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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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귀환(歸還)
183# 귀환(歸還)
산치루 외곽으로 향하던 도중, 묵묵히 뒤를 따르던 하유라가 뜬금없이 말을 꺼냈다.
“발레기우스가 덫을 놓은 것 같다.”
“…뭣?”
앞서 걸어가던 노구덕과 소냐는 동시에 걸음을 멈추었다. 고개를 돌린 노구덕은 찌를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채근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명왕이 봉인될 때의 일을 기억하겠지? 그 얼굴들 말이다.”
빛의 고치 표면에 드러났던 세 개의 얼굴들. 그러니까 분명, 명왕 본인을 포함한 강옥교의 전 약혼자와 친구의 얼굴이라고 했던가.
“기억하고 있지. 그게 왜?”
“그중 하나는 내가 알고 있는 얼굴이다. 북부동맹에 살고 있는 놈이지. 일정대로라면, 이곳 북부연합에서의 일을 끝마친 다음 만났어야 할 녀석이었다.”
“그게 뭐 어때서? 명왕이 선수를 쳤을 수도 있지. 북부는 놈의 앞마당 같은 곳이니… 엇! 잠깐만!”
대수롭잖게 말한 노구덕은 갑자기 작게 입을 벌렸다. 하유라의 말에 담긴 부자연스러움을 뒤늦게 알아차린 것이다.
여위량에게 붙여 놓은 젠룽처럼, 하유라가 풀어준 노예들은 모두 감시자가 붙어 있다. 명왕의 양딸이 됨으로서 도저히 감시자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들어간 강옥교의 경우에는 예외지만, 그 외의 다른 노예들에게 붙여 놓은 감시자들은 정기적으로 그녀에게 보고를 올리고 있었다.
“이제 이해가 가나? 강옥교의 전 약혼자라는 녀석. 본명은 타로스라는 놈이다. 북부동맹에 있어야 할 놈이 명왕의 뱃속에서 발견된 거지.”
“…따로 보고가 없었습니까?”
“그게 문제다. 보고에는 별 문제가 없었으니까.”
하유라의 관리 하에 있던 타로스가 명왕의 양분이 된 것은 벌써 오래 전의 일. 그러나 하유라는 오늘까지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어제까지 올라왔던 타로스에 관한 보고서에는 그가 북부동맹에서 멀쩡히 잘 지낸다고 적혀 있었으니까.
“…네 조직이 발레기우스에게 넘어갔을 가능성도 있겠군. 그놈이 네 조직을 이용해서 역공작을 벌일 수도 있겠어.”
노구덕은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폈다. 갑자기 오한이 인 것처럼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다.
하유라가 풀어 놓은 감시자가 오히려 거짓된 정보로 일행에 혼선을 주었다. 만약, 첫 여행지를 북부연합이 아니라 북부동맹으로 잡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거짓 정보로 일행을 불러들인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건 과연 무엇이었을까?
“…거 참, 우리가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단 말이야. 명왕 그놈보다 더한 함정이라면 하나밖에 없을 것 같은데.”
“속단할 수는 없다. 발레기우스 본인이 아니더라도, 명왕 같은 자들이 더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그나저나 이제 네 조직에 마냥 의지할 수만도 없겠는걸. 당장 오늘 잠자리도 걱정해야 되는 거 아닌가?”
“젠룽은 믿을 만하다.”
“그렇겠지. 농담이다. 그자가 발레기우스에게 넘어갔다면, 명왕을 그처럼 수월하게 상대할 수도 없었을 테니……. 이건 나중에 논의하는 게 좋겠다.”
다시 걸음을 재촉한 일행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명왕이 봉인되어 있는 외곽 공터에 이르렀다.
공터 주변의 초소는 텅 비어 있었다. 주변에도 사람은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여위량과 강옥교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듯했다.
마법진 가까이 다가간 소냐가 마력을 흘려 넣자, 까맣게 죽어있던 마법진 전체가 눈을 뜬 것처럼 밝은 빛이 터져 나왔다. 어지러이 널려 있는 가지각색의 문양들이 잔잔한 빛을 발하는 게, 화려하게 명멸하는 네온사인과 꼭 닮았다.
“대부님… 시작할까요?”
“그래. 저 가운데로 가면 되는 거니?”
“예. 서리여왕 님께선 이쪽으로… 마력의 공급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고 있다.”
노구덕과 하유라는 각기 다른 두 개의 마법진으로 걸어 들어갔다. 노구덕은 명왕의 힘이 봉인된 봉인 마법진, 하유라는 그 옆에 따로 연결된 증폭 마법진이었다.
전체적인 마법진의 컨트롤은 소냐가 담당하고, 부족한 마력은 하유라가 공급한다. 원래대로 신의 조각 한 명 분의 힘이라면 모를까, 세 명의 힘이 한 데 뒤엉킨 이상 소냐 혼자만의 마력으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노구덕이 마법진 중앙에 정좌하고, 하유라가 증폭 마법진을 가동시키는 사이, 소냐는 그의 주위를 돌며 길쭉한 완드의 끝으로 무엇인가를 끄적거렸다. 얼핏 보면 어린아이의 낙서로 여겨질 법한 두서없는 그림이었다.
하지만 슥슥 완드를 움직이고 있는 소냐의 표정은 더없이 진중했다. 그녀의 마늘쪽처럼 반듯한 콧잔등은 살짝 찌푸려진 채, 굵은 땀방울이 아슬아슬하게 내걸려 있었다.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엄청난 심력을 소모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녀가 봉인 마법진 위에 겹쳐 그리고 있는 것은 저주를 해제하는 해주식(解呪式)이다. 그것도 일반적인 해주식이 아니라, 그녀가 분석한 시스템의 구조를 마법적인 원리로 재해석한 고등 술식이었다.
한마디로 이 세계에서 오직 소냐만이 전개 가능한 술식이며, 지금까지 등장한 전례가 없었던 유일무이한 마법진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 만큼, 그 효과 또한 미지수.
성공일지, 실패일지… 시술자인 소냐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도박수다. ‘이론적으로는’ 완벽하지만, 막상 실제는 다를 가능성이 크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시스템의 힘을 마도로 전환시켜 다룬다는 것은 그 일례조차 찾을 수 없는 전무후무한 시도였으니.
단 한 번의 연습조차 허용되지 않은 실전. 그것이 소냐에게 굉장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정말 할 수 있을까.’
소냐는 조용히 자문했다.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지금까지 천재적인 재능을 바탕으로 어떤 기대에도 척척 부응했던 그녀다. 어느 마법이나 주문조차 연습도 하지 않고 모두 실현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만은 경우가 다르다.
주문 하나에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었다.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닌 노구덕이다. 일이 잘못되면 정말로 그의 존재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었다.
가장 이상적인 건 노구덕의 저널을 부작용이 일어나기 전으로 되돌리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어떤 돌발 변수가 일어나도 이상할 게 없다.
노구덕이 인간이 되거나, 완전히 오크가 되거나, 아예 모든 능력을 상실한 평범한 사람이 되어버릴 수도 있었다. 그도 아니라면, 죽어버린다거나.
‘세 가지 힘이 섞여버린 탓에 변수가 너무 많아졌어. 도저히… 예측이 불가능해.’
될 수 있으면 분석이 끝날 때까지 일을 미루고 싶었지만 그것도 힘들다. 봉인 마법진으로 명왕의 힘을 붙들어 두는 데엔 엄연히 한계가 있었으니까.
해주 마법진의 완성이 다가올수록, 작은 심장의 진동음도 커져만 갔다. 두근두근대는 심장이 당장이라도 가슴을 뚫고 뛰쳐나올 것만 같았다.
압박감을 견디다 못한 소냐는 마법진 그리는 것을 멈추고 노구덕을 힐끗거렸다. 돌부처처럼 정좌를 한 노구덕의 표정은 여느 때처럼 덤덤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대부님.”
어느새 눈을 뜬 노구덕과 시선을 마주친 소냐는 자기도 모르게 그 시선을 피했다. 중압감에 허덕이는 못난 꼴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구덕이 소냐의 초조한 심정을 모를 리 없다. 그녀를 대하는 그의 음성은 여느 때처럼 인자하고 부드러웠다.
“다 잘될 거다.”
“하, 하지만….”
“어차피 해야 할 일이다. 미룰 수도 없고, 여기서 그만둘 수도 없지. 어떤 결과가 나오든 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설령 일이 잘못된다고 해도, 아무도 널 탓하지 않아. 오히려 네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거다.”
“…….”
“네게 너무 큰 부담을 지우는 것 같아 미안하구나. 아직은 집에 있어야 할 나이인데…….”
“…아니요. 저도 한 사람의 성인입니다. 아이취급은 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갑자기 정색하며 노구덕의 말을 자르는 소냐. 돌변한 그녀의 분위기에 당황한 노구덕은 엉겁결에 말을 더듬으며 사과했다.
“으, 으응? 미, 미안하다. 그런 말이 아니라….”
“대부님께선 분명, 제 성인식에 소원을 하나 들어주신다고 하셨지요.”
“그…그랬지. 그러고 보니 이번 년도 말이던가?”
스퀘어에선 열다섯이면 완전한 성인으로 인정받는다. 사회적으로 대개 열다섯이면 한 사람 몫의 노동력을 발휘한다고 여겨지는 데다, 가장 중요한 이유로는 헌터의 저널을 본인 스스로 확인 가능한 나이가 열다섯이기 때문이다.
단 열다섯 생일이 지났을 때 성인으로 인정받되, 성인식을 하는 건 그 해의 마지막 달이다. 그러니까 소냐의 성인식까진 아직 석 달 정도가 남은 셈이었다.
원래 소냐의 요구는 블랙 랩터를 칼립스 리그에 올리는 것으로 소원을 들어달라는 것이었지만, 스퀘어 대륙이 춘추전국시대로 접어들고 클럽과 리그가 유명무실해지면서 그녀의 목표는 무산되고 말았다.
혹시 소냐가 그 건으로 의기소침해 할까 저어한 노구덕은, 복귀한 소냐를 레그나토르의 임시 간부로 임명하며 목표를 달성한 것으로 쳐주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즉, 노구덕에 대한 소냐의 1회 소원군은 아직 유효했다.
다시 차분한 신색을 되찾은 소냐는 그를 똑바로 응시하며 또랑또랑하게 말했다.
“대부님께선 제게 약속을 지키실 의무가 있습니다.”
“그, 그렇지. 절대 잊어버리지 않았단다. 굳이 염려하지 않아도….”
이게 의무까지 나갈 일인가? 하는 의문이 일었지만, 왠지 모를 박력을 뿜고 있는 소냐는 딴생각할 틈을 주지 않았다.
“저는 오늘 소원을 정했습니다.”
“그전까진 정하지 않았다는 소리구나.”
“예. 그러니, 대부님께선 반드시 생환하셔야 합니다. 저와의 약속을 지키셔야 하니까요.”
“…흐흐. 이거, 우리 소냐가 무서워서라도 꼭 살아야겠구나.”
“농담이 아닙니다.”
“오냐. 꼭 살도록 하마.”
서로를 위로하는 두 사람의 꼬락서니가 참 아니꼬웠던지, 하유라의 퉁명스런 비난이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주접은 적당히 떨어라. 눈꼴이 시어서 봐줄 수가 없군. 시간이 남아도는 줄 아나 보지?”
“흠, 흠… 미안하다. 얘야, 시작하도록 하자.”
“…예.”
불편함을 토로하는 관객 덕에, 훈훈했던 분위기가 확 깨져버린 두 사람은 다시 본연의 위치로 돌아갔다.
해주 마법진을 마저 완성시킨 소냐는 처음의 위치로 돌아가, 마법진의 정면에 섰다.
“해주 의식을 시작하겠습니다.”
나직한 음성과 함께, 잔잔히 가라앉아 있던 마법진이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맨처음 명왕을 봉인했을 때와 같은 희뿌연 빛무리들이 부유하는 먼지들처럼 둥둥 위로 떠오른 것이다.
마법진 귀퉁이에 왼손을 가져다 댄 소냐가 두 겹의 마법진을 활성화하는 동안, 비어있는 그녀의 오른손에서 새로운 마법진이 전개되었다. 주문 효율을 극대화하는 마도왕의 자기류, 제너레이터였다.
증폭 마법진에 손을 대고 있던 하유라는 제너레이터가 펼쳐진 것을 보자마자 최대 출력으로 마력을 끌어올렸다.
쿠우우웅!
하유라의 방대한 마력이 제너레이터를 통해 극한으로 증폭되며 크게 용트림했다. 노도처럼 일어난 마력의 격류는 대기를 찢어발기며 일대를 거세게 뒤흔들었다. 그 여파는 마법진 가까이 있는 초소 일부를 형편없이 허물어뜨릴 정도였다.
그런데 다음 순간, 성난 용처럼 포효하던 기운이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었다. 그토록 강대한 기운이 한순간에 마법진 중앙으로 빨려들어가 사라진 것이다.
눈을 반개한 채, 마법진의 조절에 애쓰던 소냐는 느닷없이 일어난 변화에 크게 경악했다.
뭔가 잘못 됐다. 이건 그녀의 계산에 없던 기현상이었다.
“대부님!”
애타는 부르짖음에도 불구하고, 노구덕으로부터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본래 그가 있어야 할 마법진의 중앙.
정좌한 노구덕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그 속이 검푸르게 넘실거리는 기괴한 공동(空洞)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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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12시에 올리려고 했지만 결국 1시가 넘어서 올라가고 마는군요.. 사족이지만 이번 파트는 굉장히 중요한 파트입니다.
참! 미리 공지할 일이 있습니다.
이번 주말에 아예 가게 닫고 휴가를 떠납니다. 6일 정도 예정되어 있는데 새까맣게 살 태우고 돌아올 생각입니다. 이것저것 준비할 것도 많지만, 그만큼 기분이 들뜨기도 하네요.
가기 전에 다시 한 번 공지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휴가 다녀오고 나면 이 푹푹 찌는 열대야가 조금 가셨으면 하는 작은 바람입니다..
그럼 내일 낮에 다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