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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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폭풍전야(暴風前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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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했다. 열흘 동안 붉은 꽃이 없듯이, 아무리 큰 권력이라도 언제나 끝은 있는 법이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총독님.”
“응? 이건 아니잖느냐. 이건… 이건 정말 아니잖아!”
이를 갈며 부르짖는 엘리엇의 얼굴은 마귀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기라성 같은 경쟁자들이 난립할 때, 그는 조용히 몸을 낮추며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거머쥐어 2인자의 자리에 올라섰다. 본토보다 넓은 남부에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한 것이다.
하나, 그 왕국이 불과 한 달도 못가서 무너지게 생겼다. 끝없는 꽃길만 이어질 것 같던 장래가 완전히 끝장나기 일보직전이었다.
그 모든 원흉은 어제 전해진 의문의 영상수정이었다.
“대체 누구야? 아직도 알아내지 못했나?”
“…예.”
“제기랄!”
분기를 참지 못하고 내려친 주먹에, 원목으로 만든 탁자가 형편없이 박살났다. 하지만 씨근덕거리는 소리를 내는 엘리엇은 전혀 화가 풀리지 않은 기색이었다.
쉽게 잡힐 범인이 아니라는 건 엘리엇이 누구보다 잘 안다. 총독 관저 내의 침실에서 곤히 자고 있는 그의 머리맡에 영상수정을 두고 사라진 범인 아니던가. 범인이 마음만 먹었다면 쥐도 새도 모르는 사이에 엘리엇의 숨통을 끊어놓을 수 있었다.
그 신출귀몰한 실력은 아무리 낮게 잡아도 십존급. 애초에 부하들에게 잡히길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수다.
그보다 문제인 것은 그에게 전달된 영상수정의 내용이었다.
해당 영상수정에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수수께끼의 여인과, 그녀를 마주한 남성 간의 대화가 담겨 있었다. 말할 것도 없겠지만, 그가 살인멸구하려고 했던 라이언의 증언을 담은 기록이었다.
그토록 숨기려했던 그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영상.
뿌드득!
악다문 잇새가 어긋나며 거칠게 갈리는 소리가 났다. 희번덕거리는 엘리엇의 두 눈은 시퍼런 광기에 젖어 번들거리고 있었다.
예전에는 어느 유력가의 자제인 줄로만 알았지만, 이제는 그도 패터슨이 레그나토르의 주요 인물이었다는 것을 안다. 정적인 윤희지가 당시의 사건을 들쑤시려는 움직임을 보인 탓에 그 또한 패터슨의 정체에 대해서 나름대로 재조사를 했기 때문이다.
패터슨과 레이나, 마리안의 정체를 알게 되었을 때엔 그야말로 눈앞이 깜깜해져서 사흘 밤낮 동안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엎질러진 물인 것을. 엘리엇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꼬리가 잡히지 않도록 더욱 철저하게 사건 은폐에 매달리는 것뿐이었다.
어쨌든, 이 사건의 인과관계를 종합해보면 이런 짓을 벌일 만한 배후는 정해져 있었다.
보낸 이도 불명, 의도도 불명, 남은 건 영상수정 하나뿐이지만, 그는 금세 자신을 옥죄어 오는 검은 손길의 정체를 유추해냈다.
“…알겠다. 레그나토르군.”
“예?”
“레그나토르야. 놈들이 개입한 게 틀림없어. 그놈들 정도의 세력이 아니고선 이건 말이 안 돼.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건 그놈들뿐이야.”
“그렇다면 영상수정을 보낸 범인은….”
“안개여왕 아가레스트겠지. 수법만 봐도 알지 않나. 이따위 개 같은 짓거리를 벌일 년은 그년밖에 없어.”
씰룩씰룩 꿈틀대는 안면 근육이 당장이라도 폭발해버릴 것만 같다. 엘리엇은 연신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애꿎은 팔걸이를 으스러지도록 붙잡았다.
범인과 배후를 유추했지만, 상황은 여전히 달라진 게 없다. 아니, 도리어 더 답답해진 상황이었다.
삼류 협박범이라면 모를까, 레그나토르, 그리고 아가레스트가 허투루 일을 꾸몄을 리 없다. 이건 어쭙잖은 공갈이 아니라 언제든지 그를 끌어내릴 수 있다는 엄포였다.
무엇보다 마음에 걸리는 건 영상수정 표면에 붉은색으로 적혀 있던 D-1이라는 글자다. 잘못 해석한 게 아니라면, 그에게 남은 시간이 단 하루라는 의미였다.
“하루. 놈들은 하루 뒤에 본국에 이 사실을 알릴 셈이야.”
“…소환령이 떨어지겠군요.”
당연하다. 김정인의 성격상 이만한 부정을 그냥 넘길 리 없다. 엘리엇과 최길재는 곧바로 리베르타에 소환될 테고, 당시의 사건은 전면적인 재조사에 들어갈 것이다. 거기에 더해 레그나토르까지 개입하여 입김을 넣으면, 엘리엇은 도저히 목숨을 부지할 수 없게 된다.
엘리엇과 최길재는 동시에 몸을 떨었다. 앞으로 펼쳐진 절망적인 미래가 눈에 선히 보였다.
“총독님. 외람된 말씀이지만… 역시 도망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이대로 본국에 돌아가면 꼼짝없이 죽은 목숨입니다.”
“…….”
“으, 으음. 그런데 놈들이 왜… 하루라는 유예 기간을 줬을까요? 바로 본국에 고발했다면 도망칠 시간도 없었을 텐데….”
“…크크크크. 내 손으로 끝장을 보라는 거겠지.”
“예? 끝장이라뇨?”
“도망치라고? 멍청한 소리 하지 마라. 레그나토르와 리베르타, 두 강대국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언제까지 도망자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얼마 가지도 못하고 잡혀 죽을 거다. 무엇보다 그따위 쥐새끼 같은 생활은 내가 용납 못해. 그런 꼴로 사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
“그, 그러면….”
“선택지는 처음부터 하나밖에 없었다. 레그나토르 놈들도 그걸 원하고 있는 거야. 개 같은 놈들. 크흐흐흐흐흐…!”
실성한 사람처럼 웃어대는 엘리엇의 꼬락서니를 본 최길재는 더욱 불안해졌다. 그러나 그와 엘리엇은 이미 한 배를 탄 몸, 이제 와서 배에서 내리기엔 뭍이 너무 멀었다.
“이레시온에 투항한다. 그게 유일한 수다.”
“이레시온… 말입니까? 그들이 저흴 받아줄까요?”
“달리 대책이 있나? 우릴 받아줄 세력이라면 이레시온밖에 없지. 남부의 땅덩이와 휘하의 병력들을 데리고 망명을 청한다면 가능성은 있다. 적어도 빈털터리로 도망치는 것보다는 훨씬.”
“화, 확실히 그렇습니다.”
“내 예상이지만, 투항을 거부하진 않을 거다. 이레시온은 리베르타와 레그나토르의 급성장을 꽤 불편하게 여겼으니까. 증거는 조작된 거라고 잡아떼면 돼. 우린 어디까지나 정치적 박해로 인해 망명하는 거다.”
듣고 보니 그럴듯하다. 말대로만 된다면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하나 남아 있었다.
“솔라리스의 잔당들이야 그렇다 치고… 본국에서 데려온 병사들이 순순히 협력하겠습니까? 검신의 말 한마디라면 죽을 시늉이라도 하는 자들인데요.”
“그놈들은… 이레시온의 주둔군에게 맡겨야지.”
“저항이 생각보다 극심하다면….”
“당연한 걸 왜 묻나?”
최길재의 물음이 중간에 뚝 끊겼다. 그의 말을 잘라낸 엘리엇의 눈알은 섬뜩할 정도로 스산한 빛을 품고 있었다.
“다 죽인다. 주인을 무는 개는 필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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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총독 엘리엇의 배신.
청천벽력과도 같은 비보를 접한 리베르타 전국은 극심한 쇼크에 빠졌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대문짝만 하게 실린 조간 헤드라인을 접하고 엄청난 충격에 그대로 실신했다는 사람도 상당수란 모양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남부총독 엘리엇은 전쟁영웅으로서 리베르타 본국에도 상당한 지지층을 갖고 있는 인물이었으니까.
그런 위인이 갑자기 왜 배신을 한단 말인가? 내막을 모르는 시민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혼란해 빠지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이는 엄연한 현실이었다. 남부총독 엘리엇은 이레시온에 투항했다. 그것도 남부의 큰 땅덩이와 모든 기반 세력을 데리고서.
엘리엇의 소행에 난리가 난 것은 리베르타 정계도 마찬가지였다.
배신자 엘리엇과 직접 관련이 있고, 그와 밀접한 사이를 유지하는 이들이 대다수인 크라벨 일파의 분위기는 줄초상을 치른 듯 침통하기 짝이 없었다. 윤희지가 엘리엇의 부정을 폭로할 때만 하더라도 그를 비호하던 이들은 모두 입이 없어진 양 숨을 죽였고, 모두가 그와의 관계를 부정하며 꼬리자르기를 하기 바빴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엘리엇의 배신은 스스로의 허물을 자백하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이젠 엘리엇을 조금이라도 옹호하다간 똑같은 반역자로 낙인찍힐 판이었다.
후에 ‘검은 수요일’이라 불릴 이날의 여파는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되었다.
소식을 접한 크라벨이 실신한데 이어, 크라벨 계파를 이탈하는 인원이 갈수록 늘어만 갔다. 그와는 반대로 처음 엘리엇의 부정을 폭로한 윤희지 일파는 급속도로 세를 불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크라벨 계파를 떠난 이들이 모두 윤희지에게 흡수된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방식에 불만을 품은 이들이 상당수였기 때문이다.
부정을 폭로한 것까진 좋았지만, 그 방법이 신중하지 못했다. 게다가 내부 정쟁에 레그나토르라는 외세까지 개입시키면서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본래 그렇게 좋았던 적도 없긴 하지만, 이번 일로 인해 윤희지의 이미지는 더욱 나빠졌다.
두 여인 간의 다툼에 염증을 느끼고, 실망한 사람들이 모여든 쪽은 예전 윤희지 계파에 속해 있던 김상목이 중심이 된 중도파였다.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후계자도 없고, 어느 쪽의 편도 들지 않겠다. 오직 검신만을 추종하며, 후계 문제 또한 검신의 의중에 맡기겠다. 이것이 중도파의 지론이었다.
삽시간에 몰락하긴 했지만 아직 상당한 기반이 남아 있는 크라벨의 세력과, 다시 부상하는 윤희지의 세력, 그리고 새로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중도파까지. 세 세력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룬 리베르타의 정국은 이제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수라장이었다.
“당장 이레시온에 강력히 항의해야 합니다! 양아치 같은 짓도 정도가 있지,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짓입니다!”
“항의가 먹히기나 할 것 같아요? 애초에 그럴 거면 받아주지도 않았겠죠!”
“그럼 어쩌자는 겁니까?”
“싸워야지요!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리베르타의 이름이 우스워져요!”
“또다시 전쟁을 하자는 말입니까? 전쟁이 끝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요! 우리들이야 괜찮겠지만, 국민들이 견디지 못할 겁니다! 이전의 전쟁도 국력을 있는 대로 끌어 모았었는데……!”
“그 전쟁에서 취한 전리품을 고스란히 빼앗겼어요! 우리 병사들도 남부 땅에 억류되어 있고요! 그걸 두고 보잔 말인가요?”
주전론과 주화론, 서로 대립하는 두 개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선다. 두 주장 모두 일리가 있어 어느 한쪽을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내전의 상처가 아물지도 않은 상황에서 있는 대로 힘을 쥐어짜 솔라리스와의 전쟁을 치러낸 리베르타다. 그런 마당에 중부의 대국 이레시온과 또다시 전쟁을 치른다면… 국민들의 물적, 심적 부담감이 엄청날 것이다.
게다가 이레시온은 솔라리스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초강국이다. 당연히 김정인에 대한 대비도 철저할 터. 때문에 이전처럼 김정인에게 기댄 전술이 얼마나 먹힐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반대로, 가만히 있을 수만도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남부를 이대로 내준다면, 전쟁의 승리로 취한 이득이 모두 사라지는 게 된다. 또한 당장 내부에서부터 반발 여론이 들끓을 게 분명했다.
무리를 하더라도 다시 전시에 돌입할 것이냐, 국력이 회복되길 기다리며 우선 외교적으로 나설 것이냐.
어느 쪽이든, 선택은 오로지 김정인에게 달려 있었다.
“…사절은 보내지 않습니다.”
“…….”
정신없이 난장을 이루던 장내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리베르타의 모든 간부는 언쟁을 멈춘 채, 말없이 검신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엘리엇이 투항함과 동시에 이레시온의 군대가 솔라리스에 나타났습니다. 이는 명백히 사전에 약속이 오갔다고 볼 수 있겠지요. 이런 상황에서 외교 사절은 무의미합니다.”
무리 선두에 있는 윤희지의 얼굴색은 매우 어두웠다. 김정인의 말이 꼭 자신을 질타하는 것처럼 들린 탓이다.
‘당했어….’
어지러워진 리베르타의 정국과 엘리엇의 배신. 윤희지는 이 모든 게 노구덕의 숨은 의도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그녀를 도와주는 척하며 리베르타의 국력을 현저히 약화시켰다. 뒤에서 그가 움직이지 않고서야 엘리엇이 이토록 기민하게 반응할 리 없지 않은가.
윤희지 입장에선 어쩔 수 없었다지만, 결과적으로 나라를 저버리는 일에 앞장서서 힘을 보탠 셈이었으니 마음이 천근만근 무거울 수밖에 없다. 그 때문인지 그녀의 얼굴은 무척이나 괴로워보였다.
잠시 윤희지에게 눈길을 준 김정인은 딱딱하게 경직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레그나토르에 원병을 요청하겠습니다.”
“그 말씀은….”
“전쟁입니다. 지금 이 시간부로 전시 상황을 선포합니다.”
스르릉. 칼을 빼들고 일어난 김정인은 천천히 옥좌에서 내려왔다. 칼날이 발하는 서늘한 예기가 장내 한가득 서리처럼 내려앉았다.
“이레시온에 전하십시오. 당장 솔라리스의 주둔군을 물리고 반역자 엘리엇의 신병을 내놓지 않는다면, 리베르타의 분노를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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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어제 연참하고 오늘 쉬려고 했는데, 가게가 바빠져서 그러질 못했네요..
내일은 휴재 가능성이 높습니다.
쉬는 게 아니라, 이북 교정본을 검토해야 해서요.. 날잡고 후딱 진행하는게 집중도 면에서 나을 것 같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좋은 주말 되셨길 바라며.. 작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