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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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 윤희지
“이년이 어디서…!”
노구덕의 눈에서 시뻘건 불똥이 튀었다. 쾅! 하는 굉음과 함께 테이블이 뒤집어지자, 푸른 색의 장막이 노구덕의 전신을 감쌌다. 그에게 쇄도하던 빙창들은 반투명한 장막에 가로막혀 흡수되듯이 사라져버렸다.
그 광경을 본 윤희지는 자기가 저지른 실책을 인지할 겨를도 없이 눈을 부릅떴다. 감쪽같이 주문을 흡수해버린 노구덕의 보호막이 눈에 익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구 십존, 스펠브레이커 플랑기스의 스펠실드였으니까.
“스, 스펠실드? 어떻게…? 카악!”
망연자실 깜박이던 눈동자가 갑자기 크게 확장되었다. 노구덕의 두터운 손바닥이 그녀의 목을 벼락같이 움켜쥔 것이다.
“미친년. 상대를 가려가면서 덤벼야지. 좋게 좋게 대해주니까 눈에 뵈는 게 없는 거냐?”
“크, 끄으윽…!”
도깨비불처럼 시퍼런 안광을 발하는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친 윤희지는 솜털이 쭈뼛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그제야 자신이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뽑아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신적으로 너무 지쳐있던 탓에, 평소라면 절대 저지르지 않았을 실수를 범한 것이다.
뭐라고 사과의 말을 하고 싶었지만, 기도가 너무 꽉 조여져서 끅끅 앓는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잠시 후, 이마에 굵은 핏대를 세운 윤희지의 눈동자가 허옇게 뒤집어졌다. 그런 그녀를 노려보던 노구덕은 힘을 잃은 윤희지의 몸뚱이를 바닥에 패대기쳤다.
“까아아악!”
“까마귀 새끼도 아니고, 주둥이 다물어라.”
“흐윽…!”
왼팔이 끊어질 듯이 아팠다. 바닥에 부딪친 충격으로 팔뼈가 골절된 것 같았다. 그러나 윤희지는 감히 신음성을 흘리지 못했다. 무시무시한 살기로 얼룩진 두 눈이 바로 코앞에서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으니까.
사람이 아니라 개, 돼지 같은 짐승을 바라보는 눈빛. 당장이라도 그녀의 목을 비틀어 버릴 것만 같은 시선이다. 말 한마디라도 잘못하는 날에는, 정말로 여기서 개죽음을 당할지도 몰랐다.
노구덕의 눈빛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개새끼도 자기 안마당에선 크게 짖는다더니, 딱 그 꼴이군. 윤희지, 내가 널 못 죽일 것 같으냐? 네가 그토록 숭배하는 김정인이 갑자기 짠하고 나타날 것 같아?”
“…….”
눈물로 얼룩진 윤희지의 얼굴이 좌우로 흔들렸다. 안이 터져서 핏물이 새어나오는 입술은 형언할 수 없는 격동으로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노구덕은 고개를 늘어뜨리고 있는 윤희지의 머리를 위로 잡아챘다. 윽! 신음하며 딸려 올라간 그녀의 얼굴과 눈을 마주친 그는 허연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나한테 왜 그랬냐고 물었지. 허면 나도 물어보마. 너는 왜 그랬지?”
“무, 무슨… 아아악!”
철썩! 윤희지의 뺨이 왼쪽으로 홱 돌아가며, 하얀 볼이 삽시간에 퉁퉁 부어올랐다. 사정없이 그녀의 뺨을 후려갈긴 노구덕은 딱딱 이를 부딪치는 윤희지의 머리를 다시 들어올렸다.
“이년이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하는군. 다시 생각해 봐라. 정말 켕기는 게 없는지.”
“대체 뭘… 캭!”
이번엔 오른쪽이다. 양 볼이 심할 정도로 부어터진 윤희지는 엉엉 흐느끼며 핏물을 게워냈다.
“다시 묻겠다. 왜 그랬냐?”
연달아 뺨을 두들겨 맞고 나니 눈앞에 별이 아른거렸다. 도저히 짐작가는 바가 없어 머리를 흔들던 윤희지는 돌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무섭게 쏘아붙이는 노구덕의 말을 곱씹고 나니, 갑자기 머릿속이 환해지며 등골이 오싹 떨려왔다.
‘설마, 설마…!’
정치적 입지 때문에 어물쩍 넘겨버렸던 그 사건. 혹시 그 건을 캐묻는 것이 아닐까?
‘아냐, 그럴 리가 없어…. 어떻게 알고?’
강하게 부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스산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확증을 가진 듯한 노구덕의 말투 때문이었다.
걸리는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윤희지는 최선을 다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겠다고 했지만, 실제 그녀는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노구덕에게 했던 말과는 달리 사건 조사는 뒷전이었던 것이다. 자기 일도 아닌 남 일에 신경 쓰기에는 그녀가 처한 입지가 매우 위태로웠을 뿐더러, 아이의 상태를 돌보기에도 바빴던 탓이다.
윤희지의 동공이 걷잡을 수 없는 파문을 일으키자, 노구덕의 입매가 비죽하게 뒤틀렸다.
“겨우 기억이 났나보군.”
“그, 그 일을 말하는 거라면…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했어요. 최선을 다했지만… 꺄아악!”
우당탕탕! 윤희지의 가녀린 몸뚱이가 또다시 바닥에 처박혔다. 부서진 테이블의 잔해 한가운데 널브러진 윤희지는 연신 죽을 듯이 기침을 해대며 괴로워할 뿐, 한동안 꼼짝도 하지 못했다. 아마 갈비뼈라도 몇 군데 부러진 모양이었다.
“허으, 흐으으으으….”
가래 끓는 소리를 내는 윤희지의 시야에 커다란 발이 들어찼다. 발을 따라 시선을 올리니, 철가면처럼 굳은 얼굴의 노구덕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주 입만 열면 거짓말이구나. 하기야 그러니까 배우노릇을 했겠지.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병신이었다면 네 말에 홀랑 넘어갔을 거야.”
여느 때였다면 기름을 바른 듯 잘 굴러갔을 혓바닥이 미동도 하지 않는다. 노구덕은 벌벌 떨기만 하는 윤희지의 앞에 천천히 쭈그리고 앉았다.
“이번에 남부총독으로 임명된 엘리엇. 그놈이 우리 애들을 죽이고 사건 은폐를 했다.”
힘겹게 할딱이는 윤희지의 숨소리가 더욱 거칠어진다. 그녀는 굉장히 큰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놀랍게도, 노구덕은 사건의 진상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노구덕은 두려움에 질린 그녀의 눈동자를 찬찬히 뜯어보며 말했다.
“너는 알고 있었어. 그렇지? 그런데도 모른척했다. 왜? 괜히 상관해서 귀찮게 되는 게 싫었거든.”
“즈, 증거가, 증거가…….”
‘증거가 없었다.’ 간신히 입 밖으로 새어나온 말을 들은 노구덕은 히죽 웃었다.
“증거가 없었다고? 구차하게 그러지 마라. 네가 정말로 날 돕고 싶었다면, 증거가 있든 없든 간에 진척상황 정도는 알려줬겠지. 내 말이 틀렸냐?”
윤희지의 낯빛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노구덕의 한마디, 한마디가 뾰족한 비수가 되어 심장을 후벼 파는 듯했다.
그녀는 상황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찌된 일인지 모르지만, 노구덕은 확신을 가지고 그녀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할 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보고… 어떡하라고….”
“뭐?”
“당신… 당신이 지금 하는 짓을 봐….”
그녀에게 남은 것은 이제 악밖에 없었다. 그녀는 거칠게 숨을 내쉬며 비틀비틀 몸을 일으켰다.
“내가… 그걸 말했다면, 당신이 무슨 짓을 했을까…? 안 봐도 뻔해…. 지금 나한테 한 것처럼… 엘리엇, 그 사람을 묵사발을 만들었겠지….”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라고…? 그게 할 말이야…? 그렇게 되면 전쟁이야…! 증거도 없이 심증만으로, 남의 나라 요인을 그런 식으로 처리하면, 그이가 가만히 있을 것 같아? 나는…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택한 것뿐이야…!”
“아니지.”
노구덕은 단칼에 그녀의 말을 잘라냈다.
“네 같잖은 잣대를 들이대면서 자꾸 그럴듯한 명분을 붙이지 마라. 역겨우니까. 넌 그저 네 보신을 하고 싶었던 거야. 내가 혹시라도 네 말을 근거로 난리라도 피우면, 네 입지가 좁아질 테니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던 거지.”
“…….”
“넌 내게 하나도 빠짐없이 사실을 전했어야 했어. 그러지 않은 건, 온전히 네 선택이다. 누구를 원망할 것도, 탓할 것도 없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의 시선이 온몸을 훑어 내린다. 그 눈길에 노출된 윤희지는 온몸이 벌레처럼 쪼그라들어 사라질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이윽고, 낮고 음울한 음성이 그녀의 귓전에 내려앉았다.
“오열하는 지기 앞에서 무릎을 꿇어 사죄해야만 했다. 매일 밤 꿈속에서 고통스러워하는 그 아이들의 얼굴을 봐야만 했어. 그 녀석들 옆에서 자라는 걸 지켜본 세월이 십 년이다. 그런 아이들을 잃은 심정이 어떤지, 너는 짐작도 하지 못하겠지?”
“그날, 너희 리베르타 놈들이 무슨 만행을 저질렀는지 말해주마. 패터슨, 마리안, 레이나. 그날 살해당한 아이들의 이름이다. 패터슨과 마리안은 미래를 약속한 사이였고, 마리안과 레이나는 우애가 두터운 자매였지.”
말을 잇는 노구덕의 어조가 점차 격해졌다.
“너희들은 자매를 번갈아가며 윤간했다. 더러운 몸에 깔린 채 괴로워하는 그 여린 녀석들을 잔인하게 짓밟고, 유린하면서 비웃었다. 그리고 현장에서 그 참사를 목격한 패터슨을 곧바로 살해했어. 엘리엇, 그놈이 직접 말이다.”
말끝에서 들끓는 악의(惡意)가 기지개를 켜는 것이 느껴졌다. 윤희지는 노구덕의 진득한 살기에 몸서리치면서도, 어떻게 그가 이토록 소상히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지에서 직접 수사한 그녀도 몰랐던 일을, 대륙 반대편에 떨어져 있는 노구덕이 어떻게 알아냈단 말인가. 그렇다고 단순히 소설로 치부하기엔 그의 묘사가 너무 상세했다.
“어떻게 알았느냐는 얼굴이군. 간단해. 내겐 증거가 있거든.”
“즈, 증거?”
“그래. 네가 그토록 입에 달고 사는 그놈의 증거. 하지만 걱정 마라. 당장 터뜨리지는 않을 테니까.”
킬킬거리는 노구덕의 웃음소리가 가슴 속을 불길하게 메운다. 대체 그가 말하는 증거가 무엇인지, 윤희지로선 짐작도 할 수 없었다.
‘물어도 대답해주지 않을 거야. …그저 공갈일까?’
침착함을 되찾은 윤희지는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그가 증거를 가졌다는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하지만 정황상,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노구덕은 단순히 화풀이를 위해 이러는 것이 아니었다. 그럴 거였으면 진즉에 엘리엇을 찾아갔거나, 공식적으로 리베르타를 압박했을 터. 굳이 그런 행동을 하지 않고 그녀에게 장황히 사정을 들려준다는 건….
“제게… 바라는 게 있군요. 그게 뭐죠?”
“호오. 역시 머리회전이 빨라.”
소름이 끼친 윤희지는 자기도 모르게 슬쩍 팔을 매만졌다. 살가죽이 온통 오돌토돌했다.
“하태경, 그놈의 행적을 알아와. 죽기 전에 뭘 했는지, 알아낼 수 있는 건 전부.”
“하, 하태경이요?”
“넌 업무상 그놈과 자주 만났을 테니까. 그놈이 자살했을 때 옆에 있었던 것도 너라지? 특히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말을 나눴는지… 토씨 하나 빠트리지 말고 기록해 와라.”
노구덕은 계획을 바꾸었다. 원래는 크라벨에게 부탁하려 했지만, 더 확실한 정보원이 생긴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뜻밖의 얘기를 들은 윤희지는 무척 얼떨떨한 기색이었다. 그러나 몇 번이나 심하게 얻어맞은 뒤라 그런지, 대놓고 의문을 표하진 못했다. 지금은 우선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최선이었다.
“에, 엘리엇은, 어떻게 하실 거죠? 혹시 지금 바로….”
“남 걱정하기 전에 네 걱정이나 하는 게 좋을 거다.”
살벌한 협박으로 윤희지의 목을 움츠리게 만든 노구덕은 이내 표정을 바꾸어, 달콤한 말로 미끼를 던졌다.
“네 정보가 날 만족시킨다면, 나도 생각을 달리 해 볼 수 있다.”
“생각을 달리해요…?”
솔깃한 얼굴로 고개를 드는 윤희지. 그녀는 이미 자신이 돌이킬 수 없는 늪에 빠졌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크라벨이 아니라 네게 힘을 실어줄 수도 있다는 얘기지.”
“……!”
윤희지의 표정이 팔색조처럼 거듭 변화를 일으켰다. 그가 제시한 당근은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 그녀로선 차마 거부하기 힘든 제안이었던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건 그녀의 약점을 꼬집은 그의 노골적인 노림수였다.
찰나지간, 유혹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윤희지를 바라보는 노구덕의 입아귀가 길쭉하게 찢어졌다.
윤희지에게 있어 그것은, 파멸의 서막을 알리는 악마의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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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복수는 복수인데.. 이거 참 수위를 어디까지 조절해야 할지 고민이네요. 계획된거 그대로 내보내려도 되려나..
사이다는 원샷보다 여러 번 나눠가면서 마시는게 칼칼하니 목에 걸리지 않고 좋을 것 같습니다.
본 화에서 희지가 다소 어리석게 비쳐질 수도 있습니다만, 이미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상태라는 것도 알아주셨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