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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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 명왕친림(冥王親臨)
명왕은 처음 등장했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의 주위를 운무처럼 감싸고 돌던 흑운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고, 그의 오른손에는 칙칙한 묵빛을 머금은 장검이 요사스런 빛을 발하고 있었다.
어느새 두 사람 가까이 다가온 노구덕은 자욱한 살기를 내뿜는 명왕을 보며 혀를 찼다.
“쉽지 않을 건 알았지만, 그 공격을 맞고도 멀쩡하다니. 쉽지 않은 싸움이 되겠어.”
“…….”
“받아라.”
노구덕은 굳은 얼굴을 하고 있는 하유라에게 유리처럼 투명한 장검을 건네주었다. 그녀의 능력을 비약적으로 증폭시켜주는 애검, 아발란체였다.
“오늘 한정으로 빌려주도록 하지. 이게 있으면 더 이상 핑계는 못 대겠지?”
“…날 네놈과 같다고 생각하지 마라.”
툴툴거리는 말투와는 달리, 애검을 다시 거머쥔 하유라의 눈빛엔 숨길 수 없는 반가움이 깃들어 있었다.
“하유라, 너는 중거리에서 견제를 해라. 근거리는 내가 맡지. 소냐는 원거리 지원을 부탁한다.”
“예, 대부님.”
“가능하면 빠르게 결판을 내고 싶지만, 어느 정도의 탐색은 필요하겠지. 사제가 없으니 모두 다치지 않게 조심해라. 될 수 있으면 날 최대한 이용하란 말이다.”
노구덕은 더는 부언하지 않았다. 그를 최대한 이용하라는 말의 의미. 영리한 두 여인이라면 충분히 그의 의도를 알아들었을 것이다.
“무얼 그리 주절주절 떠드느냐?”
“네놈이 고자일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이놈!”
분노한 명왕이 고성을 지르는 순간, 카름화한 노구덕의 동체가 그의 눈앞으로 뛰어들었다. 돌출된 어깨로 상대를 투우처럼 들이받는 기술, 숄더차지였다. 맨몸 박투의 가장 기초적인 기술이지만, 인간을 아득히 뛰어넘은 스펙을 자랑하는 노구덕의 숄더차지는, 성문을 깨부수는 공성전차조차 훨씬 웃도는 위력이었다.
쾅!
“……!”
어깨로 힘껏 명왕을 들이받은 노구덕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그 표정이 꼭 조금 전, 공격이 무위로 돌아갔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하유라를 보는 듯했다.
지금껏 그의 숄더차지에 당한 상대는 모두 형편없이 뒤로 날아가거나, 그 자리에서 즉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것도 아니면 공격을 받아내지 않고 멀리 피해버렸다.
그런데 명왕은 달랐다. 그는 피하지도 않았고, 날아가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죽은 것도 아니었다.
바닥에 깊숙하게 찍힌 대여섯 개의 족적. 절벽조차 통째로 무너뜨릴 수 있는 그의 숄더차지가 명왕을 뒷걸음질 치게 한 걸음의 수였다.
“정말 듣던 대로 무식하게 싸우는 놈이군. 눈이 썩어버리겠어.”
“쿠왁!”
명왕의 무릎에 명치를 제대로 얻어맞은 노구덕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 옛날, 야수화한 가리발디에게 두들겨 맞았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할 만큼의 둔중한 충격이 온몸을 엄습했다.
‘이놈… 신체능력이 가리발디 이상이다. 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한눈팔 여지가 있느냐?”
“컥!”
순간 시야에 거무튀튀한 무언가가 스치나 싶더니, 눈앞에서 시뻘건 불똥이 튀었다. 속절없이 뺨을 얻어맞은 노구덕은 공중에서 팽그르르 회전하며 볼썽사납게 바닥에 처박혔다.
이번에도 보지 못했다. 힘은 차치하고, 속도 또한 경이적이다. 그 빠르기는 극한으로 활성화된 그의 초감각으로도 제대로 잡아낼 수 없을 정도였다.
숨도 못 쉬고 두들겨 맞는 노구덕을 구해준 것은 소냐의 데스레이였다. 쏜살같이 검을 떨쳐, 무수히 빗발치는 보랏빛 광선을 모조리 튕겨낸 명왕은 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바쁘게 손을 움직이는 소냐를 향해 소름끼치도록 눈을 번뜩였다.
“마도왕은 죽었다고 들었는데? 설마 마도왕의 후인인가?”
낮게 중얼거리는 명왕의 머리 위로 어두컴컴한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수백여 개에 이르는 얼음의 창이 하나의 부대처럼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채, 그 뾰족한 첨단을 그의 얼굴을 향해 겨누고 있었다.
저무는 노을빛을 반사해, 거대한 샹들리에처럼 번쩍거리는 얼음창의 군집을 앞에 둔 명왕은 전혀 두려운 기색 없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하유라. 생각보다 더 멍청하구나. 학습 효과가 없는 건가? 고작 이 정도로 나를 어찌해 볼 수 있다고 여긴다면….”
“벌집으로 만들어주마. 이 쓰레기.”
하유라의 손바닥이 반대로 뒤집어지자, 상공에 드리워진 황혼의 샹들리에가 무서운 속도로 낙하했다. 명왕의 정수리를 찍어버릴 기세로 쇄도하는 빙창의 군세는 밤하늘을 수놓는 유성우를 떠올리게 할 만큼 장관이었다.
아무리 빙계 주문 중 기초에 속하는 프로즌 스피어라지만, 이 정도 숫자, 이 정도 규모가 되면 절대로 무시할 수 없다. 단순 위력으로만 보면, 빙계 주문의 대명사로 꼽히는 블리자드나 헤일스톰보다 훨씬 더 강력할지도 몰랐다.
허나 그것도 상대 나름이다.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쇄도하는 얼음의 창들을 올려다보는 명왕의 얼굴은 그저 한여름 지나가는 소나기를 대하듯 무심하기만 했다.
“이런 애들 장난질 따위로… 흠?”
조소 가득한 명왕의 눈매가 살짝 들썩였다. 쏟아져내리는 얼음창 사이로 은밀히 뒤섞이는 보랏빛 기운을 본 탓이다.
하유라와 소냐의 합동공격. 비로소 그 진의를 알아차린 명왕의 입가에 어처구니없는 웃음이 얹혔다.
쿠구구구구–!
하유라가 흩뿌린 빙창의 군세는 뒤늦게 전개된 명왕의 묵색 장막을 뚫지 못했다. 하유라와 소냐의 마력이 한 데 합쳐진 주문의 위력은 명왕이 딛고 서 있는 지면이 온통 너덜너덜 걸레짝이 되었을 정도로 강력했지만, 정작 그 중심의 목표물에겐 이르지 못했다.
암만 거센 폭우라 할지라도 강철의 우산을 뚫을 수는 없다. 이와 같은 이치였다.
어느새 묵색 장막을 흠씬 두들겨대던 폭우의 위력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물론, 그 안에 숨어 있는 명왕은 티끌만큼도 다치지 않았다.
진한 조소를 머금은 명왕이 장막을 해제하려는 그때, 장막 전체가 뒤흔들리는 묵직한 충격이 전해졌다. 빙창이 쏟아지는 내내 한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던 명왕의 균형이 살짝 흐트러질 정도의 충격이었다.
반쯤 열린 장막 너머로, 시커먼 얼굴을 한 사내의 붉은 눈동자와 눈을 마주친 명왕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노구덕!”
“크르르르…!”
활활 타오르는 용암을 품은 눈동자, 굶주린 야수와도 같은 들끓는 목소리. 조금 전에 보았던 노구덕과는 어째 차이가 있어 보이는 몰골이다.
그러나 그런 사소한 차이 따위, 원래부터 그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던 명왕에겐 관심 밖이었다.
“멧돼지 같은 놈! 귀찮게 하지 마라!”
벼락 같은 호통과 함께 노구덕의 왼쪽 가슴에 깊은 자상이 아로새겨졌다. 언제 휘둘렀는지도 모를 명왕의 검이 그의 가슴팍을 날카롭게 베고 지나간 것이다. 그러나 노구덕은 그 고통에 굴하지 않고 팔을 뻗어, 기어코 그의 멱살을 잡더니 그 안면에 무지막지한 박치기를 먹여버렸다.
쾅!
인간의 두개골과 두개골끼리 부딪치는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묵직한 굉음이 울린 직후, 다시 떨어진 두 사람의 안면은 너나 할 것 없이 끔찍한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큭! 이, 이놈이!”
다시 명왕의 턴. 줄줄 흘러내리는 핏물에도 불구하고 눈을 부릅뜬 명왕의 우수에서 섬광이 일었다. 그러자 이미 한번 베어졌던 노구덕의 왼쪽 가슴팍에 주먹만 한 크기의 시커먼 구멍이 뚫렸다. 인체 최대의 급소, 심장이 있는 위치였다.
“거머리 같은 놈, 어디서 가당치도 않은 짓을…… 허!”
“크아아아아악!”
당연히 죽었을 거라 생각한 노구덕을 밀쳐내려던 명왕은 또다시 입을 벌리며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심장이 터져 죽었어야 할 인간이 오히려 더욱 흉포한 괴성을 지르며 마구잡이로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아파! 아프단 말이다!”
“이놈이….”
“이 개새끼! 죽여버리겠다! 다진 육포로 만들어 줄 테다!”
광기로 번들거리는 노구덕의 눈길을 접한 명왕은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쯤 되면 아무리 둔감한 자라도 알아차릴 수밖에 없다.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인간은 노구덕이되, 노구덕이 아니었다.
명왕의 멱살을 움켜쥔 노구덕은 나머지 한 팔을 미친 듯이 휘둘러 그의 전신을 난타하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쾅!
인정사정없는 폭력이 명왕의 온몸을 뒤덮었다. 주먹을 쇠망치처럼 휘둘러대는 노구덕의 광란은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오줌을 지려버릴 정도로 난폭하기 짝이 없었다.
보기에만 사나운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노구덕과 싸웠던 상대들은 모두 저 압도적인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거기엔 카름과 십존의 구분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 상대만은 달랐다.
“…더는 못 놀아주겠구나.”
펑!
막 팔을 뒤로 젖히던 노구덕의 거체가 힘없이 휘청거렸다. 동시에, 다져진 육포처럼 찌그러져 있던 명왕의 몸뚱이에서 치솟은 묵색의 가시다발이 노구덕을 사정없이 꿰뚫었다.
얼굴과 몸통, 팔과 다리를 가리지 않고 수십 개의 가시가 몸에 틀어박힌 노구덕의 몰골은 실로 참혹했다. 가시가 박히다 못해 뚫고 튀어나온 부위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치명적인 급소였다. 심장과 사타구니, 척추는 말할 것도 없고, 안면에만 세 개의 가시가 틀어박혀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지경이었다.
양 눈알이 다 터지고, 두개골 속의 뇌도 곤죽이 되었다. 심장 또한 정지했다. 죽었어도 몇 번은 더 죽었을 몰골이었건만, 명왕은 그도 모자라 그의 상하체까지 양단해버렸다.
“이러고도 살아난다면 끈기 하나는 인정해주마.”
처참하게 널브러진 노구덕의 사체를 일별한 명왕은, 다음 상대에게로 눈을 돌리려다 말고 주춤거렸다. 다시 꺼내든 묵색의 장막이 그의 의도대로 거두어지지 않은 탓이다.
원래대로라면 그의 의지대로 움직여야 할 묵색 기운이, 마치 그와 동떨어진 것처럼 뻣뻣하기 짝이 없다. 이전에 비슷한 경험을 했던 명왕은 가당치도 않다는 듯 안면근육을 씰룩였다.
“마력동결? 어느 틈에?”
“놀아도 너무 놀았다. 쓰레기. 이젠 나태의 대가를 치를 때다.”
시리도록 차가운 음성이 귓전에 내려앉는다. 하유라의 목소리를 들은 명왕이 고개를 돌렸을 때, 그의 시야를 가득 채운 것은 그녀의 무심한 얼굴이 아니라 천지사방을 가득 메우는 서리의 파도였다.
“크라이어제닉 쇼크!”
쩌저정–!
겨울의 여신이 불어넣은 혹한의 숨결은 삽시간에 명왕을 몸을 휩쓸어버렸다. 하유라의 손끝에서 피어난 새하얀 아지랑이는 입기생물과 무생물, 무형과 유형을 가리지 않고 모조리 얼려버리는 죽음의 기운이었다.
처음 선보였던 크라이어제닉 쇼크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녀 본연의 힘에, 노구덕에게서 돌려받은 아발란체의 힘이 더해졌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천군만마라 부를 수밖에 없는 힘이 곁들여졌다.
“네가 티렐의 자기류까지 익히고 있을 줄이야.”
“완성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건방진 꼬맹이 같으니.”
피식. 언제나 살얼음판 같았던 하유라의 입가에 아주 미세한 미소가 번졌다. 태양처럼 고고하게 빛나는 소냐의 천재성은 늘 상대를 깔보았던 서리여왕조차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마도왕 티렐의 자기류, 제너레이터. 그 어떤 주문이라도 적용할 수 있으며, 심지어 십존의 자기류조차 위력의 극한까지 끌어낼 수 있는 마도의 이상(理想). 마법사라면 그 누구라도 바라마지 않는 꿈의 기술.
그야말로 얹을 수 있는 최고의 향신료가 더해진 셈이다. 제너레이터라는 날개를 단 크라이어제닉 쇼크는 가히 신의 권능에 견줄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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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새벽에 한편 더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싸움은 그리 오래 끌지 않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