곧추세웠다.
“승산은 있습니다. 레이지의 지속 시간은 길어야 한 시간, 슬슬 부작용이 나타날 때가 됐죠.”
그 말을 들은 일행들 또한 퍼뜩 깨닫는 바가 있었다.
광폭화, 레이지 등과 같이 신체 능력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키는 주문은 효력이 끝난 뒤, 그 반동 또한 상승폭에 비례하여 커졌다. 리버들의 격노 상태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주문이라면 김정인의 말대로 한 시간을 넘기지는 못할 터. 그렇다면 작게나마 승산이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저 정도의 주문이라면 그 반동 또한 상당할 테니까.
“한 시간이라면… 거의 다 됐어요! 곧 효력이 끝날 거예요!”
“그럼 놈들이 아직 자각하고 있지 못한 지금이 기회입니다.”
말을 마친 김정인은 가볍게 땅을 박차며 뛰어올랐다.
“정인 씨!”
“정인 오빠!”
홀로 적진에 뛰어드는 그를 두고 볼 수만은 없었던 윤희지와 신소율이 그 뒤를 따랐다. 이두식 또한 어느새 자리를 비운 채 훌쩍 뛰어 적진 속으로 향하고 있었다. 길게 자라난 이두식의 손톱이 선두에 있던 리버의 가슴팍에 긴 상흔을 내는 것을 시작으로, 김정인의 프레셔 버스트가 무리지은 적들의 한복판에 작렬했다.
콰아앙!
“으아아아악!”
가장 가까이 있던 리버 한 명의 몸이 터져나가는 것이 시작이었다. 노을빛을 발하는 붉은색 마검은 그대로 폭풍이 되어 적 무리 한복판에 무시무시한 피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그동안 폭경이니, 마법이니 하는 잡기에 매달리지 않고 오로지 검술에만 매진한 김정인의 성취는 괄목상대라는 말로도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더구나 요 세 달의 실전을 통해, 김정인은 이전에 얻지 못했던 ‘클래스’까지 얻은 상태. 그가 급격히 강해진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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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보셨다추면 추천/코멘 부탁드립니다.
2시간 이내에 다음편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빠르게 다음 편을 쓰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리리플은 생략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_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