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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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 시온으로
마스테마가 간과한 것. 그건 바로 노구덕의 심장에 잠들어 있는 왕뱀의 존재였다.
브리트라의 심장을 취한 노구덕의 오른손에는 그녀가 지녔던 흡수(吸水)의 권능이 잠들어 있다. 말이 흡수(吸水)지, 실상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그녀의 권능은 흡수(吸收)에 가까웠다. 그것도 노구덕이 그 권능을 이용해 시스템의 잔재를 빨아들일 수 있게 되면서 한 차원 더 강해진 상태다.
같은 계열의 힘이라면 당연히 사용자의 역량에 따라 승부가 판가름 날 수밖에 없다.
그간 노구덕이 애지중지하며 질 좋은 먹이까지 꾸역꾸역 먹여 키운 브리트라와, 숙주조차 없는데다 본래의 그 힘도 브리트라에 비해 떨어졌던 네스토. 이건 대볼 것도 없는 승부였다.
콰아앙!
굉장한 폭음이 고막을 강타했다. 이번엔 카시우스 쪽이었다.
어둠의 압력이 종잇장처럼 찢어지고, 바포메트를 뛰어넘는 거구가 무력하게 뒤로 튕겨나갔다. 네스토를 두른 노구덕의 주먹에 얻어맞은 카시우스는 그 거대한 덩치가 무색하게도 이리저리 비틀거리며 좀처럼 반격에 나서지 못했다.
분노의 악마 카시우스의 권능은 무엇이든 찍어 누르는 압력이다. 그러나 그것도 상대 나름이지, 초월적 힘을 지닌 노구덕에게 있어 카시우스의 압력은 겨우 속도를 조금 둔하게 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연신 얻어터지는 카시우스의 거구가 금방 꺼질 듯이 뒤흔들리자, 높이 솟아오른 마스테마의 입에서 기이한 호곡성이 울렸다.
-시이이이이잇–!
“앗!”
“거기 서!”
임유진, 신소율의 당혹스런 외침이 들린 것도 그때였다. 그녀들과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이던 니베리우스와 헥토르가 마스테마의 울음에 반응하여 노구덕에게 달려든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에 맞춰, 지금껏 무력하게 당하고만 있던 카시우스가 갑자기 재빨리 머리를 움직여 노구덕의 팔을 물어뜯었다. 놈이 노린 건 노구덕의 팔이 아니라 그 팔을 감싸고 있는 네스토의 잔해였다.
“이런.”
글러브를 잃어버린 노구덕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생긴 찰나, 괴성을 발하는 네 악마의 공격이 그의 목숨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카시우스의 거대한 주먹이 두개골을 으깨버릴 듯 낙하하고, 마스테마가 뿜어낸 칠흑의 마기는 날카로운 올가미가 되어 그의 목줄을 휘감았다. 말미잘 같은 헥토르의 꼬리도, 서슬 퍼런 니베리우스의 대낫도 각기 하나 같이 그의 급소만을 노렸다.
압도적인 근력과 지구력, 체력과 속도를 겸비한 노구덕은 물리적으로 당해낼 자가 없는 괴물이지만, 상대적으로 투기의 양과 질은 미약했다. 앞서 네스토만 해도 그의 투기에 당했지만 금세 몸을 복구하지 않았던가. 더욱이 네스토의 잔해도 빼앗긴 지금, 그에겐 악마들에게 대항할 수단이 마땅치 않은 상태였다.
…라는 게, 거리낌 없이 공격을 퍼붓는 악마들의 생각이었다.
“고정관념이란 게 참 무섭지.”
반격을 염두에 두지 않으니 저토록 득달같이 달려들 수 있는 거다. 그러나 노구덕에 눈에 비치는 악마들은 불구덩이에 제 발로 뛰어드는 부나방이나 마찬가지였다.
“망할 놈들. 진즉 이랬으면 피차 시간 끌 필요도 없었을 텐데 말이야.”
투덜거리는 노구덕의 양 손아귀에서 두 개의 커다란 칼이 모습을 드러냈다. 둘 다 인마를 통째로 베어낼 수 있을 듯한 크기의 대도(大刀)였다. 왼손에 들린 푸른 칼날은 파직거리는 전하를 머금었고, 오른손에 들린 붉은빛 칼은 이글거리는 핏빛 마기를 두르고 있다. 처형자 최훈이 사용했던 두 개의 신검… 아니, 이제는 마검이라 불러 마땅한 뇌굉과 참룡이 소환된 것이다.
목덜미를 옥죄는 마스테마의 마기를 간발의 차이로 피해낸 노구덕은 좌수의 뇌굉을 크게 휘둘렀다.
쿠르르릉!
용울음을 토하는 칼날에서 솟구친 황금빛 번개의 그물이 악마들의 영체(靈體)를 순식간에 꿰뚫었다. 한번 펼치면 그대로 하늘을 뒤덮는다는 천둥신의 그물이다. 쐐기를 때려 박는 듯한 번개의 위력은 심연의 악마들조차 일순 주춤거리게 만들었다. 특히 가장 많은 데미지가 누적되어 있던 카시우스는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 사이, 이번엔 노구덕의 우수에 들린 참룡에서 핏빛의 폭우가 쏟아졌다. 마룡의 비늘로 이루어진 혈우의 폭격은 니베리우스의 대낫에 거미줄 같은 실금을 새기고, 헥토르의 여섯 꼬리 중 두 개를 잘라버렸다. 영체에 심대한 타격을 입은 두 악마도 카시우스처럼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이어진 포화를 마지막까지 견뎌낸 것은 역시 악마들의 수좌이자 유일하게 숙주를 가진 마스테마밖에 없었다.
불길한 칠흑의 마기를 구름떼처럼 휘감은 마스테마는 끔찍한 소성을 지르며 그에게 쇄도했다. 새빨간 눈동자가 도깨비불처럼 번쩍이는 걸 보아, 심화가 들끓어 오른 듯했다.
하나 그런 마스테마를 기다리고 있는 건, 머리 높이 쳐들린 거대한 워해머였다.
“어서 와라.”
비릿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린 노구덕은 전쟁교단의 신도들을 흉내 내는 것처럼 목청껏 소리쳤다.
“신벌이다!”
콰직! 무지막지하게 휘둘러진 워해머는 멋모르고 코앞까지 날아든 마스테마의 머리통을 그대로 몸속으로 쑤셔 박았다. 수직으로 짓눌린 머리가 통째로 몸 안에 틀어박힌 것이다.
인간이었다면 보나마나 즉사했을 일격이었으나, 마스테마는 몸뚱이가 기우뚱한 와중에도 마기를 휘둘러 노구덕의 몸통을 후려쳤다. 그러나 그 노력이 무색하게도 마스테마의 마기는 노구덕의 몸을 감싼 마갑의 보호를 뚫지 못하고 힘없이 아스러졌다.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마스테마까지 실 끊어진 연 신세가 되어 아래로 추락했다. 하지만 노구덕은 여기서 턴을 끝낼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잠시 고통에 겨워 물러났다 뿐이지, 악마들의 존재가 사라진 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직 신기를 전부 시험해보지 못했다. 그에겐 아직 전쟁교단 최강의 신기, 마갑 스트롱홀드가 남아 있었으니까.
“천둥 망치!”
번쩍 치켜든 주먹에서 폭죽처럼 쏘아 올려진 검은빛이 하늘을 온통 먹색으로 물들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영역을 넓힌 검은 공동은, 이내 몰아치는 검은 폭풍우로 변하여 아래에서 엉거주춤하는 악마들을 모조리 집어 삼켜버렸다.
-카아아아아아!
-시시시시시!
변해버린 성갑의 힘에 영향을 받은 것일까? 마기로 불러낸 폭풍우답게, 그 안에서 휘몰아치는 벼락 줄기 또한 칙칙한 검은색이었다.
천지사방을 찢어발기는 암뢰(暗雷)의 물결에 휘말린 악마들의 형체가 당장이라도 사라질 듯 희미해졌다. 카시우스는 이미 힘이 다했는지 너덜너덜한 꼴로 바닥에 쓰러졌고, 그렇잖아도 실금이 가 있던 니베리우스의 낫도 완전히 박살났다. 헥토르도, 마스테마도 펄떡펄떡 몸부림을 치기만 할 뿐, 더 이상 저항할 여력이 없어 보였다.
악마들이 약한 게 아니다. 마갑 스트롱홀드가 불러낸 벼락폭풍은 그만큼 강력했다. 오죽하면 굶주린 아귀처럼 몰려들던 아바돈의 악마들이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접근할 생각도 못하고 있을까.
놈들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것이다. 저 벼락 줄기에 조금이라도 휘말리는 순간 바로 잿더미가 되어버린다는 것을.
주인을 제멋대로 휘둘러대는 마검, 마갑일지라도 사용자의 능력에 영향을 받지 않는 건 아니다. 오히려 고삐가 풀려버린 만큼, 여타 신기들처럼 점잔 빼지 않고 사용자의 힘을 탐하는 게 마물화한 장비들의 본성이다.
그런 차원으로 보자면 노구덕이 제공하는 힘은 최고의 만찬이었다. 넘쳐흐르는 생명력과 무한한 영력을 주식으로 삼은 마물들이 그 힘을 몇 단계나 상승시켰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는 소리다.
그렇다 해도… 역시 두 눈으로 이런 광경을 본다면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어비스의 악마들을 이처럼 쉽게 요리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특히 새까맣게 탄 통구이가 되어 쓰러진 저 악마들과 방금 전가지 치열한 접전을 벌였던 두 여인은 뭔가 굉장히 허탈한 표정이었다.
“언니.”
“…으응?”
“우리가 나설 필요도 없었네요….”
“응…….”
왠지 바보가 된 기분이다. 너절하게 쓰러진 악마들을 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던 신소율은 갑자기 눈살을 찌푸렸다. 돌연 속이 뒤집힐 것처럼 메스꺼운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소율아, 왜 그러니?”
“아니, 아무것도…. 으에엑! 뭐야, 이거!”
걱정스럽게 묻는 임유진에게 괜찮다는 듯 손사래를 치던 그녀는, 손등 위에서 불쑥 튀어나온 검은 형체를 발견하고 까무러칠 듯이 기겁했다.
하얀 손등 위로 독버섯처럼 돋아난 검은 형체는 다름 아닌 무릴로의 얼굴이었다. 붉은 외눈을 번들거리는 무릴로의 머리는 심지어 입을 열어 으스스한 목소리를 내기까지 했다.
-여유부리지 말고 빨리 처리하는 게 좋을 거다.
“으아아아아! 나한테 옮겨 붙었어! 옮겨 붙었다고! 언니! 이것 좀 떼줘요!”
“잠깐만, 소율아. 진정해. 악의는 없는 것 같아.”
무릴로의 담담한 말이 어쩐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진저리를 치는 신소율의 어깨를 부여잡은 임유진은 희미하게 일렁이는 그의 얼굴에 대고 보다 자세히 따져 물었다.
“빨리 처리하라니. 그건 무슨 말이죠? 저 악마들 말인가요?”
-그래. 그러지 않으면…….
그때, 위에서부터 커다란 외침이 들려왔다.
“제정신이 돌아왔나. 쓸데없는 걱정을 해주시는군.”
우렁우렁하게 외친 이는 노구덕이었다. 어느새 하늘에서 내려온 그는 널브러진 악마들 사이에 서 있었다.
“브리트라, 포식시간이다.”
-쉬이이익!
노구덕의 뒤에 누워있던 그림자가 누가 잡아당긴 것처럼 쭉 늘어났다. 이어 거대하게 일어난 그림자의 형상이 거대한 뱀의 모습을 띠더니, 시커먼 어둠 속에서 노릿한 두 개의 안광이 돋아났다.
그림자 속에서 나타난 왕뱀은 노구덕의 주위를 빙그르르 돌며 기다란 혓바닥을 쉭쉭 거렸다. 그 모습이 꼭 주인에게 몸을 부비며 애교를 떠는 강아지를 보는 듯…….
-빌어먹을 주인! 도저히 상종 못할 인간이로고! 대체 이 몸을 언제까지 재워둘 셈이었느냐!
그렇잖아도 째진 눈을 더욱 날카롭게 찢어대는 브리트라는 무척이나 화가 난 듯했다. 간만에 잠에서 깨자마자 빌어먹는다느니 상종 못한다느니 하는 험한 소리를 지껄이는 걸 보면, 어지간히 잠자리가 불편했던 모양이다.
물론 노구덕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어차피 오래가지 않을 성화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떠들지 말고 먹기나 해라. 아니면 도로 돌려보낼 테니까.”
-먹으라고? 호오, 이것은… 악마들의 냄새로구나! 탄내가 심하긴 해도 꽤 훌륭한 만찬이로다! 멋진 주인이여! 이 몸을 위해 준비한 것이냐?
“그래, 널 위해 힘 좀 썼지.”
-역시 이 몸의 주인이로다! 감읍, 또 감읍이다! 우히히힛!
기껏 근엄한 척 하다가 마지막에 헤죽거리는 웃음을 터뜨린 브리트라는 이내 아가리를 큼지막하게 벌려 힘을 쓰지 못하는 악마들을 차례대로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온통 그림자로 이루어진 브리트라의 뱃속은 끝이 보이지 않는 주머니 같았다. 바포메트를 뛰어넘는 거구인 카시우스를 세 번으로 나누어 먹고, 몸을 질질 끌며 도망치는 악마는 길쭉한 혀로 휘감아 날름 삼켜버렸다.
순식간에 네 마리의 악마를 모두 먹어치운 브리트라는 꺼억 트림을 하더니 맨질맨질한 검은 대가리를 노구덕의 팔에 대고 비벼댔다.
-아직 허기가 가시지 않는구나. 주인, 디저트는 없는가?
-…생각지도 못한 처리방법이군.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살살 애교를 부리며 가당찮은 요구를 하는 브리트라였지만, 노구덕의 시선은 그녀가 아닌 무릴로를 향해 있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너희들은 겨우 절반도 오지 못했다. 이 앞쪽엔 악마군대보다 더한 괴물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대로 진군한다면, 시온에 도착하는 건 극소수에 불과하겠지.
“악마군대보다 더한 괴물들이라니… 설마!”
그때였다. 경악하는 임유진의 목소리에 답하듯, 저 멀리서 거대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거리가 상당한데도 불구하고 협곡 전체를 떨어 울리는 포효성이었다.
-쿠오오오오오–!
마치 산봉우리가 통째로 날아오른 듯한 거대함. 너무나도 압도적인 크기의 그림자는 태양마저 밀어낼 정도였다. 때 아닌 일식을 몰고 온 ‘그것들’은 승리의 기쁨에 젖어 있던 병사들의 얼굴을 암울한 빛으로 물들였다.
“용이다….”
“드, 드래곤…….”
세상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을 듯했던 신왕병의 사기를 꺾어놓은 수많은 그림자들.
지상을 칠흑의 어둠속으로 몰아넣은 그것은 십여 마리의 드래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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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분량이 20권이 넘었네요. 완결 권수까지 가면 대강 30권 아래로 나올 듯 하네요.
치열한 수정전쟁은 오늘도 계속.. 떡씬을 그렇게 많이 쓴 것 같진 않은데 왜 이렇게 다시 써야 할 부분이 많을까요.. ㅠㅠ
될 수 있으면 오늘 새벽에도 한편을 더 올리고 싶은데, 가능할런지 모르겠네요. 기대는 말아주세요..
항상 감사합니다!