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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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 명왕친림(冥王親臨)
드드득… 찌익-!
비참하게 뜯겨나간 목 위에서 비린내 나는 핏물이 콸콸 솟구쳤다. 노구덕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부들부들 떨며 경련하는 명왕의 가슴팍을 짓밟았다. 그 힘이 어찌나 셌던지, 움푹 꺼진 가슴뼈의 잔해가 바닥에 껌딱지처럼 납작하게 눌러 붙었을 정도였다. 그 몸통 안의 심장과 폐가 짓눌려 터져버린 건 말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결과였다.
“그륵… 그르르륵…!”
뜯겨나간 명왕의 머리는 그 뒤로도 뭔가를 말하려는 듯 계속해서 입을 우물거렸다. 그러나 피거품으로 가득 채워진 목구멍이 제 기능을 할 리 만무했다
한동안 울컥울컥 피를 토하던 명왕의 수급은 마지막 단말마를 부르짖듯 눈자위를 크게 경련시키더니, 끝내 낙타처럼 길게 혀를 빼물고 꾸물거림을 멈추었다.
“으헉!”
“학!”
명왕의 숨이 끊어지는 순간, 그와 몸을 맞대고 있던 여위량과 강옥교가 비로소 숨통을 트며 그에게서 떨어졌다.
잠시 말도 못하고 숨을 헐떡이던 두 사람은, 노구덕의 손에 들린 명왕의 머리를 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주, 죽은 건가요? 정말로…?”
“의학적으로 보면 죽은 게 맞겠지.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안심할 수 없다니… 그럼 사, 살아날 수도 있단 말이에요?”
“보통 사람이라면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놈이라면 가능할지도 몰라. 그러니까 수를 써야 돼.”
여러 명의 신의 조각을 흡수한 명왕이다. 보통 사람의 잣대로 판단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었다. 오정환이 그랬던 것처럼, 죽음을 가장해서 재앙급 카름으로 부활하는 것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미 오정환에게 한 번 낭패를 당했던 만큼, 노구덕 쪽에서도 이 같은 경우의 수를 예상하며 나름의 준비를 해왔다.
“얘야. 준비되었니?”
“예. 대부님. 지금 시작하겠습니다.”
“그래. 부탁한다.”
소냐가 준비한 것은 봉인 마법진의 일종으로, 일시적으로 시스템의 힘을 마법진 내부에 봉하는 의식이었다.
물론 소냐가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이런 수준의 마법진을 독자적으로 고안해 냈을 리는 없다. 이 마법진은 과거 시스템의 힘을 보관하던 저장고인 카멜롯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그 카멜롯을 관리하던 장본인인 아가레스트와 머리를 맞대어 만들어낸 술식이었다.
찌익!
소냐의 작고 섬세한 손이 스크롤을 찢자, 스크롤에서 뿜어진 빛의 입자가 눈꽃처럼 내려앉으며 커다란 마법진을 형성했다. 방금 전 강옥교와 여위량이 밟고 섰던 마법진보다 두세 배는 더 커 보이는 규모였다.
노구덕은 따로 떨어진 명왕의 목과 몸뚱이를 마법진 정중앙에 가져다 놓았다. 그 사이 소냐는 마법진 주위를 돌아다니며 세 개의 마법진을 추가로 그려넣었다. 하나의 거대한 원 안에 세 개의 작은 원이 들어가 있는 모양새였다.
졸지에 구경꾼이 되어버린 강옥교와 여위량은 멍하니 앉아 두 사람이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뭘… 하는 걸까요?”
“…나도 모르겠다.”
여위량은 설레설레 고갯짓을 했다. 그는 시종일관 명왕의 사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검붉은 핏물을 게워내는 그의 사체… 버젓이 눈앞에 나타난 현실이건만, 그 괴물이 죽었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명왕의 시신이 마법진 중앙에 위치하자, 그 앞에 선 소냐는 조심스럽게 눈을 돌렸다.
이 마법진을 발동시키기 위해선 방대한 마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미 그녀의 마력은 고갈 상태. 이 자리에서 그만한 여력을 가진 사람은 오직 한 사람밖에 없었다.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소심하게 말할 필요 없다. 티렐의 후인이라면 좀 더 당당해져라.”
“…예?”
그 하유라가 격려라니, 혹시 잘못 들은 것일까? 어리둥절하게 눈을 깜박인 소냐가 다시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하유라는 이미 그녀를 지나쳐 마법진 앞에 다다른 뒤였다.
팔짱을 푼 그녀는 마법진의 가장자리에 손을 가져다 댔다. 이윽고 마법진 전체가 밝게 빛나며 웅웅거리는 진동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소냐는 남아 있는 한 줌의 마력을 일으켜, 잇따라 새하얀 아지랑이가 피어나는 마법진의 조정에 들어갔다.
“봉인을 시작하겠습니다.”
우우웅–!
차분하고 엄숙한 선고가 떨어지자, 종전까지 희끄무레했던 아지랑이들이 선명한 빛의 띠로 화했다.
말미잘 촉수를 연상케 하는 빛의 띠들은 마법진 중앙에 쓰러진 명왕의 시체를 앞다투어 칭칭 휘감았다. 뒤엉킨 촉수 속에 잠겨버린 명왕은 금세 보이지 않게 되었다.
명왕의 시체가 고치처럼 둘둘 말려 사라지는 것을 본 강옥교는 왠지 모르게 불안해졌다. 뭐가 뭔지 조금이라도 알아야 인심을 할 텐데, 아무것도 아는 게 없으니 가슴이 더욱 답답했다.
“설명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저건… 무슨 주문이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요?”
“어려울 것 없지. 명왕이 가지고 있는 신의 힘을 봉인하는 작업이다.”
어느 틈엔가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옆에 앉아 있던 노구덕의 대답이었다.
“그게… 가능한가요?”
“당연히 일반적으로는 불가능해. 저 아이 정도 되니까 가능한 거다.”
“저 아이… 단월이의 본명이 뭔지 알 수 있을까요? 실례되지 않는다면 알고 싶어요.”
노구덕은 약간 뜸을 들였다. 그러나 벌써 여기까지 온 마당에 정체를 숨기는 건 의미가 없었다. 어차피 두 사람은 그와 하유라의 정체를 알고 있었으니까.
“소니아다. 보통은 애칭으로 소냐라고 부르지.”
“소냐…. 귀여운 이름이네요. 시시한 호기심에 어울려 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소냐의 본명을 알게 된 강옥교는 그녀의 이름을 작게 곱씹었다.
그저 개울처럼 맑고 깨끗한 심성을 지닌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드러난 소냐의 진면목은 그녀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특히 서리여왕 하유라와 연계하여 명왕을 몰아붙이던 장면은, 평생 그녀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인상으로 남았다.
“그러고 보니, 저 아이가 마도왕의 제자라고 하셨죠? 후후. 저 같은 가짜 공주와는 다르네요. 정작 공주 대접을 받아야 할 사람은 따로 있었어요.”
어쩐지 깊은 회한이 어린 목소리다. 강옥교의 진한 자조를 들은 노구덕은 눈을 힐끔거려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쓴웃음을 짓고 있긴 하나, 그 눈에 보이는 것은 순수한 부러움이 전부다. 소냐를 질시하거나 적대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마도왕 티렐은 평생을 걸쳐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던 선구자였다. 헌터에게 있어 정해진 틀이란, 시스템이 맞춰놓은 규격이라 할 수 있지. 저 아이가 너희들의 힘을 판독하고, 시스템을 봉인할 수 있는 것도 그의 진전을 이어받은 덕분이다.”
“그렇군요. 스승과 제자가… 모두 대단한 사람들이네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티렐의 집념을 떠올린 노구덕은 나지막이 머리를 주억였다. 노구덕 본인은 티렐과 큰 인연이 없었지만, 소냐에게 이어진 그의 성과는 그에게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도움을 주었다. 노구덕도 묵은 감정을 떠나, 티렐이 마법사로서 이뤄낸 성과만은 크게 존경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임시변통에 불과하다. 마법으로 시스템의 힘을 봉인한다는 건 확실히 대단하지만, 엄연히 한계가 있다.”
“한계라뇨?”
“봉인 마법진으로 명왕의 힘을 묶어놓을 수 있는 기간은 길어야 일주일이다. 하지만 저건 한 명 분이 아니라 여러 명의 힘이 뭉친 것이니 그 기간은 더욱 짧아지겠지. 내 예상으로는 반나절 정도로 보고 있다. 그리고 마법진을 이동시킬 수도 없어. 뭔가를 하려면 무조건 여기서 해야 한다는 거다. 그리고 말이야…….”
노구덕의 찌를 듯이 날카로운 눈과 시선을 마주친 강옥교는 찔끔 겁먹은 얼굴로 뒤로 물러났다.
“…우리가 이렇게 얼굴 마주하고 편히 얘기할 만한 사이였던가?”
갑작스레 노구덕이 정색하자, 뒤에 있던 여위량의 강옥교의 앞을 가로막으며 나섰다. 노구덕은 그런 그를 보며 입매를 씰룩였다.
“벌써부터 창을 겨눌 필요는 없다. 나도 웬만하면 너희들을 해코지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하긴, 어차피 싸워봐야 결과는 정해져 있을 테지만.”
노골적으로 깔보는 듯한 말투였지만 여위량은 감히 반론할 수 없었다. 그 또한 눈이 있으니, 명왕과 싸우며 선보였던 노구덕 일행의 무력을 톡톡히 체감한 탓이다.
“…쉽게 당하진 않겠다.”
“그럴 테지. 알았으니까 진정해라. 당장 멱살잡이할 일은 없을 테니. 믿을지 안 믿을지는 자유지만, 개인적으로 너희들에게 악감정은 없어. 호의라면 모를까.”
그때, 여위량의 등 뒤에 숨어있던 강옥교가 토끼처럼 빼꼼히 얼굴을 내밀었다.
“믿어요. 거짓말을 하는 눈이 아니니까요.”
“…하여간 곤란한 아가씨군.”
괜히 무안해진 노구덕은 슬쩍 고개를 돌려 진행 중인 봉인의식 쪽을 바라보았다.
“거두절미하고 말하면, 너희들이 가진 신의 힘에는 종류가 있다. 그리고 우리에겐 그 힘의 종류를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 저 마법진에도 너희들에게 했던 것과 같은 종류의 술식이 포함되어 있다.”
“알아요. 빨간색이죠?”
“그래…. 아까 결과에서 암적색이 나왔으니, 너희든 명왕이든 둘 중 하나는 내가 원하는 걸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너희들이 할 수 있는 건 저 마법진에서 붉은색이 나오길 바라는 거다.”
“그게 아니라면요?”
“여기서 2차전을 시작해야겠지. 너희들 살리자고 내가 죽을 순 없는 노릇이니까.”
“…모쪼록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면 좋겠네요.”
“같은 생각이다.”
정말이다. 노구덕도 강옥교, 여위량과의 인연을 여기서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두 사람의 됨됨이가 좋아서가 아니라, 향후 북부의 향방을 생각했을 때 이 두 사람은 살아있는 편이 좋았다.
조금 있으면 북부연합에서도 명왕이 실종되었다는 것을 눈치 챌 터. 그의 부재가 확실시되고, 장기화되면 당연히 임시이든 정식이든 후임자에 대한 말이 거론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명왕의 정적들이 모두 제거된 지금, 2대 맹주로서 가장 유력한 사람은 명왕의 딸인 강옥교와 그 사위로 내정된 여위량이다. 그 속사정이야 어떻든 간에, 외부에서 본 명왕과 강옥교는 친밀한 부녀지간이었으니까.
‘명왕의 부하들은 자연스레 강옥교 쪽으로 붙을 테고… 여위량 저놈이야 원래부터 신망이 두터운 놈이니 따르는 사람도 많겠지. 잘만 하면 좋은 패가 될 수도 있겠어.’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일이 잘 풀렸을 대의 얘기.
모든 것은 저 봉인 마법진이 나타내는 색깔이 무슨 색이냐에 달려 있었다.
‘슬슬 끝나가는군.’
끝도 없는 빛의 띠에 둘러 싸여 집채만 하게 커졌던 고치가 어린아이보다 작게 쪼그라들었다. 명왕이 지니고 있었던 신의 힘이 마법진 안으로 모조리 흡수되었다는 증거였다.
구슬땀을 흘리며 마법진의 조절에 애를 쓰고 있는 소냐를 격려하기 위해 일어난 노구덕은 막 걸음을 옮기려다말고 발을 멈칫거렸다.
‘저건…?’
티 없이 매끄러운 고치의 표면에 세 사람의 얼굴이 떠올라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들쭉날쭉한 요철인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분명한 사람의 얼굴이었다. 고통에 울부짖듯 기괴한 표정을 띤 얼굴들은 일자로 정렬되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꿈틀 움직이고 있었다.
셋 중 하나는 명왕의 얼굴. 나머지 두 사람은 그가 모르는 얼굴이었다. 노구덕은 금방 그 두 얼굴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명왕이 흡수한 두 사람의 얼굴인가?’
따지고 보면 참 기구한 팔자를 가진 이들이다. 원하지도 않은 힘을 억지로 받아들여, 명왕이란 괴물의 먹이가 되었으니….
팟!
잡생각에 빠져 있던 노구덕은 얼른 정신을 차렸다. 한없이 작아지던 고치가 마침내 마법진 안으로 완전히 끌려 들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빛을 잃은 마법진 중앙에서 한 줄기 섬광이 분수처럼 솟구쳤다.
삽시간에 자욱한 운무처럼 퍼져나가는 빛의 입자들. 그 색깔은 심혼이 빨려들어갈 것처럼 맑고 깨끗한 붉은색이었다.
============================ 작품 후기 ============================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드디어 명왕 파트가 끝났네요. 이제 구더기 저주를 풀 일만 남았습니다. 다음 에피소드는 좀.. 예상하기가 쉽진 않으실 겁니다 ㅎㅎ
좀 의외인 방향으로 전개될 것 같네요.
즐거운 불토 보내시길 바랍니다.
안타깝지만 12시 연재는 힘들 것 같습니다. 우선 가게부터 마무리하도록 하고, 시간과 여력이 된다면… 노력하겠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