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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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 명왕친림(冥王親臨)
과거 선키퍼 오성연이 사용했던 신기 바이퍼 브레이슬릿. 경천동지할 위력을 가진 신기 중에서도 밑바닥을 맴도는 하품(下品)이다. 노구덕 본인도 가볍게 벗어났던 에센스 드레인이 명왕에게 통용될 리 만무했다.
노구덕도 그 사실을 잘 알았다.
어차피 에센스 드레인으로 타격을 준다는 건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잠깐의 틈, 닿을 듯 말 듯한 거리를 좁힐 수 있을 정도면 된다.
1초의 주춤거림.
기습 출격한 에센스 드레인이 벌어준 시간이다. 노구덕에겐 그거면 충분했다.
“잡았다!”
두툼한 손가락이 명왕의 팔근육을 꼬집듯이 붙잡고, 이어서 활짝 펼쳐진 손아귀가 탄탄한 팔을 끌어당겼다.
“떨어져라! 이 끈질긴 놈!”
“크와아아악!”
명왕이 발출한 검기가 갈빗대와 어깨를 가르고 지나가며 지독한 고통이 몰려왔다. 그러나 노구덕은 눈앞이 아찔한 동안에도 그의 몸뚱이를 붙잡은 손아귀를 결코 놓지 않았다. 어금니가 부러질 정도로 이를 악문 노구덕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그와의 거리를 좁히려 했다.
노구덕에게 붙잡힌 명왕의 피부가 늙은이처럼 쭈글쭈글해졌다. 팔에서 서서히 기력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 명왕의 눈썹이 격렬히 치솟았다.
“벌레놈! 무슨 짓을 하는 거냐!”
“알 거 없다! 이 빌어먹을 자식아!”
최대 한도로 발휘된 에센스 드레인과 흡수의 권능은 생각지도 못한 시너지를 발휘했다. 그 무지막지한 인력은 단단한 벽돌처럼 결집된 명왕의 기운을 느슨하게 흐트러뜨릴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위기감이 엄습한 명왕은 서둘러 노구덕의 팔을 잘라내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대응보다는 노구덕이 행동이 더 재빨랐다.
“어억!”
크게 사지를 펼친 노구덕은 우왕좌왕하는 명왕의 몸뚱이를 온몸으로 휘감았다. 강건한 육체를 밧줄처럼 내던져 명왕의 본체를 옭아맨 것이다. 자신보다 머리 두 개는 큰 노구덕의 거체에 짓눌린 명왕은 한순간에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잠시나마 명왕을 붙잡아 두는데 성공한 노구덕은 목청이 찢어지도록 소리쳤다.
“지금이다–!”
“어디서 개수작을 부리느냐!”
푸확!
수십 개의 단검으로 변모한 묵색 기운이 그의 널따란 등판을 사정없이 짓쑤셨다. 허연 등뼈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잘게 찢어진 살점들이 넝마가 되어 덜렁거렸다. 차라리 감각을 전하는 대뇌가 터져버리길 바랄 정도로 극심한 고통이었다.
통증을 견디다 못한 노구덕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맞물린 이빨의 끝부분이 우드득 부서질 정도로 괴로웠다. 수십 개의 검날이 척추뼈를 박박 긁어대는 통에 머리통이 펑 하고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허나 영혼까지 마모되어 버릴 것만 같은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는 명왕을 붙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이 손을 놓는 순간,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개 같은 놈. 절대 놔주지 않는다.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절대 놔주지 않아!’
늙은 사냥개가 천신만고 끝에 호랑이의 목줄을 물었다.
그렇다. 그의 역할은 우직한 사냥개였다. 설령 죽는 한이 있더라도 끈질기게 놈의 목줄을 물고 늘어지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고, 그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노구덕이 기다리는 것은 사냥꾼의 마무리. 오랫동안 어둠 속에서 날을 벼렸던 복수의 칼날이었다.
그가 격렬한 외침을 토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격노에 찬 고성이 두 사내의 귓전을 때렸다.
“명왕!”
그 사냥꾼이란 다름 아닌 여위량. 멀리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늑대가 드디어 갈고 닦았던 어금니를 드러냈다.
벼르고 벼르던 끝에 찾아온 복수의 순간, 그의 손에 들린 것은 그 자신과 강옥교의 피로 담금질한 비수였다.
푸욱!
두 신의 조각의 핏물을 매개로 만들어진 비수는 빈틈을 드러낸 명왕의 옆구리를 깊숙하게 가르고 들어갔다. 하유라의 얼음창과 노구덕의 주먹으로도 어쩔 수 없었던 질긴 피부가 허망할 정도로 쉽게 갈라진 것이다.
자세히 보니 그건 날붙이로 살갗을 벤 것이 아니었다. 여위량의 비수가 닿은 명왕의 피부는 모세의 기적처럼 스스로 갈라지고 있었다. 그의 살갗을 가른 비수는 피부가 갈라짐과 동시에 더위 먹은 초콜릿처럼 스르르 녹아서는 명왕의 체내로 흔적도 없이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마치 명왕의 옆구리에 제 2의 입이 열려, 핏빛의 단검을 통째로 집어삼킨 듯한 광경이다. 심지어 장기와 뼈가 보여야 할 명왕의 내부엔 온통 시커먼 심연 뿐, 생물의 내장기관 같은 건 보이지도 않았다.
대체 이게 무슨 기사란 말인가. 분명한 건, 이 괴이한 현상이 명왕 본인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뒤늦게 여위량의 존재를 알아차린 명왕이 시퍼런 광망을 토하며 다급한 경악성을 내뱉었기 때문이다.
“섬전창! 네놈, 어떻게……!”
“네놈이 그토록 좋아하는 신의 힘이다! 가져가려면 얼마든지 가져가라!”
두 눈을 부릅뜬 여위량은 깊숙하게 열린 명왕의 옆구리에 망설임 없이 오른손을 처박았다. 이윽고, 명왕과 물리적으로 연결된 그의 몸뚱이가 목각인형처럼 뻣뻣하게 변하는 듯하더니, 자진해서 행동한 여위량 자신도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명왕의 옆구리에 틀어박힌 여위량의 팔뚝은 굵은 힘줄과 혈관이 한 무더기의 지렁이떼처럼 툭툭 돋아나 있었다. 팔뚝에서부터 도드라진 혈관은 이내 여위량의 몸 전체에 거미줄처럼 확산되었다.
신의 힘을 흡수하는 악랄한 술법, 흡정마공의 발현이었다.
“아, 안 돼!”
체내로 노도처럼 밀고 들어오는 힘을 느낀 명왕의 낯이 새파랗게 변했다. 찢어질 것처럼 치떠진 그의 눈자위는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어차피 여위량은 언제고 그가 먹어치울 예정이었던 먹잇감. 그런 먹잇감이 제 발로 굴러들어온 상황인데, 어째서 그는 기겁하는 것일까?
“명왕…!”
가까이서 들려온 한스런 목소리에, 데굴데굴 불안하게 움직이던 명왕의 눈동자가 황급히 돌아갔다. 지척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여인을 발견한 명왕은 일순 교활하게 눈을 빛냈다.
“옥교, 옥교로구나!”
“다, 당신…….”
영혼까지 각인된 두려움을 떨쳐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있는 대로 용기를 쥐어짰건만, 고양이 앞의 쥐 꼴은 여전했다. 명왕 앞에 선 강옥교는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앞으로 한 걸음, 그냥 손만 뻗으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그녀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저 눈빛이 강하게 발목을 붙잡았다.
강옥교의 태도 따위 안중에도 두지 않은 명왕은 버럭 언성을 높이며 그녀를 재촉했다.
“잘 왔다! 어서 이놈을 내게서 떼어내라! 그러면 너만은 용서해주마!”
“…….”
“무얼 머뭇거리느냐! 난 네 아버지다! 인륜을 저버릴 셈이냐!”
돌연, 힘없이 늘어졌던 고개가 서서히 위로 올라왔다.
“인륜…?”
“그래, 너만은 살려주겠다 하지 않느냐! 어서 이놈을 치워라!”
“다, 당신이 인륜을 입에 담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더듬거리는 강옥교의 목소리에 시린 독기가 어렸다. 앞서 끔찍하게 죽어갔던 두 친우의 새카만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린 탓이다.
강옥교의 낌새가 심상찮게 변한 것을 안 명왕은 그녀를 위압하기 위해 무섭게 눈을 부라렸다.
“이년! 무슨 말이 그리 많은 거냐! 넌 그냥 입 닥치고 내 말만 들으면 돼! 감히 도구 주제에 생각을 하려 드느냐!”
“닥쳐! 난 당신의 도구가 아니야!”
발작적으로 외친 강옥교는 제자리에 못 박힌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여위량의 손을 맞잡았다. 그러자 여위량과 닿아 있는 그녀의 손목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울긋불긋한 혈관이 올올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명왕은 완전히 사색이 되어 호통을 쳤다.
“강옥교오오오—! 네년이 정녕!”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진 명왕의 표정은 섬뜩할 정도로 무서웠지만, 그런 그를 정면으로 직시하는 강옥교의 눈빛엔 더 이상 두려움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항상 이 순간만을 기다렸어. 당신은 내가 아무 생각 없는 꼭두각시처럼 살기를 바랐지만, 난 언제나 당신을 내 손으로 죽이는 것만을 꿈꿔왔어.”
으스스한 오한이 독액처럼 퍼져나가며 이빨이 절로 딱딱 부딪쳤다. 흡사 생명의 원천이 모조리 명왕에게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강옥교는 힘이 쭉 빠져 혼절할 것만 같은 와중에도 기어코 명왕을 향해 원독어린 저주를 퍼부었다.
“당신은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알았겠지만, 나는 알아. 당신의 유일한 약점은 흡정마공을 사용할 때라는 걸! 벌레처럼 아무것도 못하는 기분이 어때? 이 위선자! 악마! 네 손에 죽었던 사람들도 똑같은 기분이었을 거야!”
서서히 힘이 다해가는 것인지, 강옥교의 목소리에서 점점 힘이 빠졌다. 몸이 점점 굳어가는 것을 느낀 강옥교는 파리하게 질린 명왕의 면전에 대고 야멸찬 한마디를 쏘아붙였다.
“제발 소원이니 이대로 죽어버려!”
“이, 이 년이….”
궁지에 몰린 명왕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마음 같아서는 강옥교와 여위량의 목줄을 잡아 뜯어 그 피를 들이마시고 싶었지만, 탐욕스러운 몸뚱이가 말을 듣지 않았다.
‘당했다. 강옥교 저년이 뭔가를 꾸미는 줄은 알았지만, 설마하니 이런…!’
어처구니가 없었다. 저 아둔한 계집이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아차렸단 말인가?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주기적으로 행했던 수많은 의식이 아무 소용이 없었단 말인가?
그녀의 말대로 흡정마공은 그가 가진 최강의 무기이자, 최대의 약점이었다. 강옥교의 경우처럼 소량의 힘을 빨아들일 때는 거의 제약이 없으나, 이처럼 한꺼번에 많은 힘을 흡수할 경우 그 동안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약점이 있었다.
아니,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기본적인 호신조차 되지 않는 무력한 상태가 된다. 지금의 그는 고작해야 조금 강한 육체를 가졌을 뿐인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흡정이 그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이다. 강제적으로 발동한 흡정마공은 그의 의사를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여위량과 강옥교의 기운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아마 여위량이 그의 옆구리에 꽂았던 비수와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지금으로선 어떻게 된 연유인지 파악할 겨를이 없었다.
“으아아아! 이 찢어죽일 연놈들! 네까짓 것들이 감히!”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뒤통수를 맞은 명왕은 목이 터져라 악을 써댔다.
“그러게 평소에 잘했어야지.”
빨갛게 된 명왕의 눈동자가 휙 돌아갔다. 그새 몸을 일으킨 노구덕의 우묵한 눈이 그를 위에서부터 무겁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노구덕…!”
“다 끝났다.”
선고하듯이 말한 노구덕은 힘겹게 숨을 헐떡였다. 격전을 치르며 너무 많은 힘을 소모한 탓인지 눈앞이 아찔아찔 흔들렸다. 뒤에서 다가오는 소냐와 하유라의 기척만 아니었다면, 이대로 무턱대고 주저앉아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마법진… 준비되었나.’
살짝 고개를 돌리니, 파리한 안색의 소냐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다행히 하유라의 보호를 받는 동안, ‘봉인 마법진’을 발동할 수 있을 만큼의 여력을 되찾은 모양이었다.
준비가 끝난 것을 확인한 노구덕은 무참하게 표정을 일그러뜨린 명왕에게로 다시 주의를 돌렸다.
“명왕 강문식. 네놈에게는 물을 것이 정말 많다.”
“크흐흐흐… 내가 이런 꼴이 되었다고 해서, 네놈에게 굴할 줄 아느냐?”
명왕의 비릿한 조소를 들은 노구덕은 당연하다는 듯 수긍했다.
“그렇겠지. 그래서 아쉽지만, 그냥 이 자리에서 죽어줘야겠다.”
“뭐라고?”
“포로로 잡아두기엔 넌 너무 위험해. 이 싸움도… 저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아마 죽는 쪽은 우리가 되었겠지.”
“이, 이놈…!”
“그러니까 그냥 뒈져라.”
노구덕의 솥뚜껑 같은 손아귀가 얼굴을 덮어오자, 제법 기개를 떨치던 명왕의 낯짝이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자, 잠깐! 멈춰….”
자질구레한 대꾸는 없었다. 노구덕은 아연실색한 명왕의 머리를 부여잡고는, 양손에 힘을 주며 자비 없이 위로 뽑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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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고된 금요일이 끝났습니다. 그리고 명왕도 끝나버렸네요.
내일은 낮에 한 편, 12시쯤에 한편을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 합니다. 그만한 여건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독자님들 모두 편안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