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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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 안식의 밤
203# 안식의 밤
탁.
두꺼운 책자를 덮은 노구덕은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
“이제야 다 끝났군.”
벌써 늦은 밤이다. 집무실 안에는 그와 안세희, 안세영 자매만이 남아 잔업에 힘쓰고 있었다.
“어째 왕이 되니까 일이 더 많아진 것 같아. 종이냄새에서 벗어나긴 평생 글렀군.”
“폐하~ 그걸 이제야 아셨사옵니까? 그러니까 인력충원 좀 해주세요, 네?”
서류더미에 파묻히다시피 한 안세영의 푸념이다. 실소를 터뜨린 노구덕은 묵직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굳어버린 무릎에서 뿌드득 거리는 소리가 났다.
가볍게 스트레칭을하며 몸을 푼 그는 벽에 걸어놓았던 외투를 걸쳤다.
“슬슬 가 봐야겠군.”
“그러세요. 언니들도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세희 너도 가는 게 좋을 것 같다만.”
“저는 괜찮아요.”
살포시 웃은 안세희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신을 생각해주는 노구덕의 마음씀씀이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웠다.
“요 며칠 동안은 제가 거의 혼자서 폐하를 독차지했으니까, 오늘만은 언니들에게 양보하는 게 옳아요. 뭣보다 제가 가면 애들을 돌볼 사람이 없잖아요?”
“역시 우리 언니는 천사야.”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 보인 안세영은 머뭇거리는 노구덕을 채근했다.
“폐하, 어서 가 보시지요. 왕비님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 아녜요. 언니는 제가 책임지고 돌볼게요.”
“그래, 부탁한다.”
두 사람 덕분에 마음의 짐을 덜어낸 노구덕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방을 나섰다.
어두컴컴한 복도는 유난히 을씨년스러웠다. 콧속으로 스미는 으스스한 한기가 복잡한 심경을 깨끗하게 닦아주는 듯했다.
주위는 온통 적막에 잠겨 있었다. 으레 들려올 법한 사용인들의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늘만큼은 모두 축제를 즐기라는 의미에서 일찍 퇴근을 시켰기 때문이다.
그렇다. 바깥에선 한창 열띤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왕국 레그나토르의 개국과 그의 즉위식을 기념한 축제다.
전쟁이라는 폭풍이 들이닥치기 직전의, 마지막으로 즐기는 달콤한 휴식.
저벅, 저벅.
정처 없이 걷던 노구덕의 걸음이 어느 방문 앞에서 멈추었다. 익숙한 문손잡이를 쥔 노구덕은 노크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에 들어서자 익숙한 체취가 후각을 자극했다. 하얀 시트로 덮인 커다란 침대 위에는 막 엉덩이를 떼고 일어선 임유진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었다. 두 손이 뒤로 돌아간 것을 보니, 방금 옷을 갈아입으려던 듯했다.
“아, 여보. 일은 끝났나요?”
“응. 방금 들어왔어?”
“네. 저도 조금 전에 들어왔어요. 나름대로 바빴거든요.”
타오르는 듯 붉은 드레스에, 연한 화장기가 남아 있는 얼굴. 임유진은 배시시 웃으며 손을 내렸다.
“당신이 오기 전에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으려고 했는데… 이제 와서 나가달라고 해도 소용없겠죠?”
“당연하지.”
성큼성큼 다가선 노구덕은 개미처럼 가느다란 허리에 팔을 두르며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임유진 또한 자연스럽게 눈을 감으며 그의 입맞춤에 열렬히 호응했다.
혀와 혀가 음란하게 얽히며 타액으로 이루어진 실이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졌다. 집요하게 파고드는 그의 혀를 피해 고개를 뒤로 젖힌 임유진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전희는 됐어요. 우리, 침대로 가요.”
“바로?”
“시간이 없잖아요?”
노구덕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밤엔 임유진 말고도 만나봐야 할 여인이 셋이나 남아 있다. 밤을 꼴딱 지새워야 하는 건 기정사실이다.
가지런히 침대에 누운 임유진은 새근새근 숨을 몰아쉬며 그와 시선을 맞추었다. 수도 없이 그와 살을 섞었지만, 할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건 어쩔 수 없다. 그가 그녀를 원하는 만큼, 그녀도 그의 몸을 강렬히 원했다.
거대한 몸이 내려앉으며, 점점 그의 거친 숨결이 가까워진다. 문득, 임유진의 입술이 동그랗게 오므려졌다.
“…저, 아직 괜찮나요?”
“무슨 말이야?”
“저도 이젠… 나이가 꽤 들었잖아요. 분명 예전만은 못할 거예요.”
“허허. 그래서 걱정이야?”
임유진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까딱였다. 어슴푸레한 등불 아래 비친 얼굴엔 숨길 수 없는 불안감이 일렁였다.
“당신은 왕이 되었어요. 분명, 당신 옆에 설 여자들도 늘어나겠죠. 어쩌면 당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여자를 들여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몰라요.”
“음.”
노구덕은 옅은 신음을 흘릴 뿐, 단박에 부정하지 못했다. 당장 애매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여인이 있는 마당에, 어설픈 확언은 독이 될 뿐이다.
“아가레스트… 그녀도 있고, 당신이 중부로 보낸 서리여왕도 있죠. 어쩌면 유메도 가능성이 있을 수 있겠네요.”
“아니, 아가레스트는 그렇다 쳐도 나머지 둘은….”
“여자가 늘어나는 건 이제 상관없어요. 제가 고집부린다고 달라질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다른 애들도 같은 마음이겠죠. 하지만 당신의 관심이 멀어지는 건… 그런 건 싫어요. 늙고 추해지더라도, 당신이 지금까지처럼 사랑해줬으면 좋겠어요. 과분한 욕심인가요?”
불안에 싸인 눈동자가 은방울 같은 떨림을 보인다. 묵묵히 그녀와 눈을 맞춘 노구덕은 떨리는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전혀 과분하지 않아. 유진이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여자야.”
“여보….”
“너는 누가 뭐라 해도 내 첫 여자고, 이 나라의 국모야. 네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어. 그리고… 나이 먹는 게 뭐 어때서 그래? 내 나이가 몇인데. 그런다고 별 다를 게 있겠어? 우리 지금까지 잘 해왔잖아. 미래도 똑같아. 같이 늙고, 같이 사는 거지. 그리고 유진이는 그런 소리하긴 아직 한참 일러. 늙어 죽으면 내가 먼저일 텐데 말이야.”
“그, 그런 소리 말아요. 그런 말은 하는 거 아니에요.”
“그렇지? 그러니까 유진이도 그런 소리 마.”
“그럴게요.”
임유진은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살짝 붉어진 눈시울이 묘하게 색정적인 느낌을 자아냈다. 몸에 달라붙은 붉은 드레스와 맞물려, 아침 이슬을 머금은 빨간 장미를 보는 것 같았다.
‘여자는 울 때가 가장 예쁘다고, 누가 그랬더라?’
뚝. 그녀의 하얀 어깨에 걸쳐져 있던 끈이 동시에 끊어졌다.
“옷을 찢으면 어떡해요?”
“입은 채로 하고 싶어. 나중에 똑같은 거 하나 더 사줄게.”
“그래도… 아하아…!”
따져 묻는 임유진의 목소리가 점차 야릇한 고음으로 변해간다.
어느새 노구덕의 얼굴은 그녀의 가슴 한복판에 위치해 있었다. 어깨 끈이 끊어지면서 속박에서 풀려난 두 개의 거대한 융기가 그의 얼굴에 멋대로 비벼지며 이리저리 찌그러졌다. 그 사이에 머리를 묻고, 희미한 젖내음을 마음껏 들이마신 노구덕은 고래처럼 입을 벌려 한 쌍의 융기를 한꺼번에 빨아들였다.
“흐으으응…. 아, 아아!”
찌이이익!
육감적인 다리를 감싼 치마 밑단이 길게 찢어졌다. 그 사이로 손을 집어넣은 노구덕은 배배 꼬여 있는 허벅지 사이를 억지로 비집고 들어갔다.
촉촉하게 젖어있는 얇은 속옷 너머로, 보들보들한 육벽의 감촉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그의 아이를 낳고, 수백, 수천 번이나 그를 받아들인 사랑스러운 속살이다.
더 이상 참기 어려워진 노구덕은 풍만한 젖무덤에서 입을 뗐다. 잔뜩 상기한 젖무덤이 간신히 그의 손에서 풀려나며 사방으로 출렁였다. 보는 것만으로도 눈을 즐겁게 만드는 광경이다.
“하아, 하아… 어서… 와 줘요….”
“그러려던 참이야.”
학다리처럼 곧게 뻗은 다리가 한계까지 벌려졌다. 수줍게 입술을 뻐금거리는 분홍빛 꽃잎 위로, 탄탄한 아랫배에 걸친 붉은 드레스자락이 더욱 흥분을 돋운다.
“흐으으윽–!”
임유진의 아래턱이 힘껏 위로 당겨졌다. 곧게 펴져 있던 허리가 활시위처럼 휘며, 복숭아 같은 엉덩이가 위로 튕기듯이 들썩였다.
언뜻 고통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전혀 반대다. 크게 홉떠진 비취색 눈동자는 미칠 것 같은 쾌락에 물들어 있었다.
맞춤형 칼집에 칼을 쏙 집어넣은 것만 같은 황홀한 일체감. 오랫동안 사막을 여행하던 여행자가 마침내 오아시스의 단물을 들이켰을 때나 느낄 수 있는 전율이다. 머리가 하얗게 된 임유진은 바들바들 떨리는 허벅지로 힘껏 그의 하반신을 부여잡았다.
반면, 노구덕은 비할 수 없는 편안함을 만끽하는 중이었다.
임유진의 몸은 아늑한 온천 같았다. 부글부글 끓는 열탕에 깊숙이 몸을 담그면, 골수까지 찌들어 있던 피로가 한순간에 풀려버린다. 다른 여인은 결코 줄 수 없는, 오직 임유진만이 줄 수 있는 안락함이었다.
이제 나이 마흔. 그녀는 자신이 예전만 못하다고 했지만, 노구덕이 보기엔 절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여체는 건드리면 톡 터질 것만 같은 농염함을 뽐내고 있었다.
음식으로 빗대자면, 아주 얇은 피에 고기 속을 한가득 채워 넣은 만두가 딱이다. 한입 꽉 깨물면 풍부한 육즙이 콸콸 새어나오는 기름진 만두.
노구덕은 만두를 열심히 뜯고, 씹고, 핥고, 맛보았다. 구석구석, 육즙 하나 흘리지 않도록 남김없이 혀를 넣어 휘저었다. 만두가 어찌나 맛있던지, 아무리 먹어도 끊임없이 배가 고팠다.
“하앙, 학! 학! 학! 학! 히으으읏…!”
망연히 벌어진 채 거듭하여 비명을 흘리던 입술에서 짧은 단말마가 울렸다. 동시에 거센 노질에 맞춰 파도처럼 흔들리던 두 다리가 갑자기 빳빳하게 펼쳐졌다.
“흐아아아….”
시간이 멈춘 듯 정지해 있던 얼굴이 나른히 풀리며, 길게 맥 빠지는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랫배에서 느껴지는 포만감에 얼굴 한가득 미소를 띤 임유진은 사정을 끝내고 위로 엎어진 남편의 목덜미를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좋았어요.”
“또 할까?”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바탕 씨앗들을 토해내고 늘어져 있던 용머리가 벌떡 고개를 쳐드는 것이 느껴졌다. 복부를 들쑤시는 묵직한 감각에 깜짝 놀란 임유진은 얼른 도리질을 했다.
“안 돼요. 다른 애들이 남았잖아요.”
“으음, 빼기 싫은데….”
노구덕은 사랑스런 아내의 뺨을 쓰다듬으며 가볍게 투정했다. 노곤한 온천에서 발을 빼기 싫은 건 누구나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래도 안 돼요. 어서 일어나요.”
“쩝. 왕후마마의 명령을 거스르면 안 되겠지.”
“이이도 참…. 가만히 있어요. 제가 씻겨줄게요.”
“샤워실에 가면 되는데.”
“제가 하고 싶어서 그래요.”
노구덕은 마지못해 침대에 다시 누웠다. 침대 옆에 맑은 물이 담긴 대야와 수건을 준비해 놓은 걸 보니, 원래부터 이럴 작정이었던 모양이다.
거추장스러운 드레스를 벗고 알몸이 된 임유진은 물수건을 이용해 그의 온몸을 정성들여 닦아냈다. 그러는 동안, 얌전히 누운 노구덕의 눈은 온통 임유진의 신체 한 부위에 쏠려 있었다.
“이렇게 보니까 너무 야한걸. 허연 게 계속 나오는데…. 거기부터 닦아야 되는 거 아냐?”
“어, 어쩔 수 없잖아요? 당신 양이 너무 많아서 닦아도 소용이 없다고요. 아마 한동안은 계속… 앗! 이거 세우지 마세요.”
“저절로 서는 걸 어떡해? 이것도 어쩔 수 없는 생리현상이라고.”
“그럼, 눈 감으세요. 안 그러면 수건으로 덮어버릴 거예요.”
결국 노구덕은 투덜거리며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반쯤 벌어진 그곳이 꾸역꾸역 물을 토하는 걸 보면, 누구라도 아랫도리가 뜨뜻해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임유진의 손길을 음미하던 노구덕은 손을 뻗어 길게 늘어진 고운 머릿결을 만지작거렸다.
“…유진아, 이번이 마지막 전쟁이야.”
“…알아요.”
“변수가 너무 많아. 모든 게 계획대로 된다면 좋겠지만, 솔직히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 자신할 수 없어.”
가슴께를 쓸어내리는 손길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이길 수 있어요. 지금까지 그래왔으니까요.”
“그래…. 너희들과 함께라면, 분명히 이길 수 있겠지. 이겨야만 하고.”
“…당신을 믿어요.”
“하나 더. 말할 게 있어.”
바지런한 손길이 멈추었다. 감긴 눈 너머로, 그녀가 물끄러미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게 느껴졌다.
“실렌…. 그 녀석, 바깥으로 튕겨 나간 모양이야.”
“…그래요?”
“에덴에서 태어났다는데, 하필이면 거기에 티아마트가 나타났지.”
느닷없이 나타난 대재앙, 티아마트가 동부의 주도 에덴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은 건 익히 알려진 사실. 전생한 실렌은 거기서 또다시 죽임을 당했다.
“원래는 세 번째도 이곳에서 전생해야 하는데… 시스템이 망가진 탓에 밖으로 튕겨버렸다더군. 그런 경우가 적지 않은 모양이야.”
“그럼 실렌은….”
“욘의 눈이 미치지 않는… 바다 너머의 바깥 세계에서 지내고 있을 거야.”
“…잘 지내길 바라는 수밖엔 없겠네요.”
“그래야겠지….”
“이제 그만 놓아주세요. 당신은 최선을 다했어요.”
짝. 임유진은 그의 가슴팍을 세게 두들겼다. 실렌을 찾을 수 없게 된 것은 아쉽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제는 미련을 버려야 할 때였다.
“다 됐어요. 이제 다른 방으로 가 보세요.”
“괜찮겠어? 이렇게 보내도.”
“괜찮을 리 있을까요? 제 마음이 변하기 전에 어서 가시는 게 좋을 거예요.”
“흐흐흐.”
새침하게 말하는 아내의 이마에 쪽 하고 입을 맞춘 노구덕은 슬렁슬렁 침대에서 벗어나 옷을 챙겨 입었다.
잠시 뜨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아직 밤은 길었다. 각자의 방에서 오매불망 그의 발길을 기다리는 아내들에게 바가지를 긁히지 않으려면, 이제부터 부지런히 움직여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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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정실인 유진이는 조금 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