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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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 욘
184# 욘
어느 허름한 빌라의 1층 주차장. 서늘하게 그늘진 기둥 주변에 돗자리를 깔고 앉은 중년 여인들의 수다가 한창이었다.
“요새 빌라 분위기가 흉흉한 것 같아요.”
“아유, 누가 아니래.”
비교적 젊은 새댁이 입을 열자, 해바라기씨를 까던 아줌마가 넙죽 말을 받았다. 일전에 분리수거를 하러 가려다 노구덕과 마주쳤던 바로 그 아줌마였다.
“2층 그 인간 때문이야. 아니, 사람이 갑자기 그렇게 변할 수가 있나?”
“동춘이 엄마, 너무 그렇게 말하지 마. 사고가 났다잖아. 머리를 크게 다쳤을 수도 있지. 의사도 그랬다고 하고…….”
아줌마를 타이른 것은 세 여자 중 가장 나이가 들어 보이는 여인이었다. 뽀글뽀글 진한 파마를 한 그녀는 이 빌라의 반상회장이자 최고참으로, 여자들 중 맏언니로 통하는 존재였다.
“그래도 형님, 정도가 있잖아요. 이러다가 집값 떨어지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요.”
“맞아요. 얼마 전에도 경찰이 다녀갔잖아요. 한 달 전에는 앰뷸런스도 왔다 가고…….”
“그럴 만도 허지. 벌써 두 번이나 자살 기도를 했다니까.”
“그 아저씨, 정말 미친 거 아닌가 모르겠어요.”
“모르긴 뭘 몰라? 척 보면 척이지. 회까닥 돌아버린 거여. 멀쩡한 사람이 생목숨 끊으려 하겠어?”
세 여자가 화제로 삼고 있는 인물은 이 빌라의 2층에 살고 있는 남자, 노구덕이었다.
두 달 전, 노구덕은 죽지 않았다.
목격자의 말에 따르면 몽유병 호나자처럼 대로변을 향해 걸어가던 그가 버스에 치이기 직전에 몸을 뒤로 내뺐다고. 실로 간발의 차이였다.
대로변에서 천만다행으로 살아남은 노구덕은 그길로 출동한 경찰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고, 이후 그전에 뺑소니를 당한 경력이 드러나 병원에서 상세 검진을 받았다.
노구덕을 진단한 의사는 갑작스레 자살 시도를 한 그의 증상을 교통사고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판정했다. 특히, 극심한 우울증 증세를 보인다는 소견도 덧붙였다.
병원에서는 입원 치료를 권했지만, 노구덕은 모든 치료 행위를 거부했다. 그렇다고 싫어하는 본인을 억지로 입원시킬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노구덕은 별다른 제지 없이 귀가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가 빌라 주민들 사이에 퍼져 있는 소문의 전부였다.
“쯔쯔쯔. 안 됐어. 홀아비라 돌봐줄 사람도 없는데 우울증이라니. 이러다 정말 송장 하나 치우는 거 아닌지 몰라.”
“그게 정말 그럴 수도 있겠더라고요. 형님, 저번에 그 인간 봤어요? 글쎄, 사람이 살이 쏙 빠졌다니까요? 눈먼 퀭~ 해 가지고! 아니 글쎄, 나는 해골바가지를 보는 줄 알았어요.”
“저도 잠깐 쓰레기 버리러 나오려다 본 것 같아요. 그 아저씨 원래 좀 살집이 있는 편 아니었어요? 완전히 빼짝 말랐던데….”
“그렇다니까. 수염도 산적처럼 숭숭 길러서는… 어휴, 씻지도 않는지 냄새가 그냥 숨이 턱 막히더라고!”
“경찰에서 그랬잖아요. 요주의 인물이니 이상한 기미가 보이면 바로 제보해 달라고. 어째 요즘 순찰도 잦아진 느낌이에요. 그래서 말인데 큰형님, 반상회에서 주도해서 그 아저씨 어떻게 입원하게 할 수 없을까요?”
“나도 알아보고는 있어. 근데 아무래도 보호자가 아니다 보니깐 절차적으로 좀 한계가…. 저게 뭐지?”
갑자기 빌라 앞에 정차한 웬 커다란 검은색 밴을 본 왕언니의 말이 뚝 끊겼다.
약속이나 한 듯이 말문을 닫아버린 세 여자는 왠지 모르게 불안한 눈초리로 밴을 응시했다. 빌라 앞에 정차한 밴이 뒤뚱거리는 뚱보처럼 들썩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안에 꽤 많은 사람이 타고 있는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문이 열린 밴 안에서 튀어나온 것은 일단의 사내들이었다. 우르르 밴에서 내린 사내들의 숫자는 언뜻 봐도 열은 되어 보였따. 하나 같이 짧게 깎은 스포츠형의 머리에, 건장한 체격을 지닌 남자들이었다.
“어이, 아줌마. 뭘 쳐다봐?”
“히익!”
“정재야, 시간낭비하지 말고 문이나 열어라.”
“예, 형님.”
바짝 얼어있는 아줌마들을 지나친 사내들은 거침없이 빌라의 도어록을 해제하며 위로 올라갔다. 빌라 주민이라도 되는 양, 거침없이 안으로 들이닥친 건달 무리가 멈춘 곳은 바로 2층의 현관문 앞이었다.
“그놈, 오늘 집에 있는 건 확실하겠지?”
볼에 작은 화상 자국이 있는 중년 사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묻자, 그 옆의 사내가 얼른 머리를 숙이며 답했다. 아마도 중년 사내가 이 무리의 우두머리인 듯했다.
“예. 엊그제부터 한성이네가 하루 종일 감시했는데, 아예 집밖으로 나오질 않았답니다.”
“얘기 들어보니까 순 히키코모리에 정신병자 같던데, 병철이 그 새끼는 대체 어떻게 돼먹은 거야? 게다가 나이 오십 처먹은 노친네라며? 씨팔, 간부라고 거들먹대더니만 별 시답잖은 병신한테 떡이 되어서는…….”
“그래도 병철 형님이 당할 정도면 예삿놈이 아닐 지도 모릅니다. 큰형님 지시도 있었고요.”
“염병, 그러니까 이렇게 왔잖냐. 빨리 끝내고 가기나 하자. 얼른 문이나 따라. 어이, 너 밖에 나가서 아까 그 아줌마들한테 대충 이빨 좀 까고 와라. 정신병원에서 왔다고 해. 미친놈 잡아간다고.”
“형님, 문 땄습니다.”
능숙하게 문손잡이를 만지작거리던 사내가 손을 떼자 굳게 닫혀있던 현관문이 힘없이 뒤로 밀려났다. 캄캄한 실내를 본 우두머리는 하이에나처럼 눈을 빛내며 무리를 독촉했다.
“뭣들 허냐. 어서 들어가지 않고… 이런 씨팔! 이게 무슨 냄새야?”
“우욱!”
“뭔 놈의 냄새가…!”
줄지어 집 안으로 들어선 사내들은 하나같이 코를 부여잡으며 신음을 내뱉었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심한 썩은 내가 풍겨온 탓이었다. 역하고 구릿한 냄새가 온통 방 안 가득히 들어차, 코끝이 찡하고 울릴 지경이었다.
커다란 음식물쓰레기통에 갇힌 것 같은 기분에 오만상을 찌푸린 우두머리는 애꿎은 부하들을 다그쳤다.
“이게 웬 썩은 내야? 이 새끼 이거, 벌써 뒈진 거 아냐? 이 새끼들아! 뭘 멍청하게 서 있어! 방부터 뒤져!”
“아, 알겠습니다!”
우두머리의 역정에 놀란 사내들이 파리 떼처럼 흩어진지 겨우 몇 초. 갑자기 안방 쪽에서 새된 경악성이 울렸다.
“으아아악!”
“이, 이게 뭐야!”
“웬 소란이야? 새끼들이 송장이라도 본 것처럼… 헉!”
습관처럼 화를 내며 안방으로 들어간 우두머리의 반응도 앞선 부하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석상처럼 굳어버린 사내들은 귀신이라도 마주친 양 사색이 되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의기양양하게 현관문을 따고 들이닥쳤던 좀 전의 기세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
허나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안방의 광경을 본다면, 조폭이 아니라 조폭 할아비라도 같은 반응을 보일 테니까.
방 안은 살인 사건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온통 피칠갑을 한 채다. 하얀 벽지에 붉은 물감으로 액션페인팅을 한 것처럼 흩뿌려진 핏물은 검게 굳어져 기괴한 무늬를 자아내고 있었다.
넓은 평수는 아니지만, 사방의 벽부터 천장까지 핏자국이 없는 곳이 없다. 사람 하나를 통째로 쥐어짜서 핏물을 내면 이 정도의 양이 나올 수 있을까? 게다가 저 구석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빈 비닐팩들은 뭐란 말인가?
흡사 피가 난무하는 슬래셔 무비의 현장 안으로 직접 들어온 것 같은 끔찍함. 덕분에 아연해진 조폭들은 서로 주춤거리며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
“이… 이거 완전 미친놈 아냐? 여기서 뭔 짓을 한 거지?”
“혀, 형님, 이거 경찰에 신고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이 병신 새끼야! 말이 되는 소리를 지껄여!”
그때였다. 부하의 덜떨어진 소리에 우두머리에가 버럭 성을 낸 순간, 현관쪽에서 쾅!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온갖 소리가 잇따랐다.
“뭐야? 끄아아악!”
으드득!
“자, 잡앗! 꺽!”
콰직!
뼈가 끔찍하게 박살나는 소리, 목구멍이 찢어지는 듯한 비명, 무언가가 벽에 둔탁하게 부딪쳐 나뒹구는 충돌음…….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방 안에 남은 삼인의 동공이 흔들리는 간격도 점차 커져만 갔다. 기괴한 방 안의 정경을 보았기 때문인지 사내들의 낯빛은 금세 새하얀 백지장이 되었다.
결국, 팽팽하게 당겨지는 부담감을 이기지 못한 우두머리는 치미는 두려움을 떨쳐내려는 듯 크게 언성을 높이며 안방 밖으로 나섰다.
“무슨 일이냐!”
허세를 부리며 문 밖으로 머리를 내민 우두머리는 불과 두 걸음도 떼지 못하고 헛숨을 들이켤 수밖에 없었다.
껌껌한 거실 중앙, 비실비실 흔들리는 그림자가 홀로 서 있었다. 푸르스름한 인광을 내뿜는 두 눈은 인간이 아니라 누릿한 짐승의 그것과 꼭 빼다 박았다.
갈대처럼 비틀거리는 그의 발치에는 일고여덟이나 되는 수하들이 볼품없이 쓰러진 채 널브러져 있었다. 모두 죽었는지, 신음도 없고 미동도 없었다.
보지 않아도 뻔했다. 모두 이 정체불명의 인간에게 당한 것이리라. 등골이 오싹해진 우두머리는 급히 염두를 굴렸다.
‘미, 미친… 몇 초 만에 저 녀석들을 다 작살냈다고? 이 새끼, 진짜 괴물인가? 응? 저건… 뭐지?’
자기도 모르게 눈을 굴린 우두머리의 눈길이 사내의 팔뚝에 머물렀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정삼각형을 이루고 있는 세 개의 붉은 반점. 신기하게도, 동전 크기만 한 붉은 반점들은 어두운 실내에서도 선명히 보일 정도로 스산한 핏빛을 발하고 있었다.
홀린 듯이 반점들을 쳐다보던 우두머리는, 갈대 사내가 한 발짝을 내딛자마자 질겁하여 뒤로 물러났다. 지금 부하들 앞에서 체면치레를 할 때가 아니었다.
“너, 넌 뭐야! 괴물이냐?”
“…….”
“이 새끼! 네가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른 줄 알아? 대, 대낮에 사람을 죽이다니!”
“…….”
사내는 대답이 없었다. 단지 또 한 번 무심한 발걸음을 내딛었을 뿐.
점차 드리워지는 사신의 그림자에 공황 상태가 되어버린 우두머리는 뒤에서 숨을 죽이고 있는 부하들을 윽박질렀다.
“이, 이 병신새끼들아! 뭐하고 자빠졌어! 어서 경찰에 신고부터… 깨객…!”
부릅뜬 눈으로 소리치던 우두머리의 눈알이 개구리처럼 툭 불거졌다. 어느새 유령처럼 나타난 사내가 그의 명치를 강하게 후려친 것이다.
“끄으으… 흐어어억…!”
답답한 신음을 흘린 우두머리가 필사적으로 손을 허우적거렸지만, 핏물로 얼룩진 사내의 손길은 자비가 없었다. 아니, 새파랗게 질린 두 사내의 동체시력으로는 사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아볼 수조차 없었다.
사내의 손에 목줄을 틀어 잡힌 채 버둥거리던 우두머리가 게거품을 문 채 아래로 미끄러졌다. 숨통을 옥죄는 무지막지한 악력을 이기지 못하고 혼절해버린 그의 눈엔 이미 의식의 잔재라고는 한 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조직의 행동대장이 손도 쓰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했다. 그것도 어떻게 어떤 식으로 당했는지 살필 수도 없었다.
이제 집에 들어왔던 무리 중 남은 이는 둘. 두려움에 잠식당한 두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벌벌 떨기만 했다. 무슨 말을 하기라도 하면 그 순간 저 괴물의 손바닥이 목을 꺾어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으, 으으…!”
쉬이이이….
얼마나 공포가 극심했던지, 사내 중 한 명은 바지를 축축하게 적시며 힘없이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나마 가까스로 서 있는 사내도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게 눈에 보일 지경이었다.
우두머리를 쓰러뜨린 사내는 유리알처럼 반들거리는 눈동자로 겁에 질린 두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 무미건조한 시선이 가져다주는 압박감을 견디다 못한 사내가 까무러치려는 찰나, 텁수룩한 수염에 가려진 입술이 느릿하게 벌어졌다.
“…너희들, 본거지가 어디냐? 조직원들은 얼마나 있지?”
“예, 예?”
“됐다. 가보면 알겠지. 살고 싶으면 안내해라. 차는 타고 왔겠지?”
군말은 용납하지 않는다. 뱀처럼 투명한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 앞에 선 사내가 할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복종하는 것만이 전부였다.
============================ 작품 후기 ============================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무사히 휴가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정확히는 어제 오전중에 돌아왔습니다만, 피곤해서 한숨자고 바로 가게 나가니 글 쓸 여력이 안됐네요 ㅠㅠ
오늘부터 다시 정상연재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리플 달아주신 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공지 리플 보는데.. 그눈건님, 보다 빨리 연재 재개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반성하겠습니다. (_ _
오늘 하루도 즐거운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p.s / 원래는 떡밥을 이번화에 풀 예정이었는데, 휴가 중에 살짝 스토리에 변경이 있었습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