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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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귀환(歸還)
“호오… 꽤 시간이 오래 지났을 텐데, 기억해주니 영광인걸. 여기서는 윤정훈이라고 불러주게.”
입가에 걸린 저 비실비실한 웃음.
이목구비가 동양적으로 변하긴 했지만, 전체적인 얼굴을 봐선 확실했다. 저 초로의 중년인은 그와 김정인을 스퀘어로 끌고 간 장본인, 하이 스카우터 드리안이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절대 그와 양립할 수 없는 인간이 드리안이다. 시간이 많이 지나 원한이 많이 희석되기는 했지만, 그는 본래 김정인을 제외한 나머지 헌터들을 버리려고 했을 뿐 아니라, 주스트에서도 몰래 그의 암살을 사주했던 인간이다.
나중에는 데모나의 도움으로 드리안의 눈을 빼앗고, 도리어 그를 죽음으로 내몰며 복수하긴 했지만… 어쨌든 꼴보기 싫은 인간임에는 분명하다.
무심결에 한 발 뒤로 물러선 노구덕은 눈을 가늘게 떴다.
‘저놈, 분명 윤정훈이라고 했지.’
기분이 매우 불쾌했다. 그를 병원으로 데려가 뒤처리를 해 준 인간이 하필이면 드리안이라니. 아니, 그걸 떠나서 주거지를 무단침입한 주제에 제 집인 양 편하게 구는 그의 태도가 너무나 아니꼬웠다.
노구덕은 안면에 떠오른 경계심을 애써 지워냈다. 비위가 뒤틀리고 싫은 인간이지만, 지금은 대놓고 티를 낼 수 없는 처지다.
하이 스카우터 드리안은 스퀘어와 지구 사이에 걸쳐 있는 접점 같은 존재다. 어떻게 여기에 살아서 나타났는지는 몰라도, 그는 지금 일어난 이 요상한 현상의 전말을 풀 수 있는 유일한 실마리였다.
“어떻게 된 거지?”
“흠… 생각이 많아 보이는데. 그럴만도 해.”
“다가오지 마라. 거기서 말해.”
드리안은 노구덕의 으르렁거림에도 개의치 않고 그의 코앞까지 당당히 걸어왔다. 단정히 뒤로 넘긴 중후한 인상에 어울리지 않게 삐죽하니 솟은 입매가 얄밉기 짝이 없다.
엉겁결에 주먹을 들어 올린 노구덕은 슬그머니 팔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그는 평범한 인간. 충왕각인도, 저널도, 오크의 신체도 모두 잃어버린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을 본 드리안은 작게 소리 내어 그를 비웃었다.
“아직 꿈에서 덜 깼나 보군.”
“…꿈이라고? 그게 무슨 말이냐?”
돌연, 소슬한 불안감이 등줄기를 차갑게 적셔왔다. 그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드리안은 유들유들한 투로 말을 이었다.
“윗선과 얘기를 좀 조율하느라 말이야….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자네는 스카우트 대상이 아니었어. 따지고 보면 내 실수로 휘말린 셈인데… 돌려보내는 절차가 좀 복잡해서. 그게 이제 결과가 나온 거지.”
“결… 과…?”
“죽여서 입을 막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근본적으로 하이 스카우터는 타차원에 간섭할 수가 없거든. 그런 권한도 없고. 그러니까 처치곤란인 자네를 결과가 나올 동안 재워 뒀지. 그러니까, 드래프트가 끝난 이후였던가?”
담담하게 유지되던 노구덕의 표정이 살짝 허물어졌다. 두 눈을 무섭게 부릅뜬 그는 드리안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개소리 지껄이지 마라. 네놈이 날 위해 동분서주했다고? 속이려고 마음먹었으면 좀 그럴듯한 말을 했어야지.”
“허허. 왜 이렇게 날을 세우는지 모르겠군. 꿈에서 내 이미지가 좀 안 좋았나?”
“안 좋다 뿐일까? 너는 정말로 개자식이었다.”
“다행이군. 그렇다면 이번에 제대로 이미지 쇄신을 할 수 있겠어.”
“뭐라고…?”
의외로 드리안은 화를 내지 않았다. 능글맞은 낯짝을 치우고, 갑자기 근엄한 표정을 지은 드리안은 둘둘 말려 있는 스크롤을 꺼내어 노구덕 앞에 펼쳐 보였다.
“노구덕. 자네는 오늘부터 자유다. 이건 위원회의 인가를 받은 정식 서류로, 자네의 귀향을 보증하는 증서다. 지구에서 활동하는 스카우터들이라면 모두 알아볼 수 있을 테니, 앞으로 자네가 이곳과 엮일 일은 없을 걸세. 장담하지. 나 따위가 아니라, 훨씬 높은 윗선의 보증이니까.”
드리안이 펼친 스크롤은 곧 수많은 입자로 부스러져 노구덕의 몸에 스며들었다. 노구덕은 그 광경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갑자기 낯을 일그러뜨리며 드리안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드리안은 노구덕의 어설픈 기습을 피해냈다. 제법 날렵하긴 했으나, 형식 없이 허우적대는 노구덕의 손놀림으론 깃털처럼 가뿐한 드리안의 종적을 쫓기엔 역부족이었다.
처음부터 가망이 없는 싸움이다. 그러나 노구덕은 미친 사람처럼 팔을 휘두르며 악을 쓰길 멈추지 않았다.
“이 새끼! 개소리 그만 해라! 네놈은 누구냐! 발레기우스, 네놈이냐?”
“쯔쯔. 이건 꽤나 중증이로군. 대체 무슨 꿈을 꾼 건지…….”
“그놈의 꿈 타령, 좀 닥치란 말이다! 이만 본 모습을 드러내!”
“미안하네. 난 이게 본 모습이라서 말이야. 더 이상 드러낼 것도 없군. 옷이라도 벗어서 보여주고 싶지만, 자네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닌 것 같고.”
“이 개새끼…! 으아악!”
오 분 동안 쉬지 않고 몸을 굴린 노구덕은 끝내 발을 헛디뎌 넘어지고 말았다. 그 숱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제자리에서 거의 이동하지 않은 드리안은 헉헉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일어서는 노구덕에게 안쓰러운 눈길을 보냈다.
“내 본의 아닌 실수로 험한 일에 휘말리게 해서 미안하군. 그 보답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대신 자네는 누구보다 건강한 신체를 얻었네. 차원을 통과한 헌터는 모든 지병이 사라지거든.”
“드리안…!”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었네. 자네는 이제 평범하게 자네 삶을 살면 되는 거야. 한 가지 작은 제약이라면, 나와 만났던 일, 우리 세상에 관계되어 있는 모든 걸 발설할 수 없다는 것 정도겠지. 그 정도의 제한은 이해해 주리라 믿네.”
“누구 마음대로!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아니, 끝났네.”
무표정한 드리안은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했다.
“자네의 꿈은 끝이야. 아무쪼록, 좋은 추억이 되었길 바라네.”
그것이 노구덕이 들은 드리안의 마지막 말이었다.
이후 시야가 까맣게 변하며 정신이 가물가물해졌다. 노구덕은 신기루처럼 흩어지는 드리안의 얼굴을 향해 손을 내민 채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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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안이 사라진 뒤.
열흘이 무의미하게 지나갔다.
노구덕의 일상은 변하지 않았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어떤 특별함도 없었다. 드리안도 더 이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처음엔 드리안이 나타난 것 자체가 저열한 악몽, 혹은 교활한 속임수라고 생각했다.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격동시켜 심력을 소모하게 만드는 뻔한 수작이라 여겼다. 소울트랩에 당했던 임유진이 괴로운 기억을 마주하며 고통 받았던 것처럼, 비슷한 주문에 걸린 것이리라…. 그는 그렇게 판단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갈 때마다, 노구덕은 점차 자신의 짐작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상은 그가 기억하던 그대로였다.
노구덕. 49세에 멈춰 있었던 그의 시계가 다시 째깍째깍 돌아가기 시작했다.
새로운 신작 영화가 나왔으며, 유명한 야당의 정치인이 사퇴했다. 그가 사는 동네에는 새로운 대형 마트가 들어섰다.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하며 귀찮게 구는 거래처의 밉상들도 그대로였다.
평범한, 정말 평범하기 짝이 없는 열흘 동안의 일상이다. 노구덕은 그 열흘을 흘려보내며, 스스로 살고 있는 시간대가 결코 허상이나 악몽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객관적인 증거나 확신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지금까지 느끼며 경험한 바가 알려주고 있었다.
이것은 실제라고. 실제의 지구라고.
그때부터 노구덕은 급격히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이미 이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여긴 그의 고향이지만, 그의 자리는 오래전에 사라져버렸다. 노구덕이 있을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물론 이전의 인간관계, 사회적 지위는 그대로다. 그는 작은 창고를 가지고 있는 소기업의 사장이고, 울적할 때 부를 수 있는 친구도 두어 명 가지고 있다. 비록 가정이 파탄 나기는 했지만.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그 중심에 위치한 노구덕이란 인간이 뼛속까지 변해버렸다는 것이다. 모든 건 그대로인데, 노구덕 혼자만 십 년의 공백이 생겨버렸다.
지금 그에겐 모두가 낯설었다. 그 좋아하는 축구 경기를 시청해도 흥이 나지 않았고, 큰 거래가 들어와도 그저 신경회로가 끊어진 것처럼 무감각하기만 했다.
당연하다. 이곳엔 가족이 없었다. 생사를 함께한 지기들과 부하들도 없었다. 지난 십 년, 그 치열한 인생의 격정을 극복해 낸 ‘노구덕’을 기억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지금 여기 있는 건 실패한 인생을 살고 있는 노구덕이다. 가족에게 버림받고, 퀴퀴한 빌라촌에서 아무렇게나 살아가고 있는 쉰내 나는 중늙은이.
매일매일이 무료했다. 숨을 쉬어도 살고 있는 것 같지가 않았다.
그렇게 열흘 하고도 이틀이 지났을 때, 마침내 노구덕은 삶의 방향을 정했다.
‘스퀘어로 돌아가야겠다. 어떻게든.’
이제 이곳이 현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계속 이렇게 허송세월하느니, 차라리 온갖 수단을 동원해 돌아갈 방법을 찾으리라.
노구덕은 일주일 동안 천천히 시간을 들여 회사를 정리했다. 회사라고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작은 기업이었기에, 정리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적당히 대형 거래처 하나를 골라 염가에 회사를 처분한 그는 처음 입원했던 병원을 찾아갔다. 윤정훈이란 가명을 쓰는 드리안의 행적을 쫓기 위해서였다.
병원비를 그가 계산했다면 혹시 카드 정보나 영수증, CCTV 같은 게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고 병원 원무과에 찾아간 노구덕이었지만, 역시 일이 순탄하게 풀리는 법은 없었다.
“윤정훈이요? 음… 그런 이름은 없는데요. 잘못 찾아오신 게 아닌지….”
원무과 직원들 중 드리안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당시 노구덕의 치료비용은 모두 노구덕의 자비로 부담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억지를 부려 CCTV를 돌려도 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CCTV엔 기절한 노구덕과 구급대원들 뿐, 동행했다던 드리안의 모습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결국, 아무런 소득도 건지지 못한 노구덕은 크게 낙심한 채 원무과를 나설 수밖에 없었다.
‘너무 쉽게 생각했어. 그놈들이 어떤 놈들인데. 증거를 남겨뒀을 리 없지…. 기억조작인가? 그런데… 왜 굳이 내 기억은 남겨둔 거지?’
그는 옆 건물의 병동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드리안을 만난 그 이예란이라는 간호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어차피 가능성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지푸라기라도 잡아 보자는 심정이었다.
마침 점심시간이었던 게 호재로 작용한 모양이다. 별 생각 없이 걸어가던 노구덕 운 좋게도 1층 로비에서 그 간호사를 볼 수 있었다.
예기치 못한 날파리가 꼬여 있다는 게 문제긴 했지만.
“야. 예란아. 밥 한 끼 같이 먹는 게 그렇게 어려워?”
“지, 지금은 많이 바빠서요. 회진 때문에 빨리 가봐야 돼요. 죄송합니다….”
“씨발, 병원에 간호사가 너밖에 없어? 엉? 와, 존나 비싸게 구네, 진짜. 그냥 싫으면 싫다고 말하지?”
“힉! 그, 그게 아니라요….”
울상을 짓고 있는 이예란의 앞에는 웬 환자복을 입은 덩치가 버티고 서 있었다. 헐렁한 소맷자락 밖으로 드러난 팔뚝엔 칼을 물고 있는 귀신과 꾸물꾸물 승천하는 용문신이 새겨져 있었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날건달이란 느낌이 팍팍 풍기는 인간이었다.
우락부락한 덩치에 험악한 낯짝, 거기에 문신까지 새겨져 있어서 그런지, 주변 사람들도 안타깝게 구경하기만 할 뿐 함부로 도와줄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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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쓰다보니 어째 외전을 쓰는 듯한 느낌..
퇴근하고 씻고 올리고 저는 자러 갑니다 ㅠㅠ 눈이 너무 감기네요. 내일 낮에 말짱한 정신으로 뵙겠습니다. 궁금하신 점들은 내일 낮에 올릴때 한꺼번에 답변 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