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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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드래프트(Draft)
2# 드래프트(Draft)
손도끼를 휘휘 돌리며 다가 온 남자는 이정한이었다.
“뭐, 조금 힘은 들겠지만 말이지. 저 사람 혼자서 하나씩 잡으면서 가면 너무 느릴 거 아냐? 내도 같이 하면 조금 낫지 않을까 싶은데.”
하태경은 조금 불쾌함이 느껴지는 어조로 그 의견을 일축했다.
“이정한 씨는 후방조 소속이잖습니까. 만에 하나 제거하지 못한 녀석들이 후방에서 덮칠 수도 있습니다.”
“그 정도야 저기 신소율한테 맡기면 돼. 저쪽도 원래 후방조 소속이었고. 그리고 한명이 줄었잖아. 당연히 편제도 바꿔야 하지 않겠어?”
그러면서 어느 한쪽에 시선을 주는 이정한이었다. 그를 따라 고개를 돌린 하태경은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로, 잠시 그쪽에 눈길을 주더니 휙 소리가 나도록 몸을 돌렸다.
“…그렇게 합시다. 노구덕 씨.”
지루하게 앉아 막 입을 벌리며 하품을 하던 노구덕은 난데없는 호명에 화들짝 놀랐다.
“어, 어! 여기 있어!”
“신소율 씨와 후방을 맡습니다. 그리고 박정환 씨의 겉옷으로 바닥에 흘린 기름을 될 수 있으면 많이 묻혀 두십시오. 차후 횃불을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니까요.”
“그, 그래! 그 정도야 뭐!”
후방을 맡아 달라. 이 말은 곧 노구덕을 편제에 포함시킨다는 소리였다. 그렇게 알아들은 노구덕은 싱글벙글 자리를 털고 일어나 흥겹게 박정환의 겉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몇몇 이들의 어이없는 시선이나, 시체의 옷을 벗기고 바닥을 닦는 잡일을 해야 한다는 건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어쨌든 정식 ‘동료’로 인정받은 게 중요했다.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확보한 셈이었으니까.
‘하태경 저놈도 보는 눈이 있는데, 설마 동료를 버려두고 가지는 않겠지. 아, 이건 왜 이렇게 안 벗겨져?’
노구덕은 히죽히죽, 절로 나오는 웃음을 최대한 억누르며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하태경이 고안한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의식하지 않았을 때에는 그냥 지나쳤겠지만, 해골이 숨어 있단 사실을 알게 된 후 잔뜩 힘 준 눈을 벌겋게 뜨고 다니니 곳곳에 울룩불룩 살짝 튀어나온 벽면들이 눈에 띄었다. 확실히 벽면 마감이 엉성한지 어느 지점은 대충 칠해진 석회 사이로, 무릎뼈나 두개골의 윤곽이 희미하게 드러난 곳도 있었다. 하긴 완전히 밀폐되어 있었다면 시체들이 지금처럼 백골 상태가 아니라 미라처럼 되어 있었을 터였다.
일행은 2층을 정리한 후 3층까지 일사천리로 나아갔다. 3층도 2층과 별 다를 바 없는 구조로 되어 있었는데, 반복된 작업에 숙련된 김정인과 이정한은 무서운 속도로 벽에 숭숭 구멍을 뚫어댔다. 그 모습이 마치 바짝 마른 수수를 낫으로 뭉텅뭉텅 베어내는 농부들을 보는 것 같았다.
그렇게 두 사람이 한창 수확(?)에 열을 올리자, 덕분에 한결 여유를 찾은 일행은 좀 더 면밀하게 탐사를 할 수 있었다. 1층을 탐사할 때 해골들의 존재를 눈치 챘더라면 좀 더 나은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교훈을 얻었기 때문인지 다들 지푸라기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에 집중을 더했다. 그 결과, 3층의 2번째 방과 3번째 방에서 나름 의미 있는 성과들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 성과란 척 보기에도 튼튼해 보이는 커다란 타워실드(Tower shield) 하나와 스퀘어 공용어로 적혀 있는 정체불명의 기록 몇 장이었다. 준비의 방에서는 무기만 선택할 수 있어, 방어구 쪽은 많이 빈약했던 일행이었기에 몸 전체를 가릴 수 있는 타워실드는 가뭄에 단비와도 같았다. 한 사람에게는 꼭 그렇지만도 않았지만.
‘젠장, 군장 메고 행군했던 게 언제 적 일인데……. 망할 놈 같으니.’
타워실드를 거북이 등껍질마냥 짊어진 노구덕은 속으로 쉴 새 없이 꿍얼거렸다. 타워실드를 얻은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정작 쓸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었다. 소거법에 의해 근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나 재빠른 움직임을 장기로 하는 사람들, 체력을 비축해야 하는 완드 사용자 등 이런저런 이유로 다 빼고 나면 김규식과 노구덕만 남는데, 김규식은 이미 무거운 메이스를 들고 있으니 제외. 노구덕이 타워실드를 등에 짊어지게 된 데에는 이런 사연이 있었다. 거기에 군장 멘다 생각하면 별거 아닐 거라는 김규식의 말은 덤이었다. 제 딴에는 위로랍시고 한 것 같은데, 뇌까지 근육으로 된 녀석은 정말 진심으로 하는 말 같아서 더 열이 뻗쳤다.
많이 힘들긴 하지만 그렇다고 방패를 내동댕이치고 나 몰라라 하기엔 일행에서 차지하는 노구덕의 비중이 낮아도 너무 낮았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비중이니 그의 고충을 누가 헤아려주랴. 그나마 친분이 조금이라도 있는 신소율이 괜찮냐고 물어봐주기는 했지만, 그것이 타워실드의 무게를 줄여주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 밖의 다른 이들은 또 다른 성과인 정체불명의 기록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리하여 갈드루헨은 추종자들을 쫓아 직접 군대를 이끌고 아무타르 황무지로 나아갔다…….] [……이 전투에서 포로로 잡힌 수백의 추종자들은 모두 심장이 뽑혔으나… 갈드루헨은 좀 더 확실한 본보기를 원했다. 그리하여 수백의 시체를 인주(人柱)로 삼아 황무지 한 가운데에 거대한 백골탑(百骨塔)을 쌓아 올리니…… 이 잔혹무도한 일을 계기로 갈드루헨은 공포의 상징이 되었다.] [……아끼는 추종자들을 잃은 말레피고르는 피눈물을 흘리며 홀로 백골탑을 찾았다. 그의 손에는 갈드루헨 병사 419명의 심장이 들려 있었으며, 이는 백골탑을 떠받치는 인주의 숫자와 정확히 일치했다. ……펄떡이는 심장을 제물로 삼고, 증오어린 절규를 주문 삼아 마침내 사자(死者)를 지상으로 불러들였다. ……말레피고르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더욱 끔찍한 존재를 맞아들여…….]“백골탑이라. 이 탑의 유래에 대한 기록인 것 같군요. 저자는 명시되어 있지 않고요.”
“그런 것 같아요. 아무래도 마지막 글귀가 신경 쓰이는데요.”
“저 역시. 더욱 끔찍한 존재라니, 도대체 어떤 괴물이 나올지…….”
“어쩌면 말레피고르라는 인물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죠. 어쨌든 조심해야겠어요.”
하태경과 윤희지는 한동안 의견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기록을 토대로 무언가 정보를 얻어내려 했지만, 기록 자체가 쓸모 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게 아니었던 터라 별다른 소득을 거두진 못했다. 단지 다음 층에는 더욱 위험한 괴물이 기다리고 있다는 당연한 사실만을 재확인했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 위험은 생각보다 더 빠르게 찾아왔다.
4층은 앞서 탐사한 세 개의 층과는 달리 일체의 칸막이나 기둥을 찾아볼 수 없는 거대한 공동(空洞)이었다. 쥐 죽은 듯한 고요 속, 빛 한 줌 스며들지 못하는 완연한 어둠만이 감도는 공간은 미지의 위험을 뱃속 깊이 감춘 채 일행을 맞이했다. 공동을 감싸고 있는 거대한 적막을 깨트리며, 하나 둘 차례대로 계단을 올라 공동에 입성한 일행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있는 대로 인상을 썼다.
흡사 상한지 몇 주는 지난 우유팩을 막 개봉했을 때나 맡을 수 있는, 퀴퀴함을 넘어 일순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의 썩은 내가 코끝을 강타했기 때문이다. 그 냄새가 얼마나 지독했는지, 비위가 약한 사람들은 기척을 감추는 것도 잊고 우웩 헛구역질을 연달아 해댔다.
“염병. 냄새 한번 좆같네. ……헙?”
“왜요?”
앞서 가던 김규식이 헛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우뚝 걸음을 멈추자, 그 옆에 붙어 한 손으로 코를 틀어막고 있던 신소율도 덩달아 발을 멈추며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그러나 김규식은 아무 대답 없이 나무토막처럼 뻣뻣해진 몸으로 앞쪽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쪽을 향해 고개를 돌린 신소율은, 김규식과 마찬가지로 딱딱하게 경직되었다.
발. 그것은 거대한 발이었다. 팔뼈인지 다리뼈인지 모를 수십 개의 뼈들이 한 데 모이고, 꼬이고, 뒤틀려서 하나의 거대한 발의 형상을 만든 모습이었다. 그 위로는 발과 마찬가지로 무수한 뼈들로 이루어진, 아름드리 나무만 한 굵은 종아리가 있었다. 램프가 비추는 어렴풋한 시야로는 딱 거기까지만 보였지만 그것만으로도 괴물의 전체적인 모습을 그려내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천만다행인 것은 이 거대한 괴물이 여타 해골들처럼 아직은 잠들어 있다는 것이었다.
“무, 무슨 크기가…….”
“세상에…….”
뒤늦게 괴물의 거체를 확인한 일행들은 일제히 숨죽인 소리를 토해냈다. 하태경은 일단 작전상 후퇴를 지시했다. 지금은 괴물이 깨어나지 않았지만, 대책이 없는 상태에서 만에 하나 실수로라도 괴물을 깨우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코자 함이었다.
“저게 기록에 적혀 있던 괴물인 모양입니다.”
“못해도 4, 5미터는 되겠던데. 저걸 어떻게 잡지?”
다른 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브레인이라고 할 수 있는 하태경이나 윤희지도 달리 뾰족한 수를 내지 못했다. 애당초 5미터에 달하는 거대 해골이라니 말이나 될 법한 소린가? 발길질 한 번이라도 견뎌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단순한 김규식은 놈이 잠들어 있을 때 마법을 퍼붓자고 주장했지만 하태경은 일고의 가치도 없이 기각해 버렸다. 납득하지 못하는 김규식을 향해, 하태경은 찬찬한 어조로 말했다.
“그런 괴물이 하나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계단을 올라가자마자 놈과 조우했습니다. 4층은 다른 층과 다르게 외벽만 있는 공동으로 되어 있더군요. 거대 해골이 마음껏 날뛸 수 있는 장소란 말이죠. 그 넓은 공간에, 거대 해골이 과연 하나만 있을까요? 그건 지나치게 낙관적인 생각입니다.”
“첨언하자면, 아까 기록을 보니 이곳에 묻힌 해골은 419구라고 하더군요. 우리가 지금까지 잡은 해골이래 봤자, 겨우 200구도 안될 겁니다. 그럼 나머지 해골들은 다 어디 있을까요?”
“끄응.”
완전히 설득당한 김규식이 힘없이 무너지는 찰나, 잠자코 듣기만 하던 김정인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방법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으응? 이봐, 그게 정말이야?”
“…말해 보시죠.”
가지각색의 의미가 담긴 시선이 김정인에게로 쏠렸다. 누군가는 의혹어린 눈빛으로, 누군가는 기대 충만한, 혹은 동경이 담긴 눈빛으로, 누군가는 경계심을 지우지 못한 눈빛으로.
하태경이 드러난 곳에서 일행을 이끄는 리더라면, 김정인은 궂은일을 도맡아 하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행을 지탱하고 있는 정신적 버팀목이라 할 수 있었다. 알게 모르게 쌓아 온 신뢰는 차치하고라도, 이렇듯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내가 발언을 할 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이 세계는 언뜻 비상식적인 것 같지만, 분명히 나름의 법칙이 있습니다. 윤희지 씨.”
“네, 네!”
윤희지는 깜짝 놀란 와중에도 얼른 손을 들어 화답했다. 모두가 김정인에게 집중하고 있는 터라, 그녀의 앙증맞은 귀가 유난히 붉어져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챈 사람은 없었다.
“오랜 시간 동안 잠들어 있던 해골들이, 소리에 반응해서 깨어나 침입자를 공격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어떤 주문에 의한 것이겠죠. 윤희지 씨가 마법에 대해 가장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하는 질문입니다만, 이런 식으로 소환물을 장기간 유지하는 게 상식적으로 가능합니까?”
그 질문을 듣는 순간, 윤희지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지르며 가늘게 몸을 떨었다. 희뿌연 안개가 들어 차 흐리멍덩했던 머릿속이 상쾌하게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김정인은 지금 마력의 원천, 동력(動力)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윤희지는 가슴에 손을 얹고 숨을 골랐다. 어쩐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까닭 없이 가슴이 크게 뛰며 벅차오르는 기분이었다. 동경하던, 그의 지목을 받아서일까?
‘내가 왜 이럴까…….’
그녀는 크고 아름다운 눈동자에 복잡한 심경을 그득 담아 김정인을 쳐다보았지만, 안타깝게도 김정인은 윤희지의 아련한 마음을 헤아려 줄 정도로 감성적인 남자가 아니었다. 돌아오는 것은 어서 설명이나 하라는 재촉의 눈길. 김정인으로서는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지만, 윤희지의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크게 상하는 일이었다.
최고의 배우로서 성공가도만을 달려온 그녀였다. 사방에는 그녀의 눈길 한 번이라도 받아보겠다고 별의별 수작을 다 부리며 발버둥치는 남자들이 천지였으나 누구에게라도 관심을 둔 적은 없었다. 오직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험이 없다고 해서 여자의 천성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다.
‘하!’
드높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윤희지의 하얗고 아름다운 얼굴에 돌연히 한 겹의 차가운 서리가 내려앉았다. 애틋함마저 감돌던 눈가는, 이제 살짝 분한 기색마저 엿보였다.
“저도 자세히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아는 선에서 김.정.인. 씨의 질문에 답변을 하자면 불가능하다 말하고 싶네요. 소환수를 유지하려면 계속 마력이나 에너지를 공급해줘야 하거든요. 또, 엄밀히 말하면 이 해골들을 소환수라 부르기도 어렵고요. 이건 주문에 의해 강제로 움직이고 있는 거죠. 주문도 그냥 유지되는 건 아니에요. 주문을 유지할 수 있는 마력의 원천, 동력원이 필요해요. 예를 들면… 제물이죠.”
“419개의 심장.”
윤희지의 말을 하태경이 받고, 다시 김정인이 머리를 천천히 주억였다.
“아마 그 제물이 주문의 동력원 역할을 하고 있을 겁니다. 그 근거로, 4층으로 올라오면서 달라진 건 내부구조만이 아니었죠.”
“네. 그 썩은 냄새……. 확실히 마력으로 처리된 심장이라면, 이런 환경에 방치돼서도 부패가 더디게 진행될 거예요. 완전히 썩어버리면 제물의 가치가 없어지니까요.”
“그렇다면 4층 어딘가에 제물로 사용된 심장들이 있다는 소리군요. 그리고 그것만 없애면, 해골들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맞습니까?”
“그래요.”
서늘한 기색은 여전했지만, 윤희지는 더없이 힘찬 음성으로 대답했다.
일단 목표가 정해지니 나머지 역할분담은 수월했다. 사실 분담이라고 할 것까지도 없었다. 따로 2명의 탐색조만 차출해서 운용하는 것이었으니까. 이 역할은 발이 빠른 신소율과 이정한이 맡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신호는 램프의 불빛을 이용한 수신호를 쓰기로 정한 뒤, 4층으로 올라가려는데.
“윤희지 씨?”
“네. 왜요? 김.정.인. 씨?”
“제가 뭐 실수한 거라도 있습니까?”
“아~니요. 실수라뇨. 그냥 저 혼자 착각한 것 같아서 짜증이 났을 뿐이에요.”
“예? 착각이요?”
“아~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김.정.인. 씨는 말이죠. 어서 가요, 우리.”
예쁜 입술은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고 있지만, 거기서 나오는 말은 왠지 모르게 날카로운 가시가 돋은 것 같다. 그리고 태도는 또 어찌나 쌀쌀맞은지, 마치 하태경과 언쟁할 때를 방불케 할 정도였다. 김정인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냉기가 풀풀 날리는 그녀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염병, 아주 지랄들을 해라, 지랄들을 해.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염장질이야?’
그리고 실처럼 가느다랗게 뜬 눈으로 그 꼬락서니를 처음부터 지켜본 노구덕은, 갑자기 쓰라려오는 가슴을 부여잡고 어기적거리며 계단을 올랐다. 갑자기 집 나간 마누라가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탑이 넓기는 하지만 둘레만 빙 걸어서 돈다고 가정하면 길어야 20분 정도다. 신소율과 이정한이 빠른 걸음으로 돈다고 생각하면 10분 이내로 정찰이 가능했다. 10분.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무시무시한 거대 해골을 바로 옆에 끼고 있는 일행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잠시 후, 램프를 든 신소율과 이정한이 출발했던 지점의 반대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여긴 창문이 없으니 잘 보이지가 않아. 일단 가장자리를 한 바퀴 돌긴 했는데 그 제물이란 건 발견하지 못했어. 그리고 저 커다란 놈, 하나 더 있더군. 여기 바로 맞은편에 말이야.”
“제 추측이지만, 홀 중앙에 있지 않을까요? 그 편이 힘을 퍼뜨리기 좋으니까요.”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달리 숨길 데도 없으니.”
하태경도 신소율의 의견이 맞을 거라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보자면 그게 정석이니까. 어쨌든 가보면 알 일이었다.
“모두 소리 내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다시 한 번 긴장의 끈을 팽팽히 당긴 일행은 홀 중앙을 향해 서서히 나아갔다. 혹시 몰라 주변을 엄밀히 돌아봤지만 보이는 거라곤 돌바닥 사이에 듬성듬성 나 있는 짙푸른 이끼들 뿐, 딱히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그렇게 10분 정도 걸었을까. 워낙 어두워서 정확한 위치를 가늠할 수는 없었지만, 어림짐작으로 중심 부근이 이쯤이지 않을까 싶었을 때였다.
“…아무것도 없군요. 혹시 마력을 감지할 수 있는 분 있습니까?”
“…….”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하태경도 대답을 기대하고 한 말은 아니었다. 애초에 사전 지식만 가지고 들어온 초짜들이 그런 기술을 쓸 수 있을 리 없을 테니까. 그저 답답했기에 나온, 탄식에 가까운 중얼거림이었다. 이래서야 중앙을 기점으로 조를 나누어 홀 전부를 돌아다닐 수밖에는 없을 것 같았다.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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