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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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 정리(整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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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컴컴한 장막을 드리웠던 긴 밤이 지나고, 오늘도 어김없이 동녘이 밝았다.
꼬끼오오오–!
이른 아침부터 깨어난 수탉이 힘차게 목청을 드높였을 때, 쥐죽은 듯 고요한 농장 안으로 들어오는 한 무리가 있었다.
하나 같이 무장을 갖춘 여덟 명의 남녀. 제일 선두의 단아한 일상복을 차려입은 미녀를 제외하면, 모두가 용봉처럼 범상치 않은 기세를 풍기고 있다. 그리고, 모두 노구덕 일행과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강옥교와 여위량, 그리고 그 오른팔인 정무한.
양훈을 위시한 청랑단.
노구덕 일행이 북부에 들러 연을 맺은 이들이 어째서인지 한 무리가 되어 농장을 방문한 것이다.
두 무리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전적으로 노구덕이 다리를 놓아준 덕분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양훈이 이끄는 청랑단의 현재 신분은 강옥교 직속의 호위대였다.
명왕이 실종된 이후, 강옥교가 당면한 큰 문제 중 하나는 자기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명왕의 감시 하에 있었던 그녀가 제대로 된 손발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때, 세력의 빈곤에 허덕이고 있는 강옥교를 위해 노구덕이 추천한 이들이 바로 이들, 청랑단이었다.
개개인의 실력이 최상급은 아니지만, 멤버 모두가 끈끈한 유대로 뭉쳐있으며 누구보다 뜨거운 의기를 가진 자들이다. 그리고 그들 중 몇몇은 충분히 최상위 헌터가 될 수 있을 만한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게 청랑단에 대한 노구덕의 평가였다.
다소 과장된 소개말에 처음엔 긴가민가하던 강옥교였지만, 막상 그녀는 청랑단을 첫대면한 자리에서 누구보다 만족스러워했다. ‘심안’을 통해 노구덕의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자유분방한 청랑단을 휘하로 끌어들이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리를 놓아준 노구덕도 거기까진 개입하지 않았다. 품에 들어온 인재를 손에 넣느냐, 마느냐는 온전히 강옥교와 여위량의 역량에 달린 것이었으니까.
중간에 이런저런 사정이 있기는 했지만, 강옥교는 기어코 청랑단을 구워삶아 심복으로 만들었다. 나름대로 그녀의 능력을 증명한 셈이다.
보는 눈이 깐깐한 여위량도 청랑단에 대해서는 내심 인정하는 눈치였다. 무엇보다 청랑단의 대장 양훈은 무투대회 결승전까지 올라 그에게 석패한 인물. 직접 무기를 맞대보기까지 했으니, 그 실력에 대해선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여위량과 정무한, 청랑단을 대동하여 농장 입구까지 다다른 강옥교는 아직 적막에 휩싸여 있는 농가 쪽을 바라보더니 설레설레 머리를 흔들었다.
“저희가 너무 일찍 온 것 같네요.”
“응접실에 들어가 기다리도록 하지.”
“그게 좋겠어요.”
잠시 후, 입구 옆에 마련된 간이 응접실에 둘러앉은 일행은 창밖을 통해 여전히 조용한 농가를 쳐다보았다.
원래대로라면 아델과 제니가 아침 일찍부터 허드렛일을 하고 있었겠지만, 현재 농장에 그들 모자는 없었다. 마지막 날, 모자의 안전을 염려한 노구덕이 두 사람을 집으로 돌려보냈기 때문이었다.
즉, 현재 저 농가에는 노구덕과 소냐, 하유라 세 사람만이 머물고 있었다.
“…가서 불러볼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조금 더 기다려 봐요. 적어도 소냐는 우리가 왔다는 걸 알고 있을 테니까요.”
강옥교가 조바심을 내는 여위량을 달래는 동안, 마찬가지로 창밖을 보고 있던 양훈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매거트 님의 정체가 그분이었다니, 솔직히 아직도 믿겨지지가 않습니다.”
“나도….”
“으음.”
청랑단의 다른 단원들 또한 양훈의 중얼거림에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레그나토르의 철혈군주와 구 십존인 서리여왕 하유라. 이름값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히는 강자들과 한 배를 타고 여행했다는 게 무척이나 생경하게 느껴졌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린 장미라는 양훈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물었다.
“양훈, 너 의장님이랑 꽤 친하게 얘기하지 않았어?”
“내, 내가 그랬었나?”
“응. 그랬어. 그때는 참 오지랖이다 싶었는데, 지금 생각하니까 그게 신의 한 수였네. 그때 멀미약을 드려서 우릴 좋게 보신 것 같아.”
“미라야, 그거 칭찬이지?”
“그래, 칭찬이야. 덕분에 이렇게 출세도 했잖아?”
양훈과 장미라가 주거니 받거니하며 떠드는 걸 들은 강옥교는 살포시 입매를 가리며 미소를 지었다.
언제 봐도 믿음직한 수하들이다. 굳이 노구덕의 추천이 아니더라도, 진즉 만났더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곁에 두었을 정도로 심성이 올곧은 이들이었다. 게다가, 이들 중 젊고 어린 축인 양훈과 장미라, 유잉은 실로 원석 같은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제대로 된 안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탐낼 인재들이 청랑단이다.
노구덕은 결코 이들을 거저 준 것이 아니었다. 청랑단은 강옥교와 여위량이 제대로 된 기반을 갖추고, 장래에 북부연합을 확실히 장악하라는 의도로 던져준 포석이다. 그래서 차후 레그나토르의 충실한 배하로서 제구실을 하라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그 의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강옥교는 왠지 자신이 없어졌다.
‘…레그나토르에 우리 북부연합의 힘이 필요하긴 한 걸까?’
얼마 전 만났던 안개여왕 아가레스트. 그녀의 음험한 미소를 떠올리기만 해도 등이 축축하게 젖어드는 것 같다. 심안을 통해 본 아가레스트는 노구덕과 명왕에게서 느꼈던 공포와 견줄 수 있을 정도로 맹렬한 살의를 품고 있는 여인이었다.
노구덕, 아가레스트, 하유라, 소냐…. 직접 눈으로 본 십존급 전력만 넷이다. 그리고 레그나토르는 그런 막강한 전력들을 외부로 돌리고도 거뜬히 도미니온과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파멸의 현자 유메르바인까지 레그나토르에 합류했다는 소문마저 돌지 않았던가.
도대체 그 가공할 저력의 끝은 어디일까? 그리고 그런 거대한 힘을 보유한 노구덕마저 두려워하는 발레기우스의 힘은 어느 정도일까? 과연 그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엇, 나오셨습니다!”
상념에 잠겨 있던 강옥교의 시야가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양훈의 목소리를 따라, 무심결에 농장 쪽으로 시선을 돌린 그녀는 그만 말을 잊고 말았다.
선두에서 걸어오고 있는 노구덕.
조용히 그를 뒤따르고 있는 소냐와 하유라.
세 사람의 얼굴은 그대로였지만, 분명 뭔가가 변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원인은 가장 앞에 서 있는 노구덕이었다.
실로 압도적인 존재감이다. 녹색의 거대한 체구에서 뿜어지는 기도가 태산만 한 높이의 파도가 밀려오는 것처럼 무겁게 다가온다. 그 아득한 위압에 반응한 모공이 모조리 바짝 오그라들었을 정도다.
노구덕의 존재감에 압도당한 강옥교는 통통한 입술만 공허하게 뻥긋거릴 뿐, 어떤 목소리도 내지 못했다.
“이, 이게….”
“흡…!”
그녀보다 기감이 뛰어난 여위량의 반응은 더했다. 두 눈을 부릅뜬 여위량은 자기도 모르게 벌벌 떨리는 몸을 가누기 위해 필사적으로 이를 악물었다.
그저 덩치가 커진 것이 아니다. 노구덕이란 인간 자체의 격이 높아진 느낌이다. 그의 본능이 자연스럽게 상대의 격을 보다 우위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좋은 아침이군.”
가까이 다가온 노구덕이 운을 떼자, 여기저기서 막혔던 숨통이 트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옥교와 여위량뿐 아니라 다른 모두가 그의 존재감에 억눌려 있었다는 의미였다.
“의, 의장님… 성공하신 건가요?”
“보다시피. 아주 좋은 상태야.”
노구덕의 입가엔 예전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시원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자그마치 수년 간 그를 괴롭혔던 지병을 깨끗하게 떨쳐냈으니, 어찌 상쾌하지 않을 것인가. 지금 그의 기분은 그야말로 팔을 펼치면 그대로 바람에 실려 날아갈 듯 가벼웠다.
“지금이라면 누구와 싸워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잘하면 명왕과 일 대 일로 싸울 수도 있을 것 같군.”
“그, 그 정도인가요? 대단하시네요.”
“만용은 개죽음의 지름길이지.”
“흠, 말이 그렇다는 거다.”
모처럼 호기를 부려봤는데, 눈치 없는 하유라가 옆에서 산통을 깨버렸다. 김이 새버린 노구덕은 입매를 씰룩이며 좌중을 돌아보았다.
“모두 잘 와주었다. 특히 옥교, 네가 도와준 덕분에 드디어 오랜 숙원을 이룰 수 있었다.”
“별 말씀을요. 저희도 의장님께 목숨의 빚을 졌는걸요.”
“흠, 상부상조란 좋은 거지.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마.”
“본론이요?”
“그래. 오늘 이른 아침부터 너희를 부른 건, 북부를 위해서 긴히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북부를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있다? 알 수 없는 소리에 어리둥절해하는 사람들과 일일이 눈을 맞춘 노구덕은 차분히 입을 열었다.
“북왕 아이벤, 그분의 죽음에 얽힌 전모를 알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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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옥교 일행이 떠난 뒤, 응접실 내부에는 소냐와 하유라, 노구덕만이 남게 되었다. 시종일관 묵묵히 앉아 있는 소냐에게 왠지 모를 미안한 눈초리를 던진 노구덕은, 이윽고 하유라에게 눈길을 옮겼다.
“하유라, 아직도 생각엔 변함이 없는 거냐?”
“너야말로 끝까지 참견을 할 셈인가?”
“뭐, 참견이라면 참견이라 할 수 있겠지.”
노구덕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이대로 우리와 헤어져 멋대로 살다가 죽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다. 아니면 여기 눌러 앉아 아예 아델을 제자로 키우던가.”
“난 그 꼬맹이를 제자로 둔 적이 없다.”
“어째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것 같다만… 하여튼,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뭘 선택하든 해피엔딩으로 끝나진 않을 거란 거다. 저번엔 운 좋게 허접한 양아치들에게 걸렸다만, 다음에도 그런 행운이 있으리라 기대할 순 없어. 네가 서리여왕 하유라인 이상, 널 노리는 놈들은 널리고 널렸지.”
“쓰레기, 너도 그중 하나일 텐데?”
노구덕은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가시 돋친 일갈이었지만,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녀를 최대한 옭아매려는 게 그의 의도였으니까.
“동부 칸다무어에 월광이라는 조직이 있다. 너도 알고 있겠지. 너와 거래했던 그 패터슨이 일으켜 세운 단체지. 난 네게 그곳의 경영을 맡기고 싶다. 헌터로서의 능력은 잃었지만, 넌 유능한 수완가니까.”
“꺼져라. 이 이상 네놈들과 엮이는 건 사양이다.”
“네가 경영했던 퀸즈가든, 지금 재건이 돼서 성황을 누리고 있지. 난 그쪽에도 상당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거든. 이왕이면 그쪽 사업체도 도맡아 줬으면 좋겠다.”
노구덕이 자신의 의사는 아랑곳없이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진행하자, 하유라의 가지런한 눈썹이 끝을 모르고 치솟았다.
“주제에 감히 날 부리겠다고…!”
“동생에게 빚을 갚고 싶은 거 아니었나?”
“…뭣?”
격분하여 일그러진 얼굴에 일순 당황스런 빛이 감돈다. 노구덕은 여전히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이 스퀘어는 외부 세계와 철저하게 격리되어 있다. 그건 영혼도 예외가 아니지. 죽은 이를 그대로 되살리는 건 무리다만, 만약 네 동생이 전생했다면 그게 누군지 정도는 알아봐 줄 수 있다는 얘기다. 나쁜 제안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
야멸차게 그를 노려보던 하유라의 눈에서 점점 힘이 빠졌다. 그녀를 지키려다 비명에 죽은 남동생. 그를 되살리기 위해 일평생을 바쳐 여기까지 온 하유라다. 그런 그녀에게 있어 노구덕의 제안은 실로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었다.
“대신, 나도 조건이 있지.”
“…말해라.”
그녀의 목소리가 완전히 기세를 잃고 누그러진 것을 느낀 노구덕은 너구리처럼 음흉한 미소를 떠올렸다.
“만능. 그 재능에서 비롯된 경험과 지식을 내게 바쳐라.”
“뭐라고?”
“만능은 어차피 불가능하지만, 네 경험과 지식이라면 틀림없이 도움이 되겠지. 네게 배운 기술들도 훨씬 손쉽게 체득할 수 있을 테고. 그러니까….”
배고픈 하이에나처럼 입맛을 다신 노구덕은 품에서 작은 홀을 꺼냈다. 그를 주인으로 섬기는 수많은 이들의 영혼이 들어찬 ‘개미의 홀’이다.
“교단의 세례를 받아들여라. 그게 내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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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12시 지나기 전에 가까스로 올렸네요. 내일도 연참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