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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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 시온으로
노구덕의 말이 끝나는 순간, 오른팔에 감겨 있던 칠흑의 마기가 무릴로의 전신에 옮겨 붙었다.
삽시간에 칠흑의 그림자로 화한 무릴로는 시뻘건 안광에서 흉흉한 기운을 내뿜었다. 어비스를 다스리는 지배의 대악마, 마스테마와 동화한 것이다.
일전에 무릴로가 저 모습으로 발레기우스와 호각지세를 이루었던 것을 기억한 노구덕은 눈두덩을 꿈틀거리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까다로운 상대이긴 하지만, 리베르타 쪽에 나타났던 마신 융펠에 비하면 훨씬 사정이 나은…….
“…염병할. 하여튼 이놈의 김칫국만 들이켜면 꼭 재수가 없더라니.”
잠깐 사이에 무릴로의 그림자가 다섯 개로 늘어난 것을 본 노구덕은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었다.
다섯 개로 나뉜 무릴로의 모습은 그 형상이 제각각이었다. 무릴로 본연의 모습에 그림자를 덧씌운 것 같은 가운데의 형상을 제외하면, 나머지 그림자는 대낫을 든 놈, 팔다리가 길쭉한 놈, 꼬리가 달린 놈, 머리가 두 개로 갈라진 놈 등 저마다 가진 특징이 달랐다.
특히 대낫을 들고 둥실둥실 떠 있는 그림자의 모습이 무척이나 낯익다. 덕분에 노구덕은 금세 그림자들의 정체를 파악했다.
“어쩐지 쉽게 가나 했다. 어비스쉬라인의 악마들을 모조리 데리고 온 게로군. 저 낫을 든 놈은 그림리퍼의 모태였던 니베리우스인가 뭔가 하는 놈일 테고…… 흠!”
채찍처럼 파고드는 그림자의 일격을 피한 노구덕은 절레절레 머리를 흔들었다. 아무래도 어비스의 악마들은 그의 주절거림을 끝까지 들어줄 정도로 성미가 느긋하지 않은 듯했다.
그리고 그건, 노구덕도 마찬가지였다.
‘어비스의 악마들에 대해선 대강 알고 있다. 그중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할 놈은….’
지금 보이는 악마는 모두 다섯 마리로, 신소율이 가진 부정의 위리놈을 제외한 나머지다.
지배의 마스테마, 죽음의 니베리우스, 분노의 카시우스, 탐욕의 네스토, 죄악의 헥토르.
그중 노구덕의 타깃이 된 개체는 머리가 두 개로 갈라진 그림자, 탐욕의 악마 네스토였다.
‘흡수 능력이 있는 놈. 살려두면 가장 골치 아픈 놈이지.’
발레기우스가 일으킨 괴질에 유일하게 영향을 받지 않는 단 한 사람, 노구덕.
벌레교단 비전의 정수를 한 몸에 담은 그의 속도는 심연에 상주하는 악마들의 감각마저 뛰어넘을 정도로 재빨랐다.
하나 움직임을 놓친 것도 잠시 뿐, 그의 눈에서 적의를 읽어낸 악마들은 예상보다 빠르게 반응했다.
쩌어어억! 가위처럼 갈라진 네스토의 머리가 식충식물처럼 벌어지며 노구덕의 주먹을 덮쳐왔다. 그의 주먹을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몸을 먹어치우겠다는 속셈 같았다.
늑대처럼 아가리를 벌린 네스토는 노구덕의 팔을 냉큼 깨물었다. 그러자 네스토에게 물린 팔꿈치 주변부터 까만 먹물 같은 기운이 들불처럼 번져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런 개 같은 놈이…!”
이맛살을 찌푸린 노구덕이 연방 투기를 난사했지만 팔을 입에 문 네스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불사투기에 꿰뚫린 그림자도 금방 원래대로 복구되었다. 아무래도 단순한 물리력으로는 놈에게 제대로 된 상처를 줄 수 없는 듯했다.
네스토를 먼저 노리려다 도리어 역공을 당한 노구덕이 쩔쩔매는 동안, 다른 악마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크윽!”
네스토를 떨쳐 내기 위해 마구 팔을 휘두르던 노구의 입에서 거친 신음이 흘러나왔다. 느닷없이 장막처럼 펼쳐진 검은 기운이 엄청난 압력으로 그의 전신을 짓눌렀기 때문이다. 마치 그의 주변만 백배가 넘는 중력이 작용하는 듯했다. 그 무시무시한 압력에 노구덕의 주변에 널브러져 있던 악마들의 시체가 모조리 납작하게 찌그러져 땅 속으로 스며들었을 정도였다.
거대화한 실체를 이용해 노구덕의 하체를 땅에 말뚝처럼 박아버린 악마는 사지가 길쭉길쭉했던 그림자, 분노의 카시우스였다.
카시우스와 네스토에게 붙잡힌 노구덕이 옴짝달싹도 할 수 없게 되자, 이번에는 지배의 마스테마가 길게 입김을 불어냈다.
후우우우…!
심연의 왕 마스테마의 숨결은 생과 사를 갈라놓는 죽음의 강.
심연의 강물에 휩쓸린 영혼들이 마구 울부짖으며 노구덕의 육신을 더듬었다. 산 자의 생기를 빼앗고 종래엔 그 영혼마저 꺼내어 끌고 가는 망자의 손길이었다.
셀 수 없는 망자의 손길에 둘러싸인 노구덕의 입술이 푸르스름하게 물들었다. 저승에서 밀려온 한기가 육신에 스며들어 체온이 급격히 내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악마들의 공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어서 대낫을 치켜든 니베리우스와 세 개의 꼬리를 가진 헥토르가 노구덕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저리 가지 못해!”
바로 그때, 헥토르의 뒤편에서 공간이 열리며 매서운 칼바람이 휘몰아쳤다. 앙칼진 외침과 함께 헥토르를 공격한 사람은 검은 연기를 휘감은 신소율이었다. 그 탓에 뾰족한 손톱을 노구덕의 심장에 찔러 넣으려 했던 헥토르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안 돼!”
“형님!”
대낫으로 노구덕의 수급을 취하려던 니베리우스도 허탕을 치긴 매한가지였다. 막 그의 목덜미를 베어낼 듯하던 대낫은 결정적인 순간에 끼어든 완갑에 막혀 밀려났고, 니베리우스의 본체는 백색에 불꽃에 갇혀 거세게 불타올랐다.
신소율에 이어 이두식과 임유진이 도착한 것이다.
“이 빌어먹을 숯검댕이들이!”
악 소리를 낸 신소율은 섬전 같이 칼을 놀려 헥토르의 그림자를 난도질했다. 흰자위를 찾아 볼 수 없이 검게 물든 눈은 그녀가 부정의 위리놈과 완전한 동화를 이루었다는 걸 보여주었다.
그러나 헥토르 역시 육대 악마의 하나였다. 숙주가 없다곤 하나 단순한 칼부림에 일방적으로 당할 정도는 아니다. 금세 원형을 회복한 헥토르는 굉장히 분노한 듯, 여섯 개로 늘어난 꼬리를 치켜세우며 기괴한 소성을 내질렀다. 꼭 털을 잔뜩 곤두세운 들고양이를 연상케하는 광경이었다.
“이 악마 새끼가 해 보자는 거야? 오냐, 너 잘 걸렸다!”
고양이과(?)라면 신소율도 비슷한 부류다. 하얀 송곳니를 드러낸 신소율은 진득한 살기를 흩뿌리며 쌍검을 역수로 잡았다.
신소율이 팔을 휘두르자 두 개의 검날이 교차하며 쨍! 하고 맑은 검음이 울렸다. 그것이 신호탄이었던 듯, 두 마리의 악마는 서로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며 사납게 맞부딪쳤다.
“두식 씨! 후방의 병사들을 지휘해주세요! 이 그림자는 제가 맡을게요!”
“알겠습니다!”
이두식에게 지휘를 맡긴 임유진은 무섭게 눈을 부릅떴다. 노구덕이 쩔쩔매고 있는 모습을 본 직후부터, 그녀의 머리는 활활 타오르는 분노로 가득한 상태였다.
그런 그녀와 마주한 니베리우스는 어쩐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아마 본능적으로 그녀가 지닌 성화의 힘이 악마의 능력과 상극을 이루는 대칭점이라는 것을 알아챈 듯했다.
하나 이제 와서 물러난들 머리 끝가지 열이 오른 임유진이 순순히 보내줄 리 없었다.
“인페르노!”
-샤아아아아-!
눈부시도록 타오르는 태양의 권능과 뭉클뭉클 피어오른 죽음의 권능이 격돌했다. 무수한 불꽃 깃털을 휘날리는 불사조와 저승의 냉기를 발하는 사신의 대결은, 그 치열함에 있어서 결코 앞서의 일전에 뒤지지 않는 싸움이었다.
한편.
때맞춰 등장한 지원군에게 큰 도움을 받은 노구덕의 표정은… 어째 굉장히 애매했다.
‘이게… 아닌데…….’
입만 열었다하면 험한 욕설을 퍼붓는 신소율과, 사방의 공기를 후텁지근하게 데워대는 임유진을 가만히 지켜보던 그는 짧게 혀를 찼다.
‘쯧…. 단번에 일망타진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흩어 놓으면 그럴 수가 없잖아.’
그가 괜히 땅에 파묻히고, 냉기에 얼어붙고, 팔을 물려가며 궁지에 몰린 ‘척’을 한 게 아니다. 노구덕은 원래 어비스의 악마들을 가까이 끌어들여 한꺼번에 처리할 속셈이었다.
그가 알고 있는 한, 어비스의 악마들은 각개로 싸울 때보다 오히려 합공을 할 때가 훨씬 취약했다. 워낙 독립성이 강하다 보니, 합공을 할 때도 서로의 권역이 충돌하여 역효과를 내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이는 어비스쉬라인 역사상 두 마리 이상의 악마와 계약한 자가 없었던 이유와도 일맥상통했다.
만약 무릴로가 제정신이었다면 결코 이처럼 비효율적인 합공책은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무릴로는 자아가 없는 인형. 단지 육체에 각인된 전투본능을 외부로 발산하고 있는 것에 불과했다.
그래서 그 틈을 노리려던 거였는데… 신소율과 임유진의 난입으로 두 마리가 따로 떨어져버렸다. 그녀들을 탓할 것도 없이, 미리 사실을 알려주지 않은 그의 불찰이었다.
‘어쩔 수 없지. 우선 세 놈이라도 잡아볼까.’
녹슨 쇳덩이처럼 창백했던 노구덕의 안색이 어느새 제 색을 되찾았다.
“아저씨! 이놈들은 물리력이 안 통해요!”
“알고 있다.”
멀리서 들려온 신소율의 외침에 가볍게 대꾸한 노구덕은 오른팔에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잇는 네스토를 통째로 휘둘러 위에서 짓누르는 카시우스의 압력을 밀어냈다.
네스토가 붙은 오른팔이 카시우스의 실체를 밀어내는 것을 확인한 노구덕은 히죽 입매를 비틀었다.
“물리력이 통하지 않는다지만, 네놈들끼리 충돌하면 얘기가 좀 다를 것 같은데.”
노구덕은 힘에서 밀린 카시우스의 거체가 기우뚱 흔들리는 틈을 타 땅에 박힌 몸을 빼냈다. 그 순간, 아가리를 무섭게 벌린 마스테마의 얼굴이 가까이 짓쳐들었다.
쿵! 덩어리진 마스테마의 마기와 충돌한 노구덕의 눈이 깊어졌다. 생각보다 마스테마의 힘이 막강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 힘은 위에서 비틀거리는 카시우스보다 위인 것 같았다. 게다가 마기의 성분 탓인지, 충돌 부위인 팔뚝이 은근히 쓰라렸다.
‘이 마기. 내가 쓰라릴 정도면 다른 녀석들에겐 치명적이란 소린데…. 무릴로의 정신이 멀쩡했다면 꽤 까다로웠겠어.’
헐거워졌던 압력이 다시금 강해졌다. 비틀거리던 카시우스가 다시 균형을 되찾은 모양이었다. 문어인 양 달라붙은 네스토의 흡입력도 한층 더 강해진 느낌이었다.
카시우스와 네스토가 노구덕의 힘을 빼놓고, 공격력이 가장 강한 마스테마가 노구덕을 상대한다. 그럭저럭 전술이라 불릴 만한 것을 구사하는 걸 보니, 이성이 없긴 해도 아주 멍청이들까진 아니었다.
‘하긴 시너지 없는 합공보다야 서포트에 주력하는 게 훨씬 낫지. 그래도 그 정도의 본능은 남아 있는 것 같군. 하지만… 그래봐야 조잡해!’
“우아아아아악–!”
천둥 같은 함성을 발한 노구덕은 주춤거리는 마스테마를 향해 네스토가 달라붙은 오른팔을 휘둘렀다.
퍽! 퍽! 퍽! 퍽!
마스테마 정도 되는 악마에겐 무릴력이 전혀 통하지 않지만, 그게 동족의 육체라면 예외다. 하물며 탐욕의 악마를 글러브처럼 착용한 주먹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창졸지간에 먼지 나도록 두들겨 맞은 마스테마의 입에서 피시식 검은 연기가 흘러나왔다. 그 꼴이 마치 검게 죽은피를 토하는 것 같았다. 도망치듯 뒤로 물러나 희미하게 깜박이는 마스테마의 붉은 눈은 이해할 수 없다는 빛이 가득했다.
무릴로의 기억을 바탕으로 싸우는 놈에게 있어, 노구덕은 도저히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불가사의였다.
카시우스의 압력을 버티는 것까지는 이해하겠다. 상식을 파괴하는 그 힘과 무력을 감안하면 납득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네스토는 달랐다.
탐욕의 악마 네스토는 그 무엇이든 먹어치운다. 피와 고기, 뼈는 물론이고 마력과 마기, 투기, 심지어 신성력까지도 먹어치우는 식탐의 화신이었다.
어지간한 헌터라면 벌써 백 번은 어둠에 삼켜졌을 거다. 그런데 노구덕은 그런 네스토를 오른팔에 두르고도 아직까지 멀쩡했다.
말이 되지 않는다. 설령 십존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무턱대고 버틸 수는 없을 것이다.
마스테마의 떨리는 눈빛을 읽은 것일까. 팔에 감긴 네스토를 휘휘 풍차처럼 휘두른 노구덕은 음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힘이 빠지기는커녕 오히려 글러브의 착용감에 매우 만족하는 듯한 눈치다.
“미안한데, 이 네스토란 놈은 이미 빈껍데기밖에 남지 않았어. 하필 노려도 오른팔이라니. 지지리 운도 없지.”
운의 문제가 아니다. 처음부터 네스토에게 오른팔을 내준 건 그의 의도였으니까.
-……!
“먹는 거라면 이쪽에도 지지 않는 녀석이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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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추천과 코멘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전자책 수정주간이라 연참이 힘든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_ _
내일 다음화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