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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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마신(魔神)
189# 마신(魔神)
눅눅하고 끈끈한 공기가 숨을 막히게 하는 음습한 석실 안.
오랫동안 관리가 되지 않은 듯, 석실 내부를 떠받치는 열두 개의 석주 표면에는 푸른색의 이끼가 선체 아래 달라붙은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다.
석실 안은 상당히 널찍했다. 둘레를 따라 빙 늘어선 기둥들 사이엔 족히 수백 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공간이 있었다.
그 공간 중앙에 있는 것은 하나의… 욕탕(浴湯)이었다.
반듯하게 잘라낸 대리석을 차곡차곡 쌓아 만든 직사각형 모양의 욕탕. 가로 칠 미터, 세로 육 미터 정도의 단조로운 시설이다. 주변에 바가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거울이나 목욕도구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건 욕탕이 분명했다.
욕탕 안에는 뜨거운 김을 피워 올리는 더운물 대신, 묽은 회반죽 같은 것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보기에도 텁텁해 보이는 그 정체불명의 액체 위에는 뭉그러진 건더기 같은 것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온통 회색 반죽으로 뒤덮여있다는 것만 같을 뿐, 부유하는 건더기들의 크기와 모양은 다양했다. 나뭇가지처럼 길쭉한 것도 있었고, 자갈처럼 뭉툭한 것도 있었다. 심지어는 출처가 사람인지 동물인지 알 수 없는 털 뭉치 같은 것도 떠다니고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때는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 완전히 쓰레기장이 따로 없다. 수수께끼의 부유물들이 유영하는 욕탕은 그 추악한 꼴에 걸맞게 코를 찌르는 악취를 풍겨대고 있었다.
시체에 황산을 들이부은 것 같은 썩은내다. 그 냄새가 어찌나 지독한지, 얼얼한 코끝을 칼로 도려내고 싶을 정도였다.
부글부글.
별안간, 잔물결 하나 일지 않던 욕탕 가운데서 부글거리는 기포가 나타났다. 피라미가 숨을 쉬듯 미약했던 거품은 이내 욕탕을 가득 메울 기세로 세력을 넓혀나갔다.
악취 가득한 석실 안에 웬 사내가 나타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주인님.”
어둠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내는 곧장 기포가 일고 있는 욕탕 앞에 부복했다. 허리춤에 매달린 두 개의 손도끼가 바닥에 끌리며 쩔그렁거리는 소리를 냈다.
“부르심을 듣고 달려왔습니다.”
고오오오…!
사내의 말에 화답하듯, 부글부글 끓어올랐던 욕탕이 낮게 용트림을 했다. 이윽고 처음 기포가 나타났던 욕탕 가운데서 희멀건 형체가 솟아올랐다.
사람, 밀랍인형처럼 창백한 피부를 가진 사람이다. 그는 깊은 잠에 빠진 것처럼 눈을 감고 있는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알몸의 청년이 욕탕 한가운데서 솟아나자, 부복하고 있던 사내는 이마를 땅에 대며 더욱 몸을 낮췄다.
“주인님을 뵙습니다.”
매미 날개처럼 잔떨림을 보이던 눈꺼풀이 스르륵 위로 말려 올라갔다. 마침내 속 알맹이를 드러낸 청년의 눈은… 기이하게도 흰자와 검은자의 구분이 없었다.
동공이며 초점 같은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 눈은 안에 먹물을 풀어놓은 것처럼 새카만 검은색이었다. 심지어 각막에 맺히는 광택 하나 없어, 보기에 따라서는 눈구멍이 뻥 뚫려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아무리 봐도 인간이 아니다. 꼭 새까만 두 눈이 아니더라도, 청년이 풍기는 사이한 분위기는 도저히 그를 인간으로 볼 수 없게 만들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끝없는 심연. 그 어둠의 끝자락에서 살고 있는 마왕에게서나 풍길 법한 전율이 절로 다리를 풀리게 하고, 머리를 조아리도록 강요했다.
인두겁을 뒤집어쓰고 있되, 그 알맹이는 인간이라 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존재. 직각적으로 표현하자면… 악마의 정형 같은 느낌이다.
눈을 뜬 청년의 입이 느릿하게 벌어졌다. 들이마시고 내쉬는 호흡은 전혀 곁들여지지 않은 무미건조한 움직임이다.
“탈피가… 끝났습니다.”
“……!”
굴종한 사내의 몸둥이가 크게 진동했다. 잠시 후, 여전히 머리를 숙이고 있는 그에게서 격동에 찬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경하드립니다!”
“인간을 버리는데 수백 년.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군요.”
인간의 몸에 스며들어 그의 정신을 잠식하고, 혼백을 숙주로 삼았다. 약해빠진 인간의 몸에 숨어 본체의 감시를 피해 숨죽여야만 했던 지난날들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인간’의 제약을 벗어나는데 성공했다. 본래 그의 것이었어야 할 힘들을 제약 없이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청년은 잠시 눈을 감고 이 순간을 음미했다. 마침내 그와의 고리를 끊어내고, 독립된 개체로서 이 세상에 관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욘. 당신도 느꼈겠지요. 이제야 당신과 제 관계가 재정립되었군요. 차근차근, 서두르지 않고 먹어드리겠습니다.”
발레기우스는 스산한 미소를 지었다. 분명,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을 욘을 향한 선전포고였다.
오랜 은거는 끝났다. 그는 육신의 제약에서 벗어났으며, 온전한 신으로서 거듭났다.
무릴로? 위원회?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장애물이 되지 못한다. 관리자가 구축한 이 세계에서, 그와 비등한 힘을 손에 넣은 발레기우스다. 그런 그의 앞길을 누가 막는단 말인가. 설령 현존하는 십존과 전 세대의 강자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도 그를 이기진 못한다.
왜냐하면 그는 헌터들에게 힘을 부여한 시스템, 그 자체였으니까.
“오정환, 강문식, 하태경… 그들은 별로 쓸모가 없었던 것 같군요.”
“…면목이 없습니다.”
“괜찮습니다. 당신의 잘못은 아니니까요. 후식을 즐기지 못하는 게 조금 아쉬울 뿐입니다.”
서부연맹의 오정환, 북부연합의 강문식, 리베르타의 하태경. 모두가 각지의 수장, 또는 한 세력의 우두머리로서 대륙에 커다란 혼란을 가져왔던 인물들이다. 그리고 짐작했던 대로, 그들은 전부 발레기우스의 입김이 닿아 있던 자들이기도 했다.
카멜롯 파괴 이후, 시스템의 힘을 흡수하느라 전면에 나설 수 없었던 발레기우스는 꼭두각시들을 암중에서 조종하여 대륙의 정세를 좌지우지하는 한편, 그들의 세력을 이용해 하유라가 흩어놓은 신의 조각들의 행방을 쫓았다.
특히, 명왕 강문식은 그가 직접 키워낸 사냥개였다. 비록 반쪽짜리에 불과하긴 했지만, 명왕이 어설프나마 시스템의 힘을 이용해 싸울 수 있었던 것도 발레기우스에게서 직접 그 능력을 전해 받은 덕분이었다.
대륙의 혼란을 조장하는데 치중했던 다른 꼭두각시들과는 달리, 유독 명왕이 조용히 지냈던 것도 그의 주된 임무가 나머지와는 달랐기 때문이다.
그는 발레기우스가 움직이지 못하는 동안에 신의 조각들을 모으고, 흡수하기 위한 목적으로 키워진 사냥개다. 그리고 나중에는, 신으로 거듭난 발레기우스에게 고스란히 삶아 먹힐 운명이었다.
그런 만큼, 명왕의 실패는 발레기우스로서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타격이었다.
“솔직히 그가 당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직 명왕을 해친 흉수를 파악하지 못했습니까?”
“…죄송합니다. 아직 확실히 알아내진 못했습니다.”
“하긴,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겠지요.”
이해한다는 말과는 달리, 발레기우스의 표정은 살짝 뒤틀려 있었다.
하유라가 풀어놓은 스물두 명의 노예들 중, 현재 발레기우스가 흡수한 신의 조각은 열한 명이다. 육신의 한계를 벗어던진 지금과는 달리, 당시엔 그릇의 한계가 있었기에 그 이상의 수를 흡수할 수 없었다.
그랬기에 잉여를 밖으로 돌려 쓸 만한 사냥개를 만들었던 것인데… 그 투자가 고스란히 허공으로 증발하고 말았으니 심정이 쓰릴 수밖에 없다.
더욱이 미리 최후가 예정되어 있었던 다른 신의 조각들과는 달리, 불시에 당해버린 명왕은 그 힘을 회수조차 하지 못했다. 투자금을 온전히 회수한 대재앙이나 오정환과는 확연히 다른 케이스다.
“검왕이나 레그나토르 쪽은 아닐테지요? 그들은 안팎으로 상당히 바쁠 테니까요.”
기존 십존의 수준을 월등히 뛰어넘은 명왕이다. 만에 하나라도 그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이나 단체라고 한다면, 검왕 김정인이나 레그나토르 정도밖엔 떠오르지 않는다. 아니면 무릴로와 위원회라든가.
하지만 그것도 정말 만에 하나의 경우다. 게다가, 발레기우스는 혹시 모를 불상사에 대비해 두 세력을 크게 들쑤셔 놓았다. 오정환을 움직여 전쟁을 일으켰고, 하태경을 조종해 내란을 촉발했다.
“…속하는 레그나토르 쪽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부복한 사내의 머리가 천천히 위를 향했다. 형형한 안광을 흩뿌리는 그는 한때 반군에서 맹위를 떨쳤던 도살자 이정한이었다.
“주인님께서 잠드신 사이, 하유라와 아가레스트가 레그나토르 소속으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 때문에 오정환이 실패했고, 우르슬라와 바이올렛이 실패했습니다.”
“호오.”
“얼마 전에는 북부에 심어둔 밀정과 하유라가 접촉했습니다. 신의 조각의 행방을 찾고 있더군요. 그 시기가 명왕이 당한 시기와 일치합니다.”
“노구덕, 이번에도 그가 관여했을 수 있겠군요.”
“노구덕은 카름화한 오정환과의 전투 이후 종적이 묘연해졌습니다. 서부연맹과의 전쟁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요. 이는 주변인물들을 아끼는 그의 성향상 매우 부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제 생각엔, 그가 하유라와 같이 행동하고 있는 것으로 사료됩니다.”
“일리가 있군요. 훌륭합니다. 백퍼센트는 아니더라도, 보이는 정황은 꽤 신빙성이 있습니다.”
철벅철벅 욕탕 밖으로 걸어 나온 발레기우스의 몸이 검은 운무로 둘러싸였다. 심연을 망토처럼 휘감은 발레기우스는 매끄러운 턱을 틀어 이정한을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그 둘로는 명왕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정말 그들이 명왕을 처치했다고 한다면 틀림없이 다른 조력자가 있을 겁니다.”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북부연합을 돌면서 흩어진 명왕의 힘을 회수하십시오.”
“알겠습니다.”
시스템의 힘을 담고 있는 신의 조각이 죽게 되면, 육신에 깃든 그 힘은 허공으로 사라져 배회하게 된다. 그리고 정처 없이 떠도는 그 힘은 가장 가까운 ‘근원의 혈족’에 깃들어 새로운 신의 조각으로 거듭난다.
이정한은 지금까지 이 원리를 이용해 ‘투자금’을 회수해왔다. 오정환이 죽을 때도, 대재앙이 연합군에 의해 격퇴되었을 때도… 그는 언제나 근처에서 그들의 죽음을 지켜보았다. 새로이 신의 조각이 될 ‘근원의 혈족’을 데리고서.
자연히, 소냐의 존재를 모르는 발레기우스는 죽임을 당한 명왕의 힘이 근방을 배회하고 있을 것이라 여길 수밖에 없었다.
“명왕이 파악한 신의 조각이 둘 있다고 했지요?”
“예. 강옥교와 여위량, 현재 명왕의 뒤를 이을 가장 유력한 후보입니다.”
“거물이라… 생포해서 데려오는 게 더 어렵겠군요.”
“죽여서 회수토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간단히 두 사람의 처우를 결정한 발레기우스는 욕조 정면에 뚫려 있는 시커먼 통로로 나아가며 지나가듯이 물었다.
“…아, 하태경의 일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미 실패로 끝나버린 내란에 대해서 묻는 것이 아니다. 내란을 일으키는 것과 더불어, 그에게 내려졌던 다른 임무의 성패에 대한 질문이었다.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것을 확인했습니다.”
“좋은 소식이군요. 틀림없이 나중에 쓸 곳이 있을 겁니다.”
발레기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노구덕, 김정인… 욘의 가호가 함께하는 두 사람 중, 훗날 그에게 위협이 될 만한 사람이라면 단연코 김정인이다. 하태경에게 부여한 임무는 장차 그를 상대하기 위한 안배 중 하나였다.
“…차라리 지금 없애버리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검왕의 성장세는 무서울 정도입니다.”
그간 김정인의 약진을 지켜보았던 이정한이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발레기우스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래봐야 인간입니다. 그의 검이 아무리 날카롭다한들, 세계를 베어 가를 순 없지요. 그보다는…….”
그는 윗입술을 핥으며 말을 흐렸다.
당장 그가 할 일은 명백했다. 언제든지 죽일 수 있는 김정인보다는, 아직 남아 있는 시스템의 힘을 온전히 흡수하는 게 중요하다.
이레시온에 웅크리고 있는 위원회의 잔재는 아직 시스템의 일부를 가지고 있다. 파괴된 카멜롯을 제외하고도 어딘가에 숨겨두었던 바로 그 힘.
발레기우스는 그 힘을 찾아내 흡수할 작정이었다.
“…우선 위원회부터 처리하는 게 급선무겠지요.”
어둠을 담고 있는 발레기우스의 눈매가 살모사의 그것처럼 뭉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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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정신없이 쓰다보니 저번화가 700화라는 걸 몰랐네요.. 코멘 달아주신 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ㅠㅠ
하지만 진짜 700화는 이번화입니다! 다들 아시잖아요!
찐 700 자축합니다.
이번 700화에선 따로 길게 후기는 남기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느덧 700까지 왔고, 아마 800과 900사이에는 대충 끝이 보이지 않을까 싶네요. 이제 계속 달려나갈 일만 남은 것 같습니다.
여러가지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그런 건 700이나 800에 구구절절 남기는 것보단 종지부를 찍고 한꺼번에 원기옥을 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벌써부터 다 끝난 듯한 기분에 잠겨서는 안 되겠죠. 특히 졸속완결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참, 오정환이 죽었을 때 아가레스트에게 힘이 깃들지 않은 건 아가레스트가 이미 프레이야의 심장을 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용량문제죠.
제가 저녁에 잠깐 어딜 다녀와야되서 다음화는 12시나 새벽에 올라갈 것 같습니다.
그럼 그때 뵙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