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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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Terminator
뒤를 쫓는 최훈이 갖은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소리를 질러댔지만, 노구덕은 노구덕대로 최훈과 굳이 놀아줄 까닭이 없었다. 그로선 나중에 들어올 레그나토르의 별동대를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곳 제사관의 병력들은 앞서 지나친 관문에 배치되어 있던 괴인들과는 달랐다. 지휘관급만 처치하면 명령체계가 마비되어 무력화되는 괴인들과는 달리, 최훈과 김인성의 지휘를 받는 마법사단은 독립적인 대응이 가능했다.
특히 구 투르의 마법사단을 이끄는 하얀악마 김인성은 상당히 성가신 존재였다. 노구덕에게 맥없이 죽은 탓에 존재감이 굉장히 퇴색되기는 했으나, 본래 그의 실력을 생각하면 이렇게 허망하게 죽을 인물은 절대 아니었다.
노구덕이 다른 관문들처럼 우두머리만 처치하고 지나가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최훈을 처치하더라도, 김인성과 마법사단의 전력이 온전하다면 뒤따라오는 별동대에 틀림없이 피해가 생길 테니까.
그래선 안 된다. 남들이 보기엔 광오하다 여길지 모르지만 노구덕은 이번 전투에서 단 한 명의 별동대원들도 잃지 않을 작정이었다.
‘흠. 그 녀석들이 내 고생을 알아줘야 할 텐데.’
상식을 초월한 재생력과 방어력을 지녔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노구덕이 피학성애자도 아니고, 괜히 스펠실드를 숨겨가며 그 많은 주문들을 몸으로 받아냈겠는가? 그건 모두 결정적인 순간에 마법사단에 큰 피해를 입히기 위한 포석이었다.
그리고 그 계책은 보란 듯이 성공했다.
김인성을 비롯한 마법사단에 있어, 난데없이 출현한 스펠실드는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하얀악마 김인성은 실력의 반의반도 발휘하지 못하고 죽임을 당했으며, 수십의 마법사들도 매한가지로 떼죽음을 당했다. 이만하면 재미를 톡톡히 본 셈이었다.
“흐아아아!”
퍽!
등을 보이며 정신없이 도망치던 마법사의 두개골이 우지끈 뭉그러졌다. 마법사의 머리를 밟고 도약한 노구덕의 손아귀엔, 마법사가 들고 있던 커다란 스태프가 들려 있었다.
본래 스태프의 용도는 사용자의 마력을 활성화하고 주문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매우 튼튼하게 제작된 마법 도구인 만큼, 때에 따라선 무지막지한 흉기로 사용될 수도 있었다.
예컨대 지금처럼.
휙! 노구덕의 손을 떠난 스태프가 바닥과 평행선을 이루며 앞으로 쏘아졌다. 투창처럼 날아간 스태프는 연달아 십여 명이나 되는 마법사들의 몸뚱이를 꿰뚫고 지나가 맞은편 성벽에 쾅! 소리를 내며 처박혔다.
전투가 시작된 지 겨우 몇 분이 지났을 뿐인데, 벌써 마법사단의 대다수가 목숨을 잃었다. 그나마 남아 있는 소수도 전투의지를 상실한 채 도주하기 바쁠 따름이었다. 애초부터 김인성을 따라 용병으로 투입된 자들이니, 도미니온에 바칠 충성심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마법사단을 와해시킨 노구덕은 곧바로 후방의 괴인부대에 달려들었다. 여전히 뒤를 쫓는 최훈은 무시한 채였다.
“산개해라!”
뒤늦게 정신을 차린 최훈이 다급히 명령을 내렸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노구덕은 귀신 같이 괴인들의 지휘관을 찾아 그 심장을 부숴 버렸다. 다른 관문의 수문장들을 처치할 때와 마찬가지로 눈 깜짝할 새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것으로 제사관은 완벽히 무력화되었다. 단 한 사람, 두 눈에서 시뻘건 흉광을 내뿜는 최훈을 제외하고.
“크아아아! 이 교활한 쥐새끼가–!”
한데 묶어 둔 끈이 풀려 산발이 된 머리카락이 올올이 곤두섰다. 최훈의 사자후에 담긴 기파는 같은 편인 괴인들마저 피를 토하게 만들 정도였다.
그 정도로 분노했다는 소리다. 하긴, 최훈 정도의 무인이 검을 빼앗긴 것도 모자라 철저하게 무시당하기까지 했으니 그 굴욕감이 오죽할까. 살심이 골수까지 치미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괴인의 사체를 밟고 선 노구덕은 섬뜩한 혈광을 줄기줄기 뿜어대는 최훈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
“시끄럽게 짖어대지 말고 덤벼라.”
“죽여버리겠다!”
투기를 한껏 끌어올린 최훈의 몸놀림은 성난 호랑이처럼 재빨랐다. 하지만 그 가공할 속도도 노구덕의 인지범위를 벗어날 정도는 아니었다.
‘빠르군. 하지만 그 녀석보다는 아니야.’
최훈의 먹빛 기검을 빗겨내는 노구덕의 표정은 일말의 자만심도 품고 있지 않았다. 신중한 노구덕의 눈빛은 일그러진 최훈의 얼굴에서 또 다른 누군가의 얼굴을 투영하고 있었다.
검왕 김정인. 언젠가 맞서야 할 대적의 얼굴을.
처형자 최훈은 의심할 여지없는 십존급의 강자다. 현 십존 중에서 그만큼 검에 능한 실력자는 거의 없었다. 굳이 찾자면 기껏해야 서리여왕 하유라 정도. 그러나 하유라는 헌터로서의 힘을 잃었고, 검을 주력으로 삼지도 않았다.
이런 기회는 좀처럼 없다. 앞으로 어디서 최훈 정도의 연습 상대를 구할 수 있을까? 말하자면 이 일전은 대 김정인 전을 대비한 모의전인 셈이었다.
‘절대로 베이면 안 된다.’
노구덕은 커다란 거구를 날렵하게 흔들며 최대한 회피에 치중했다. 저 참격이 최훈이 아니라 김정인의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단 한 번의 공격도 그대로 치명상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런 속사정을 알 리 없는 최훈은 더욱 난폭하게 칼을 휘두르며 기세를 올렸다.
“언제까지 피할 수 있나 보자!”
“흡!”
뱀처럼 영활하게 움직이는 최훈의 검은 그 궤적을 읽기가 극히 까다로웠다. 칼끝의 움직임과 손목의 움직임이 서로 일치하지 않으니, 그때그때 반사 신경에 의존하여 검을 회피해야만 했다. 그 때문인지 칼날을 빗겨내는 노구덕의 움직임은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아슬아슬했다.
하나 계속해서 일방적인 공세를 퍼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훈의 표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함을 넘어 참혹하게 일그러지는 중이었다.
‘이… 말도 안 되는…!’
말 그대로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발도의 과정을 거쳐, 속도가 최절정에 달한 검을 눈으로 보고 피하기란 극히 어렵다. 아니, 실상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검사를 상대할 때에는 눈앞의 검을 쫓는 것이 아니라, 검사의 손목과 팔, 몸 전체의 사전 동작으로 검로를 예측하여 피하는 게 상식이다.
일반 검사를 상대로도 그러할진대, 십존급의 검사를 상대로 일절 반격은 하지 않고 피하기만 한다? 육안과 반사 신경만으로? 상식파괴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눈앞에서 유령처럼 흐느적거리는 거구의 오크만 아니었더라면, 최훈 또한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코웃음을 쳤으리라.
최훈은 새삼 깨달았다. 세상에는 이런 존재도 더러 있다는 것을.
불가해(不可解)… 그의 주군인 발레기우스와 마찬가지로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괴물들.
그에겐 사각(死角)이 없었다. 자유자재로 늘어나는 최훈의 검은 노구덕에게 단 한 번의 유효타도 먹이지 못했다. 두 사람을 둘러싼 주위 수십 미터가 초토화되는 동안, 노구덕에게 일어난 변화라곤 이마 한 가운데 주름 하나가 늘어난 게 전부였다.
‘난 그저 놀이상대에 불과했던 건가….’
막 끓인 찻주전자처럼 펄펄 달아올랐던 머리가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검을 휘두를수록 체감되는 아득한 격차에 강렬히 타오르던 전의가 흔적도 없이 사그라들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어떻게….’
수십 년 간 고련하여 쌓아올린 고도의 검술이, ‘보고, 피한다.’는 간단한 공식 앞에 허망하게 무너져버렸다. 이젠 허탈함을 넘어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어느 순간, 최훈의 손에서 칙칙한 먹빛의 검이 사라졌다. 점점 더 회피에 능숙해지는 노구덕의 모습에 더 이상 싸울 가치를 느끼지 못한 것이다.
물론 그건 최훈의 사정이고, 한창 연습에 열을 올리던 노구덕으로선 맥이 빠질 노릇이었다.
“뭐야. 더 하지 않을 건가?”
“더 하지 않을 거냐고? 크흐흐흐….”
어처구니가 없어진 최훈은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역시, 상대에게 있어 자신은 그저 쓸 만한 대련 상대에 지나지 않았다.
‘비장의 수도… 쓸모가 없었군….’
최훈은 깊이 자조했다. 그의 눈은 노구덕의 팔뚝에서 꿈틀거리는 여섯 개의 각인에 머물러 있었다.
“네 자기류가 그렇게 빠르다고 들었다. 어디 한번 펼쳐봐.”
“개소리 지껄이지 마라. 여기서 더 발버둥 쳐 봐야 네놈의 견문만 넓혀주는 셈이겠지. 더 이상 같잖은 수작질에 놀아나지 않겠다. 차라리 날 죽여라.”
노구덕을 이길 수 없다고 깨달은 시점에서 아예 저항을 포기해버린 최훈의 판단은 어찌 보면 현명하다고 할 수 있었다. 허망하게 죽을지언정, 노구덕에게 더 이상의 전투 데이터는 주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그 판단에는 한 가지 결정적인 착오가 있었다.
“멍청한 놈이, 착각을 하고 있군.”
“뭣…? 엇, 어어억!”
커다란 손아귀에 머리를 붙잡힌 최훈의 눈이 툭 불거졌다. 양 관자놀이를 짓누르는 끔찍한 압력에 대경실색한 최훈은 필사적으로 팔을 휘둘렀으나, 어찌된 일인지 그의 손에선 더 이상 투기가 일어나지 않았다.
뚜둑. 뚜두둑!
노구덕의 손가락 두 개가 피부를 뚫고 뼈를 부수며 깊이 안으로 파고들었다. 산 채로 머리가 뚫린 최훈은 입에 허연 거품을 문 채 작살에 맞은 물고기처럼 몸을 버둥거렸다.
“으으, 끄으으… 으아아아악…!”
“나와 마주친 시점에서 네가 가진 모든 것은 내 것이었다. 주지 않겠다고? 그건 네가 정하는 게 아니다.”
유부에서 흘러나온 마왕의 속삭임을 들은 최훈의 떨림이 거세졌다. 공포에 휘말린 허연 눈동자는 좀처럼 한 곳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빙글빙글 돌며 커다란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요람부터 지금까지, 그가 평생 살아가며 축적한 모든 경험과 지식이 송두리째 캄캄한 심연으로 빨려 들고 있었다.
벌레교단의 교황이 지닌 두 개의 권능 중 하나, 심령차력술의 발현이었다. 이정한과 마찬가지로, 발레기우스에게 심지를 종속당한 최훈 역시도 노구덕의 마수를 피해가지 못했다. 노구덕과 대면한 그 순간부터 그의 운명은 이미 이렇게 될 예정이었던 것이다.
“우아아아아아아—!”
단말마를 내지른 최훈의 아랫도리가 노랗게 물들었다. 그러나 썩은 동태처럼 텅 비어버린 동공은 육체가 저지른 실태를 전혀 자각하지 못하는 듯했다.
털썩. 노구덕의 손에서 풀려난 최훈의 몸뚱이가 기댈 곳을 잃은 허수아비인 양 앞으로 고꾸라졌다. 엉덩이를 높이 쳐든 채 바닥에 이마를 처박은 최훈은 침이 줄줄 새는 입을 도무지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백치가 되어버린 최훈을 뒤로 한 노구덕은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수천, 수만 개의 검로와 투로, 셀 수 없는 살육에서 비롯된 실전 경험들이 대해처럼 밀려온다. 최훈으로부터 빨아들인 정수는 육왕각인 외에는 별 영양가가 없었던 이정한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진수성찬이었다.
억지로 만들어진 급조품과 제대로 단계를 밟아 강해진 진짜배기의 차이다.
이 경험과 지식을 실전에서 최훈과 같은 수준으로 사용하기엔 여러모로 무리겠지만, 장차 김정인과의 싸움에서 큰 도움이 되리란 건 자명했다.
‘발레기우스, 고맙구나. 네놈 덕분에 조금 길이 보이는 것 같다.’
깊게 가라앉은 노구덕의 눈길이 느릿하게 앞으로 이동했다.
홍해처럼 갈라진 괴인들이 그의 시선에 움찔거리며 몸을 떨었지만, 노구덕의 신경은 그런 잔챙이들을 의식하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앞에 남아 있는 제오관, 제육관을 보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의 시선은 좀 더 깊숙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눈이 닿을 수 없는 먼 거리였지만, 그 존재감만은 바로 앞에 서 있는 것처럼 또렷하게 전해졌다.
칠흑으로 물든 대전 안.
황금 옥좌에 홀로 앉아 비스듬히 머리를 괴고 있는 도미니온의 왕.
군왕 체스터다.
한때 그의 우방이기도 했던 체스터가 빤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게 똑똑히 느껴졌다.
“체스터. 그래도 왕이란 건가? 꼴사납게 도망가진 않았군. 그래, 슬슬 우리 인연의 마침표를 찍을 때가 되긴 했지.”
노구덕의 입아귀가 길게 찢어졌다. 힐끔, 뒤에서 전해지는 별동대의 기척을 감지한 노구덕은 훌쩍 앞을 향해 달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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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아마 다음화에 에피소드가 끝나겠네요.
체스터랑 거창하게 치고박는 걸 기대하는 건 아니시겠죠?
연참.. 조만간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혹시 소설 쓰실분 참고가 되실지 모르겠지만
e북.. 성애씬 묘사 규제가 상당히 엄하더군요. 아청법도 적용된다고 하고..
살펴 보니깐 수정할 부분이 꽤 있네요. ㅠㅠ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