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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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귀환(歸還)
“이보게, 간호사 아가씨. 내 긴히 물어볼 게 있는데, 잠시 시간 좀 내줄 수 있을까?”
‘이, 이런! 이 망할 주둥이가 어쩌자고…….’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자기도 모르게 이예란을 불러버린 노구덕은 속으로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런 자잘한 일에 끼어들어서 어쩌자는 말인가.
하지만 이미 내뱉어버린 말을 주워 담기엔 늦었다. 그렇잖아도 발을 동동 구르며 구원줄을 찾고 있던 이예란이 그를 보자마자 크게 반색하며 손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아! 몸은 좀 괜찮으세요? 제게 물어볼 게 있으시다고요?”
정말 잠깐 만났던 사이다. 당연히 이예란은 노구덕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간절한 눈빛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던 노구덕은 남몰래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왜, 담당 형사가 여기로 가보라고 해서 말이야.”
“…….”
노구덕이 슬쩍 형사를 언급하자, ‘이건 또 뭐야?’라는 표정으로 건들거리며 서 있던 사내의 어깨가 미미하게 움찔거렸다. 모름지기 양아치한테는 형사만큼 무서운 존재가 없는 법이었으니.
“아하… 그러시군요. 하긴 이전에도 형사님이 찾아 오셨었죠. 그 뺑소니 건 말씀이시죠?”
순둥순둥한 인상과는 다르게, 이예란은 제법 여우같은 구석이 있었다. 어정쩡하게 굳어있는 건달 사내의 눈치를 살핀 그녀는 자연스럽게 그의 곁을 지나쳐 노구덕에게 다가왔다.
“야, 이예란! 너 지금….”
“죄송합니다. 이젠 정말 시간이 없어서요.”
“…두고 보자.”
뻔한 한마디를 남긴 사내는 씩씩거리며 로비를 나가버렸다. 겨우 위험한 대치 상황에서 풀려난 이예란은 회전문 너머로 사내의 뒷모습이 사라지자마자 크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후우우우… 진짜 감사합니다. 저 인간, 어떻게 된 게 매일 지치지도 않고 치근덕거리네요. 폭력 전과만 5범이라는데 너무 무서워죽겠어요.”
“그렇구먼. 그나저나 물어볼 게 있는데.”
“아… 그랬었죠. 말씀하세요.”
노구덕의 무신경한 말에 이예란은 조금 김샌 표정이 되었다. 자기 나름대로는 정의감에 휩싸인 중년 아저씨가 구실을 붙여가며 도와준 거라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물론, 주둥이가 멋대로 반응한 것뿐인 노구덕으로선 그녀의 로망을 배려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내가 저번에 응급실에 실려 왔을 때 말인데, 곁에 있던 보호자가 누구였지?”
“보호자요? 으으응…….”
흑색의 동글동글한 눈동자를 위로 향한 채, 한동안 기억을 더듬던 그녀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구급대원들 밖엔 기억이 나질 않는데요. 보호자 분이 계셨던가요?”
설마가 역시나다. 이예란도 원무과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드리안에 대한 건 아무것도 기억하고 있지 못했다. 크게 실망한 노구덕은 이예란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제 그녀에게 남아 있는 볼일은 없었다.
“없었던 것 같군. 고맙네.”
“아뇨. 물어보실 게 있으면 언제든지 오셔도 괜찮아요. 참, CT 촬영은 하셨어요?”
“난 괜찮대두.”
“안 하신 거예요? 연세도 있으셔서 걱정 되는데….”
“정말 괜찮아. 내가 좀 노안이긴 하지만 아직 쉰은 안 됐어.”
염려해주는 건 고맙지만, 은근히 끈덕진 면이 있는 여자였다. 그녀의 고운 마음씨만 받아두기로 한 노구덕은 끝까지 CT 촬영을 권하는 이예란에게 손사래를 친 뒤, 후문을 통해 병원을 나섰다.
병동 후문은 좁은 골목길이 멀리 떨어진 흡연부스와 연결이 되어 있어, 길 전체에 찌든 담배냄새가 풍기는 곳이었다.
잘 관리가 되지 않는 것인지, 담벼락 곳곳에는 누런 가래침과 눌어붙은 껌딱지, 피다 만 꽁초들이 사방에 깔려 있었다. 이래서는 저기 보이는 흡연부스가 유명무실이었다.
‘담배나 피울까….’
머리가 심란한 탓일까. 갑자기 끊은 지 오래된 담배가 당겼다. 초장부터 일이 수틀리니, 이다음엔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고 막막하기만 했다.
시기적절하게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면, 상태 괜찮은 꽁초라도 주워 물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이, 아저씨.”
“…….”
“어쭈? 표정 봐라? 웃어?”
‘내가 웃었던가?’
노구덕은 입가를 어루만졌다. 과연, 건달 사내의 말대로 입꼬리가 살짝 위로 올라가 있었다. 아까 멋대로 끼어든 것도 그렇고, 어찌된 게 오늘 하루 종일 개별행동을 일삼는 주둥이였다.
“…여태 날 기다리고 있었나? 회전문으로 나간 줄 알았는데….”
“밖에서 보고 있었다, 이 새끼야. 카악, 퉷!”
너저분한 담벼락에 또다시 가래침 하나가 추가되었다. 싯누런 색깔을 보아하니 상당한 꼴초인 게 분명하다.
발치에 떨어진 꽁초를 짓밟아 잔불을 꺼트린 건달 사내는 뱀눈을 쭉 찢으며 노란 이빨을 드러냈다.
“이 씹새끼. 어디서 약을 팔아? 내가 큰집 한두 번 다녀온 줄 알아? 짭새인지 아닌지는 이제 면상만 봐도 알 수 있어. 너 경찰 아니지? 그치?
“젊은 사람이 입이 험하구먼.”
“그래, 니 새끼는 앞으로 인생이 험해질 거야. 뻗을 자리를 보고 누워야지, 어디서 다 된 밥에 재를 뿌려? 엉? 딸뻘인 년한테 좆이라도 빨딱 스디?”
주먹에서 우두둑 뼛소리를 낸 건달 사내는 이리저리 목을 꺾으며 노구덕을 위협했다. 아니, 위협에서 끝날 수준이 아니다. 폭력 전과 5범이라더니, 악독하게 비틀린 저 눈깔은 정말로 사람을 사정없이 망가뜨릴 수 있는 눈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전장에서 저런 눈을 숱하게 봐 온 노구덕은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사내는 양떼 무리 속에 섞여 있는 들개 같은 인간이었다.
‘이거군. 이거였어….’
하지만, 어째서일까. 정작 그가 느낀 것은 날 선 경각심이 아니라, 뜻하지 않은 묘한 쾌감이었다.
“고맙네. 항상 뭔가 허전했는데, 이제야 그게 뭔지 겨우 알 것 같아. 이미 난 양으로 돌아가기엔 한참 늦어버린 게로군.”
“뭐? 이 새끼가 미쳤나…. 뒈져!”
울퉁불퉁한 주먹이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싸움으로 밥벌이하는 인생답게 꽤 매서운 주먹질이었지만, 숱한 고수들과 대련을 해 온 노구덕에겐 어린애 장난에 불과했다. 더군다나 그의 신체는 겉보기만 노쇠했을 뿐, 실제로는 이십 대의 팔팔한 육체에 견주어도 꿀릴 게 없는 몸 아니던가.
아슬아슬한 순간에 머리를 숙여 건달의 주먹을 피한 노구덕은 미끄러지듯이 그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어어엇!”
기습적으로 내뻗은 첫 방이 빗나갈 줄은 몰랐는지, 두 눈을 홉뜬 건달 사내의 표정엔 황당한 빛이 역력했다.
그와 짧게 눈을 맞춘 노구덕은 휑하니 비어있는 복부에 망설임 없이 주먹을 꽂아 넣었다.
“끄허윽…!”
배를 부여잡은 사내가 힘없이 비틀거리는 찰나, 이번엔 위로 펄쩍 뛰어오른 손바닥이 사내의 턱밑을 강타했다.
딱!
이빨과 이빨이 강하게 맞물리며 딱딱거리는 소리가 났다. 두개골에 강한 충격을 받은 사내는 눈을 허옇게 뒤집은 채 썩은 짚단처럼 뒤로 넘어갔다.
싱겁게 사내를 끝내버린 노구덕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주변에 카메라와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그는 쓰러진 사내의 팔다리를 각기 두 군데 씩 뚝뚝 부러뜨려 놓았다. 뼈가 부러질 때마다 기절한 사내의 몸이 심한 경련을 일으켰지만, 그것을 내려다보는 노구덕의 표정은 무심하기만 했다.
“이 정도면 한동안 설치고 다니진 못하겠지.”
사람의 몸을 수수깡처럼 부러뜨려 놓은 것치곤 참 무성의한 감상이었다.
마지막으로 만신창이로 망가진 사내를 있으나 마나한 흡연부스 안에 처박아 둔 노구덕은 손을 털고 일어나 그 자리를 떠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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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을 빠져나온 노구덕은 생각 없이 대로를 걸었다. 문득 올라온 쓴웃음이 입가를 짠하게 물들였다.
‘구제불능의 괴물이 되어버렸어.’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대개 그 자리에서 도망치거나 외부에 도움을 청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건달 사내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그리고 정신을 잃어버린 그의 팔다리를 심하게 부러뜨려 놓기까지 했다. 이건 자위라는 명분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행위다.
노구덕 또한 구차하게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싶진 않았다.
누군가 왜 그랬는지 이유를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냥, 그런 놈은 경찰에 맡기기보다 그렇게 해놔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해코지를 당할 이예란이 걱정되었다든가, 얄팍한 정의감의 발로라든가 하는 것들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조금 전에 있었던 해프닝이야말로 현재 그의 가치관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법과 질서, 공권력에 구애받지 않는, 그야말로 무법자. 이것이 노구덕의 현주소였다.
왜 그때, 주둥이가 멋대로 움직였는지 까닭을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어째서 건달 사내와 마주쳤을 때 입꼬리가 멋대로 올라갔는지도.
그저 울분을 풀 상대가 필요해서, 주먹이 근질근질했던 것이다. 억지로라도 해프닝을 만들어 만만한 건달 사내를 묵사발로 만들어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싸이코패스처럼 보이겠지. 흐흐… 뭐, 틀린 말은 아닌가…….’
스퀘어에서라면 마음껏 욕구를 풀 수 있다. 가슴이 답답하면 카름을 사냥하든, 대련을 하든, 칼춤을 추든 뭐든지 마음대로다. 여자도 내키는 대로 안을 수 있고,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
그러나 이곳은 다르다. 갖은 폭력과 거친 욕망에 중독된 노구덕을 달래기엔, 이 지구는 너무나도 지루했으며 제약도 많았다.
그는 다시 한 번 인지했다. 이 세상이 물이라면, 자신은 절대로 섞일 수 없는 기름이라는 것을.
야생의 초원을 마음껏 호령하던 사자를 갑자기 좁은 우리에 홀로 가둬 놓으면 어떻게 될까.
그건 그 자체로 치명적인 독이었다. 사자는 나날이 약해지고 무력해질 것이며,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고 무너지게 되리라. 지금 노구덕의 상태가 바로 이와 같았다.
‘역시 난 이곳에서 살아갈 수 없어.’
그러나 어떻게 스퀘어로 다시 돌아간단 말인가. 드리안의 종적은 찾을 길이 없고, 이제 남은 단서는 아무것도 없다.
‘혹시… 그 방법이라면…….’
처음 병원을 나왔을 때와 똑같은 길을 걷고 있는 노구덕.
그를 멈춰 세운 것은 쌩쌩 차가 지나다니는 대로였다. 바로 그가 처음 사고를 당했던 곳. 김정인의 차에 치여 준비의 방으로 날아갔던 그 장소다.
‘차라리 다시 죽는다면……. 그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까?’
터무니없는 망상이다.
죽음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리란 것은 전형적인 패배자들의 낙관론 아니던가. 하물며 그때 그가 드래프트에 참가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차에 치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 차가 김정인이 몰던 차였던 덕분이다.
그걸 모를 노구덕이 아니다. 하지만… 그 외에 달리 무슨 방법이 있단 말인가.
그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의 발은 점점 대로변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 저, 저 아저씨 좀 봐!”
“에그머니나!”
누군가 멀리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노구덕은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성큼성큼 4차선 도로에 가까워지는 그의 모습은 마치 몽유병에 걸린 환자처럼 보였다.
광활한 초월을 빼앗기고 좁아터진 동물원에 갇혀버린 수사자의 말로.
그것은 스스로 택한 죽음이었을까.
빠아아아앙–!
고막을 도려낼 듯한 경적 소리가 뇌리를 일깨운다. 텅 비어버린 망막 위로 다급히 속도를 줄이는 버스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갑작스런 급제동에 끼기기긱 바퀴 나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거리상 충돌을 피할 길은 없어 보였다.
“꺄아아악!”
“우왓!”
여기저기서 빗발치는 비명이 남 일처럼 대수롭잖게 느껴졌다. 빠르게 엄습한 그림자는 어느새 그의 몸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그 마지막 순간, 노구덕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 작품 후기 ============================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여전히 날씨가 참 덥습니다.
Writer루미니 님 쿠폰 감사합니다 (_ _
거두절미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사실 질문에 답변드리고 싶었는데, 막상 질문이라 할 게 별로 없네요. 그래서 제 나름대로 후기를 남겨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챕터는 명왕 챕터와는 별개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장르부터가 현대물과 판타지라는 차이가… 흠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중요도가 참 큰 에피소드이기도 하고요.
현대에 혼자 내던져진 노구덕의 방황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는 아마 다음편을 보시면 대충 감을 잡으실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이번 에피소드로 인해 구더기가 무한 탱커 역할에서 벗어날 것 같기도 하네요. 제대로 주워먹기만 한다면 말이지요.
작중 등장한 간호사 이예란은 히로인이 아닙니다. 그것만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어요. 이번 에피소드의 히로인은 따로 있죠.
음.. 최대한 스포 자제하고 쓰니 막상 쓸 말이 별로 없네요. 여하튼 다음화엔 나름 큰 반전 또는 떡밥이 있으니 다음화를 보시면 대충 윤곽이 잡히지 않을까 하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