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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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일상,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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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어머나, 그랬니?
“그랬습니다.”
-저런… 그래서 표정이 어두웠구나.
작은 등 하나만을 외로이 켜놓은 좁은 방 안.
고치 속의 애벌레처럼 얇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 쓴 소냐의 안색은 유난히 창백했다. 전면에서 흘러나온 푸른빛이 그렇잖아도 뽀얀 얼굴을 흡혈귀처럼 파르스름하게 물들인 탓이었다.
그 푸른빛은 소냐의 앞에 놓인 작은 수정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강옥교가 떠날 때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던 바로 그 영상수정이었다.
조약돌 크기의 영상수정은 푸른빛을 위로 쏘아 올려 작은 화면을 형상화하고 있었다. 어른 손바닥보다 조금 큰 화면 안에는 풀죽어 있는 소냐와 마찬가지로 심각하게 고심하고 있는 듯한 강옥교의 미려한 얼굴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이제 와서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꼭 그분이 아니면 안 되는 거니?
“안 됩니다.”
-그, 그래…?
예상외의 강경한 반응이다. 혹시나 해서 찔러봤던 강옥교는 당혹스러워하며 입을 닫았다.
평소 약간 푼수끼가 있기는 해도, 그녀는 사람의 본질을 꿰뚫는 심안의 소유자다. 즉, 귀신같은 눈치를 가졌다는 뜻이다. 소위 말하는 눈치백단.
그런 그녀가 소냐의 애틋한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렇다 해도, 솔직히 말해서 소냐가 너무 아깝다는 게 강옥교의 내심이었다. 비록 노구덕이 레그나토르라는 거대 세력의 수장이며, 무력과 권력, 재력의 삼박자를 고루 갖춘 인물이기는 해도 이미 거느리고 있는 아내가 여럿이지 않은가. 심지어 그중에는 소냐의 이모도 있었다.
소냐처럼 재기 발랄한 소녀라면, 앞날이 창창한 차세대의 신성들을 얼마든지 골라잡을 수 있다. 그녀를 원하는 젊은이들을 줄 세운다면, 아마 스퀘어 대륙 한 바퀴는 거뜬히 돌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강옥교가 보는 시각에 불과하다.
암만 기라성 같은 용봉(龍鳳)들을 한 무더기로 쌓아놓은들 뭐하겠는가. 정작 본인이 싫다는데.
‘나도 남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사랑이란 정말로 무섭구나. 하필이면 상대가……. 아냐. 이건 이것대로 꽤… 아이 참, 조금 흥분되는걸!’
아쉬움도 잠시, 화면 속 강옥교의 통통한 볼에 의미심장한 홍조가 감돌았다.
친 부녀지간의 금단의 사랑…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대부와 양녀라는 묘한 포지션이 부녀자의 어두운 욕망을 슬그머니 끄집어낸 것이다.
-…후, 후후후후. 좋아, 이왕 이렇게 된 거, 반드시 성공시키는 거야.
“…공주님?”
-아이, 언니라고 부르라고 했잖아. 그새 잊어버린 거니?
그녀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소냐는 내심 안도했다. 음흉한 소성을 흘리는 강옥교의 상태가 이상하긴 했지만, 다행히 염려할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어째,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더욱 신선한 면모를 드러내는 그녀다.
모르긴 몰라도, 강옥교가 이렇게 스스럼없이 대하는 상대는 소냐뿐일 터다.
-언니도 한번 방법을 생각해 보도록 할게. 그보다 별일은 없는 거지? 보내준 사용인은 어때?
“만족스럽습니다. 좋은 분들이시더군요.”
-그렇지? 여 오라버니가 알려준 사람들인데, 순박하고 좋은 사람들이야. 아, 말하고 나니까 제니 아주머니의 파이가 먹고 싶네. 아델도 보고 싶어. 귀여운 아이였는데.
“…그러고 보니 특이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우응? 특이사항?
제니 모자가 거론되자 나오자 갑자기 떠오른 게 있다. 소냐는 동그랗게 눈을 치뜬 강옥교에게 최근 희한한 관계를 맺고 있는 하유라와 아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런데 흥미진진한 얼굴로 이야기를 들은 강옥교는 전혀 뜻밖의 반응을 보여주었다.
-호오… 그랬단 말이야? 정말로 효과가 있었잖아?
강옥교는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까지 주억이며 손뼉까지 쳤다.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며 알아서 납득하는 제스처를 보이던 그녀는 이내 소냐의 멍한 시선을 느꼈는지, 어색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사실 말이야… 음,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인데, 주인님은 그렇고 그런 취향을 가졌을지도 몰라.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그, 그니깐… 동남(童男)을 좋아할지도 모른다는 거지!
“……?”
늘 빈틈없는 소냐의 얼굴이 드물게 어벙해졌다. 이게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란 말인가? 서리여왕 하유라가 어린 남자아이를 좋아하는 취향을 가졌다니?
그러나 강옥교의 추측은 나름대로의 경험에 근거한 것이었다.
-육감이라는 게 있잖니? 내가 주인님 밑에서 지낼 때, 유난히 아델 또래의 남아들에게 잘 대해주시는 걸 봤어. 확 티가 날 정도는 아니었지만, 내가 보기엔 분명히 우리와는 대접이 달랐지. 그… 표정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미묘한 차이. 하지만 눈치가 워낙 좋은 강옥교에겐 그 미묘한 차이가 보였던 모양이다.
-확신은 하지 못했어. 그래도 아주 헛다리를 짚은 건 아닌 듯하네. 아델을 보낸 보람이 있었어.
“일부러… 그러신 겁니까?”
-응. 혹시라도 주인님이 네 경쟁자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 내가 말했잖니? 언니는 응원하고 있다고.
말인즉슨, 하유라의 취향을 저격하는 아델을 보내 만에 하나라도 그녀가 노구덕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을 미리 차단시켰다는 얘기다. 참으로 치밀한 설계요, 대단한 동생 사랑이었다.
그러나 자초지종을 들은 소냐는 강옥교의 계산이 근본 전제부터 잘못 깔려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린 남아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끼는 게 아니다. 하유라는 아마도 무의식중에 그 나이대의 남아들에게서 과거 자신을 지키다 죽은 남동생을 투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아니, 추측이 아니라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강옥교가 느낀 건 그로부터 비롯된 희미한 애정일 터. 어쨌든 정은 정이니, 하유라의 과거를 모르는 강옥교로선 그렇게 착각할 만도 했다.
소냐는 흐뭇하게 웃고 있는 강옥교를 향해 넌지시 고개를 저어보였다.
“그게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니? 뭐가 말이니?
“실은….”
“아가씨! 작은 아가씨!”
한창 강옥교와 밀담을 나누던 중, 다급히 그녀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늙수그레한 중년 여인의 목소리… 제니였다. 침착하게 연락수정을 주머니에 챙겨 넣은 소냐는 이불 밖으로 빠져나와 방문을 열었다.
“아주머니, 무슨 일이십니까?”
밖에 나가니, 안쓰러울 정도로 낯이 거멓게 죽은 제니가 보였다. 안 그래도 작은 눈알을 좀처럼 가만 두지 못하고 굴려대는 게, 보고 있는 소냐의 정신마저 혼미해질 지경이다.
얼룩이 진 앞치마를 쥐고 어쩔 줄 몰라하던 제니는 소냐가 나타나자마자 넙죽 그 앞에 엎드렸다.
“아, 아가씨! 아델이 없어졌습니다! 얘가 대체 어딜 갔는지…!”
“…일단 진정하십시오.”
말만 들어서는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소냐는 우선 제니를 진정시키기 위해, 그녀의 등을 감싸며 찬 기운을 머금은 마력을 흘려 넣었다. 그러자 마구 두방망이질하던 가슴의 박동이 차츰 느려졌다.
“가, 감사합니다.”
“천천히 얘기해 주십시오. 아델이 어딜 갔다는 겁니까?”
“쇤네도 모르겠습니다. 얼핏 아까 듣기론 큰 아가씨께서 시내에 심부름을 시키신 것 같던데… 그 뒤로 한참 지나도 소식이 없습니다….”
큰 아가씨. 하유라를 뜻하는 호칭이다.
아델이 잔심부름을 나간 일 자체는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다. 최근 하유라가 아델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갖가지 훈련도구들을 시내에서 사오는 건 전부 아델의 몫이었으니까.
하유라와 아델이 같이 사라졌다는 제니의 증언에, 소냐의 표정이 신중하게 변했다.
“그분은 어디 계십니까?”
“큰 아가씨라면… 아, 아까까지만 해도 평상에 앉아 계셨는데, 여기 오면서 보니까 아무도 없었습니다. 거처에도 계시지 않고요. 외람되지만 아델 때문에 밖에 나가신 건 아닌지…….”
제니는 하유라가 아델을 찾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생각하고 있었다.
당연히, 서리여왕 하유라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녀의 의견을 가볍게 농담으로 치부했을 것이다. 만년설보다 냉정한 철의 여인이 만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시골 아이를 손수 찾으러 나선다? 해가 서쪽에서 뜬다는 말보다 더 신빙성이 없었다.
그러나… 실제 나타난 정황은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말하고 있었다.
“…정말 그럴 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력을 퍼뜨려 순식간에 일대를 스캔한 소냐는 작게 침음했다. 근방에서 하유라와 아델의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그럼 이제 어떻게 하지요?”
“나가서 찾아야지, 뭘 어쩌겠나.”
무겁게 가라앉은 저음의 목소리가 애타는 제니의 얼굴을 돌아가게 만들었다. 젖은 수건을 둘러메고 축사 뒤편에서 걸어 나온 노구덕은 쯔쯔 혀를 차며 정색했다.
“하필이면 깜박 잠들었을 때 일이 터지다니….”
고소를 지은 노구덕은 작게 머리를 흔들었다. 이마에 세 겹의 주름을 새긴 그의 표정은 삼엄하기 짝이 없었다.
“하유라, 그년이 애를 핑계로 도망친 걸지도 모르겠어.”
“대부님께선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가능성은 충분하지 않느냐? 며칠 전부터 풀어달라고 노래를 불러댔으니. 갑자기 안하던 짓을 하면 당연히 수상쩍게 보이는 법이지.”
제니와 소냐는 하유라가 아이를 찾기 위해 나갔다 여겼지만, 노구덕은 하유라의 실종을 순수한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럴 만도 했다. 노구덕은 이미 욘을 통해 하유라가 용혈독을 가지고 있으며, 언제든지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다만 굳이 내색을 할 필요는 없었기에 지금까지 모른 척 했을 뿐이었다.
“때를 노려 일을 벌인 모양이지만, 물렀어.”
현재 노구덕은 육체에 깃든 힘을 모두 잃어버리고 평범한 오크가 된 처지다. 그러나 충왕각인과 막강한 재생력을 잃어버렸어도 멀쩡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수많은 영혼들을 휘하에 거느리고 있는 심령차력술이었다.
강인한 육체가 가체로 바뀌었을지언정 그 속의 영혼은 멀쩡하다. 영혼이 그대로라는 것은 곧 심령차력술만은 온전하다는 것. 따라서 교단의 세례를 받아들인 하유라가 단시간에 다른 지구로 워프라도 하지 않는 한, 노구덕의 손을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했다.
“대충 짐작은 하고 있을 텐데… 왜 무모한 짓을 벌였는지 모르겠군. 재능이 사라지면서 지능이 떨어지기라도 한 건가?”
“정말로 아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지도 모릅니다.”
“뭐, 그럴 가능성도 아주 없는 건 아니다만… 어쨌거나 서두르자꾸나. 늦으면 여러모로 곤란해질 수가 있으니.”
하유라는 사방에 적이 많은 여자다. 더욱이 명왕의 실종으로 민감한 북부에서 서리여왕이 발견된다면, 자칫 레그나토르가 명왕 실종 사건의 배후로 지목될 수도 있었다.
아니, 서리여왕이란 타이틀은 차치하더라도, 그녀는 한때 대륙 최고의 미녀로 거론되었던 그 미모 자체만으로도 예상 밖의 위험을 야기할 수 있는 여인이었다.
어쩌면 이미 우려하는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한시라도 빨리 서둘러야만 했다.
“길안내는 내가 하마. 가속 주문을 걸어다오.”
“알겠습니다.”
“부, 부탁드립니다! 제발 제 아들을 데려와주세요!”
“안심하세요, 아주머니. 꼭 데려오겠습니다.”
노구덕은 울먹이며 무릎까지 꿇은 제니를 가까스로 안심시키는 소냐를 기특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흉포한 어머니에게서 어떻게 저런 참한 딸이 나왔는지 정말 모를 일이었다.
잠시 후, 투명한 질풍을 몸에 휘감은 두 그림자가 쏜살같이 농장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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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참은… 유지되어야만 한다…
하유라 미니 에피소드는 다음 편으로 끝입니다~! 그리고 이 에피소드도 끝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조만간 보다 튼튼해진 주인공을 볼 수 있으실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