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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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 명왕친림(冥王親臨)
181# 명왕친림(冥王親臨)
지금 한창 진행되고 있을 무투대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할 명왕이 나타났다.
점차 가까워지는 그의 모습을 본 노구덕은 입 안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큰일났군….’
실책이다. 시간을 너무 끌었다.
강옥교의 실토로 두 사람이 명왕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사실을 안 즉시 발을 뺐어야만 했다.
아니, 그것도 염두에 두긴 했었다. 본래 계획은 마법진으로 여위량의 검사를 마치는 즉시 자리를 뜨는 것이었다. 그런데 예정에 없던 강옥교의 난입과, 이후 이어진 구구절절한 고백에 정신을 빼앗기는 바람에 시간을 너무 소비해버렸다.
‘빠져나가기는 글렀다.’
노구덕은 곧바로 노선을 전환했다. 가급적 피하고 싶었던 상황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을 주워담을 수는 없다.
명왕을 쓰러뜨리는 것. 그것이 현 상황을 깔끔히 타개할 최선의 방법이었다.
달리 생각하면 이건 더할 나위 없는 기회일 수도 있었다.
당장 그의 초감각으로 감지되는 인기척은 명왕 외에 아무도 없었다. 즉, 홀로 이곳에 왔다는 얘기다. 이 인원들을 홀로 감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인지, 아니면 근거 없는 오만함인지는 몰라도 일행으로선 잘된 일이었다.
홀로 온 명왕. 인적이 드문 전장.
언젠가 결판을 내야 할 상대라고 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은 없다. 호랑이가 범굴에서 제 발로 튀어나온 꼴이었으니까.
‘무턱대고 겁부터 먹을 필요는 없다. 이건 정말로 해볼 만한 싸움일 수도 있어.’
노구덕은 소리 없이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는 천천히 근육을 긴장시키며 생각을 정리했다.
‘지금까지 만난 신의 조각들 중, 인간의 몸으로 제대로 힘을 쓸 수 있는 놈은 발레기우스밖에 없었다. 아니… 그놈은 원래부터 강한 놈이었으니, 그게 신의 조각으로서의 권능인지, 본인의 힘인지는 아무도 몰라.’
‘아가레스트도 마찬가지다. 아가레스트의 힘은 시스템의 힘이 아니라 발할라의 유산에 기반을 두고 있다. 여위량, 강옥교도 마찬가지고… 오정환은 괴물이 되고 나서야 힘을 발휘할 수 있었지.’
‘시스템의 힘… 나약한 인간의 몸으로 그 권능을 사용하려면 큰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을 거다.’
명왕은 아마도 재앙급 카름으로 변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지간히 벼랑 끝에 몰리지 않는 한 그가 괴물로 변할 가능성은 적었다.
‘지금까지 저놈의 행보를 보면 인간의 탈에 대한 미련이 많은 놈이야. 기껏 일군 북부연합을 버리고 싶지는 않겠지.’
싸움이 시작되면 최대한 속전속결로 가야한다. 카름이 되기 전에 승부를 결착하는 것이야말로 최선의 수였다.
“그리 열심히 머리 굴릴 필요 없다. 오늘 이 자리에 네놈들의 묏자리가 될 테니까.
마침내 걸음을 멈춘 명왕의 엄포는 시작부터 살벌했다.
“…무서운 농담을 즐기는 성격이군.”
“레그나토르의 노구덕. 그리고 서리여왕 하유라. 언젠가 너희 연놈들이 찾아올 줄 알고 있었지.”
“……!”
한눈에 정체를 발각당한 노구덕과 하유라의 얼굴에 작은 균열이 일었다. 갑자기 차가운 땀방울 하나가 등줄기를 오싹하게 가로지르는 듯했다.
‘…설마, 함정?’
“…알고 있었나? 어떻게?”
“건방진 놈. 내가 일일이 네 질문에 대답해 줄 것이라 생각하느냐?”
명왕은 오정환처럼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사신처럼 음울한 기운을 풍기는 그는 여전히 주저앉아 떨고 있는 강옥교와, 그녀를 감싸고 있는 여위량에게 서슬 퍼런 눈길을 보냈다.
“강옥교. 기어코 목줄을 끊고 달아나려하다니. 죽을 각오는 되었겠지?”
“저, 저는…….”
심하게 위축된 강옥교는 명왕과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와들와들 떨리는 몸뚱이만 보더라도, 그녀의 심장에 각인된 공포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닥쳐라. 네겐 그녀를 구속할 권리가 없다.”
그녀를 대신해 명왕의 음습한 시선을 받아낸 이는 여위량이었다. 우직한 얼굴로 강옥교의 앞을 가로막고 선 여위량은 투기가 아른거리는 창날을 그의 얼굴에 대고 겨누었다.
“강문식. 너는 인두겁을 뒤집어 쓴 짐승이다. 북부의 모든 이들을 기만하고, 너를 믿고 따르는 무인들의 혼을 더럽혔다. 그러고도 네놈이 북부연합의 맹주라 할 수 있느냐?”
“크흐흐흐….”
음산한 괴소를 흘리는 명왕. 뱀처럼 간교한 눈동자에 진득한 살기가 어렸다.
“여위량, 주제를 알아라. 네놈이야말로 노예 출신임을 숨기고 하루살이처럼 살아가는 버러지가 아니냐?”
“…….”
여위량은 입술을 우물거리다 말문을 닫아버렸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명왕의 궤변을 지적하며 뭐라고 항변이라도 했을 테지만, 천성이 고지식한 그는 그럴 위인이 되지 못했다.
그때, 뜻밖의 인물이 곤란에 빠진 여위량을 구해주었다. 사방으로 살을 엘 것 같은 한기를 풀풀 날리는 그녀는 말할 것도 없이 서리여왕 하유라였다.
“저놈이 주제파악 못하는 버러지인 것은 맞지만, 네놈도 그에 못지않은 쓰레기지.”
“무어라?”
“온갖 위세를 다 부리는 명왕이란 놈이, 알고 보니 살랑살랑 꼬리나 치면서 발레기우스의 발등이나 핥아대는 강아지에 불과했다…. 참 구차한 신세 아닌가?”
그 신랄한 독설에 명왕의 득의한 낯빛이 차갑게 굳어졌다. 그러나 그도 잠시, 명왕은 이내 박수까지 치며 하유라를 비웃었다.
“크하하하… 하유라, 답지 않게 말이 많구나. 정말이지 저열한 도발이다. 네년도 발레기우스의 정액받이였던 건 마찬가지일 텐데? 그런 싸구려 도발에 내가 길길이 날뛰기라도 할 줄 알았나?”
“마찬가지라… 발레기우스와 줄이 닿아 있는 건 맞는 모양이군. 고맙다, 멍청한 쓰레기.”
“…….”
차갑게 톡 쏘아붙이는 하유라의 대꾸에, 박장대소하던 명왕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쯧. 명을 재촉하지 못해 안달이군.”
끌끌 혀를 찬 명왕은 장난치듯이 손가락 하나를 까딱였다. 그 손끝에서 묵빛의 섬광이 번뜩이는 것을 본 하유라는 급히 전면에 얼음의 장벽을 세웠다.
그러나 명왕이 방출한 검은 빛살은 절대방어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하유라의 얼음장벽을 너무나 손쉽게 뚫어버렸다.
“큿!”
코앞까지 쇄도한 검은 섬광을 본 하유라는 앞뒤 잴 겨를도 없이 황급히 몸을 날렸다. 경이적인 순발력으로 간신히 공격을 피하긴 했으나, 그 여파만으로 살갗이 찢어졌는지 목 부근이 데인 것처럼 화끈거렸다.
병든 당나귀처럼 바닥에 나뒹군 하유라는 발작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덕지덕지 흙먼지가 묻어나는 스스로의 몰골을 돌아본 그녀의 얼굴이 지옥나찰처럼 일그러졌다.
분명 예고 없는 기습이긴 했다. 그러나 기습이고 말고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방금 전 단 한 수로 상대와의 명백한 기량차가 판가름 났다는 것. 그 사실이 그녀에게 씻을 수 없는 굴욕을 안겨주었다.
그렇잖아도 최근 몇 년 간, 오를 곳 없는 정상의 위치에서 굴러 떨어져 몇 번이나 모멸을 당한 그녀다. 그 원흉인 노구덕과 행동을 같이 하는 것만도 속이 부글부글 끓는데, 또다시 이런 낭패라니.
속에서 천불이 치솟는다. 분기탱천한 하유라는 억눌러 참고 참았던 울분을 모조리 폭발시켰다.
“이 쓰레기가!”
쩌저저저저적—!
대기가 얼어붙으며 온세상에 하얀 서리가 내려앉았다. 물론, 소냐가 배리어를 둘러친 일행 주변은 예외였다.
“여위량. 강옥교를 데리고 여길 벗어나라. 저기 쓰러져 있는 네 부하들도 함께.”
“나더러 도망치란 말인가?”
“징징대지 마라. 십존들의 싸움이다. 너희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해.”
여위량은 핏물이 배어나도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초인들의 싸움. 그 수준이 어떤지는 아까부터 부들부들 떨리는 그의 팔이 적나라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수년 간 거듭된 고련으로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렀다고 자부했건만, 십존이란 까마득한 벽은 아직도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나도… 내 수준을 안다. 분명 방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겠지. 하지만… 나는 도망칠 수 없다. 그건 옥교도 마찬가지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어차피 우린 이번 일전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처지다.”
“우리더러 너희들까지 신경 쓰며 싸우라는 거냐? 쓸데없는 고집부리지 말고…….”
“쓸데없는 고집이 아니다. 비록 개미의 발버둥에 지나지 않을지언정, 옥교와 나는 오랫동안 명왕에게서 벗어날 방법을 생각해왔다.”
“음….”
“약속하겠다. 절대로 방해는 되지 않을 거다.”
노구덕이 눈에 이채가 어렸다. 그가 지켜본 바, 여위량이란 남자는 결코 헛소리를 입에 담을 사내가 아니었다. 그가 이 정도로 간절히 싸우기를 희망한다면 정말로 무슨 방법이 있다는 것일 터.
‘그러고 보니 강옥교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었지.’
그는 생각을 바꿨다. 어쩌면… 여위량과 강옥교, 이 두 사람이 승패를 가를 결정적인 열쇠가 될 수도 있었으니까.
“말해봐라. 그 계획이란 게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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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리자드!”
하유라를 중심으로 피어난 파르스름한 한기가 거대한 파문처럼 번지며 맹렬한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허나 총탄처럼 셀 수 없이 빗발친 눈발 세례는 명왕의 몸을 망토처럼 둘러싼 묵색의 장막을 뚫지 못하고 허무하게 아스러졌다.
그 모습을 본 하유라는 눈매를 가늘게 뜨며 아미를 꿈틀거렸다. 어차피 탐색 삼아 전개한 블리자드다. 처음부터 명왕에게 피해를 입힐 거라곤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만든 것은 명왕이 전개한 저 묵색 장막이다. 저 기술이 그녀가 아는 누군가의 것과 꼭 닮았기 때문이다.
‘검은색 기운… 저놈, 정말로 발레기우스와 같은 기술을 쓰는 건가?’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 마력과 투기를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발레기우스의 것과는 달리, 명왕의 것은 그 자체가 실체가 있는 덩어리처럼 보였다.
‘오히려 그편이 편하지.’
하유라의 은빛 동공이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노구덕이 명왕을 봤을 때부터 속전속결을 마음먹었듯, 그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앱솔루트 제로!”
일순, 살아있는 미역줄기처럼 출렁이던 명왕의 장막이 뻣뻣하게 굳어졌다. 하유라는 그 찰나의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크라이어제닉 쇼크. 자연의 법칙마저 뛰어넘은 빙결의 권능이 새하얀 눈길을 그리며 일직선으로 쏘아졌다. 하얀 궤적을 남긴 얼음의 작살은 둔해진 장막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두 눈을 부릅뜬 명왕의 면전에서 혹한의 폭발을 일으켰다.
쿠드드드드…!
묵색의 장막이 들쑥날쑥 균열을 일으키는 것을 본 하유라는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나 의기양양한 그녀의 표정은 얼마 가지 못한 채 뒤틀리고 말았다.
고치처럼 변한 묵색의 장막 너머에서 다시금 검은 빛살이 줄기줄기 솟구치기 시작한 것이다.
“하유라!”
굶주린 짐승이 으르렁거리듯 칙칙함이 들끓는 목소리. 묵빛 어둠 속에서 희멀겋게 떠오른 명왕의 얼굴은 수염과 눈썹, 주름의 미세한 틈새까지 모조리 하얀 서리가 끼어 있었다.
“죽어라!”
반월 모양의 묵빛 검기가 퍼붓는 폭우처럼 쏟아져 내리자, 하유라의 낯빛이 창백하게 일변했다. 암만 빙벽을 수십 겹으로 둘러쳤다한들, 저 검기의 폭우를 막아내기란 요원해 보였기 때문이다.
난폭하게 엄습한 검기다발이 하유라의 빙벽이 파죽지세로 무너뜨리는 찰나, 후방에서 뿜어진 보랏빛의 장막이 두꺼운 얼음장벽 속에 깃들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속절없이 진격을 허용하던 얼음 장벽이 갑자기 꿋꿋하게 검기의 공세를 버텨내기 시작한 것이다. 0.1초와 3, 4초의 차이. 결국 깨지긴 마찬가지였지만, 이 내구력의 차이는 컸다.
뜻밖의 도움으로 겨우 몸을 빼낸 하유라는 힐끔 눈을 돌렸다. 그 시선을 느낀 무표정한 꼬맹이 역시 고개를 돌려 그녀와 눈을 맞추었다.
“방심은 금물입니다.”
“네 참견 없이도 충분한 상황이었다.”
“자존심을 내세울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만.”
“…흥. 애송이 주제에 감히 누구에게 설교하는 거냐.”
동시에 서로에게서 눈을 뗀 두 여인은 다시 전방의 명왕에게로 주의를 돌렸다.
============================ 작품 후기 ============================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어휴, 오늘은 꽤 늦었습니다.
내일은 연참을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래봐야 오늘 올라갈 내용이 내일 올라가는 거지만요..
전편에 슈리온님이 달아주신 댓글을 보고 확실히 설명이 조금 부족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명왕이 왜 강옥교에게 손을 대지 않았느냐, 하는 것인데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명왕은 고자가 맞습니다. 사실 인간 껍데기만 뒤집어썼지 인간으로 보기엔 좀 무리가 있거든요. 구슬이랑 물건은 있는데, 생식욕구가 없는 인간이라고 해야겠지요.
강옥교에게 지속적으로 의식을 요구한 것은 일종의 길들이기입니다. 그녀가 가진 힘을 계속 체크하는 의미도 있고, 일부러 굴욕을 줘서 상하관계를 분명히 하는 의미도 있지요.
이 건에 대해서 설명이 부족했네요. 오늘 시간이 남는대로 전편 내용을 살짝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