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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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음모의 전말
191# 음모의 전말
“…양훈?”
육검 사이에서 살짝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양훈을 소드챈트리에 데리고 왔던 만검이 휘둥그레 눈을 치뜨고 있는 게 보였다.
만검에게 살짝 목례를 한 양훈은 한 자루의 검을 조심스레 받쳐든 채 앞으로 걸어 나왔다. 겨우 잠이 든 아이를 옮기듯 매우 조심스러운 움직이었다.
그가 들고 있는 물건을 본 육검은 일제히 마른 침을 삼켰다.
“저건….”
“청옥(靑玉)!”
양훈이 받쳐든 물건은 한 자루의 낡은 검이었다. 어딜 보나 평범한 외양에, 허름한 가죽 검집에 잠겨있는 오래된 검. 그나마 특이한 것은 검 손잡이 끝에 달린 붉은 수실 정도였다.
고급스러워보이는 수실을 제외하면 어딜 봐도 특색이 느껴지지 않는 평범한 검이다. 실제로 그 검은 낡아빠진 겉모습에 무한한 힘을 숨기고 있는 신검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날이 잘 드는 명검도 아니었으며, 좋은 재질로 만들어진 보검도 아니었다.
그저 단단한 정강(精鋼)으로 만들어진 표준 규격의 장검일 뿐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검이 가진 내력을 배제한 평가일 뿐. 실제 저 검의 가치는 감히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였다. 특히 소드챈트리에 몸담은 이라면 더더욱.
“…….”
낡은 검을 앞에 둔 육검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굴종이나 종속의 의미가 아니다. 검을 대하는 그들의 눈빛은 무한한 존경과 경외로 가득했다.
“청옥검. 북왕께서 애용하던 검이며, 그의 최후를 지켜보았던 유일한 증인이다.”
노구덕은 천천히 검의 손잡이를 잡아들었다. 고인이 된 북왕의 손때가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일까. 그의 힘에 비하자면 솜뭉치나 다름없는 철검 한 자루가 유독 무겁게 느껴졌다.
청옥이란 검명은 약 삼십년 전 기가스 사태 때 목숨을 잃었던 아이벤의 연인에게서 따온 것이다. 손잡이에 매달린 붉은 수실은 그의 연인이 손수 달아준 것. 사랑하는 이의 희생으로 겨우 살아난 아이벤은 늘 청옥검을 곁에 두며 그녀를 잊지 않고자 했다.
‘많이 늦었지만, 복수는 확실히 해드리겠습니다.’
잠시 감회가 흐르는 손길로 검신을 매만진 노구덕은, 이제는 얼굴색이 파랗다 못해 새까맣게 죽어버린 커크닐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자비심이 남아 있다면 제압해 두는 게 좋을 거다. 그놈이 허튼 짓을 하면 바로 머리를 박살낼 생각이니까.”
“…알겠습니다.”
누구 말이라고 거스를까. 이미 이곳의 주도권은 노구덕이 쥐고 있었다. 육지백은 군말하지 않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커크닐의 사지를 제압했다.
커크닐이 완벽하게 제압당한 것을 확인한 노구덕은 고개를 돌려 잔뜩 긴장하고 있는 육검을 바라보았다.
“너희들 중, 북왕이 어떻게 전사했는지 내막을 알고 있는 자들이 있나?”
“…….”
자라목이 된 육검 중 그의 말에 자신 있게 답하는 이는 없었다. 노구덕은 무거운 침묵을 고수하는 그들에게 냉랭히 코웃음을 쳤다.
“허, 알 턱이 없지. 사문의 가장 큰 별이 졌는데도 그 자세한 내막을 알아볼 생각은 하지 않고, 외부자들이 공표한 사실만 덜컥 믿어버린 작자들이니.”
“음….”
당주인 육지백은 물론이고, 무릎을 꿇은 육검들 모두가 움찔 몸을 떨었다. 그의 일갈이 자신들의 가장 부끄러운 부분을 사정없이 후벼팠기 때문이다. 유구무언, 너무 명백한 사실이었기에 반박할 힘조차 생기지 않았다.
말을 잃은 육검이 고개를 떨군 그때, 위로부터 호령하는 듯한 울림이 있었다.
“그 말은, 아이벤 님의 전사가 알려진 사실과 다르다는 말인가?”
‘왔군.’
노구덕의 입이 일순 회심의 미소를 그려냈다. 그러나 그건 아주 잠깐. 그가 웃었다는 사실을 눈치챈 자는 없었다.
하늘에서부터 내려온 이는 장대한 체격의 중년인이었다. 천계의 장군처럼 위풍당당한 기세를 온몸으로 떨치고 있는 사내는 보기에도 화려한 녹색의 용포를 걸치고 있었다.
경내에 침입한 불청객의 등장에 놀라 일어선 육검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청룡왕!”
“어떻게…?”
“초대를 받았지. 집주인에게서 발송된 초대장은 아니었지만.”
짤막하게 대꾸하며 착지한 이정은 용처럼 부리부리한 눈을 빛내며 성큼성큼 걸어왔다. 다소 신경질적인 그 걸음걸이로 보아, 무검을 비롯한 육검과 일일이 인사를 나눌 기분이 아닌 듯했다.
그 원인이야 당연히 노구덕이다. 장내에 돌연히 등장한 이후, 그의 눈은 시종일관 노구덕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노구덕과 청룡왕은 이미 구면. 딱히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쁜 사이도 아니다. 말하자면 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아군이 될 수 있다는 의미. 노구덕이 이 자리에 이정을 불러낸 것은 그를 자기편으로 돌려놓을 작은 ‘계기’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북부연합의 공주에게서 전갈을 받았소. 그녀가 전한 말이 정말 사실인거요?”
“그녀가 일을 제대로 해줬군.”
“그 말이 정말이냐고 물었소.”
“그거야 이제부터 자네 눈으로 확인하면 될 일이지.”
백문이 불여일견. 반론할 여지없는 정론이다. 입가를 한 차례 씰룩인 이정은 말없이 무검의 옆자리에 엉덩이를 걸쳤다.
소드챈트리의 수뇌부인 육검에, 북부동맹의 청룡왕 이정.
비로소 초대받은 모든 관객들이 착석했다.
완벽한 무대가 마련되었으니, 이젠 이곳에 온 목적을 달성해야 할 때다.
“북왕은 재앙급 카름 레비아탄과 격전을 벌이던 도중 해일에 휘말려 실종되었고, 약 한 시간 만에 근처의 해변에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여기까지가 공식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다.”
모두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북부에 출현했던 재앙급 카름 레비아탄은 오대 재앙 중 마룡 티아마트와 함께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웠던 카름이었다. 비행능력이 있는 티아마트와 마찬가지로, 레비아탄은 해변이라는 지형지물을 무기로 삼았기 때문이다.
북부연합은 바다 속에 숨어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는 놈의 영악한 전술 때문에 크게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레비아탄 뿐만 아니라 격하게 몰아치는 해일도 상대해야만 했던 탓이다.
덕분에 위기의 순간도 여러 번이었는데, 특히 기동력이 떨어지는 사제단과 마법사단은 몇 차례나 위험한 고비를 넘길 수밖에 없었다.
단신이라면 결코 해일 따위에 휘말리지 않았을 북왕이 불의의 참변을 당한 것도, 미처 몸을 빼내지 못한 마법사단을 구하기 위해 홀로 레비아탄을 막아섰기 때문이었다.
레비아탄과 함께 바다에 삼켜진 북왕은 그대로 종적을 감추었다. 그리고 한 시간 뒤에 인근 해변에서 처참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여기까지가 북왕의 죽음에 대해 공식적으로 알려진 사실이었다.
“…바다에 홀로 남겨진 북왕이 레비아탄과 악전고투하다 전사했다… 주검을 회수한 북부연합에서는 그렇게 발표했고, 모두가 당연히 그럴 것이라 여겼다. 사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고, 일견 타당한 추측이긴 하다. 하지만, 실제는 이와 다르다. 내 생각에 그건 터무니없는 헛소리야.”
“헛소리?”
“그래. 바다에 빠졌다한들 북왕 정도의 무인이 자기 몸 하나 빼내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된다고 보나? 청룡왕, 자네라면 어떻지? 자네가 만약 그 상황이었다면, 맥없이 빠져 죽을 수밖에 없었을까?”
“…그럴 리는 없지. 하지만 거기엔 레비아탄이 있었소. 당신은 모르겠지만 그놈은….”
“나야 직접 싸워본 적이 없으니 모르지. 허나 놈이 얼마나 강하든 간에, 북왕이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라고 보진 않아. 직접 맞서 싸우는 것과 놈을 피해 도망치는 건 난이도가 훨씬 다르니까. 애초에 북왕 형님도 그럴 생각으로 나섰을 거다. 적어도 마법사단을 대피시킨 후에 도주까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는 말이지.”
인간으로서 거의 최고 수준에 다다른 무인이 북왕 아이벤이다. 그런 그가 레비아탄과의 역량차를 잘못 가늠했을 거라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아이벤이 충분히 도주할 수 있을 거라 예상하고 몸을 내던진 결과는, 안타깝게도 본인의 사망으로 나타났다.
어째서 그의 계산이 틀어졌을까?
“물론 레비아탄이 예상보다 더 강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북왕 형님의 눈을 의심하기보다, 그 계산에 미처 감안하지 못했던 변수가 끼어들었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싶군.”
“…그 말의 의미를 알고 있는 거요? 당신은 지금… 나를 포함한 북부연합군의 수뇌의 명예를 실추시켰소.”
이정이 인상을 쓰며 으르렁댈 만도 했다. 노구덕의 말은 마치 북부연합의 누군가가 더러운 음모로 북왕을 함정에 빠트렸다는 말로 들렸으니까.
당시 북부연합의 부대장 중 한 명이었던 육지백 또한 노구덕의 말에 이의를 제기했다.
“의장님께선 여기 커크닐을 용의자로 지목하셨습니다. 허나 제 생각엔 조금 설득력이 떨어지는군요. 당시 커크닐은 북왕 사형을 함정에 빠트릴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무인이 아니었습니다.”
“이걸 보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가볍게 실소를 터뜨린 노구덕은 쥐고 있던 청옥검의 손잡이를 검신에서 뚝 떼어 버렸다.
“아니!”
“무, 무슨 짓입니까!”
“이걸 봐라.”
그가 느닷없이 북왕의 유품을 훼손하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육지백. 분기탱천하여 당장 노성을 내지를 것만 같았던 그는, 노구덕의 손바닥 위에서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는 구슬을 보곤 그만 말을 잃어버렸다.
“여, 영상수정? 어째서 청옥검 안에 이런 게….”
“…청옥검은 보통 검이 아니었나? 왜 이런 장치가 되어 있는 거지?”
영상수정을 본 이정도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었다.
북왕 아이벤과 그의 연인, 그리고 청옥검에 얽힌 사연은 너무나 유명하여 동네 세 살 배기 어린애들조차 알고 있을 정도다. 따라서 북왕이 늘 패용하는 청옥검이 평범한 철검에 불과하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 청옥검 안에 손잡이가 분리되는 장치가 되어 있었고, 그 안에 영상수정이 들어있었다니. 이건 이 자리의 누구도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심지어 북왕의 유일한 사형제이며, 그의 사후 청옥검을 포함한 유품을 도맡아 관리했던 육지백조차도.
육검과 청룡왕 이정, 그리고 청랑단… 노구덕은 경악하는 이들을 돌아보며 담담히 이야기했다.
“설명이 필요한가? 그분은 예감을 하셨던 거야. 언젠가 더러운 음모가 자신을 덮치리란 것을.”
장내의 분위기가 차갑게 굳어진다. 노구덕의 말대로라면, 저 영상수정 안에는 지금까지 얘기했던 노구덕의 말을 뒷받침할 만한 결정적인 증거가 들어있는 셈이었으니.
“이 장치로 봐서는… 청옥검의 손잡이를 쥐고 일정량의 투기를 흘려 넣으면 손잡이 안의 수정이 작동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는 듯하군. 아마 수정이 손잡이 안에 있으니 직접적인 영상을 녹화했다기보다, 주변 소리를 녹음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을 거야. 육 당주, 그분께서 전사하신 뒤 누군가 이 검을 사용한 적이 있었나?”
“…없을 겁니다. 적어도 소드챈트리 내에서, 그분의 유품에 함부로 손을 댈 간담을 지닌 자는 없습니다.”
“자네는 그분의 주검과 함께 발견된 이 검을 그 자리에서 바로 넘겨받았으니, 이 검에 쓸데없는 조작이 들어갔을 가능성은 없겠군?”
“…그렇겠지요.”
“좋아. 그럼 이제 들어보도록 하지. 그분이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남기셨는지….”
노구덕은 영상수정을 재생모드로 전환한 뒤, 소량의 투기를 흘려 넣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 들린 영상수정이 환한 빛을 발하며 안에 담겨 있는 소리를 재생하기 시작했다.
치칙. 칙…. 쏴아아아아….
-헉… 헉… 크으으…….
처음 들린 것은 판별이 불가능한 잡음, 파랑이 나부끼는 해변의 소리, 그리고… 괴롭게 헐떡이는 남자의 숨소리였다. 아직 숨소리만 들릴 뿐이지만, 틀림없는 북왕의 육성이다.
“흠.”
“사형…!”
이정의 얼굴이 무섭게 경직되고, 육지백과 다른 이들의 표정이 안타까움으로 물들었다. 끊어질 듯 가는 숨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당시 북왕의 어려운 처지가 고스란히 실감되었던 탓이다.
하지만 그도 잠시, 영상수정이 연이어 흘려보낸 대화를 들은 좌중은 충격의 도가니에 빠지고 말았다.
-네놈들이었나…. 어느 정도 짐작은 했었지만…….
-끈질긴 노친네. 얌전히 죽어줬다면 험한 꼴은 보지 않았을 텐데.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습니다. 속히 처리하고 돌아가도록 하죠.
-주절대지 마라. 나도 알고 있으니까.
북왕의 힘겨운 목소리 이후, 속삭이듯이 들려온 두 남자의 목소리.
그건 명왕 강문식과 패검 커크닐의 음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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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오늘도 연참. 내일도 연참. 페이스 유지하면서 계속 이어나가겠습니다. 아, 설 연휴 중간에는 다소 변동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때는 따로 공지하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궁금하신 점 있으면 언제든 댓글 달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