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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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 마신, 융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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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에는 수많은 신기와 신수, 성물 등이 존재한다.
사막의 전설이었던 성화, 야성의 결정체인 브루탈샤드, 천년을 살아온 왕뱀 브리트라 등. 근래에 등장한 신기들만 해도 한둘이 아니다. 유형에 따라 힘을 행사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모두 공통적으로 상식을 뛰어넘는 권능을 지녔다.
한데, 같은 권능을 지녔으면서도 여타 신기들과는 격을 달리하는 존재들이 있다.
바로 신(神)이다.
아벨, 론다리온, 다곤과 같이 한 개 이상의 교단을 지녔으며 무수한 추종자들을 거느린 권능의 정화. 세상은 그들을 신이라 부른다.
물론, 그들이 정말로 전지전능의 신, 요컨대 관리자 욘과 동격의 존재냐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시스템에서 태어난 부산물. 소위 신기라 불리는 것들이 어떤 기회로 말미암아 신격을 얻고, 고차원의 영성을 띠게 된 존재이다.
정의하자면 스퀘어의 신들은 실재하진 않으나 신기의 성질을 지니고 있고, 그 힘을 바라는 자들에게 힘을 빌려주는 영성체이다. 그리고 그 힘의 대가로서 신도들의 마력과 영력, 처치한 카름의 에너지를 일부 가져감으로써 손해를 벌충한다.
적어도 백 년, 길게 잡으면 수백 년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존재들의 카르마 에너지와 영력을 먹어치우며 이차원에서 힘을 길러온 신이란 존재.
그러한 존재가 현세에 강림한다면, 그 권능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검신이라 불리는 남자, 김정인은 그 해답을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우욱!”
식도를 역류하는 핏물을 간신히 눌러 삼킨 김정인은 울렁이는 속내를 진정시킬 겨를도 없이 재빨리 몸을 날렸다. 그가 간발의 차이로 몸을 피한 순간, 적색의 빛줄기가 그가 머물던 공간을 갈가리 찢어버렸다.
콰콰쾅!
동서남북, 네 방향의 대로가 교차하는 중앙 광장에 또 하나의 길이 생겼다. 마신의 손에서 뿜어진 적색의 광선은 도심 시가지를 일직선으로 쓸어버리며 거대한 고랑을 만들어버렸다.
쿠쿠쿠쿵…!
아득하게 멀리 떨어진 곳에서 어렴풋한 굉음이 들려왔다. 광선에 직격 당한 성벽이 허물어지는 소리였다.
힐끔 눈을 돌려 그 위력을 확인한 김정인의 낯빛이 어둡게 변했다. 도심의 반절을 파괴하고도 모자라 수십 킬로미터가 떨어진 성벽까지 그 위력이 미칠 정도라니. 이건 생각보다 훨씬 더한 괴물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다행스런 생각도 들었다. 저 광경을 보았다면, 분명 바깥쪽에 주둔중인 리베르타 군이 멀리 물러났을 테니까. 이곳에 오기 전 강하게 지시를 남긴 것도 이런 일을 예견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걱정해야 할 것은 김정인 그 자신의 안위뿐이었다.
-어때? 제대로 할 마음이 들었어?
뿔 달린 염소 머리가 앳된 소녀의 목소리를 내는 꼴이 더없이 기괴했지만, 김정인은 그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마신 융펠. 잘못하면… 이쪽이 죽는다.’’
우르슬라가 어떻게 마신화(魔神化)했는지, 그 정확한 사정은 모른다. 하지만 어렴풋이 짐작가는 건 있었다. 라이오넬 시절부터 세심하게 구축해 놓았던 정보망 덕분이다.
오키도의 대참사. 우르슬라는 그 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분명했다. 당시 일을 벌였던 주범, 바이론은 발레기우스의 벌레교단과 연계하고 있었고, 우르슬라는 그 발레기우스의 수하다. 아마도 우르슬라는 그때의 데이터로 얻어낸 지식과 술식들을 동원해 이차원의 마신을 강림시킬 수 있는 술식을 완성시킨 것일 터.
마신 융펠의 현신은 그 결과물이다.
우르슬라 혼자라면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지만, 이번 일에 발레기우스의 입김이 강하게 닿아 있다면 설명이 된다. 어쨌거나 그는 마신조차 발아래로 두는 창조주의 그림자였으니까.
김정인은 검을 고쳐 잡았다. 그리고 장난스럽게 손을 까딱이는 우르슬라의 정면을 응시했다.
“이레시온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겁니까?”
-으응? 뭐라는 거지?
“조만간 당신이 벌인 만행을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될 겁니다. 이레시온의 편에 서는 이들은 이제 아무도 남지 않겠지요.”
-아, 아아아…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상관없어. 시끄럽게 떠들면 죽이면 그만이야. 여긴 주인께서 다스릴 땅이 아니잖아?
잔인한 속내를 내보이는 우르슬라의 대답은 이미 예상했던 바였다. 센츄라스에서도 자폭 골렘들을 동원해 도시를 송두리째 날려버리려고 했던 놈들이었으니, 이제 와서 무슨 학살극을 입에 담든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김정인이 뻔한 말을 꺼낸 것은 이죽거리는 우르슬라의 의표를 찌르기 위해서였다.
“발레기우스가 다스리는 세계에 당신 자리는 없을 겁니다.”
-…뭐?
“보면 압니다. 그 힘을 유지하는 데엔 한계가 있을 테니까요. 애초에 당신 본연의 힘이 아니니까. 제한 시간이 끝나면… 당신은 소멸합니다. 발레기우스의 최측근인 당신이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나선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요.”
-…….
“당신의 역할은 그저 시간벌이입니다. 발레기우스가 힘을 완벽히 흡수하기 전까지…….”
-그게… 어쨌다는 거야!
돌연, 우르슬라의 염소머리에 지렁이 같은 핏줄이 돋아났다. 찢어져라 입을 벌린 우르슬라는 키히힝거리는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적색 광선을 뿜어댔다.
-멍청한 놈이, 뻔한 말을 잘났다는 듯 지껄이지 마!
“흡!”
콰콰콰콰콰—!
팽이처럼 회전하며 내뿜어지는 적색 광선의 공세는 그야말로 휘몰아치는 폭풍우나 다름없었다. 그 소용돌이에 휘말린 도시는 삽시간에 황폐한 폐허로 변했다. 대도시 마르타가 한 번의 공세에 그대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 경악스런 위력에 압도당한 김정인은 감히 맞상대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회피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다.
줄기줄기 쏟아지는 빛의 폭우를 피해내는 그의 몸놀림은 신묘하기 짝이 없었다. 도저히 피할 간격이 없어 보이는 공세도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듯 회피하는 그의 동작은 거의 신기(神技)에 가까워, 절로 경탄이 일 지경이었다.
단 한 사람, 우르슬라를 제외하면.
-미꾸라지 같은 녀석!
소낙비처럼 내리퍼붓는 공세가 더욱 강력해졌다. 이제 그들의 주변은 도시가 있었다는 흔적도 찾기 어려웠다.
쩍쩍 갈라진 상처 속에서 시뻘건 속살을 드러낸 대지는 연옥으로 화했고, 검게 피어오른 연기로 가득한 하늘에선 태양이 자취를 감추었다. 불타오르는 천지에 보이는 거라곤 눈발처럼 흩날리는 검은 재와 끊임없이 대지를 불태우는 붉은 섬광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 무시무시한 공세를 받아내는 김정인의 눈은 잔잔한 호숫가처럼 흔들림이 없었다. 미처 피하지 못한 광선에 닿은 피부가 갈라지고, 그 속에서 뼈가 드러나도 마치 남의 일처럼 담담했다.
과도하게 분비된 아드레날린 때문에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일까?
그건 아니다.
그는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온 정신과 신경을 집중해 우르슬라의 빈틈을 노리고 있었다. 거기에 피륙의 통증이 끼어들 틈 따윈 없었다.
‘오래 가지 못한다. 틀림없이 힘이 약해지는 구간이 생긴다.’
-아하.
침착하던 김정인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갑자기 나직한 탄식과 함께,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았던 빛의 폭우가 잦아들었기 때문이다.
사라져버린 빛무리 속에서 나타난 건 뿔을 들썩이며 킬킬거리는 염소의 머리였다.
-너, 예전에도 그랬지? 에드가와 싸웠을 때 말이야.
섬뜩하게 희번덕거리는 눈을 마주한 김정인의 등 뒤로 식은땀 몇 방울이 돋아났다. 어쩐지 굉장히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내가 지치길 기다려서 틈을 노릴 생각인가 본데… 킥킥.
읽혔다.
김정인이 척추를 타고 흐르는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 발을 내딛으려는 찰나, 염소의 형상을 한 마신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너, 날 아주 물로 봤어.
하늘을 뒤덮은 검은 날개가 무섭게 펄럭이며 강풍을 일으킨다. 마신의 거체가 위로 떠오르자, 김정인은 중심을 잃지 않게 자세를 낮추며 반격을 준비했다.
하지만 이어진 마신의 행동은 그의 예상을 한참 벗어나버렸다. 푸드덕푸드덕 날갯짓을 하며 폐허 위로 떠오르더니, 그대로 지상의 김정인을 지나친 것이다.
-키키킥. 네가 오지 않겠다면 좋아. 저기 바깥에서 꾸물대는 버러지들부터 처치해주겠어. 이히히히히히히힛!
“……!”
아련히 멀어지는 우르슬라의 잔소(殘笑)는 뒤에 남겨진 김정인의 낯빛을 단숨에 창백하게 만들었다.
뒤늦게 활성화된 그의 기감으로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도시 주위를 배회하는 익숙한 기척들을. 분명 도시에 진입하기 전, 무슨 일이 생기면 무조건 뒤돌아보지 말고 후퇴하라는 지시를 지척에서 들었던 지인들이었다.
꽈득. 이를 악문 김정인은 혼신의 힘을 다해 우르슬라의 뒤를 쫓았다. 제발 늦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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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슬라의 광선이 성벽을 허물어뜨리고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었을 때, 김정인은 당연히 바깥에 주둔한 병력들이 물러났으리라 여겼다.
리베르타 군에 있어서 검신의 말은 절대적이었고, 전시 상황에서 그의 명령을 어긴 이는 지금까지 단 한 사람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대체적으로 그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마신이 발휘한 가공할 파괴력을 목격한 리베르타 군은 김정인의 명을 따라 후방으로 물러나려고 했다. 김정인의 명령도 명령이지만, 시뻘겋게 솟구치며 도시를 양단하는 마신의 힘이 너무나도 엄청났던 탓이었다.
“우리가 감히 끼어들 수 없는 싸움이다. 여기 있어봤자 병단의 피해만 커질 것이다.”
부사령관 김상목과 휘하 간부들은 그렇게 판단하고 군을 물리려 했다. 하지만 모두가 그 결정에 따른 것은 아니었다.
“싫어! 난 갈 수 없어!”
명령에 불복하고 나선 것은 크라벨이었다. 그녀의 반발은 부사령관 김상목을 상당히 난처한 입장으로 만들었다.
리베르타 군 내에서 크라벨이 차지하는 위치는 무척 미묘했다. 군 편성대로라면 그녀의 지위는 분명 그의 아래지만, 그녀는 김정인의 아내이자 한 일파의 우두머리이기도 했다. 다른 이라면 모를까, 정공으로 밀어붙이기엔 만만찮은 상대였던 것이다.
“크라벨 님, 주군께선 후퇴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저것만 봐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 않습니까.”
“나도 알아! 그러니까 당신들은 뒤로 빠져. 방해되지 않도록 나 혼자 갈 테니까.”
“…주군의 명령을 어기실 참입니까?”
“호호호!”
김상목의 서슬 퍼런 물음을 마주한 크라벨은 별안간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부사령관.”
“말씀하십시오.”
“난 그 사람의 아내야. 뭐, 나나 내 아들이나 제대로 된 가족 취급은 못 받고 있지만…. 그래도 도리라는 게 있잖아?”
“…….”
“그런 비정한 사람이라도 나는 사랑해. 그러니 사지에 홀로 두고 갈 순 없어. 내 아들이 아비를 여의게 할 순 없다구.”
엄하게 다그쳤던 김상목은 도리어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거의 확실시 되던 대권을 잃어버리고 사소한 일에도 신경질적이 되어 말투조차 변해버린 그녀였지만, 오늘따라 자조어린 크라벨의 얼굴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그의 눈에 비친 그녀는 이제까지의 권력욕에 미친 여자가 아니라, 아픈 상처에도 헌신을 다하는 한 여인일 따름이었다.
“그분께서… 패배하기라도 한다는…?”
“그런 말은 한 적 없어. 다만, 만약이라는 게 있을 수 있으니까. 그 사람은 당신들이 보는 것처럼 완전무결한 사람이 아냐. 하물며 신도 아니지. 아마… 윤희지, 그 여자라면 내 말에 동감할 걸.”
콰콰콰콰콰—!
때마침 전방위로 밀려든 핏빛의 광채가 도시 전체를 초토화시키며 귀가 먹먹한 굉음을 울려 댔다.
장장 수십 킬로미터에 달하는 성곽이 남김없이 폭삭 내려앉는 광경을 본 김상목의 눈은 급격히 흔들렸다. 도대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어쩌면… 크라벨 님의 말대로 정말로…….’
“난 가겠어. 부사령관은 다른 병력과 같이 뒤로 물러나기나 해.”
“저도 갑니다.”
“뭐어?”
깜짝 놀란 크라벨이 눈을 돌렸으나, 이미 김상목은 당황하는 다른 간부들에게 지휘권을 인계하는 중이었다.
잠시 후, 태연히 지휘권 인계를 마치고 돌아온 김상목의 옆에는 앳된 여인이 한 명 더해져 있었다.
“…저도 가겠어요.”
“그렇게 되었습니다.”
“…흥, 마음대로 해. 나중에 날 탓할 생각은 하지 말고.”
김상목과 이진주, 두 사람의 결연한 얼굴을 번갈아 쳐다본 크라벨은 냉랭히 코웃음을 치며 기수를 돌렸다. 매몰찬 그녀의 반응에 머쓱해진 두 사람은 말없이 그녀의 뒤를 쫓았다.
하지만… 그저 착각이었을까? 무심히 고개를 돌리기 직전, 언뜻 비친 크라벨의 마지막 얼굴엔 분명 희미한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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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우선 한편입니다. 다음화는 저번화 후기에 적었듯 저녁에서 열두시 사이에 올라갑니다. 아마 열두시 정도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약 12시간 뒤 다음화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