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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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 마신, 융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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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나는 리베르타의 군대를 뒤로 하고,
충성을 바치는 주군을, 사랑하는 남편을 구하기 위해 말을 달린 세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고삐를 잡아당길 수밖에 없었다.
“저게… 뭐지?”
고삐를 뒤로 잡아챈 크라벨의 나직한 물음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었다. 대꾸를 해줘야 할 김상목과 이진주, 두 사람 또한 아연실색하여 입이 다물린 탓이다.
하기야 전면의 광경을 본다면 누구라도 경악할 수밖에 없으리라.
세 사람의 질주를 멈춘 것은 마르타 상공에 떠오른 검붉은 짐승이었다. 어지러이 흩날리는 재 때문에 자세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나, 저건 분명 살아 움직이는 짐승, 아니 괴물이었다.
약 십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날개와 마왕의 형상처럼 말려 올라간 두 개의 뿔, 지옥불을 휘감은 듯 붉게 빛나는 양 팔과 다리. 저 괴물은 이야기 속에서나 전해 내려올 법한 악마의 형상을 그대로 본떠 놓은 듯했다.
모공 세포가 쭈뼛하고 일어나며, 겨우 진정시킨 심장이 다시금 와들와들 격동을 일으킨다.
다른 설명은 필요치 않았다. 세 사람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 괴물이 바로 중도시 마르타를 날려버린 원흉이라는 것을. 저 존재가 만이 넘는 군세를 질식시킨 가공할 존재감의 정체였던 것이다.
“웃….”
“…….”
“누, 눈을… 마주쳤어요.”
가장 시력이 좋은 이진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 사람의 목젖이 동시에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리고 날개를 펼친 악마의 형상이 방금 전보다 훨씬 더 커졌다고 인지한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급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피햇!”
“산개(散開)…! 헉!”
-키히히히히히!
몸이 기우뚱하는 것을 느낀 김상목은 크게 기함했다. 공간을 찢고 튀어나온 붉은 손톱이 김상목이 탄 말의 목을 무참하게 베어버린 것이다. 그와 함께 육중한 날개가 홰치듯 휘둘러지며 그의 몸뚱이를 강하게 후려쳤다.
“크아아악!”
혼신의 투기로 몸을 감쌌음에도 불구하고 창자가 뒤집어지는 듯한 통증이 엄습했다. 기습을 당한 김상목은 울컥 피화살을 뿌리며 수십 미터 뒤로 날아갔다.
그때, 김상목을 날려버리고 유유히 몸을 돌리는 마신의 발밑에서 거대한 흑염(黑焰)이 치솟았다. 어두컴컴한 일대를 한순간 환하게 밝힐 정도로 거대한 불기둥이었다. 마신이 김상목을 날려버리는 틈을 타 몸을 피한 크라벨이 기민하게 반격을 가한 것이다.
“죽어버려어엇-!”
격렬히 불타오르는 대기가 광포하게 포효했다. 일시에 마력을 폭발시킨 크라벨의 공세는 난데없이 나타난 마신은 물론이고 그 주변의 모든 것을 새하얗게 불살라버렸다.
어린 나이에 ‘붉은 봉황’ 임유진을 라이벌로 삼겠다고 본인 앞에서 공언한 크라벨이다. 한때의 치기어린 발언이긴 했지만, 그만큼 그녀의 재능은 대단했다. 그 잠재력이 만개한 지금은 거의 십존과 비견될 정도이니, 순수한 마력의 힘으로만 따지자면 리베르타 최강이다. 괜히 한 일파의 우두머리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이번엔 상대가 너무 나빴다.
-너, 누군지 알겠다. 크라벨이던가? 검신의 아들을 낳은 계집이었지?
“……!”
활활 타오르는 흑염의 장벽을 뚫고 나타난 길쭉한 팔이 갈고리처럼 휘둘러지자, 주문에 집중하던 크라벨의 낯이 시퍼렇게 질렸다. 어쩐 일인지 체내의 마력이 동결된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니!”
경악한 이진주가 급히 볼텍스(Vortex) 탄을 연달아 쏘아 보냈지만, 우르슬라는 가볍게 팔을 휘젓는 것만으로 그녀의 공격을 와해시켰다. 애초에 크라벨의 흑염으로도 어쩌지 못한 마신을 그보다 격이 떨어지는 이진주의 힘으로 상처 입힐 수 있을 리 없었다.
마력이 묶여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된 크라벨의 동공이 크게 지진을 일으켰다. 방금 전, 말머리가 단번에 잘려나가는 장면을 머릿속에 투영한 그녀는 오들오들 몸을 떨며 필사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마신은 서두르지 않았다. 우르슬라는 엉금엉금 바닥을 기는 크라벨의 발악을 즐기듯, 깔깔 웃으며 그녀를 농락했다.
-더 열심히 도망쳐 봐. 멈추는 순간 머리통을 쪼개줄 테니까. 키히히힛!
뒤에서 요란하게 웃어젖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힘없이 풀려버린 다리는 여전히 말을 듣지 않는다. 이를 악문 크라벨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오로지 필사적으로 기어가는 것. 지금은 이것만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죽기 싫어. 죽기 싫다고!’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지금은 그저 살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살아서 아들을 다시 볼 수만 있다면…!
어느 순간, 습기어린 얼굴로 바닥을 기던 크라벨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뒤에서 낄낄대던 악마의 목소리가 갑자기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돌아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개를 돌리면 그대로 죽어버리는 게 아닐까? 찰나지간 수많은 갈등이 일었다.
그런 그녀의 갈등을 해소해 준 것은 나직하게 울린 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크라벨.”
귀를 울리는 익숙한 부름.
땅만을 보고 있던 크라벨의 머리가 서서히 위로 올라갔다. 낯익은 발이 보이고, 이어 낯익은 다리와 몸이 보였다. 아까와는 달리 엉망진창이 되어 추레해진 행색이었지만, 차분한 그 얼굴만은 전혀 달라진 게 없었다.
갑자기 힘이 쭉 빠졌다. 무사한 그를 보니 가까스로 몸을 지탱하고 있던 긴장의 끈이 뚝 끊어져버린 거다.
그래도 좋았다. 나사 빠진 인형처럼 바닥에 드러누운 크라벨은 배꽃처럼 환한 미소를 지었다.
“당신.”
“왜 물러나지 않았습니까?”
“무사…했네요…….”
건장한 팔뚝이 늘어진 몸을 일으켜 세운다. 갑작스레 김정인의 품에 안기게 된 크라벨은 깜짝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치뜨며 시선을 위로 향했다.
거듭된 격전으로 피로가 쌓인 것일까? 그녀를 안아 든 김정인의 파리한 얼굴은 엄한 질책으로 굳어져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염려 섞인 미세한 온기도 느껴졌다.
“왜 제 말을 듣지 않았냐고 물었습니다. 경우에 따라선 문책을 할 수도 있습니다.”
“…처음이야.”
“크라벨.”
“당신이 날 생각해 준 거. 이번이 처음이에요.”
김정인의 눈동자가 가볍게 흔들렸다. 동문서답을 이어가는 크라벨은 이제껏 보지 못했던 따뜻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세상을 다 가진 듯, 헤실헤실 웃는 그녀에겐 이제 주변 상황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 같았다.
이래선 대화가 되지 않는다. 김정인은 우선 크라벨과 이진주, 김상목을 피신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시답잖은 이야기로 시간을 낭비할 만큼 현 상황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으니까.
바보처럼 해맑은 크라벨에게서 눈을 뗀 그는 곧장 우르슬라의 낌새를 살폈다. 크라벨을 조롱하며 낄낄거리던 우르슬라는 그의 기습에 의해 수천 조각으로 갈라져 산산이 분해된 상태였다.
‘아우터 블레이드(Outer blade)로 얼마간의 시간은 벌었다. 이대로 마신이 소멸한다면 좋겠지만… 그럴 리는 없겠지.’
-아아, 아프네. 너무 아프잖아. 칼도 휘두르지 않고 내 몸을 이토록 찢어놓다니. 북부 촌놈들이 말하는 심검(心劍)? 이게 그런 건가? 이게 검신의 진면목이라 이거야?
김정인의 눈에서 사자와 같은 기염이 토해졌다. 그러자 피웅덩이 속에 파묻힌 채 반쯤 재생된 얼굴로 이죽거리던 우르슬라의 머리가 재차 잘게 조각나며 소멸해버렸다. 단지 물리적으로 베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마신의 육신 자체를 말살시킨 것이다.
Lv6의 검술 재능. 헌터를 초월한 무궁한 잠재력은 그의 검을 마침내 시스템의 제약에서 벗어나게 만들었다.
그 결실이 바로 이 기술, 아우터 블레이드다. 그의 의지가 담긴 검기는 마력과 신성력, 투기를 가리지 않고 파괴하며 그 근원을 소멸시킨다. 그 파괴력은 이차원의 신조차 예외를 두지 않았다.
하지만 마신은 그 존재를 이루는 ‘양’이 너무 많았다. 아우터 블레이드에 베일 때마다 그 힘의 절대량은 확실히 줄어들고 있었으나, 단번에 소멸에 이를 정도는 아니다. 수만의 목숨에서 갈취한 어마어마한 마력은 연거푸 죽임을 당하는 마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되살리는 근원이었다.
-그렇다곤 해도… 이건 확실히 무섭네. 역시 특별해. 주인께서 경계하시는 이유를 알겠어.
금세 다시 원형을 찾은 마신의 머리. 김정인은 우르슬라의 동정에 주의를 기울이며 이진주에게 크라벨을 넘겨주었다.
“진주야. 내가 시간을 끄는 동안, 크라벨을 데리고 빨리 피해라.”
“정인 오빠….”
“어서.”
-글쎄, 도망칠 곳이 있을까? 소용없는 짓이야. 내가 마음만 먹으면….
콰아아아아앙–!
질척이는 피웅덩이에서 솟아난 손끝에서 예의 그 적색 광선이 뿜어졌다. 너른 들판을 둘로 쪼개며 뻗어나간 적색 빛무리는 삽시간에 저 멀리 지평선의 끄트머리에 맞닿으며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이곳까지 지진의 여파가 전해질 정도니, 모르긴 몰라도 폭발의 근원지는 완전히 쑥대밭이 되었을 터.
“…아.”
먼 곳에서 일어난 폭발을 본 이진주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크라벨을 데리고 당장 떠나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저 방향… 붉은 광선이 휩쓸어버린 저 경로의 끝 지점에 있는 건, 멀찌감치 물러난 리베르타의 병력들이었으니까.
-살짝 빗맞은 것 같은데… 천? 아니… 이 천 정도인가? 그래도 꽤 많이 죽었네. 으히히힛….
‘천? 이 천? 마, 말도 안 돼. 거짓말이야.’
간신히 땅을 딛고 선 이진주의 다리가 덜덜 떨렸다. 뒤죽박죽이 된 머릿속에 떠오른 아비규환의 참상이 무덤 속 망자처럼 되살아나 발목을 붙들었다.
이어서 나타난 건 가로로 길쭉하게 째진 염소의 눈알이었다. 그 눈알과 마주친 이진주는 거미줄에 걸린 것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검은 염소의 입에서 튀어나온 길쭉한 혓바닥이 두개골을 갈라, 말랑말랑한 두뇌 피질을 갈라놓을 때까지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극심한 공포에 빠진 이진주가 무력화된 사이, 완전히 팔을 복구한 우르슬라는 또다시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 무시무시한 손가락은 이번에도 여전히 같은 방향을 향한 채였다.
김정인이 그 만행을 가만히 두고 볼 리 없었다. 그는 재차 무형의 검기를 일으켜 우르슬라의 손을 잘라버렸다. 이처럼 마구잡이로 남용할 만한 기술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찬밥 더운밥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그는 초재생을 반복하는 우르슬라의 육신을 베고, 또 베었다. 더 이상 작은 신체의 일부라도 재생하는 걸 용납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폭주하는 우르슬라를 막기 위해 온 정신을 집중한 김정인.
다시 말해, 다른 곳을 살피던 그의 신경이 그만큼 허술해졌다는 얘기다.
그건 곧 돌이킬 수 없는 천추의 한이 되어 돌아왔다.
“헉, 헉, 헉!”
-모자라. 한참 모자라.
거친 숨을 몰아쉬는 김정인의 머리가 벼락같이 쳐들렸다. 지금 들린 우르슬라의 목소리, 그건 그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들려왔던 것이다.
-검신, 방심했지? 방심했잖아. 끼히히히히…!
피로에 찌든 김정인의 얼굴이 캄캄한 색으로 얼룩진다. 평생 처음 맛보는 절망감이 녹초가 된 그의 다리를 무겁게 만들었다.
대체 언제 몸을 나눈 것일까.
마신, 우르슬라는 좀비처럼 동공이 풀린 채 주저앉은 이진주의 옆에 서 있었다. 마치 원래부터 거기 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하나도 이상할 것 없다는 태도로.
염소머리 악마의 손에는 붉은 머리를 늘어뜨린 크라벨의 목줄이 쥐어져 있었다. 청색으로 물든 크라벨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숨이 끊길 듯 위태롭게 보였다.
크라벨의 목을 쥔 우르슬라는 길쭉한 하관을 꿈틀거리며 이죽거렸다.
-언제부터냐고? 처음부터였어. 피로 씻겨낸 이 땅은 마신 융펠의 권역. 언제 어디서든 나는 존재해. 바보, 몰랐던 거야? 호호호호.
“멈춰….”
-네 탓이야. 방심을 하니까 이런 꼴을 당하는 거지. 그러게 처음부터 최선을 다하란 말이야.
“멈춰라!”
의지를 실은 아우터 블레이드가 마신의 팔을 노리고 날아든다. 하지만, 그보다는 우르슬라의 손에 힘이 실리는 속도가 더 빨랐다. 그의 대응을 미리 예상하여 사전 행동에 들어간 덕분이었다.
콰직!
마신의 완력을 견뎌내기엔 인간 여성의 목은 너무 연약했다. 망연히 치떠진 눈에서 생기가 빠져 나가고, 미미하게나마 홍조가 서렸던 볼에선 혈색이 가신다.
그 순간, 김정인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작게 벙긋거리는 그녀의 입술이 전하는 서글픈 단말마를.
‘안녕.’
뼈와 살점이 뒤섞인 핏줄기가 여러 가닥으로 솟구치며, 참수당한 붉은 머리가 삭풍을 이기지 못한 낙화(落花)처럼 외로이 떨어져 내렸다.
============================ 작품 후기 ============================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예약으로 올라가는 것이기에 12시 7분입니다…
원래는 두 편으로 예상했는데, 한 사람 보낼 때가 되니 분량이 길어지더군요. 그래도 가는 길에 등장 비중을 좀 높여 주고 싶어서 이것저것 해주다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다음화 비중이 상당히 큽니다. 김정인 에피소드 결착이기도 하지만 노구덕 스토리 쪽에도 미치는 영향이 커서요.
참, 전전화였나… 성갑왕에 대해 ‘격살’이란 표현을 사용했었는데요. 코멘트를 읽어 보니 확실히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 같아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전전화에도 ‘신’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코멘이 있었는데, 저번화 설명으로 이해에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그외에 궁금하신 점 있으시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그럼 작가는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독자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